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37화 (456/520)

제9장. 얼굴쯤은 보여주고 가야지. (1)

영국정보국의 도이슨은 만족한 듯 숨을 토해냈다.

지진 발생기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였다.

띠르르. 띠르르. 띠르르.

그때 그의 전화기가 울었다.

“도이슨이오.”

[미스터 도이슨.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준비 중인 기술을 시도해야 할 때인 것 같소. 그가 나리타에 있으니 이만한 기회도 없을 거요.]

“그렇다면 신이 우리를 돌보는 게 분명합니다. 조금 전 마지막 테스트를 마쳤는데 결과가 몹시 긍정적이니까요.”

도이슨의 말이 건너가기 무섭게 전화기 저쪽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흥분한 스웨이든이 책상을 주먹을 내리친 게 분명했다.

[위성의 제한 시간은 어떻게 됩니까?]

“최대 60분까지는 정보 전송을 막을 수 있고, 그 외에 에너지 파동을 일으키는 것은 최대 30분을 유지하는 수준이오.”

[이제야 무언가 이루어지는 모양이오. 그렇다면 세 시간 안으로 연락드리리다. 아! 그가 나리타에 있다고 해도 목표 지점은 도쿄가 되어야 할 거요.]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그러나 도이슨은 전혀 언짢지 않았다.

스웨이든이 흥분한 것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타이밍 기가 막힌다.

지금 강찬이 제거되면 모든 책임이 일본으로 향하는 거다.

“건방진 애송이! 이번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거다. 너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한국에 가장 끔찍한 크기의 지진을 선사해 주마.”

마치 강찬이 앞에서 듣고 있다는 것처럼 도이슨은 혼잣말을 뱉어냈다.

스웨이든은 언젠가 아프리카에서 했던 사자 사냥을 떠올렸다.

강찬을 잡으면 이 전쟁은 끝난다.

그렇게 된다면 이 빠진 라노크 따위 적수도 되지 않는다.

대통령 자리에 앉아버린 바실리는 러시아를 돌보기에도 숨이 턱턱 막힐 거고, 중국은 이미 양범이 구금된 상태가 아닌가.

무리의 수사자인 강찬을 잡으면 아프리카에서 설치는 군대는 동력을 잃을 거고, 중국은 완벽하게 돌아설 것이며, 프랑스 정보총국은 이 기회에 라노크를 제거해 버릴 거다.

물론 한국은 강력한 지진을 먼저 얻어맞고, 이어서 영국과 다윗의 별이 안겨줄 경제적 충격을 받아야 한다.

“멋지군!”

스웨이든은 짜릿한 환상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사자의 대가리를 발로 콱 밟고 서서 포즈를 취했던 사진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해야 한다.

강찬도 그렇지만 하여간 한국은 도저히 상상도 안 되는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나라인 거다.

막말로 일본의 특수 요원 수준이 아무리 떨어진다고 해도 세상 어디에 그들 아홉을 상대로 소총을 빼앗아 그걸 쏘아댈 예비역 군인을 보유한 나라가 있겠나.

일본에서 강찬을 제거하고, 한국에서 문재현을 죽인다.

그 뒤에 죽은 두 사람을 더 없이 사악한 인간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닌 거다.

스웨이든은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나리타입니다.]

“현재 상황은?”

[호텔에서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일본 정보국 요원들이 너무 쉽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정보총국의 움직임은?”

[신쿠코 도로 이후로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짐작했던 그대로의 상황이었다.

스웨이든은 입술에 힘을 꾹 주고 지도를 노려보았다.

“일본 요원은 우리가 뿌린 미끼라고 생각해. 그는 분명 도쿄로 향했을 거다. 지금 당장 도쿄에 연락해서 수상한 점은 없는지 확인하고 특히 정보총국의 움직임이 잡히면 곧바로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스웨이든은 지도를 통해 일본의 도로를 살폈다.

아무렴 강찬이 관광을 위해 나리타에 갔겠나?

그의 타겟은 누가 뭐래도 가와구치다.

일본 정보국 건물 주변에서 기회를 엿보는 수사자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주면 모든 게 끝난다.

“후하-!”

스웨이든은 사자 사냥에서 성공했을 때처럼 탄성을 뱉어냈다.

수도 고속도로 신주쿠센에 들어선 것은 나리타를 출발하고 꼬박 네 시간만이었다.

운전석이 한국과 반대여서 강찬이 타고 있는 승용차의 오른쪽으로 메이지 신궁과 요요기 공원이 있는 도심 속 숲이 펼쳐졌다.

“도착 20분 전입니다.”

조수석의 현지 요원이 나직하게 건넨 말이었다.

“요원들 대기는?”

