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지금부터 바꾼다 (2)
부으으응!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시작하는 신쿠코 자동차 전용 도로를 기분 좋게 달렸다.
차들은 왼쪽 길로 달리고, 운전석은 오른쪽이다.
조금 어색했지만, 이런 거 적응하는 건 일도 아닌 거다.
공항 주변이라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고, 들판이 도로 저 너머까지 펼쳐져 있었다.
왼쪽 뒷좌석에 앉은 강찬이 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띠루룩.
[11킬로미터 전방에 덤프 5대 이동 시작. 반복한다. 11킬로미터 전방에 대기 중으로 보이던 덤프트럭 5대가 공항 방향으로 출발했다.]
프랑스 정보총국의 무전기로 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강찬은 피식 웃으며 셔츠 칼라에 걸어 둔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띠루룩.
“중간에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있나?”
띠루룩.
[16킬로미터 지점을 지나야 있습니다.]
띠루룩.
“그 외에 대기 중인 차량은?”
띠루룩.
[20킬로미터 전방에 승용차 5대와 승합차 7대가 대기 중입니다.]
강찬은 두 번째로 피식 웃고 말았다.
애새끼들, 많이도 모였다.
거기 탄 인원 전부 뒈지면, 가뜩이나 숫자가 부족한 일본 정보국 특수 요원은 어떻게 보충하려고 그러지?
하긴, 일본 정보국 요원 숫자 걱정한다고 대신 죽어 줄 것도 아니다.
강찬은 다시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띠루룩.
“우리 쪽 대기 상태는?”
띠루룩.
[명령을 내리시면 바로 제거 가능합니다.]
띠루룩.
“제거해.”
띠루룩.
[제거 후 보고드리겠습니다.]
무전이 끝나자 강찬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멍청이들!
위성을 한국과 프랑스, 러시아가 독점했다는 사실을 왜 매번 잊어버리는 건지!
창밖을 보던 강찬은 퍼뜩 떠오른 사실에 눈빛을 빛냈다.
라노크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러시아로 갔을까? 바실리가 욱하는 마음에 위성 정보를 흘릴까 염려해서?
그래서 바실리를 다독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 거고?
“후우.”
라노크의 속을 뒤늦게나마 들여다보게 된 것이 늘었다면 는 걸 텐데, 이상하게 한숨이 나왔다.
강찬은 시선을 위로 들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어두운 하늘, 저기 어딘가에 떠 있을 위성 3대가 이곳을 샅샅이 보고 있을 거다.
야마모토가 이끄는 B팀은 25톤 덤프트럭 5대를 몰고 강찬이 오는 방향을 향해 무섭게 달렸다.
화물칸에 덩어리 고철을 최고 중량까지 실어 놓은 데다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중이다.
정면충돌이면 어지간한 승용차나 승합차는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그아아아앙!
엔진음이 맹수의 경고처럼 들려오는 동안, 도로에 세워진 가로등과 표지판이 빠르게 뒤로 달렸다.
일본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다.
오늘 일이 성공한다면 한국은 다시 일본의 눈치를 살피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야마모토는 눈빛을 더욱 빛냈다.
번쩍! 번쩍!
그때였다.
추월 차선에서 연달아 상향등 빛이 보이고, 10대가 넘는 승용차가 줄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치잇.
[폭주족입니다. 도미사토시 번호판 확인했습니다. 지시 바랍니다.]
덤프트럭으로 저들을 막았다가는 폭주족 성격상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달려들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자칫하다가는 목격자만 만든다.
치잇.
“이대로 달리면서 지켜본다.”
치잇.
[알겠습니다.]
답이 넘어온 직후였다.
멀리 있던 자동차의 불빛이 단박에 야마모토의 트럭 옆으로 다가왔다.
멍청한 폭주족 놈들! 빨리 사라져!
야마모토가 볼을 씰룩이며 슬쩍 시선을 주었을 때였다.
바로 옆을 달리던 승용차의 조수석과 뒷좌석의 문이 스으윽 열렸다.
미친놈들이!
조끼와 머리띠를 한 젊은 놈들이 열린 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장난치듯 떠들어 댔다.
야마모토가 미친 듯이 펄럭이는 그들의 머리칼과 머리띠 끝자락을 보는 순간이었다.
휘익! 철컥! 철커덕!
두 남자가 단박에 소총을 꺼내 운전석을 겨눴다.
눈빛이……?
야마모토가 하얗게 변한 머릿속을 수습하기도 전에,
타다다다다당! 퍼버버버버벅! 타다다다당! 퍼버버버벅!
총구에서 불이 번쩍였고,
끼이이이이익! 철퍽! 콰아아아아앙!
그가 몰던 트럭과 뒤따라 달리던 덤프트럭 4대가 레일 바깥의 들판으로 요란스럽게 처박혔다.
부으으으- 응!
유리를 올린 폭주족들의 승용차가 그대로 달려 나갔다.
다이와 준치는 B조의 결과를 긴장된 심정으로 기다렸다.
