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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2부)-47화 (466/520)

제3장. 혼자 남으시면 어쩝니까? (3)

문을 부수고 뛰어든 강찬의 눈에 가게 안의 상황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벽에 기댄 채 움직이지 않는 남일규, 그 앞쪽에 널브러진 서양 놈, 적과 뒤엉켜 칼질하는 오광택, 바닥을 구르는 석강호와 이두희.

강찬은 번개같이 손을 뻗어 오광택과 맞선 놈의 대가리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찌이-잉!

전기에 감전된 것과 똑같은 찌릿한 통증이 달려들었고, 이어서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따라왔다.

‘블랙헤드?’

당장 전해지는 느낌은 블랙헤드와 맞선 딱 그 느낌이었다.

이 개새끼야! 그런다고 물러설 줄 알아!

휘익! 으드득!

강찬은 이를 악물고 손을 잡아채 놈의 대가리를 완전히 돌려버렸다.

와락!

강찬은 다시 이두희와 뒤엉킨 놈의 대가리에 손을 뻗었다.

찌이-잉!

느낌은 같았다.

휘익! 으드득!

그리고 적의 대가리가 돌아가는 것도 같았다.

강찬을 보고서 힘을 얻은 모양이었다.

“우와아-악!”

석강호가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며 상대하던 적의 대가리를 양손으로 붙들었고,

홰액! 으드드득!

곧바로 강찬을 바라보는 것처럼 적의 대가리를 돌렸다.

강찬은 주방의 선반을 오른손으로 짚고 몸을 날렸다.

우희승은 목까지 바싹 들이댄 적의 권총을 붙들고 버티고 있었다.

터억! 찌이잉!

지랄 같은 통증과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은 변함이 없었다.

이 빌어먹을 돌멩이!

휘익! 으드드득!

등을 보였던 적의 대가리가 강찬을 향해 완전히 돌아왔다.

그때 보았다.

블랙헤드와 같이 피처럼 붉은 눈을 말이다.

털썩!

옆으로 무너진 적을 밀치고 우희승이 몸을 일으킬 때였다.

부서진 문짝을 밟으며 대테러 팀이 뛰어들었고, 이어서 “형님! 일규 형님!”하는 오광택의 고함이 들렸다.

강찬은 서둘러 주방을 돌아 홀로 움직였다.

벽에 기댄 남일규에게 석강호와 오광택이 달라붙어 있었다.

“아직 숨이 붙었소.”

“서둘러!”

강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석강호가 “끄응!” 하면서 남일규를 어깨에 걸치고 일어섰다.

“최종일! 뒤를 수습해!”

한발 늦게 들어온 최종일에게 뒤를 맡긴 강찬은 서둘러 밖으로 움직였다.

대테러 팀이 주변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는데 구급차는 보이지 않았다.

“저 차로 이동해!”

석강호가 강찬이 가리키는 대테러 팀 차량을 달렸다.

대원 한 명이 위에서 남일규를 받아주는 동안 강찬이 올라탔으며, 이어서 오광택과 이두희가 함께 올라왔다.

“방지병원! 최대한 서둘러!”

남일규를 아는 대원들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 아닌 강찬이 악을 쓴 거다.

부으으응!

몸이 휘청할 정도로 급하게 대테러 팀 트럭이 출발했고, 이무서운 속도로 병원으로 달렸다.

“선배! 정신 좀 차려봐요! 남 선배!”

벌어진 옆구리를 누른 석강호가 자꾸만 부르는 데도 남일규는 답이 없었다.

끼이이익!

앞을 막아선 차량을 피하는 것처럼 트럭이 한쪽으로 크게 흔들렸다가 바로 자세를 잡았다.

“미안하다.”

그 직후에 오광택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괜히 불러서 일을 만들었나 보다.”

끼이익! 부으으응!?

느낌만으로도 트럭을 운전하는 대원이 얼마나 서두르고 있는지 충분히 알 정도였다.

“어디에 있더라도 이런 위기는 있었을 거다. 너무 자책하지 마. 남 선배가 외로울 거라는 생각을 못 한 내게도 잘못이 있으니까.”

강찬이 대꾸를 마쳤을 때였다.

끼이익!

거칠게 방향을 튼 트럭이 급하게 멈췄다.

철컥!

문을 열린 앞으로 유헌우를 비롯한 의료진이 달려왔다.

“이리 눕혀요!”

석강호와 오광택이 옮긴 남일규를 유헌우과 의료진이 붙들었다.

“하나! 둘!”

침대에 눕힌 남일규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서둘러! CPR 준비하고!”

강찬은 빠르게 지시를 내리는 유헌우의 곁에서 함께 움직였다.

“원장님!”

