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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2부)-44화 (463/520)

제2장. 당신은 죽는다. (2)

석강호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갸웃했다.

“광택이 만나기로 해서 저녁을 먹고 온다네요.”

남일규가 오광택 만나는 게 저렇게 신기해할 일인가?

강찬은 피식하고 웃으며 저녁을 준비한 탁자로 움직였다.

메뉴는 갈비탕이었다.

한결같이 시켜 먹는 건데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메뉴를 구성할 수 있는 건지,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일 거다.

탁자에 앉았을 때 석강호가 주섬주섬 새로운 봉지를 열었고, 그 순간에 잘 구운 고기 냄새가 훅 뿜어져 나왔다.

“그건 뭐냐?”

“갈비요. 구운 갈비.”

“갈비탕 먹으면서?”

“물에 끓인 거랑 불에 구운 거는 전혀 다른 거요.”

최종일과 우희승이 석강호를 도와 구운 갈비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진짜 많이도 시켰다.

이왕 시킨 거, 투덜댈 필요 뭐 있겠나.

숟가락을 든 강찬이 갈비탕 국물을 떠서 입으로 가져갈 때였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심장이 느닷없이 뛰었다.

“뭐요? 왜 그래요?”

강찬의 눈을 본 석강호가 대뜸 눈빛을 번득였고, 최종일 일행이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감이 안 좋은 거요?”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치겠네! 아프리카에 잔뜩 몰려가 있고, 고성도 중요하고, 지켜야 할 사람도 한둘이 아닌데.”

석강호가 푸념처럼 늘어놓은 말이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것도 요 며칠 계속 이 지랄이었다.

이러다가 또 불쑥 멈춘다.

‘가까이 왔구나!’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위험이 바로 근처에 있다는 것이었다.

***

스웨이든은 광기 어린 눈을 하고 웃었다.

입술의 양 끝을 위로 쭉 들었고, 볼이 완벽하게 휘었는데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아서 그의 웃음은 기괴해 보였다.

“미국이 나를 버리다니! 이건 정말 믿을 수가 없구만.”

웃음을 지운 그가 아직 날이 밝지 않은 건물 바깥을 바라보았다.

“평생을 봉사했다. 그런데 고작 동양놈 하나와 한국이라는 보잘것없는 나라를 위해 나 같은 애국자를 버려?”

듣는 사람도 없건만 그는 창을 향해 계속 말을 이었다.

“위선에 가득 찬 정치인들이 위대한 미국의 도전과 개척 정신을 완전히 팔아먹는구나.”

그의 표정이 이번엔 애잔하게 바뀌었다.

“CIA의 국장을 연속해서 제거한다면 누가 미국의 정보국을 존중할까!”

마치 눈앞에 라우드 대통령을 둔 것처럼 스웨이든의 눈빛이 다시 독해졌다.

“당신은 죽는다. 그것은 변함이 없지. 그리고 위대한 미국은 새로운 출발을 맞이할 거다.”

말을 마친 스웨이든이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신 뒤에 휴대전화기를 들었다.

꾹꾹꾹꾹꾹.

그는 몇 개의 암호를 입력했고, 그 뒤에 다시 번호를 찾았으며, 마지막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서너 차례 울린 다음이었다.

[전화할 줄 알았지.]

뚝뚝 부러지는 듯한 영어가 전화기를 타고 건너왔다.

[당신의 도전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난 것 같군.]

“지금부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겠다.”

[그 작전은 끝난 것으로 아는데?]

“농담을 나눌 기분이 아니다. 당신은 돈을 원하고, 나는 새로운 역사를 원하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스웨이든의 말이 건너가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봐. 당신은 지금 지불 능력을 증명해야 할 처지야.]

“미국에서 사라진 다윗의 별 자금이 내 수중에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결국, 그렇게 되었던 거군. 어쩐지 CIA의 예산으로 하기 힘든 일들을 거침없이 하더라니. 그렇다면 중도금을 넣어.]

“오늘 중으로 입금하겠다.”

[입금이 확인된 순간부터 새로운 역사를 진행하겠다.]

스웨이든이 만족한 것처럼 입술을 길게 늘였다.

[행운을 비네, 미스터 스웨이든.]

“당신도, 다르미 코프.”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스웨이든은 책상에서 일어나 창을 향해 걸었다.

“강찬이 다윗의 별을 무너트리는 바람에 얻은 자본으로 다시 강찬과 한국을 무너트리게 되다니. 신의 안배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로군.”