“열다섯 명이 48시간 전부터 건물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타겟은 10층에서 꼼짝도 않고 있습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찾았다.

[나리타입니다.]

“적의 움직임은?”

[일본 정보국 요원들이 거칠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외에 CIA 요원들로 추정되는 움직임이 있는데 아직 정확한 증거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CIA라면 말이다.

강찬은 승용차의 앞쪽을 노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쪽 요원들의 퇴로를 다시 확인해 둬. 작전은 예상대로 실행할 예정이다.”

[알겠습니다.]

전화 통화가 끝났다.

그동안 승용차는 빠르게 고속도로를 달려 신사를 지나고 있었다.

“저 앞에 보이는 병원 바로 뒷 건물입니다. 이쪽으로 국립극장과 육상 경기장, 야구장 두 곳 등이 있는데 저 뒤편으로 일본 정보국 본관이 따로 있습니다.”

말을 전한 현지 요원이 나직하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토해냈다. 긴장을 털어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강찬은 요원이 알려준 병원 건물로 시선을 돌렸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그리고 그 순간, 심장이 평소와 다르게 뛰기 시작했다.

안다. 적들도 이곳을 짐작한다는 것쯤 말이다.

그러니 강찬을 제거하기 위해 엄청난 짓들을 준비하고 있을 거라는 것도.

“이곳 시간은?”

“현재……, 새벽 3시 20분입니다.”

조수석의 요원이 답을 했을 때 승용차가 왼쪽 골목으로 돌아서 조그마한 규모의 3층 건물 뒤편으로 움직였다.

“이곳이 이번 작전의 임시 본부입니다.”

정말 좁은 주차장이었다.

그런데도 승용차는 마치 레일을 타고 도는 것처럼 가뿐하게 그 안으로 들어섰다.

눈비를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듯한 유리막 때문에 바깥에서는 주차장을 들여다보기 어려운 구조였고, 계속 따라오던 승합차가 뒤를 아예 막아버렸다.

강찬이 차에서 내리자, 조수석의 요원이 빠르게 건물의 뒷문을 열었다.

18시간을 날았고, 다시 5시간을 또 비행한 뒤에, 자동차로 네 시간을 넘게 달린 다음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스펀지로 된 바닥을 밟는 것처럼 푹푹 빠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런 피곤함은 적을 향해 달려갈 때면 거짓말처럼 말짱해진다.

안쪽 1층은 사무실로 꾸며져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부원장님. 국가정보원 일본 분실장 조양수입니다.”

강찬은 손을 내밀어 조양수와 악수했다.

어쩐지 한국인이라기보다는 외모와 옷차림까지 완벽하게 일본인처럼 보였다.

“특수공작팀 강용준입니다.”

이어서 강용준이 이름을 밝혔고, 강찬과 악수를 나눴다.

삼십 대 후반에 권투를 했었나 싶을 정도로 코와 눈에 다친 흔적이 가득했다.

“이쪽에 자료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사무실 중앙에 가로로 긴 탁자를 놓았고, 그 위에 지도가 여러 장 놓여 있었다. 그 외에도 주변에 다시 탁자와 의자들이 있어서 대략 2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다.

강찬이 가운데 앉았고, 조양수와 강용준이 맞은 편에 앉았으며 나머지 일곱 명 정도가 주변으로 둘러섰다.

“담배 피워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조양수가 시선을 돌리자 승용차 조수석에 있던 요원이 얼른 담배와 라이터, 재떨이를 가져왔다.

“피울 수 있는 사람은 함께 피우는 것으로 하지요.”

“감사합니다.”

강찬에 대해 들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라면 원래 성격이 시원시원하던지. 어딘가 김태진과 비슷한 느낌의 일본 분실장 조양수가 강용준과 담배를 집었고, 다 같이 불을 붙였다.

“후우.”

살 것 같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담배를 피우니까 말이다.

“커피 한잔 하시겠습니까?”

강찬이 픽 웃자 조양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순간에 여유 부릴 줄 아는 남자는 진짜 매력 있다. 그리고 멋있게 느껴진다.

담배를 두 모금쯤 피우고 나자 두근대던 심장의 울림이 가라앉았고, 봉지 커피의 달달한 냄새를 맡자 기운도 나는 것 같았다.

커피는 역시 또 담배와 함께 해줘야 하는 거 아니겠나?

강찬은 두 번째 담배를 집어 들었다.

찰칵.

“후우.”

커피 마시고, 담배 피우고.

3분쯤 참 멋진 여유를 즐겼다.

이제 시작할 시간이었다.

강찬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조양수가 가장 위의 지도에서 한 곳을 가리켰다.

