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39화 (458/520)

제10장. 영원히 기억할 거다. (1)

등 뒤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광등의 붉은빛이 달려들고 있었다.

“위원장! 스웨이든입니다! 그의 계획이었어요!”

가와구치의 변명을 외면한 채 강찬은 왼손으로 로프의 위쪽을 다시 움켜쥐었다. 찢어지고 갈라졌던 직후라 통증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그는 강찬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함께 가면 됩니다! 위원장의 안전은 내가 보장합니다!”

“우리 요원들 만나면 꼭 사과하고!”

“위원장……?”

강찬이 로프를 꽉 당길 때였다.

치잇.

“전 요원은 부원장님을 엄호해라! 남은 요원들은 옥상으로 집결해!”

국가정보원 일본 분실장의 급한 무전이 날아들었다.

꽈악!

무전이 넘어오는 동안 강찬은 가와구치의 멱살을 잡아 위로 들어올렸다.

“위원장!”

놈이 강찬의 손목을 양손으로 붙들고 매달리는 순간,

휘익! 휙!

강찬은 로프를 당겨 가와구치의 목을 두 번 휘감았다.

“커헉! 컥!”

찢어질 것처럼 부릅뜬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강찬은 이동 스위치를 위로 올렸다.

덜컹! 우우웅!

“끄으윽! 끄윽!”

눈과 눈을 마주 본 상태였다.

강찬의 바로 눈앞에서 머리 위로 손을 든 가와구치가 로프를 붙들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이것보다 더한 상태에서도 살아남는 놈이 있었다.

샤흐란이라고 있는데 이 새끼가 이름은 들어봤을까.

옆구리를 완전히 갈라줬는데도 살아난 놈이 있었다.

철컥!

강찬은 발목에 걸었던 권총을 꺼내 가와구치의 이마에 댔다.

“끄으으……!”

목이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꺾인 놈의 얼굴이 핏빛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비밀…, 커헉! 부원…, 모르는……! 끄윽!”

타다다당! 카카카강! 타다당! 카가강!

탈출로를 감싼 바깥 칸막이로 적의 총알이 튀었고,

푸슈슝! 푸슝! 타다당! 푸슈슝! 푸슝! 타다당!

옥상에서 우리 요원들이 쏘는 총소리가 들렸다.

“끄으.”

생명이 꺼지기 직전에 번쩍하는 것처럼 가와구치의 눈이 강찬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미련이 생생하게 남은 눈이었다.

타앙! 타앙! 타앙!

이마에만 세 번을 발사한 강찬은 가와구치의 심장에 총구를 옮기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이래도 살아나면 그건 인정이다.

그때 또 죽여주는 건 변함 없겠지만 말이다.

타다당! 카가강!

방탄유리인지 적의 소총이 계속 튀어나갔다.

“부원장님! 여깁니다!”

강용준이 손을 내밀었다.

꽈악!

강찬은 그의 손을 잡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털썩!

옥상 벽 아래로 몸을 숨겼다.

건물 주변에서 온통 경광등 불빛이 번쩍이고 있었는데 이어지는 사격은 없었고, 헬리콥터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특수 요원들과 대테러 팀 대원 셋이 옥상의 벽에 기대 몸을 감춘 상태였다.

“부원장님.”

철컥!

강용준이 건네준 소총을 무릎에 걸친 강찬은 시선을 왼쪽으로 돌렸다.

가와구치를 잡기 위해 반대쪽으로 뛰어들었던 대테러 팀 대원이 벽 한쪽에 길게 누워 있었다.

“다른 사망자는?”

“사망은 대테러 팀 대원 1명이고, 부상은 다섯 명입니다.”

“일본 분실장은?”

“저쪽 건물 옥상에 모여 있습니다.”

가와구치를 잡느라 요원들이 탈출하지 못했다.

“요원들이 빠져나갈 방법이 필요해.”

찌이익!

강찬의 지시를 못 들은 것처럼 셔츠의 소매를 찢은 강용준이 강찬의 왼손을 감싸서 묶어 주었다.

“상상조차 못 했던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국가정보원 특수 요원이 된 것이 오늘처럼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습니다.”

쪼그려 앉아서 몸을 감춘 강용준을 향해 강찬은 고개로 옆을 가리켰다.

그가 낮게 움직여 옥상 벽에 몸을 기댄 다음이었다.