새벽 시간이었다.

빌딩 아래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가득했고,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로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 스웨이든은 뉴욕의 한복판에 있었다.

***

저녁을 먹고 난 강찬은 위성 사진과 지도를 앞에 놓고 시간을 보냈다.

“커피 드쇼.”

머그잔을 놓아준 석강호가 고개를 비틀고는 강찬 앞에 놓인 지도를 살폈다.

“경계가 삼엄할 거요?”

“그렇지. 게다가 일본과 달라서 걷기만 해도 눈에 띄는 데다, 발각되는 순간, 우리가 영국을 침범해서 시설물을 파괴한 꼴이 된다.”

“지진 발생 시설이란 걸 알리면 어떻소?”

“증거가 없지. 영국이 발전 시설이라고 우기면 확인하거나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석강호가 턱을 쓸어대며 지도의 한 곳을 삐뚜름하게 노려보았다.

“그럼 도이슨이란 인간을 먼저 제거하는 건 어떻소?”

“그것도 생각해 봤는데 만약 그 인간이 특별한 지시를 내려놓았다면 당장 제거하는 건 위험부담이 있다.”

“특별한 지시요?”

강찬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 동안 연락이 없으면 한국에 지진을 내려라, 뭐 이런 거.”

“에이! 이 개새끼가!”

단박에 욕을 뱉어낸 석강호가 “대장한테 한 거 아니요.” 하며 담배를 집어 들었다.

“정보총국의 도움을 받는 건 어떻소?”

“그것도 생각 중인데 딱히 얻을 게 없어. 막말로 정보총국 요원 전체가 달려든다고 해도 일이 커지면 이번엔 프랑스가 영국을 침범한 꼴이 되니까.”

“뭐요? 그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소?”

툴툴거린 석강호가 답답하다는 듯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할 수 있는 거?

강찬은 다시 지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한 가지쯤 생각난 것은 있다.

이런 곳에 숨어들어 가는데 특화된 병력이 있는 거다.

강찬, 석강호, 최종일 일행, 그리고 강철규와 남일규.

일곱 명이 영국에 있는 엄청난 시설물을 파괴하고 소리소문없이 나올 수 있을까?

살아서 돌아오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만약, 발각되거나 시체가 남게 되면 이건 한국 정부가 수습하기조차 곤란한 문제가 되고, 최악에는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도이슨.”

강찬은 지도를 보며 도이슨의 얼굴을 떠올렸고, 그를 불렀다.

사람 죽이는 거, 지겹다.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4만 명을 죽이고, 더 많은 사람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면 그건 이야기가 다른 거다.

“일단 얼굴을 봐야겠지?”

강찬이 피식 웃으며 지도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

삐이유-웅! 쿠으응! 삐이이-! 콰으응!

박격포가 날아와 터질 때마다 북한국 병사 서넛이 높다랗게 떴다가 처참하게 처박혔다.

삐이이-웅! 콰으응! 삐이이-잉! 콰아아앙!

안철호는 머리를 감싸고 바위 앞에 머리를 처박았다.

“뭐이! 어드렇게 된 기야!”

반둔두 초입이었다.

황량한 도로를 타고 걸어서 멀리 벽만 남은 건물들이 보이는 순간부터 느닷없이 박격포가 날아들었다.

투다다다! 투다다다! 투다다다다다!

전차가 연신 기관총을 갈겨댔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고,

투두둑! 투두두두둑! 투두둑!

훌쩍 몸을 든 북한군 대원들이 악착같이 쏴대는 소총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삐이융! 콰으응!

안철호의 바로 옆에서 박격포가 터졌고, 또다시 병사 세 명이 높다랗게 떴다 바닥에 널브러졌다.

“뭐하고 있네! 차동균이!”

안철호는 이를 악물고 저 멀리 있는 폐가들을 노려보았다.

제라르는 언덕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거칠게 문바키의 어깨를 잡아챘다.

삐이이융! 콰으으응!

바로 앞에서 섬뜩한 소리와 함께 흙과 돌가루가 하늘로 터져 나갔고, 엎드린 바닥이 커다랗게 흔들렸다.

이럴 때 느껴지는 진동은 가슴을 울리고 심장을 옥죈다.

공포를 느끼게 되면 몸뚱이가 딱딱하게 굳어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지는 거다.

“문바키!”

제라르가 무서운 얼굴로 문바키를 불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뒤에서 떨어지지 마! 알았어?”