“타겟은 10층에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층마다 방화 셔터가 있어서 2층부터는 상황실의 통제에 따라 출입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외벽에 이중 방탄유리를 설치했습니다.”

이 정도는 해놨으니까 그 개새끼가 이 건물에 죽치고 일을 보는 걸 거다.

“상주 인원은?”

“최고 경계 수준입니다. 층마다 열 명의 경호 요원이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다섯 명씩을 더 배치했습니다.”

“10층 건물이면 총 150쯤 되겠네?”

“대략 그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다시 살폈다.

“우리 쪽 인원은?”

“서울에서 넘어온 요원 15명입니다.”

이번엔 강용준이 답을 건넸다.

“일본 요원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떨어집니다. 층마다 그린베레 출신 요원들이 있다고 해도, 남은 요원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군 경험이 부족한 요원도 있습니다.”

강찬은 시선을 들어 강용준을 보았다.

“작전은 알고 있지?”

“그렇습니다. 상상 못 했던 방법이긴 한데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부진 답이었다.

그러나 답을 한 강용준의 눈가에는 긴장이 달렸고, 지켜보던 조용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준비합시다.”

강찬의 말이 떨어진 다음이었다.

요원들이 무기들을 탁자 위로 올려놓았다.

강찬은 우선 무전기를 허리 뒤에 건 뒤에 마이크를 소매에 달았다.

“부원장님.”

다음으로 조양수가 건네주는 방탄조끼를 걸쳤다.

방탄조끼에 탄창을 네 개 걸었고, 이어서 권총 두 자루를 오른쪽 허리와 왼쪽 발목에 걸었으며, 대검을 왼쪽 발목에 묶었다.

철컥! 철커덕!

마지막으로 손에 든 것은 MP5SD 소총이었다.

양복 차림이다.

마음 같으면 군복을 입고 싶었는데 그랬다가는 내전을 일으킨 꼴이 될 수 있다는 내부 의견에 따랐다.

“무전이 우리 대원들에게 전달되나?”

“그렇습니다.”

준비를 마친 강찬은 소총을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무전기의 마이크를 눌렀다.

치잇.

“부원장이다.”

방 안에 있던 요원들과 대원들이 강찬과 바깥을 번갈아 보았다.

“지금까지 그 어떤 곳도 이런 미친 짓을 한 곳이 없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하는 짓은 오랫동안 정보 세계에 떠돌게 될 최고의 미친 짓이 될 거다.”

국가정보원 일본 분실장 조양수의 볼이 씰룩였다.

“작전이 좀 무식하긴 한데, 일본이잖나? 그러니 이제부터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을 전 세계와 일본에 똑똑히 알려주고 돌아간다.”

피식 웃은 강찬은 다시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치이잇.

“어려운 작전이다. 그리고 이 작전에 나서준 여러분에게 고맙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 함께 돌아가자.”

말을 마친 강찬이 돌아보자 이번엔 강용준이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치잇.

“전 요원 대기 상태 보고할 것.”

치잇.

“1조 옥상 대기 완료.”

치잇.

“2조 정문 출입구 대기 완료.”

치잇.

“3조 후문 대기 완료.”

지시와 동시에 세 개조에서 답이 연달아 들어왔다.

정말 준비가 끝났다.

시간은 새벽 4시쯤 되었다.

“분실장님. 뒤를 부탁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역할을 해내겠습니다.”

작전을 끝낸 요원들과 대원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 따위 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충분히 알아듣고 남을 상황이었다.

강찬은 숨을 내쉬고는 함께 비행했던 네 명의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얼른 치우고 돌아가자.”

“저희는 부원장님과 좀 더 있어도 됩니다.”

적이 바글바글한 건물도 뛰어드는 거 어지간한 용기로 쉽게 되는 일 아니다.

적진 한가운데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대원들은 농담 비슷한 말을 건네고 있었다.

임무를 맡은 감동이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낼 때 대개 이렇다.

정말이지 돌아보면 대한민국에는 이런 사람들 정말 많다.

강찬은 방안을 둘러본 후에 빌딩 바깥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런 대원들과 요원들이 있어서 강찬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을 거다.

강찬은 눈빛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이런 대원들, 요원들이 있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겠나.

강찬을 시작으로 요원들 모두 복면을 집어 머리에 썼다.

보이기는 완전히 은행강도 수준이었는데 일본 정보국을 터는 거라면 이 정도는 받아들일만 했다.

치잇.

“작전 개시한다.”

무전기 버튼을 내려놓은 강찬이 입구로 움직이자, 강용준과 대원들이 뒤를 따랐다.

후욱. 후욱.

반쯤 조명을 꺼놓은 일본 정보국 건물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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