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영원히 기억할 거다. (2)
일본의 정보원이 제공한 민간항공기에 오른 것은 새벽 6시쯤이었다.
이동 중에 삼엄한 경계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경찰차, 오토바이, 자위대 차량이 앞뒤를 막은 상태에서 강찬과 요원들이 탄 버스는 활주로까지 곧바로 들어갔다.
멀리서 피어오르는 새로운 하루가 도쿄 국제공항의 활주로를 어슴푸레 비춰주는 시간이었다.
철컥. 철컥.
셔츠 위에 방탄조끼를 입었고, 정장 바지 차림이었다.
거기에 왼발에 대검, 오른발에 권총을 건 강찬이 소총을 아래로 든 상태로 버스에서 가장 먼저 내렸다.
왼손은 아직도 강용준이 감아준 셔츠를 찢어 묶은 상태였고, 오른쪽 어깨에는 검붉은 피가 엉겨 있었다.
자존심 상한 일본의 요원과 대원들이다.
그들의 험악하고 살벌한 얼굴들을 날카롭게 돌아본 강찬이 버스의 출입구에 시선을 주었다.
가장 먼저 내린 것은 옥상에서 희생된 대테러 팀 대원이었다.
오랜 시간 함께 비행했고, 차 안에서 함께 지냈다.
아무리 힘겨운 여정이 되더라도 꼭 함께하고 싶다던 바로 그 대원이 하얗게 변한 얼굴로 동료들의 손에 의해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강찬은 이를 꽉 깨문 채 대원이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철컹. 철컹.
자위대 복장의 남자가 공항에서 사용하는 소형 트레일러를 끌고 나타났다.
뒤편에 은색 관을 실었다.
끼이익. 철커엉.
희생된 대원은 관을 이용하는 것이 제대로 된 예우다.
“태극기를 덮어줘도 되겠습니까?”
대테러 팀 대원 중 한 명이 강찬에게 나직하게 던진 질문이었다. 이런 것에 무슨 고민이 있겠나.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품에서 곱게 접은 태극기를 꺼냈다.
조용수와 강용준이 다가와 희생된 대원의 앞에 섰고, 버스에서 내려온 특수 요원들과 일본 분실 요원들이 주변을 감싸듯 둘러섰다.
“태극기가 너의 영혼을, 조국이 너의 뜨거운 피를 영원히 기억할 거다.”
대테러 팀 대원이 관의 머리 쪽에서 태극기를 펼쳤고, 그의 동료 두 명이 양 끝을 잡고 관의 아래쪽으로 걸었다.
펄러억!
태극기가 도쿄 공항 활주로에 널따랗게 펼쳐졌고, 은색의 관을 덮었다.
“차렷!”
강용준이 고함을 질렀고,
“경례!”
그의 구령에 맞춰 천천히 손을 올렸다.
활주로에 반쯤 머리를 내민 태양이 이름없는 별이 된 대원의 모습을 강렬하게 비춰주는 시간이었다.
“바로!”
천천히 손을 내린 다음이었다.
지시가 없었는데도 대원들과 요원들이 움직여 관을 붙들었다.
피로 물든 셔츠 차림의 요원, 허벅지를 급하게 동여맨 요원, 그리고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린 폭파 요원이 무거운 얼굴로 관을 들었고, 진지하게 걸음을 옮겼다.
시간을 재촉하는 것처럼 일본 정보국의 부국장이 불편한 얼굴로 시계와 강찬을 번갈아 보았지만, 감히 입을 열지는 못하고 있었다.
덜컹. 촤르르르르르.
화물칸에 올라가는 것만큼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관이 화물칸에 모습을 감추었다.
“탑승한다.”
강찬의 지시에 요원들이 앞서서 비행기에 올랐다.
쩔걱. 철컥. 철컥.
강찬은 탑승구 앞에서 여전히 소총을 아래로 든 채로 서 있었다.
지킨다. 가슴에 담긴 내 사람을.
이게 내가 지금까지 뛰어다닌 가장 큰 이유니까.
대테러 팀 대원 셋과 조용수, 강용준이 강찬의 뒤와 앞에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올라가십시오.”
이들이 지닌 책임감과 의무감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강찬은 시선을 돌려 일본 정보국의 부국장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가 움찔하는 것을 보고 난 다음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경고다. 다음번에는 증평의 특수팀과 우리 대테러 팀 전체를 상대해야 할 거다.”
강찬이 말을 건넸고, 놈이 볼이 씰룩했다.
이를 악무는 것 정도야.
입 끝을 살짝 움직인 강찬은 비행기 트랩을 향해 몸을 돌렸다.
도이슨, 이제 네 차례다.
잘 먹고, 잘 자서, 모가지 단단히 지키고 있어.
강찬의 뒤로 강용준과 조용수가 마지막에 있을지 모를 저격을 막는 것처럼 바싹 붙어 트랩을 올라왔다.
좌석에 앉기 무섭게 ‘띵띵띵’ 거린 비행기는 곧장 활주로를 달렸다.
목적지는 성남 공항이었다.
그아아아아앙.
