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43화 (462/520)

제2장. 당신은 죽는다. (1)

콩고 민주공화국 킨샤사의 땅과 하늘에 전투의 여운이 고스란히 남은 오후였다.

쩔걱. 쩔걱.

프란다스의 개, 네로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제라르를 향해 다가왔다.

“저 병아리가 정말 우리 지휘관이 당부한 놈인 건 맞소?”

네로가 눈으로 가리킨 방향에 문바키가 있었다.

소총 들고, 군복을 걸쳤는데 어쩐지 남의 것을 빌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전투에서 뒤로 빠지는 놈이오.”

“정말 그랬나?”

제라르가 알아주는 게 반갑고 기쁜 모양이었다.

단박에 고개를 끄덕이는 네로의 표정이 딱 그랬다.

강인해 보이는 어깨, 빈틈없는 자세, 그리고 용병들과 북한군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몸처럼 다루던 소총.

아프리카에서 제라르는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만큼이나 강렬하고, 사방을 짓누르는 열기만큼 강해 보인다.

“문바키!”

그런 그가 문바키를 부르자,

“Oui!”

문바키가 답을 하고는 빠르게 다가왔다.

“따라와.”

지시를 던진 제라르는 임시 막사 뒤편으로 움직였다.

가늘어지긴 했지만, 아직 이곳저곳에 회색과 검은색의 연기가 길게 피어오르고, 장갑차의 엔진음과 북한 병사들의 고함이 배경처럼 깔렸으며, 조금 떨어진 곳에 용병 막사가 있었다.

쩔걱. 쩔걱.

제라르는 강하게 걸었고, 문바키는 체벌을 받아야 하는 소년처럼 그 뒤를 따랐다.

5분쯤 걸어서 둔덕에 올라선 제라르가 교전이 가장 치열했던 반군의 본부에 시선을 두었다.

빙 둘러싼 북한군과 옥상에 있는 증평 특수팀 대원이 확연히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눈치를 힐끔 살피는 문바키 앞에서 제라르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철컹. 치이잇!

그리고는 지포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후우. 군사 훈련은 어디에서 받았지?”

“토로 훈련소를 나왔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제라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고 있나?”

“죄송합니다.”

엉뚱한 답이 나왔다.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린 제라르가 고개를 돌려 문바키를 보았다.

“죄송한 게 아니라 살아남는 거다. 나는 대장에게서 그렇게 배웠다.”

“무슈 강? 대장 말인가요?”

고개를 끄덕인 제라르는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언제 죽어도 별거 없는 외인 부대원에게 대장은 늘 그렇게 말했었다. 살아 있으라고, 어떤 경우에도,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 있으면 반드시 구하러 올 거라고.”

문바키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킨샤사 저 너머에 시선을 주었다. 마치 저곳 어디엔가 강찬이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대장이 절대 용서하지 않는 부류가 하나 있지. 동료들의 등을 이용해 살아남는 대원이다. 너처럼. 어떤 경우에도 그런 놈들은 대장과 함께하지 못했다.”

느닷없이 따귀를 얻어맞은 것처럼 눈을 몇 번 껌벅였던 문바키의 시선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돌아가.”

그러나 녀석은 제라르의 다음 말이 떨어지는 순간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대장이 직접 부탁한 것이 아니었다면 널 가만두지 않았을 거다. 네놈이 비겁하게 뒤로 숨은 것도 화가 나지만, 그런 행동으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모욕하는 게 무엇보다 싫다.”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 두려워서 그랬습니다.”

제라르는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또 웃었다.

같은 웃음인데 느낌은 아까와 전혀 달랐다.

굳이 말로 표현한다면 ‘헛소리하지 마.’ 정도쯤 될 거다.

“잘못은 정보총국에 돌아가서 반성하고 오늘 중으로 떠날 준비를 해. 그리고 이 시간 이후에는 전투에 참여하지 마라.”

“처음이어서 놀랐던 것뿐입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세요.”

번득하고 돌아온 제라르의 시선에 문바키가 움찔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녀석도 눈을 피하지는 않고 있었다.

“동료의 뒤에 숨는 것은 처음이라서가 아니라, 네 안에 있는 비겁함 때문이다. 내 동료 대원들이 이런 너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제라르가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대장! 바로 출발이랍니다!”

아래쪽에서 용병 한 명이 지른 고함이 둔덕 위로 날아들었다.

철컥! 철커덕!

오른쪽 어깨에 걸었던 소총을 잡은 제라르가 능숙하게 탄창을 확인하고, 노리쇠를 당겼다.

더는 이야기할 필요 없다는 것처럼 단호한 동작이었다.

“기회를 주면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애절하게 들릴 정도로 급한 청이었다.

그리고 그 청을 들은 제라르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잠시 소총을 바라보기만 했다.