강찬은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치잇.

“부원장이다. 일본 정보국 가와구치는 분명하게 제거했다.”

요원들의 시선이 단박에 강찬에게 달려들었다.

“빠져나갈 길이 없는 게 미안한데, 오늘 잘해줬다. 이 작전이 앞으로 국가정보원을 이끌어 갈 요원들에게 자랑스러운 일이 될 거라 믿는다.”

아직 동이 트기는 이른 시간이었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대신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와 함께 강렬한 라이트가 옥상을 향해 날아들었다.

“저 앞에 있는 적을 모두 제거하고 다 함께 돌아간다. 악착같이 살아남아라. 그래서 이 경험을 반드시 전해준다.”

강찬을 바라보던 강용준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지나간 다음이었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헬리콥터가 건물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옥상을 잔인하게 비췄다.

거리가 꽤 있었지만, 그렇다고 담배를 피울 여유는 없었다.

***

침대에서 전화를 받은 다무라 총리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서재를 향해 움직였다.

“부국장.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를 정확하고 솔직하게 말해줘야 합니다. 이런 문제는 국제사회의 명분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가와구치 국장이 부산에 특수 요원을 파견했습니다.]

짧은 순간, 다무라 총리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부산에서 있었던 그 침투사건이 우리의 소행이었단 말입니까? 증거가 나왔습니까?”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프랑스 정보총국은 이미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다무라는 이를 꽉 깨물었다.

“핵융합 시설로 전환하는데 우리의 역할이 있을 거라는 게 한국에 대한 테러였단 말이야! 정보국의 하는 일이 고작 테러란 말이라고? 당신들은 지금 한국의 위상이 얼마나 커졌는지 알기나 하나!”

분을 참지 못해 터진 다무라 총리의 고함이 집무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급하게 달려온 정장 차림의 비서관 둘이 입구에서 눈치만 살피고 있었는데 다무라는 손짓으로 그들을 내보냈다.

“이보시오. 부국장. 한국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전쟁을 감당할 정도의 힘을 지닌 나라요. 그 병력이 우리 일본으로 향하면 도대체 어떻게 감당할 생각이었소?”

[국장님의 비밀 지시였습니다.]

“그 인간은 이미 죽었다면서! 지금 다시 한국의 국가정보원 부원장을 죽였다가 문재현이 우리를 적국으로 지정하고 선전포고를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또다시 다무라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총리님. 외람되지만 한국의 해군으로는 우리의 영토를 침범할 수 없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아프리카를 버리고 13만에서 15만의 병력이 일본으로 온다니까! 만에 하나, 그 무시무시한 증평의 특수팀이 우리 땅에 들어서면 자위대가 그걸 감당하겠어!”

[확실한 결과는 알기에는 좀 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한국도 전면전을 함부로 결정하기는 어렵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다무라는 아예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은 한국을 모르는군. 만약 문재현이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한다면 한국 국민은 헌법을 바꿔서라도 그를 다시 대통령에 앉힐 거요.”

말을 마친 다무라 총리가 한숨을 내쉬는 동안, 상대는 대꾸하지 않았다.

“한국의 대통령과 통화하는 동안 절대 교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시하시오!”

[지금도 대치만 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접근을 막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할 거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다무라는 서재 밖을 향해 “어이!”하고 버럭 소리 질렀다.

문재현은 집무실에서 다무라의 전화를 받았다.

국가정보원 특수 요원들의 파견을 보고받아서 작전 대기 시간부터는 아예 고건우와 함께 있던 참이었다.

“문재현입니다.”

[대통령님. 이른 시간에 전화해서 유감입니다.]

“그만큼 급한 일이겠지요.”

문재현이 현 상황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의 뚝뚝 부러지는 듯한 음성과 두 번째 말에 충분히 담겨 있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 부원장과 요원들이 우리 정보국의 수장과 요원들을 살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추궁하는 듯한 음성이었다.

고건우를 힐끔 본 문재현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총리님. 우리 영토를 침범한 귀국의 도발에 나는 전쟁을 선택했고, 우리 부원장은 조용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동시통역의 긴장된 음성이 전화 음성 아래에서 빠르게 일본말을 전하고 있었다.

“나는 귀국과의 관계를 위해 애쓰는 우리 국가정보원 원장과 부원장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고건우와 전대극이 긴장된 눈으로 문재현을 바라보는 앞이었다.