문바키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불쑥 제라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대답은 항상 정확하게 해라.”

“Oui!”

“대답을 하면서 떠올려! 네가 해야 할 게 뭔지! 너의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말이다! 대답하라고!”

“Oui! Capatine!”

투다다다다다! 투다다다! 투다다다다!

삐이이융! 콰으응! 삐이이이-! 콰아아앙!

두 개의 커다란 폭발이 있은 다음이었다.

휘익! 철퍼덕!

덩치가 커다란 네로가 그제야 제라르의 옆으로 몸을 처박으며 나타났다.

“어쩔 겁니까!”

“한국 팀이 들어갔다! 잠시 지켜본다!”

네로가 뼈대만 남은 적의 근거지를 힐끔 보고는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한국 팀만으로는 무리인 것 같습니다! 그럴 바엔 우리가 저쪽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

삐이이-! 콰으으응!

말을 하던 네로가 머리를 감싼 자세로 바닥에 냅다 고개를 처박았다.

부스스스! 부스스!

하늘에서 비처럼 흙가루들이 떨어져서 제라르와 네로, 문바키를 덮쳤다.

“대기해! 공연히 우리가 움직여서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Oui!”

의견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제라르가 결정한 뒤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씩씩하게 답을 한 네로가 힐끔 시선을 돌렸다.

“그새 눈빛이 좋아졌군!”

그리고는 문바키를 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차동균은 회색 헬멧 아래로 드러난 눈빛을 번쩍였다.

미칠 일이다.

밤도 아니고, 적들은 벽만 남은 폐가 안에 처박혀서 기관총과 박격포를 이용해서 버티는 거였다.

더 환장할 일은 저 빌어먹을 폐가 주변이 완전히 벌판이라서 어디 한 곳 몸을 감출 곳도 없다는 거였다.

삐이이-! 삐이이잉! 삐이이! 삐이이-!

폐가 안에서 연신 박격포를 쏘아댔고, 그럴 때마다 포탄이 날아가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저 소리 한 번에 북한군 병사 몇 명이 쓰러지는지 알 길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을 끌수록 피해가 커진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럴 때 강찬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저 앞에 보이는 50미터의 황량한 벌판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게다가 야산 꼭대기에 불쑥 올려놓은 것처럼 위에 있어서 이쪽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아보였다.

“헬기 지원을 부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위에 등을 기댄 자세로 몸을 돌린 차동균이 강철규에게 의견을 건넸다.

그 와중에도 박격포는 쉬지 않아서 날카로운 소리가 연신 들려왔고, 잠시 뒤에 뒤편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또 터져 나왔다.

“차 대위! 엄호 사격이 가능하겠나?”

그때 강철규의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그까짓 엄호 사격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담벼락 뒤에서 기관총과 AK 소총을 갈겨대는 적들은 엄호사격만으로 막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저쪽에서 한 번, 그리고 반대쪽 저기! 저 바위 뒤에서 유탄발사기를 먼저 날려줘. 그리고 엄호 사격을 하면 당장 시선을 뺏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선배님! 거리가 너무 멉니다! 50미터를 안 걸리고 달려간다는 건…….”

차동균이 말끝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곽철호가 차동균과 강철규를 번갈아보며 상황을 살피는 앞이었다.

“일규가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니까 대원 세 명만 지원해주면 해볼 만하다.”

차동균은 헬멧과 복면 사이로 드러난 강철규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강찬이 나이 먹으면 이런 눈을 하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눈빛이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차 대위는 지휘를 맡아줘야지.”

“그럼 제가 가면 되겠습니다.”

기회를 엿보던 곽철호가 대뜸 답을 하고 나섰다.

차동균이 말릴 틈도 없이 곽철호는 고개를 돌렸다.

“두 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가 고함을 지르는 순간에!

“중위 윤상기!”

윤상기가 잽싸게 답을 했고,

“하사 양동식!”

양동식이 꼬리를 문 것처럼 이름을 대고 나섰다.

“차 대위! 작전을 승인해 주길 바란다.”

양동식의 이름 때문이었을까?

강철규의 강인하고 날카로운 눈 끝이 애잔하게 보이는 거 말이다.

“선배님. 헬기 지원을 요청하면 됩니다. 만약 지원이 어렵다면 야간 작전으로 하시죠.”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아군의 피해가 너무 커지지 않겠나?”

강철규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처럼 박격포탄 날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알겠습니다.”

차동균이 단단하게 답을 했고,

“고맙다, 차 대위.”

강철규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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