기름 발라 쫙 넘긴 머리, 눈이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선글라스, 헐렁한 양복과 화려한 셔츠까지, 누가 봐도 야쿠자 조직원으로 보일 복장이었다.
승용차와 승합차에서 대기한 인원 중에는 미국 특수부대 출신도 있었다.
B조가 달려갔다면, 도로에 갇힌 강찬은 절대로 빠져나갈 틈이 없다.
감히 일본을 우습게 알아?
그것도 조선인이?
아직 한 번도 강찬을 본 적 없는 다이와 준치가 도로 진입로를 노려보며 각오를 다질 때였다.
빠아아- 앙!
기차의 경적처럼 엄청난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뭐야?
그가 뒤를 확인하기 위해 사이드미러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번쩍하는 불빛이 눈을 파고들었다.
잘못됐다! 이건 이상해!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든 직후였다.
콰아아아아- 앙! 철벅! 철퍼덕! 콰장창!
들소 떼처럼 나타난 덤프트럭이 승용차와 승합차를 들이받았고,
타다다다당! 타다당! 타다다다당! 타다다다당!
뒤따라온 승용차들이 찌그러진 차들을 둘러싸고 무섭게 총을 갈겨 댔다.
누가 봐도 야쿠자의 전쟁처럼 보이는 살벌한 풍경이었다.
***
“밀고 올라 가라우!”
안철호는 느닷없이 사투리를 쏟아 냈다.
타다다당! 타다당 투두두둑! 투두둑! 투두두둑!
산 저쪽에 숨은 적들의 사격 때문에 함부로 밀고 올라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크르르르릉! 투타타타타타타! 투타타타! 투타타타타!
도로 저 앞까지 나간 장갑차가 연속해서 기관총을 갈겨 대고 있었지만, 어쨌든 산에 처박힌 놈들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하면 더는 나가기 어려웠다.
삐이이이이융! 콰으으응!
지금도 그렇다.
아차 했으면 RPG에 장갑차 날릴 뻔하지 않았나?
안철호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날래 움직이라!”
그리고 그는 총을 옆구리에 끼고 산을 넘어 달렸다.
타다당! 퍼버벅! 타다다당! 퍼버버벅!
그의 주변 흙이 거칠게 튀었는데, 그는 죽음을 각오한 사람처럼 보였다.
투두두둑! 투두두둑! 투타타타타타! 투두두둑!
그를 따라 북한군 병사들이 새카맣게 산을 타고 올라갔다.
“남조선 전사래 저 안에서 싸우고 있디 안네! 지디 마라! 북조선 전사의 위대함을 보이라!”
타다다당! 타다당!
그는 정말이지 미친 사람처럼 달렸다.
크으으우웅!
산 저 너머에서 묵직한 폭발음이 들리고 곧바로 회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연기가 올라왔다.
증평의 특수팀이 먼저 들어간 지역이었다.
적들의 본부를 장악해서 기관포와 RPG를 잡고, 적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막아 주는 거였다.
“기다리라우! 차동균이! 곽철호! 내래 가고 있어!”
투두두둑! 투두두두둑! 투두두둑!
안철호는 다부진 눈매의 차동균과 이름이 같아서 어쩐지 정이 가는 곽철호를 떠올렸다.
타다다당! 퍼버버벅!
그를 향해 총알이 빗발처럼 날아왔다. 앞서서 달리고 있어서 더 그런지 몰랐다.
아무튼, 어떻게 남조선 전사들을 위해 달린다고 하겠나.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로 가열차게 싸우라!”
안철호가 고함을 지르자,
“와- 아아아!”
북한의 대원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타다다당! 퍼버버벅! 타다당! 퍼버벅!
2명이 쓰러졌는데 그걸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휘이익! 철퍼덕!
몸을 날린 안철호는,
투두두둑! 퍼버버벅! 투두두둑! 퍼버버벅!
숨어 있던 반군 둘의 머리와 가슴에 총알을 제대로 박아 주었다.
“와아- 아!”
이럴 때 아군은 힘이 난다.
쿠우우웅!
저 멀리 증평팀이 있는 곳에서 또다시 땅을 흔드는 폭발음이 들리고, 연기가 커다랗게 피어오르면 미칠 것처럼 사기도 오른다.
크르르르르릉!
중간을 막아섰던 적을 해결하자 장갑차가 도로를 타고 올라왔고,
“와아아-!”
장갑차를 따라 달려오는 북한군 병사들이 요란하게 함성을 토해 냈다.
타아- 앙! 퍼억! 타앙! 퍽! 타아앙! 퍼억!
소총을 겨눈 채 달리는 제라르의 사격에 용병들과 뒤따르던 북한군 병사들은 질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철컥! 타아- 앙! 퍽! 타앙! 퍽!
그는 산의 굴곡 따위에 상관없이 발에 눈 달린 사람처럼 나아갔고,
타아앙! 퍼억!
한 발에 한 명씩 꼭 이마나 목을 뚫어 버렸다.
차칵! 철커덕! 철컥!
