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34화 (453/520)

제7장. 이렇게 지켜 낸 조국이니까 (2)

강찬은 전화로 내용을 전달받았다.

아프리카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아침이었다.

[사망 4명, 부상 3명입니다.]

차민정은 분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음성이었다.

이럴 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참 어렵다.

“고생했어. 일단 부상 치료하고, 마음 먼저 추슬러.”

[면목 없습니다.]

강찬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것들이 하루 사이에 한국에서 두 번이나 염병을 떨어?

“무슨 일입니까?”

“용인에서 승용차를 이용한 자살 테러가 있었다.”

제라르와 차동균이 눈을 번들거리며 볼을 씰룩였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중앙아프리카 반군들을 몰아내는 데 집중해.”

말을 마친 강찬은 전화기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겨우 프랑스와 이집트가 정리됐다. 그 덕분에 숨어 있던 적의 윤곽이 나오는 거고. 우리나 적들이나 누가 먼저 주변을 정리하느냐의 싸움이다. 이곳을 분명하게 정리할수록 일이 빨라진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오지 말라는 것도 우습다. 그리고 어차피 바로 앞에서 헤어질 거고.

막사를 나온 강찬은 두 사람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아프리카를 부탁한다.”

“맡겨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강찬은 그길로 기다리던 헬리콥터를 향해 걸었다.

쩔걱. 쩔걱.

대테러팀 대원 4명이 완전무장 상태로 강찬을 따랐다.

우우우웅. 두두두두두두!

강찬을 발견한 헬리콥터가 묵직하게 엔진을 움직였고, 이어서 프로펠러를 돌리기 시작했다.

강철규를 못 보고 출발하는 길이다.

북한군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움직인 곽철호, 윤상기, 다른 대원들과도 인사하지 못했다.

헬리콥터가 높다랗게 떠오르면서 끝없이 펼쳐진 듯한 북한군의 막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밀고 간다.

한쪽이 완전히 죽어 자빠질 때까지.

강찬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북한군의 막사를 바라보았다.

말라위의 릴롱궤 공항에서 개인 비행기로 갈아탄 강찬은 대원들과 함께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여기서부터 다시 18시간을 날아간다.

중간 급유를 위해 들러야 하는 곳만 두 곳인 거다.

양복 차림으로 갈아입은 대테러팀 요원들이 불편한 얼굴로 커피를 가져왔다.

“왜? 군복이 더 편해?”

“꼭 그렇다기보다는, 뭐 그렇습니다.”

강찬이 픽 웃었고, 대원들이 멋쩍은 얼굴로 따라 웃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인 거 알지?”

“알고 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것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대원이 강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건넨 말이었다.

도대체 이 인간들은 왜 죽을 곳에 넣어 놓으면 다들 감사하다고 떠드는 건지.

강찬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자 대원이 뒤쪽으로 움직였다.

전에 라노크가 즐겨 탔던 비행기 수준이었다.

대신 안쪽에 별도의 공간을 만들지 않아서 강찬이 앞쪽 좌석에 있었고, 대원들은 뒤에 있었다.

강찬은 전화기를 들어 국가정보원을 찾았다.

[상황 대기실입니다, 부원장님.]

“이집트 분실에 전화해서 용인의 테러 알려 주고, 그쪽에 파견 나갔던 요원들 귀국하라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위성 감시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지시하신 지역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 중입니다.]

“고생하는 건 알지만,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도록. 그리고 고성 차세대 발전 시설 경비와 김관식 청장님 경호에 신경 쓰라고 전해 줄 수 있나?”

[김형정 팀장이 직접 경호 중입니다. 부원장님 당부를 다시 전달하겠습니다.]

알았다고 답을 한 강찬은 통화를 마쳤다.

석강호는 제라르처럼 용인의 두 사람이 요원인 걸 아직 모른다.

전화를 해 줄까?

잠시 고민했던 강찬은 여러 장의 지도를 펼쳐 놓고 차례대로 세심하게 살폈다.

전화를 안 한다면 오히려 알아들을 거다.

강찬이 아는 석강호는 그 정도는 머리를 굴리는 인간이다.

잠시 후였다.

이번엔 지도 아래에 두었던 일본 정보국 국장 가와구치 다케히코의 자료를 들어 하나하나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이쪽도, 저쪽도 누가 먼저 바깥을 무너트리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상상 못했을 거다.

아프리카에 저런 병력을 몰아 둔 것은.

정공법이 아니라 기습으로 해결한다는 것도 같다.

저쪽은 가족까지 노리고, 이쪽은 대가리들만 목표로 삼는 게 다를 뿐이었다.

서류를 확인한 강찬은 의자를 느긋하게 뒤로 돌렸다.

잘 수 있을 때 잔다.

그래야 제대로 힘을 쓸 수 있다.

이 싸움의 끝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요원을 잃지 않는 대한민국, 죽을힘을 다해 얻은 것을 빼앗기지 않는 나라가 된다면.

