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혼자 남으시면 어쩝니까? (1)
갈비탕에 독이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밥 먹는 동안 가라앉았다가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놓았을 때 다시 뛰기 시작했다.
요사이 자주 이랬다.
그런데 지금처럼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거세게 뛴 적은 없었다.
염병할! 이럴 때 사람 미친다.
어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데 냅다 위험하다고 지랄을 떨어대는 거라서 그렇다.
“후-!”
답답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털어낼 생각으로 강찬은 창으로 움직였다.
건너편에서 빌어먹을 미사일이라도 갈긴다면 이렇겠지 싶은데 창밖에 펼쳐진 풍경은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당장 지진이 일어나는 거라고 해도 도대체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지를 알아야 피하라고 할 게 아닌가 말이다.
강찬은 우선 최종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건너편 건물에 있는 대원들 확인해 봐. 문제없는지?”
강찬의 지시를 들은 최종일이 바로 무전기를 들었고, 대원들의 상황을 체크했다.
“건너편은 이상 없답니다.”
“뭐요? 그걸 확인할 정도로 위험한 거요?”
“다예.”
“예.”
석강호가 무거운 얼굴로 답했고, 최종일이 긴장된 얼굴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우희승하고 이두희 데리고 남 선배 찾아가. 가서 특별한 일 없어도 끝까지 함께 있어. 무기 반드시 챙겨가고. 지금 나가! 만약 전화 안 받으면 위치 추적해달라고 해서라도 찾아.”
“알았소.”
석강호가 답을 하고 일어나는 동안, 우희승과 이두희가 권총과 대검을 꺼내 들었다.
“최종일. 전 실장님께 연락해서 대통령님 현재 동선 알려달라고 해 봐. 안 되면 나 바꿔주고.”
“알겠습니다.”
“김 팀장님과도 통화해. 청장님 어디 있는지, 그리고 정보원장님 동선도 파악해 봐.”
최종일이 두 번째로 답을 할 때 전화기를 든 석강호가 불안한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남 선배가 전화를 안 받소.”
“광택이는?”
“광택이도 안 받아요.”
젠장!
강찬은 욕을 삼키며 바로 국가정보원 디지털 분석실로 전화를 넣었다.
[기수호입니다.]
“지금 번호를 알려줄 테니까 전화기의 위치를 최대한 서둘러서 찾아줘.”
[알겠습니다. 불러주십시오.]
강찬은 번호를 불러주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연락이 안 된다는 의미가 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당장 위험에 빠진 사람을 찾으라면 가장 먼저 남일규가 떠올랐다.
양동식을 잃고, 강철규와 떨어져 있는 남일규다.
한평생 가진 것 없이 산 사람이다.
어쩐지 다예를 잃고 강찬과 떨어져 있는 제라르를 노리는 것과 같은 느낌에 강찬은 이를 악물었다.
개새끼들이! 진짜!
평생 함께했던 동료를 잃고 외로워하는 양반을 노려?
그런 양반이 그렇게 거슬리는 거냐?
아니면, 그를 죽여서라도 사람을 무너트리고 싶어?
해봐라, 사람이 얼마나 독해지는지를 보여줄 테니까.
지진 아니라 세상없는 걸 써서라도 모조리 뒤집어 준다.
강찬은 건물 유리에 비친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지옥에 가주마! 얼마를 죽이든 간에 다시는 고개를 못 쳐들게 만들 수만 있다면, 내 사람을 지킬 수만 있다면, 기꺼이 지옥에 가 주마.’
유리에 비친 눈동자가 마치 다짐하듯 강찬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베란다를 향해 우두커니 앉아있는 차민정의 목을 동현이가 뒤에서 안았다.
목에 닿는 아들의 손길과 등을 감싸는 작은 몸이 아프게 느껴져서 차민정은 울컥 뜨거운 감정이 올라왔다.
살아서 아들의 손길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그 기쁨보다는 죽어간 동료들의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아들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죄책감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동현이 또래의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를 잃었다.
평생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의 잔인함을 아직 알지도 못해서 몇 밤 자면 오냐고 묻는 그 아이들이 말이다.
“이리와. 엄마 지금 아파.”
남편이 동현이를 붙잡았을 때였다.
“엄마? 아파요? 내가 호 해줄게요.”
깜찍한 음성이 그녀에게 매달렸다.