강찬이 부른 이유를 유헌우는 바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내방 진료실로 가세요!”

응급실로 달려가며 유헌우가 던진 말이 그랬다.

강찬은 바로 유헌우의 진료실에 들어섰다.

팔을 걷고 기다렸는데 유헌우는 10분쯤 뒤에야 빈 팩과 바늘을 들고 들어왔다.

그가 입은 하얀 의사 가운에 남일규의 것이 분명한 붉은 피가 잔뜩 배어 있었다.

“강찬 씨. 결과가 안 좋을 수 있어요.”

바늘을 꽂으며 그가 건넨 말이었다.

“응급 처치로 심장이 다시 뛰기는 했는데 쇼크가 한 번 더 오면 돌이키지 못할 겁니다.”

쉽게 말하는 것 같아도 유헌우가 이런 순간을 얼마나 힘겨워하는지 그의 눈에 모두 담겨 있었다.

반쯤 피를 담아낸 유헌우가 급하게 응급실로 달렸다.

일단 여기까지였다.

강찬이 할 수 있는 건.

***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MSS)의 부부장 모려휘는 무거운 표정으로 거실에 들어섰다.

양범이 구금된 주택이었다.

오래된 중국 전통 가옥 중 하나인 이곳에는 작은 호수와 그 위로 다리가 있는 정원이 있고, 건너편에 고풍스러운 정자도 있었다.

얼핏 보기에 평화롭기 그지없는 거실에서 양범은 정원을 향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정문과 정원 양쪽, 그리고 거실 입구를 무장한 백랑대 대원이 지킨다.

당연하게 양범을 감시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백랑대 대원들은 오히려 들어선 모려휘를 감시하는 눈치였다.

쩔걱. 쩔걱.

모려위의 지시가 없었는데도 대원 둘이 그를 따라 들어와 거실 안쪽에 서는 모습이 그랬다.

백랑대원들을 믿어서인지 모려휘가 들어섰는데도 양범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부장 동지.”

결국, 모려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양범은 그제야 읽던 책을 내려놓고는 천천히 의자를 돌렸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어쩌겠나.

이번에도 역시나 모려휘가 먼저 입을 열 수밖에.

“프랑스 정보총국이 강찬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양범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테이블 옆에 놓인 담배를 집어 들었다.

찰칵.

그리고는 여유 있게 불을 붙였다.

“내 앞에서는 그를 위원장이라고 부르도록. 아니면 무슈 강이라고 부르던지. 이것도 저것도 싫다면 돌아가는 게 좋다.”

한국인을 저렇게까지 따르는 인간이 어떻게 백랑대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거지?

불만스러운 눈빛을 떠올렸던 모려휘가 얼른 표정을 바꿨다.

“위원장이 프랑스 정보총국을 손에 넣었습니다. 프랑스에 경고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나간 거였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껏 철수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양범은 픽 웃은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이 산유국들을 휘둘러서 유가를 떨어트리는 게 누굴 노린 것 같나?”

대꾸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엉뚱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모려휘는 담뱃재를 터는 양범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핵무기가 있는 한 강대국들의 전쟁은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함께 멸망할 테니까. 미국과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켜서 양쪽이 핵을 발사하면 어떻게 될 것 같나?”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그들 간의 전쟁은 없을 거다. 대신 미국은 우리나 유럽이 미국의 위치를 위협하는 것 또한 용납하지 못한다. 유럽 연합과 최근 급격하게 성장하는 우리를 미국이 누를 방법을 생각해봐.”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는 일입니다.”

양범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모려휘의 대꾸는 다분히 도전적이었다.

“미국은 우리의 돈과 시장이 필요해. 그렇다고 위치를 빼앗기거나 고개를 숙이고 싶지는 않지.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 주변을 먼저 무너트리는 거지.”

모려휘의 고개가 갸웃한 순간이었다.

“일본과 한국, 러시아다. 일본은 안보로, 러시아는 유가와 천연자원의 가격을 떨어트려서 무너트릴 수 있지. 남은 우리와 한국은 어떻게 무너트릴까? 우선 둘을 갈라놓아야겠지? 우리와 한국이 갈라설 일이 뭐가 있지?”

모려휘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

“위원장은 병력을 밖으로 돌렸다. 아프리카로. 유럽이 잡은 식민지를 독립시켜서 미국의 바깥을 치는 거다. 우리와 러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전체가 살아날 길은 아프리카에 있다.”

“그가…, 아니 위원장이 그것까지 계산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있나? 일이 그렇게 가고 있는데? 라노크라는 인물이 스스로 위원장 자리를 넘겨주었고, 바실리가 양보한 사람이다. 그들이 왜 그랬을지를 고민해 봤나?”