강찬이 정말 원하는 게 뭘까?

그가 이런 녀석을 제라르에게 맡긴 진짜 이유?

‘이 멍청이가 대장의 가슴에 담겨 있는 건가?’

제라르는 고개를 들어 문바키를 보았다.

사람 죽이기에는 너무 맑은 눈이 제라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놈이 전투에서 적을 죽여?

어쩐지 초원을 뛰던 사슴이 토끼 사냥을 나선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도 말이다.

다른 사람 아닌 강찬이 부탁한 놈인 거다.

이 선하게 생긴 사슴이 사자에게 대들 정도로 강인하게 만드는 일이라도 강찬의 당부라면 해봐야 했다.

“아프리카의 노을이 왜 핏빛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놈이라고 들었다.”

“예.”

“어설프게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다.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마.”

“감사합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끊어야 하는 건 죽는 것만큼이나 힘겨울 수 있다.”

쩔걱. 쩔걱.

제라르가 내려갔고, 킨샤사를 돌아본 문바키가 굳은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

라우드는 그의 집무실에서 부통령 사무엘과 마주 앉았다.

“여기까지가 제가 들은 전부입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나이 든 부통령의 독백 같은 말이 끝나자 라우드는 고개만 끄덕였다.

“어쩌면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중요하한 결단을 내려준 것에 감사합니다.”

“국민이 선출해주지 않은 대통령 자리는 내게 모욕과 같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더 얻겠다는 욕심보다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해지는 법이지요.”

멋진 대꾸를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털어놓아서 뿌듯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말을 마친 사무엘이 의아한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혹시 이 일을 알고 있었습니까?”

미국 대통령 라우드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구나!’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하마터면 스웨이든이 만든 함정에 빠져 정말 멍청한 짓을 할 뻔했던 거군요.”

허탈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사무엘이 집무실을 빠져나간 다음이었다.

라우드는 책상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띠익.

[미스터 프레지던트. 동아시아 차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달칵.

“10분쯤 시간이 필요해, 낸시.”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10분이란 시간을 만들고도 정작 라우드는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5분쯤 지났다.

무언가를 결심한 눈빛을 한 라우드는 휴대전화를 들어 버튼을 눌렀다.

[샌더슨입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당신의 예상대로 스웨이든이 결국 엉뚱한 계획을 실행할 모양이오.”

상대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스웨이든을 정리하시오.”

놀라운 지시였다.

[알겠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그런데도 정말이지 덤덤한 답이 건너왔다.

“이 시간 이후로 미스터 강에 대한 대처는 국가안전국에서 맡는 것으로 하겠소.”

[알겠습니다.]

라우드가 시계를 흘깃 보았다.

약속된 10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고맙소, 샌더슨.”

전화가 끝났다.

마치 복잡했던 모든 것을 털어낸 것처럼 후련한 얼굴로 라우드는 인터폰을 눌렀다.

[예스, 미스터 프레지던트.]

“회의를 시작합시다.”

[알겠습니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은 평소와 전혀 다름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

“뭔데 그렇게 생각이 많아요?”

기다리기 지루했던지 석강호가 탁자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 갑시다. 평소처럼 다 부숴버리고 도이슨이란 새끼 목 홰액, 돌려준 다음 돌아오면 끝 아니오?”

하여간 세상을 이렇게 단순한 계산으로 사는 놈도 별로 없을 거다.

강찬이 픽 웃는 것을 본 석강호가 속없이 따라 웃었다.

“그거 보쇼. 그냥 달려가면 끝날 일을 두고 뭐하고 그렇게 신경 써요? 몇 명이나 갈 거요? 우선 저놈들은 다 같이 갈 거고.”

“지진 시설을 손에 넣으면 어떨까 생각 중이었다.”

최종일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던 석강호의 시선이 빠르게 돌아왔다.

“여차하면 영국이나 일본에 지진을 만들어줄 생각도 했었고.”

“진심이오? 그렇게 되면…….”

석강호가 말꼬리를 흐리고 강찬의 눈을 진지하게 살폈다.

“그래. 민간인의 희생이 엄청나겠지. 대신 그만큼 끔찍하고 확실한 경고가 될 거고.”

“난 또! 에이! 대장은 그런 일 못해요. 아니, 아프리카에서 여자 애 하나 살리겠다고 죽음을 무릅쓰던 양반이 민간인 몇천, 몇만이 희생되는 할 수 있을 것 같소?”

“그럴 것 같냐?”

“뭐요? 고작 그거 고민하느라고 내내 시간을 허비한 거요?”

석강호가 단순하기 그지없는 결론을 쏟아냈다.

다른 놈들이 지진 발생기에 욕심내면 어떻게 하고 싶냐는 질문도 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응징하면 되잖소?” 하는 답을 들은 것 같아서 강찬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밥 올 때 됐는데? 그나저나 이 양반은 왜 이렇게 안 오지?”