고개를 돌린 차민정은 아들 동현이를 안았다.
그녀의 얼굴과 손등, 그리고 팔등에 아직 그날의 상처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엄마? 호오-! 호!”
차민정은 울지 않았다. 아니 울고 싶은데 울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꼭지를 꽉 틀어막은 것처럼 저 아래 있는 슬픔과 분노가 터져 나오지 못하도록 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오광택은 남일규를 데리고 남산 호텔 앞쪽 골목의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여기 백반! 소주 두 병 먼저 주고요.”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와?”
노인네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서는 공연히 오광택의 등을 쓸고 지나갔다.
저녁 시간이었다.
찌개에 소주를 불콰하게 들이켠 남자들이 고래고래 악을 쓰는 시간이어서 어지간히 목청을 높이지 않고서는 대화가 어려운 시간이었다.
“어떻게 되신 거야!”
소주를 찰찰 따라준 오광택이 안주도 나오기 전에 잔을 마주 들었다.
“서운할 뻔했잖아요!”
거칠기만 한 말이었는데 오광택이 전하는 진심이 고마워서 남일규는 잔을 들었다.
“석강호 팀장이 연락 달라고 하던데?”
“석 선생님이요? 그럼 전화해야죠! 일단 한잔 마시고요!”
틱.
싸구려 소주잔이다.
둘이서 거칠게 부딪치고 난 뒤에 시원하게 들이켜자 그제야 배추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멸치에 고추 볶은 것이 테이블에 놓였다.
“왜 빈속에 술을 먹어?”
“빨리 안 주니까 그렇지!”
남일규는 오광택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양동식이 살아 있다면 딱 이럴 거다.
그놈이라면 말이다.
“형님! 석 선생한테 전화합시다. 그리고 오늘은 어디 갈 생각하지 마쇼.”
전화를 꺼낸 오광택이 불쑥 액정을 향해 고개를 디밀었다.
“얼래? 전화가 여러 번 왔었네요.”
바지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던 남일규가 “나도 그러네. 여기가 너무 시끄러워서 못 들었나?” 하고 답을 했다.
“어지간히 오고 싶었나 보네. 내가 할게요.”
오광택은 석강호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석강호는 남산 호텔로 향하는 길이었다.
“오 사장! 어디야!”
벨이 울렸고, 발신자가 오광택인 걸 확인한 석강호는 단박에 고함을 버럭질러댔다.
[아! 귀청 떨어지겠습니다. 시끄러워서 벨 소리를 못 들었어요. 여기 남산 호텔 옆에 백반집이요. 정문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 오른쪽에 슈퍼 옆집.]
“남 선배는?”
[함께 있소.]
석강호는 짧게 숨을 뱉어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러니까 내가 도착할 때까지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남 선배 어디 못 가게 하고.”
[알았으니까 얼른 오기나 해요.]
전화를 끊은 석강호는 얼른 강찬의 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통화 중이라는 응답이어서 다시 최종일의 번호를 눌렀다.
퇴근길이라 길이 제법 복잡했다.
[최종일입니다.]
“오 사장하고 통화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 다른 일 없지?”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알았어.”
전화를 마친 석강호는 그제야 우희승과 이두희에게 통화 내용을 들려주었다.
“지금처럼 경계를 강화한 뒤에 무사히 넘어간 적은 없습니까?”
우희승이 궁금한 얼굴로 질문을 던진 다음이었다.
“대장이 저렇게까지 눈빛을 빛내고 나서는 한 번도 그냥 넘어간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석강호의 솔직한 답이 나오는 바람에 승용차 안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
강찬은 김형정과 통화 중이었다.
“고성의 경계와 청장님 경호에 좀 더 신경 써 주세요.”
[경계 태세를 최대로 올리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부원장님 주변의 경호도 보강하겠습니다.]
“저는 일단 이렇게 놔두세요. 혹시 제 쪽이라면 차라리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알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강찬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덕분에 김형정이다. 그래서 편하게 통화를 마쳤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심장의 울림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심장을 꼭 움켜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이왕 올 거라면 이쪽으로 바로 와라.
주변 건드리지 말고.
만약 지진을 일으키거나 어설픈 곳 건드리면 너희는 정말 다 죽는다.
아예 그쪽 땅덩어리를 모두 가라앉혀 버릴 테니까.