활주로를 차고 오른 여객기의 앞쪽이 높다랗게 들렸고, 이곳저곳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는데, 군용 수송기에 비하면 이건 뭐 안락한 수준인 거다.
그으으으응. 띵띵띵띵.
아무도 하지 않은 안전벨트를 풀어도 좋다는 신호가 떨어진 다음이었다.
“담배 있는 사람?”
강찬이 고개를 돌리자 요원 넷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피울 수 있는 사람은 다들 피우고, 아침 먹게 뒤쪽 좀 뒤져봐. 물도 좀 가져다주고.”
설마 이 치사한 새끼들이 기내식도 안 실었나 싶은 순간이었다.
드르르르르. 드르르르르.
요원 둘이 카트를 끌고 왔다.
찰칵.
“후우.”
강찬은 담배를 입에 물고 물병을 받았다.
시원하게 물을 들이켠 뒤에 고개를 돌린 곳에서 요원들은 모두 비슷한 모습이었다.
[속보입니다. 오늘 새벽 일본의 도쿄 국립극장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고는 어제 나리타에서 있었던 야쿠자 조직원의 보복 행위임이 밝혀졌습니다. 일본 현지에서 조성환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시간에 뉴스 전문 채널을 비롯해 방송사마다 일본의 총격전을 속보로 다루었다.
[일본 경시청은 오늘 새벽에 있었던 총격전이 어제 있었던 나리타 충돌의 보복조치라고 발표했습니다.]
TV 화면에 무거운 얼굴을 한 남자가 또박또박한 어투로 상황을 설명했고, 아래로 한글 자막이 붙었다.
[이 충돌로 무려 백여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으며, 이는 전후 일본 야쿠자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발생한 사건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구급대원들이 사망자들을 실어나르는 장면이 뿌옇게 처리된 채 화면에 올라왔다.
[일본의 다무라 총리는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하고 앞으로 야쿠자 조직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와 수사를 지시했습니다. 이상 도쿄에서 조성환이었습니다.]
화면이 바뀌며 뉴스는 아프리카에 파병된 우리 군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아프리카에 파병된 우리 군이 콩고 민주공화국의 킨샤사 반군기지를 완벽하게 장악했다는 소식입니다. 이상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쿠으응.
화면이 크게 떨린 뒤에 멀리서 시커먼 연기가 올라왔고, 거친 총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우리 군은 현지 시간 오후 3시에 콩고 민주공화국의 킨샤사 반군기지를 완벽하게 장악했습니다.]
회색 군모와 복면, 그리고 회백색 군복을 입을 우리 증평 특수팀 대원들의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소총을 앞으로 두르고 왼편 어깨에 대검을 걸었으며 왼팔에 태극기를 새긴 대원 세 명이 높을 곳에서 킨샤사를 내려다보는 장면이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보았을 거다.
강철규, 차동균, 곽철호라는 것을 말이다.
두 시간을 조금 넘어서 성남 공항에 도착했다.
띵띵띵.
경고등이 점멸하면서 비행기의 몸통이 커다랗게 휘어질 때 강찬은 잠에서 깨어났다.
앞에 두었던 물병을 들어 물을 마셨고, 머리에 살짝 부어 오른손만으로 씻었다.
공항에서 가장 먼저 유헌우를 찾아가 봐야 할 정도로 왼손의 상태가 안 좋았다.
그으으으응. 그아아아아앙!
날개 뒷부분을 불쑥 내민 여객기가 거친 엔진음을 토해내며 바닥에 내려앉았고, 이어서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드. 후아아아아앙!
창밖으로 익숙한 공항 건물이 보이자 ‘이제야 요원들을 살린 거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후우우우웅.
비행기가 완전히 멈춰 선 다음이었다.
밖을 보던 강찬은 픽 웃고 말았다.
의장대와 함께 익숙한 얼굴들이 수송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는데 뒤쪽에서 석강호의 큰 머리통이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반갑다.
석강호, 그리고 함께 걷고 있는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를 보는 것이.
트랩이 다가오는 것을 본 요원이 여객기의 도어를 열었다.
강찬은 여객기 안으로 고개를 돌려 요원들을 천천히 돌아보고는 트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장 앞에 서 있던 고건우가 강찬을 보며 굳은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고생 많았습니다. 부원장.”
악수를 마친 강찬에게 이어서 김형정과 석강호가 동시에 다가왔다.
“뭐요? 하루만 기다렸다가 같이 가든가 하지.”
강찬의 모습을 본 석강호는 염려보다는 서운하다는 속내를 먼저 밝혔다.
“고생하셨습니다.”
김형정, 최종일 일행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여객기에서 조용수와 강용준이 내려 인사했고, 요원들을 고건우에게 소개했다.
모두가 내린 다음이었다.
의장대가 화물칸으로 움직였다.
시간이 걸린다. 지켜보기 지루할 정도로.
그러나 이들의 희생을 이 정도도 기억해주지 않으면서 이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건 너무 잔인한 짓이다.
남들에 비해 엄청난 급여를 받는 것도 아니다.