강찬은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편안한 옷을 입었지만, 전투 상황 한가운데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

가와구치가 심각한 얼굴로 한국의 정황을 살필 때였다.

그의 고민을 모른다는 것처럼 전화벨이 울렸다. 익숙한 발신 번호였다.

“여보세요?”

[스웨이든이요. 오늘 발표는 보았을 테고, 라우드 대통령의 방한 이틀 전에 사무엘 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거요.]

일방적인 통보였다.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가와구치는 볼을 씰룩여 가면서 억지로 음성을 가라앉혔다.

“너무 급작스러운 발표 아닙니까?”

[이번이 우리가 승기를 잡을 확실한 계기가 될 겁니다. 참고하고, 일본 정보국의 성의 있는 협조 부탁합니다.]

스웨이든은 해안 침투 실패에 대해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다. 대신 마치 아랫사람 대하듯 전화를 툭 끊어 버렸다.

“후우.”

가와구치는 나직하게 숨을 토해 냈다.

용인의 테러를 성공한 스웨이든에 비해, 가와구치가 보낸 일본의 대원들은 해안가에서 모조리 사살되었다.

미칠 일이다.

사람 좀 모인 곳에서 장갑차 운전 가능한 사람을 찾으면 열댓 명씩 나타나는 나라가 한국인 건 알았다.

소총 분해 조립은 웃으며 하는 나라인 거? 알고 있다.

그렇다고 어떻게 딱 그 순간에 공수 출신의 예비역 대위가 나타나 일을 망쳐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혹시 미국이 정보를 주었나 의심했을 정도였다.

가와구치 다케히코는 마른침을 삼키며 강찬의 동향 보고를 살폈다. 아프리카에서 한국을 향해 출발했다고 되어 있었다.

하긴 부모가 덜컥 죽어 버렸으니.

“흐음.”

어쩌면 다행인지 모른다.

그가 당장은 미국과 스웨이든을 타깃의 가장 앞에 세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더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그는 언제 불쑥 나타날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국 국가정보원 부원장이자, 프랑스 정보총국 부총국장이 일본을 상대로 뭔들 못하겠나.

가와구치는 구내 전화기를 들었다.

[말씀하십시오.]

“정보국 경호를 좀 더 강화한다.”

[현재 최고 수준이라 인원을 보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라도 해. 미국 부통령의 방문이 끝날 때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원을 최대한 끌어모아 경호에 투입해!”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가와구치가 전화기를 세차게 내려놓았다.

자위대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군의 능력과 특히 특수부대를 이전보다 월등히 강하게 만들고, 그곳을 거친 인원이 들어와야 정보국의 체질이 강해진다.

단기간에는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자위대를 강하게 만드는 법!

일본이 세계 중심에 우뚝 서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법이다.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가와구치는 버릇처럼 책상에 놓인 조부의 사진을 보며 다짐을 뱉어 냈다.

***

3시간쯤 자고 일어났을 때 비행기는 하얀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강찬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2명은 자고 있었고, 깨어 있던 둘이 무슨 일인가 하고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강찬은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뒤로 가서 물병을 집어 들었다.

짜라락.

염병. 물병 따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날 줄은 몰랐다.

잘 자고 있던 대원 둘이 번쩍 눈을 떴고, 강찬을 확인한 후에 몸을 일으켰다.

“물 마셔.”

강찬은 애꿎게 물병을 계속 꺼내서 대원들 넷에게 건네주었다.

오랜 비행에 가장 좋은 건 물을 자주 마셔 주는 거다.

그으으으으응.

바닥을 무언가 긁고 지나가는 것처럼 진동이 느껴졌는데, 이건 비행기가 작을수록 좀 더 심하게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다섯이서 사이좋게 물 마셨고, 컵라면에 기내식 먹었다.

뜨겁고 매콤한 국물에 먹는 기내식이다.

강찬은 어쩐지 석강호가 생각나서 픽 하고 웃었다.

3개의 라면을 요구했고, 그에 부끄럽지 않게 공깃밥까지 해치우고 난 뒤에야 석강호는 식탁에서 물러났다.

“아흑! 잘 먹었다. 그나저나 이 양반은 밥이나 제대로 먹고 다니나?”

“부원장님 말입니까?”

“그래. 너희까지 다 여기 있으니까 누가 밥이나 제대로 챙기기는 하는 건지.”

최종일에게 대꾸한 석강호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양반, 번거롭다고 느끼면 그냥 대강 넘길 때도 많아. 챙겨 주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그걸 알면서도 알아서 챙기게 되는 사람 있잖아.”

정말 그렇다는 것처럼 최종일과 우희승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 요원이 그릇을 빠르게 치우는 동안 한쪽에서 이두희가 커피를 탔고, 우희승이 담배와 재떨이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석강호가 담배에 손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띠르르르. 띠르르르. 띠르르르.