강찬은 창을 향해 서서 어둠이 깔리는 바깥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
준비가 모두 끝났다.
강철규가 신호하면 유탄발사기가 날아갈 거고, 곽철호, 윤상기, 양동식이 달려나간다.
그런데 작전을 허락해달라고 당부했던 강철규가 어쩐 일인지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삐이이이-! 삐이이-융! 삐이이이! 삐이이잉!
박격포의 발사음이 들리고,
쿠으응! 쿠아앙! 쿠으으응!
멀리서 폭발음과 함께 흙먼지를 위로 뿜어낸 것 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뒤를 힐끔 보았던 강철규는 다시 반군의 기지를 노려보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이 정도로 강렬한 경고를 받아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른다.
나가면 죽어! 지금 뛰어나가면 무조건 죽는다고!
심장이 핏줄을 타고 뇌에 직접 지르는 고함처럼 분명한 경고여서 강철규는 다시 한 번 이를 악물었다.
군인이다.
비록 국가정보원 소속이지만, 강철규는 군인의 삶을 산다.
그리고 군인은 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거다.
삐이이융! 삐이이이-! 삐이이잉!
또다시 박격포탄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다만, 곽철호와 윤상기, 양동식을 헛되이 죽게 할까 봐 그것이 두려울 뿐이다.
강철규는 고개를 돌려 양동식을 바라보았다.
전투를 앞둔 대원은 저런 눈을 하는 게 맞다.
그리고 저렇게 당당한 대원 앞에서 나이 든 강철규가 시간을 끄는 건 말이 안 되는 거다.
강철규는 좌우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차동균이 단단한 눈으로 기다리고 있었고, 곽철호와 윤상기가 독한 눈빛을 빛내고 있으며, 반대편에서 또다른 대원들이 강철규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강찬이 위험한 것보다는 차라리 이곳이 낫다.
강찬처럼 중요한 인물이 위험에 빠지는 것보다는 나이 먹은 늙은 병사가 위험한 것이 백 배쯤 나은 거다.
나직하게 숨을 고른 강철규가 무전기 버튼에 손을 올렸다.
치잇.
“작전을 시작한다. 엄호하는 대원들은 곽철호, 윤상기, 양동식의 앞쪽을 철저하게 지켜주기 바란다.”
무전기 버튼에서 손을 놓는 순간이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심장이 악에 받친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할 만큼 했잖아!?
한 번쯤 작전을 물려! 못하겠다고 해!
이렇게까지 하고 받은 게 뭐가 있어!
뒤늦게 알아주는 척하고 또 희생을 강요하는 거라고!
강철규는 벽만 남은 적의 근거지를 노려보았다.
괜찮다.
마지막으로 보는 하늘이 아프리카의 반군 기지 위에 펼쳐진 것이라도.
상관없다.
조국이 이 늙은 병사를 기억해주지 못하더라도.
다시 태극기의 품에 들어와 후배들을 보았고.
뒤늦게나마 강찬을 만난 것으로 만족한다.
피식.
강철규는 특유의 웃음을 웃고는 차동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들이 죽은 땅이다.
죄 많은 아버지가 죽기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곳이 어디 있겠나.
‘고맙다.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
턱없는 인사를 남긴 강철규가 차동균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치잇.
“전 대원 대기.”
철컥! 철커덕! 철컥! 철컥!
마지막으로 무기를 점검하는 소리가 대원들 사이에서 울렸다.
강찬은 유리를 앞으로 미는 것처럼 양손으로 짚은 채 적의 목을 비틀기 직전의 눈을 하고 있었다.
심장이 주는 경고는 유라시아철도 발표회 때, 그리고 쿠드스에게 포위되었을 때 느꼈던 위기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나한테 덤벼라! 누가 죽든 이 선에서 끝내준다. 그러니 제발 이리 와라!’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턱이 뻐근할 정도였다.
아프리카는 연락되지 않는다.
반둔두를 공략하겠다는 보고가 있었고, 다음 연락은 공략이 끝난 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위기가 근처에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까운 누군가를 의미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껏 엉뚱한 곳을 보게 하다가 이제와서 말이다.
유리를 짚고 있던 강찬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이미 어두워진 하늘을 향해서였다.
“살인마가 되기를 원하는 거라면 그렇게 해주마.”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하고 최종일이 바라보았을 때 강찬은 정말이지 독한 눈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