모려휘는 답을 하지 못했다.

“아프리카는 끝없는 시장이다. 숨겨진 자원도 굉장하지. 특히 재래식 무기의 최대 소비처이고. 그곳을 아시아가 가져온다. 미국이 우리 주변을 먼저 제거하기 전에, 우리는 미국의 주변을 제거할 기회를 얻는 거다.”

말을 잠시 중단한 양범이 담배를 꾹 눌러 끄고는 시선을 들었다.

“멍청한 네놈이 권력에 눈먼 놈들과 손을 잡기 전까지 우리에게도 분명한 명분과 지분이 있었던 일이다.”

“아프리카는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멍청이.”

양범은 대놓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같으면 평생 대들지 못하고 주는 것만 받아먹을 시장을 한 번에 발전시키겠나? 하나로 뭉치면 다시는 손에 넣기 어려워지는 아프리카를?”

백랑대원 둘이 존경하는 시선으로 양범을 바라보고 있었다.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가 선택한 영웅이다. 위원장을 시샘해 봐야 프랑스 정보총국이나 일본 정보국의 꼴이 되는 것 말고는 없겠지. 아프리카의 점령이 끝나면.”

양범은 꼬고 안은 다리에 양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날카롭게 모려휘를 노려보았다.

“그의 다음 목표는 반드시 아시아가 될 거다. 우리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역사가 한국을 선택했다. 어쩌면 그들의 저력이 그런 인물을 만든 건지도 모르지.”

굳은 얼굴로 있는 모려휘를 향해 양범은 날카롭게 눈빛을 빛냈다.

“한국 따위 아직도 별거 아니라고 느끼나? 아프리카의 그 넓은 땅과 그곳의 엄청난 인구를 흡수한 한국을 상상해봐라.”

퍼뜩 무언가를 느낀 것처럼 모려휘의 눈빛이 흔들린 직후였다.

“전쟁? 시장 규모? 아프리카 전체를 상대할 만큼 우리가 성장했나? 정신 차려, 모려휘! 그리고 높다란 빌딩의 그늘 속에서 가난에 허덕이는 우리 인민들에게도 시선을 돌려라.”

양범은 상체를 돌려 책을 집어 들었다.

“나는 이대로 사라져도 상관없다. 태극기가 세계 곳곳에서 휘날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나도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다. 그러나 그러지 못할 거라면 적어도 그의 적이 되지는 말아라.”

더는 모려휘를 보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양범이 아까 접어두었던 페이지를 펼쳤다.

“그것이 정치이고, 그것이 정보국의 역할이며, 그것이 진정 인민을 위한 길이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위원장과 같은 인물이 탄생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양범이 몸을 뒤로 돌렸다.

“부장의 말씀이 맞는다면 내가 지금 할 일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책을 향해 고개를 숙였던 양범이 다시 시선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모려휘를 돌아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나라면 가능성 있는 인재를 찾아내 위원장에게 맡길 거다. 위원장에게 배울 것을 배우고, 또 위원장과 오래도록 연결될 라인을 만드는 것으로 그만한 일도 없으니까.”

말을 마친 양범이 책을 향해 시선을 떨어트렸다.

창을 타고 들어온 빛이 그의 그림자를 늘어트렸다.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려휘를 덮을 정도로 긴 그림자였다.

***

반둔두 입구를 점령한 차동균은 안철호와 제라르를 먼저 만났다.

“외곽을 북한 병력이 맡아주시고, 안쪽을 용병이 맡아주었으면 합니다. 이곳과 이곳의 산 위에는 우리 대원들과 저격수를 배치하겠습니다.”

박철수가 오기 전까지 실질적인 지휘를 맡은 차동균의 지시였다.

안철호나 제라르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차동균의 지시에 따랐다.

“강철규 선생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막사를 나서기 전이었다.

안철호는 직급이 있는 대원은 무조건 ‘씨’를 붙여서 부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전부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꽉은요?”

이번엔 제라르가 던진 질문이었다.

“응급 수술은 끝났고, 이삼일 경과를 봐야 한답니다.”

차동균은 무겁게 답을 했고, 안철호와 제라르가 비슷한 표정으로 들었다.

“차동균 씨.”

막사를 나서기 전이었다.

안철호가 단단한 표정과 말투로 차동균을 불렀다.

“우리도 용맹하단 말입니다. 다음번 선두는 우리가 맡아보겠습니다.”

“어차피 반둔두 본거지로 향하기 전에 박철수 장군님이 오십니다. 다음번 작전 전에 전체 회의가 있을 겁니다.”

곽철호의 부상이 마음에 걸린 듯한 안철호의 제안을 차동균이 덤덤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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