“누구? 남 선배? 전화 안 해 봤냐?”

“두 번이나 했는데 안 받아서 일단 그러려니 하고 있었소. 남 선배도 남자다 보니까 혹시 데이트 중이거나 뭐 이런 거 아닌가 싶어서요.”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절대 아닌 일도 같고.

“좀 있다가 한 번 더 해보겠소.”

강찬은 일단 석강호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남일규는 잘 포장된 마지막 상자를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내용물이 어떻게 되나요?”

“건어물 종료요.”

“음식인 거죠?”

“예.”

편안한 면 티에 면바지를 입은 그는 누가 봐도 동네에서 흔히 보이는 그런 나이든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모두……, 22만6천 원입니다.”

“여기.”

우체국 여직원의 말에 따라 남일규는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를 긁은 여직원의 요구에 사인도 멋지게 했다.

영수증과 카드를 받은 남일규가 흐뭇한 표정으로 우체국을 나섰다.

전화기를 들어서 번호를 찾는 그의 어깨를 누군가 툭 치고 지나갔다.

휘익! 터억!

손 아래로 떨어진 휴대폰을 남일규는 귀신처럼 잡아챘다.

“아저씨! 한쪽에서 좀 하세요.”

“그래요. 미안합니다.”

강남 어느 곳에서든 남일규는 이상하게 주눅이 든다.

화려한 옷차림, 세련된 행동들을 따라가지 못했고, 커피 한잔 마시려고 해도 시럽은 찾는데 남일규가 좋아하는 크림은 어떻게 넣는 건지 알기 어렵기도 했다.

우체국의 한쪽으로 움직인 남일규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선배님!]

“그래, 서 상무. 잘 지내지?”

[그럼요! 그쪽은 어떠세요?]

“나야 잘 지내지.”

몽골에 있는 서상현은 남일규가 엄청나게 반가운 음성이었고, 그만큼 남일규는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 상무. 내가 오징어랑, 김, 그리고 마른 반찬 몇 가지 보냈어. 거기 직원들이랑 먹어. 지나다가 생각나면 또 보낼게.”

[선배님! 왜 그런데 돈을 써요! 여기 신청만 하면 다 나온다니까 그러세요?]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대표님은?”

[유럽에 가셨어요. 좀 오래 걸릴 거라고 하시던데요?]

남일규는 우체국 한쪽에 서서 오래 통화했다.

몽골의 날씨를 물었고, 반찬은 어떤지 궁금해했으며, 요즘 생산량은 어떤지, 정말이지 시시콜콜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야한 잡지들도 보냈어.”

[역시! 남 선배님이 최고십니다!]

서상현이 능글맞은 대꾸와 동시에 둘이 킬킬거리면서 웃었다.

웃음이 지나간 다음이었다.

[선배님. 혹시 심심하시면 넘어오세요.]

“나야 워낙들 잘해주니까. 선배님도 여기 계시고.”

[아! 오광택 사장이 선배님 연락 없다고 무지하게 서운해 하던데요?]

“오 사장이?”

[예. 전화해 보세요. 많이 삐쳐 있을 테니까 각오 좀 하시구요.]

그렇게 전화가 끝났다.

남일규는 아쉬움을 한숨에 묻어 털어내고는 물끄러미 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오광택에게 전화를 할까, 그냥 돌아설까.

주변을 둘러본 남일규가 버튼을 눌렀다.

오광택이란 이름으로 저장된 번호였다.

벨이 딱 두 번 울렸다.

[아니! 씨……! 살아 계셨네!]

거칠고 투박한 대꾸가 전화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냥 안부전화 한 거다.

그런데 오광택은 물러서지 않았고, 악착같이 매달려서 저녁 약속을 잡았다.

남일규가 오광택과 전화를 마치고 난 뒤였다.

곧바로 벨이 울려서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디신데 여태 안 오세요?]

걸걸한 석강호의 말이 고마워서 남일규는 멋쩍게 웃었다.

“조금 전에 오 대표 만나기로 해서 아무래도 저녁은 밖에서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서운합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전화 주시지요. 어디 계실지 알려주세요. 저녁 먹고 시간 봐서 나가겠습니다.]

“그러실래?”

[맛있는 거 드시구요.]

전화를 끊은 남일규가 저무는 하늘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아프리카와 달리 서울의 노을은 아름답다.

“내가 왜 이러지?”

양동식이 보고 싶더니 지금은 철부지 아이처럼 강철규가 자꾸만 보고 싶었다.

남일규는 애꿎은 전화기를 매만지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프리카에서 사선을 넘나들 강철규에게 특별한 용건도 없이 안부 전화한다는 것이 어쩐지 죄송해서 그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