거기에 탄창을 갈 때도 시선조차 내리지 않았다.
휘익! 철컥! 타아- 앙!
몸을 숙였다 바로 일어나 한 방씩 갈겨 대는 제라르의 모습은 마치 들개 떼에 뛰어든 표범처럼 보였다.
“네로!”
그가 뒤를 돌아보고 소리칠 때면 볼의 상처가 화난 것처럼 확 일그러졌다.
“Oui! Capitaine(예! 대장)!”
답을 한 네로가 앞쪽을 가리키며 팔을 커다랗게 휘저었다.
타다다당! 투두두둑! 투두두둑! 투타타타타타타!
도로를 따라 달리는 장갑차가 연신 기관총을 뿜어 대고, 도로 건너편 산에서 북한군 지휘관이 빠르게 전진하고 있었다.
콰으으응!
증평의 특수팀이 만들어 낸 폭발음이 계속 이어지는 곳.
콩고 민주공화국 킨샤사 반군 기지는 완전히 전쟁의 한복판과 같은 모습이었다.
***
가와구치는 전화기를 들고서 이를 악물었다.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나 있어!]
스웨이든은 아예 그를 아랫사람 대하듯 고함을 바락바락 질러 댔다.
[그에게 이를 들이대는 순간, 우리 쪽이 완전히 드러난다고! 프랑스와 한국이 위성을 장악해서 그의 반경 50킬로미터 안은 개미 새끼 움직이는 것까지 보고한다는 것을 왜 몰라!]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하는 거다.
앞으로 빛날 일본의 명예를 위해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스웨이든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가와구치는 가슴이 뜨거워졌고, 심장이 아파 왔다.
이 굴욕을 참고 참아서 언젠가는 미국을…….
그러다가 그는 문득 강찬이 있는 한국이 부럽다는 생각을 떠올렸고, 이어서 고개를 냅다 저었다.
미국과 영국이 함부로 대들지 못하는 한국, 아프리카에 당당하게 군대를 보내는 한국.
가와구치는 소름이 쫙 돋았다.
그가 평생 꿈꿔 왔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소?]
“나리타 힐튼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투숙자 이름은 세르비안 바실리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젠장! 아주 사람을 가지고 노는군!]
스웨이든이 잠시 숨을 돌린 다음이었다.
[3시간 내로 동원 가능한 특수 요원이 몇 명이나 됩니까? 그가 묵은 호텔에 집결해야 합니다.]
예상 밖의 질문이 건너왔다.
“3시간 내로 나리타의 힐튼 호텔에 동원할 수 있는 특수요원은, 대략 30명쯤 됩니다.”
[하아.]
기가 막힌 심정을 스웨이든은 여과 없이 토해 냈다.
[그렇다면 그들을 힐튼 호텔로 집결시키고, 준비가 끝나면 연락 주시오.]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기본적인 총기류를 지녀야겠지요! 권총! 기관총! 소총! 총! 총! 총은 알 거 아닙니까!]
“말씀이 지나치잖소!”
결국, 가와구치는 폭발하고 말았다.
아무리 강대국이고, CIA 국장이라지만 어떻게 아랫사람 부리듯!
하다못해 강찬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이런 적은 없었는데!
뻑뻑한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말이 지나쳤던 부분은 유감입니다. 다른 뜻은 없었고, 그를 향한 공작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모양이오.]
“나 역시 미안합니다.”
굴욕적일 정도로 차이 나는 사과가 오간 다음이었다.
[요원을 보내서 대기하고, 호텔 밖으로 나오면 바로 알려 주시오. 나머지는 내가 다 처리하겠소.]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가와구치는 굳은 얼굴로 내선 수화기를 들었다.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멈춘다고 해서 강찬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사람인 거다.
[힐튼입니다.]
“그는?”
[현재 객실에 있습니다.]
“동원 가능한 특수요원 전부 무장한 상태로 그쪽에 집결시켜.”
[알겠습니다.]
가와구치가 굳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
부으으으응!
승용차는 밤길을 무섭게 달리고 있었다.
폭주족의 차량으로 옮겨 탔던 강찬은 다시 새로운 승용차로 옮겨 탄 뒤에 도쿄로 향하고 있었다.
담배를 꺼내 든 강찬이 불을 붙이자, 조수석에 있던 요원이 선루프를 살짝 열어 주었다.
후우우욱!
담배 연기가 빨려드는 것처럼 자동차의 천장으로 올라갔다.
“요원들은?”
“지시하신 대로 준비를 마쳤고, 대기 중입니다.”
국가정보원 특수요원들이 건물을 포위하고 있다는 걸 그 새끼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거다.
병신아.
왜 서양 놈들에겐 머리를 숙여도 되고, 한국에는 절대 그렇게 못하겠다고 지랄인 거지?
한 번 맞았던 곳이니까? 그러니까 계속 그래야 한다고?
강찬은 피식 웃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지금부터 바꾼다.
이제부터는 네놈들이 맞아라.
힘센 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라면 이제는 너희가 맞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