밖에 대고 대한민국을 위해 일한다고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하는 직업이다.
이들에게 조국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명예를 뺏고서 어떻게 이름없는 별이 값어치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나.
“의장대! 차렷!”
태극기 덮인 관 앞에서 의장대 지휘관이 우렁차게 외쳤고,
“경례!”
촤아아악.
그의 명령에 따라 천천히 손을 올려 희생된 대원에게 예의를 갖췄다.
대한민국의 성남 공항이다.
비록 문재현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국가정보원 수장 고건우가 함께 경례하는 앞이다.
함께 움직이던 세 명의 대테러 팀 대원들이 볼을 씰룩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는데 눈물을 떨구지는 않았다.
“바로!”
촤아아악.
느릿하게 손을 내린 다음이었다.
의장대원 네 명이 움직여 관을 덮었던 태극기를 곱게 곱게 접어서 지휘관에게 전해주었다.
지휘관이 강찬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대테러 팀 대원이 그의 앞으로 나섰다.
일본에서 한국까지 대원을 지켜주었던 태극기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의장대 대원들이 준비해 온 태극기를 펼쳐 관의 주변에 둘러선 다음 널따랗게 펼쳤다. 희생된 대원의 조국, 대한민국이 그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펄럭!
지휘관은 품에서 태극기 배지를 꺼내 관의 머리 앞에 두었다. 알루미늄 재질에도 박힐 수 있도록 뾰족한 바늘을 달아놓은 배지였다.
콰아-앙!
지휘관이 하얀 장갑 낀 손으로 배지를 박아넣을 때 대테러 팀 대원 한 명이 참았던 눈물을 주르륵 떨궜다.
“의장대 예우!”
의장대가 관을 붙들고, 천천히 움직였고, 준비된 차량으로 출발했다.
“병원에 갑시다.”
강찬의 어깨와 손을 살핀 석강호가 단박에 침묵을 깨며 나섰다.
“부원장. 그렇게 하세요. 대통령께는 내가 보고하겠습니다.”
고건우가 나서주는 거라서 굳이 사양할 일도 아니었다.
강찬은 함께 움직였던 대원들, 요원들에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걸어가 그들과 손을 잡았다.
“영광스러운 작전이었습니다.”
특수 요원팀 지휘관 강용준의 대꾸가 있었고,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조용수의 말도 있었다.
승합차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이희승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거 나쁘지 않았다.
“유 원장님이 얼른 오시랍니다.”
전화를 끊은 최종일이 웃는 얼굴로 건네는 말도 기분 좋았다.
“이거 좀 드쇼.”
“그게 뭐냐?”
“배고플지 몰라서 김밥 좀 사 왔소.”
석강호가 시커먼 비닐봉지를 들고는 주섬주섬 은박지에 싸인 김밥을 꺼냈다.
“기내식 먹었는데?”
“어허! 그런 건 살로 안 가요.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둡시다.”
말을 하면서 이렇게 분주하게 손을 놀리기도 쉽지 않을 거다. 아무튼, 석강호가 김밥을 돌렸고, 뒤쪽 좌석에서 부스럭거린 우희승이 커피를 건네주었다.
“남 선배는?”
“시간 될 때 양 선배 찾아보겠다고 갔소. 다음 작전이 바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눈치입디다. 그때 빠지기 싫어서 미리 찾아보는 거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오.”
김밥을 꾸역꾸역 넣은 석강호가 궁금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번쩍 돌렸다.
“다음은 어디요?”
에이! 이 새끼는 꼭 밥알이 튀는 거지?
석강호가 강찬의 가슴에 튄 밥알을 손으로 툭 쳐냈다.
이대로 두면 같은 질문을 또 할 거다.
“영국정보국의 도이슨을 잡아줘야지.”
“푸흐흐!”
“야!”
석강호가 다시 손을 들어서 강찬의 가슴을 털어주었다.
유헌우에게 치료받은 강찬은 사무실로 돌아왔다.
석강호와 최종일 일행 역시 야간 비행을 마치고 바로 성남 공항으로 왔던 길이다.
강찬은 우선 샤워실로 향했다.
손과 어깨의 상처를 싸맨 채 시원하게 물을 맞았고, 기분 좋게 샤워실을 나섰다.
“우선 한숨 잘 거니까, 괜찮으면 다들 자두는 게 좋아. 바로 움직이게 될지 몰라.”
“그럽시다. 일어나서 점심 먹으면 딱 맞겠소.”
강찬은 회의실에 들어가 소파에 누웠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지만 또 한고비를 넘겼다.
함께 잘 사는 거, 그게 그렇게 배 아픈 일일까?
이렇게 죽여대도 악착같이 대가리를 디밀 정도로?
잠에 빠져들며 강찬은 피식 웃었다.
아프리카에서 지겹도록 봤었던 일인데 남의 것 빼앗고 싶어 하는 새끼들은 늘 그랬던 것 같아서였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미역 같이 구불거리는 해초가 올라와 깊은 곳으로 몸을 당기는 느낌이었다.
강찬은 딱 그런 느낌으로 사무실 회의실 소파에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