“시체를 돌려주던가 아니면 화해의 손을 내밀어 앞으로 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가는 전적으로 총리님이 판단할 몫입니다.”

원한다면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었다.

통역이 말을 전하고도 짧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사건 이후 교전은 없었고, 기동대의 출동 이후, 사망자나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일은 우리 방식으로 발표하겠습니다.]

태연한 듯한 다무라의 음성 아래로 통역의 말이 깔려 들어왔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이른 시일 안에 한국을 방문해서 직접 의논하고 싶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오해가 있더라도 나는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 발전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총리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겠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문재현이 “후우-!” 하면서 기다랗게 숨을 털어냈다.

고건우와 전대극이 아직 눈치를 살피는 앞이었다.

“일단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는데 일본이란 나라는 마지막까지, 혹은 모든 일이 끝나도 믿기 어려운 구석이 있어서 방심할 수는 없습니다.”

말을 전해들은 고건우와 전대극이 나직하게 숨을 내쉴 때였다.

비서관과 경호원, 그리고 국가정보원 제3차장이 동시에 집무실로 들어섰다.

“부원장이 국가정보원 원장과 통화하기 전에는 절대 철수할 수 없다고 통보한 모양입니다. 일본 정보국에서 부원장과 통화 해주기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문재현이 “과연 부원장이군요.”하는 말끝에 웃음을 그렸다.

일본 정보국이 국가정보원에 부탁한 일이다.

그러니 말이 바뀌면 어떤 경우에도 명분은 한국이 쥔다.

“통화하고 오겠습니다.”

고건우가 나서려는 것을,

“이곳에서 하셔도 됩니다. 시간을 아낄 필요도 있고, 통화를 옆에서라도 듣고 싶어서 그럽니다.”

문재현이 책상 위의 전화기를 가리키며 고건우를 붙들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기가 울었다.

번호를 확인한 강찬은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강찬입니다.”

[부원장.]

고건우의 굵직한 음성 한 마디에 그의 감정이 어떤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대통령님과 함께 있습니다. 일본 총리의 전화가 있었고, 지금은 일본 정보국의 요청으로 전화합니다.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대테러 팀 대원 한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강찬은 사망자의 소식을 먼저 전했다.

“비록 이름없는 별이 되겠지만, 돌아가는 길에서는 희생된 대원이 주인공이었으면 싶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돌아와서 합시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강찬은 무전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치잇.

“일본 총리와 대통령님의 통화가 있었다는 소식이다. 우리의 귀국을 일본 정보국이 보장한다는 말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멀리서 헬리콥터의 불빛을 감싸는 것처럼 동이 터오고 있었다.

치잇.

“멋진 작전이었다. 별이 된 대원과 함께 돌아간다. 일본 분실장이 절차를 밟아라. 무기는 넘겨줄 수 없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든 요원은 일단 함께 귀국한다.”

치잇.

“알겠습니다.”

국가정보원 일본 분실장 조영수의 단단한 답이 건너왔다.

***

스웨이든은 빵 뺏기고 따귀까지 맞은 얼굴이었다.

[부원장을 포함한 한국의 국가정보원 인원 모두가 일본 정보국과 자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공항으로 이동 중입니다.]

“호텔의 상황은?”

[이들은 아직 움직임이 없습니다.]

기가 막힐 일이다.

현장을 비춰주는 위성을 통제할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일이 끝나버린 거였다.

“세상에 이렇게 멍청한 정보국이 있나? 도대체 3분 만에 정보국 건물 하나가 넘어간다는 게 말이 되는 거야?”

워낙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어서 그는 전화기에 대고 혼잣말처럼 심정을 쏟아내고 말았다.

[폭주족과 교대한 차량으로 움직였고, 이곳에 있는 다섯 명도 폭주족으로 가장했던 프랑스 정보총국의 요원들인 것 같습니다. 지시를 바랍니다.]

이 정도에서 우선 멈추라는 의도가 분명했다.

“철수한다.”

스웨이든은 멍청이가 아니다.

충분히 지금의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할 능력도 갖췄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상황판을 노려보았다.

“결국, 한국에서 모든 것을 결정짓게 하는군.”

위성을 이용한 에너지 파동이라면 강찬을 단숨에 잡을 수 있을 거다.

스웨이든은 볼을 씰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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