민환근의 전화기가 울어 댔다.

“여보세요?”

편안한 분위기였다.

“다시 말해 봐. 아직 이쪽은 그런 보도 없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민환근의 표정이 삽시간에 딱딱하게 굳어서 다들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알았다. 이쪽에 다른 지시 사항은? 그래, 응.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지?”

몇 마디를 확인했던 민환근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한국에서 두 차례 테러가 있었답니다. 용인의 부원장님 부모님이 사망하셨고.”

“이런 씨발!”

석강호가 들고 있던 담배를 뚝 부러트리며 사납게 욕을 뱉었고,

“요원 4명 사망에 부상 3명이랍니다.”

이번엔 최종일의 볼이 무섭게 씰룩였다.

“일단 귀국하시랍니다. 부원장님 지시 사항이랍니다.”

“이 씨발 새끼들! 가족을 건드려? 어떤 새끼들인지 알면 내가 그냥 그 새끼들……!”

차마 가족을 죽이겠다는 말을 뱉지 못한 석강호가 성격대로 시원시원하게 욕을 퍼부어 댔다.

“민 실장, 비행기 편 수배 좀 해 줘. 경유든, 뭐든 가장 빨리 한국에 도착하는 거로.”

“알았어.”

최종일이 부탁했고, 민환근이 답을 한 직후였다.

“가만! 그런데 이 양반이 왜 나한테 전화를 안 하고 국가정보원 라인을 이용했지?”

석강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최종일을 보았다.

듣고 보니 그렇다.

다른 사람 아닌 석강호다.

이런 일이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강찬이 전화해 주었을 사람인 거다.

뭔가 있는 거구나!

최종일과 우희승이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석강호를 바라보았다.

***

강철규, 제라르, 차동균, 곽철호, 안철호, 북한군 이춘석이 한자리에 모였다.

“내일 이동하겠습니다. 수송기로 콩고와의 국경 지역 킨샤사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중앙아프리카 최대 반군 거점인 반둔두를 공략할 계획입니다.”

차동균이 지도의 한 지점을 검지로 가리켰다.

“중화기에 전차까지 보유한 반군 기지입니다. 예상 병력 2만이라 정규군이나 정부도 함부로 상대하지 못했던 곳이고, UIS가 합류할 경우 예상하지 못할 수준으로 숫자가 늘 수도 있습니다.”

안철호와 이춘석이 지도에서 시선을 들어 힐끔 차동균을 본 다음이었다.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전차와 타이거 공격 헬기를 지원합니다.”

제라르가 어색한 한국말로 지원 내용을 알려 주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차동균은 아래에 놓였던 지도 한 장을 위로 올려놓았다.

“킨샤사에서 반둔두까지 차량으로 4시간 거리입니다. 게다가 적은 우리의 행로를 빤히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반둔두로 향하는 곳곳에서 적의 강력한 저항이 예상됩니다.”

차동균이 킨샤사에서 반둔두까지의 길을 검지로 따라가며 가리켰다.

“여기, 그리고 여기로 우리가 먼저 들어가서 거점을 확보하겠습니다. 북한 병력은 이 길을 장갑차와 함께 들어오면서 적을 완전히 섬멸해 주었으면 합니다.”

“국지전이 아니라 아예 전쟁이구만요.”

안철호가 놀랐다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가 차동균을 보고는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병력 15만을 채우라 했을 때는 이유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밀어붙이지요.”

그의 답으로 회의는 끝났다.

이제 이동만 남은 거다.

분단 이후 남북이 함께 하는 최초의 전투였다.

***

인도에서 잠시 쉬었던 비행기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홍콩이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쯤 아프리카에서는 증평의 특수팀과 북한군이 대대적인 이동을 하고 있을 거고, 이집트에 나가 있던 석강호와 최종일 일행이 한국으로 움직이고 있을 거다.

엄청난 짓을 하고 있다는 거 안다.

그렇지만 가진 걸 뺏겠다고 저 지랄들을 떠는데 좋게좋게 대화로 해결하자며 시간 끌 수는 없는 일 아니겠나.

그사이 최선을 다한 요원들과 대원들, 심지어 제대한 공수부대 대위까지 별이 되고 있는데 말이다.

어차피 천국 가긴 틀린 거 같고.

만약 지옥에 떨어지게 되면 거기서도 죄다 대가리를 돌려 줄 테니 내가 안 가길 기도하고 있어.

강찬이 피식 웃으며 창밖에 펼쳐진 슬픈 땅을 보고 있을 때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테이블에 올려놓은 전화기가 울었다.

번호를 확인한 강찬은 눈끝에 미소를 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강찬입니다, 대사님.”

[혹시 홍콩으로 오는 길입니까?]

“그렇……? 대사님, 혹시 홍콩에 계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강찬 씨를 기다리고 있지요.]

강찬은 나직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프랑스 구렁이가 적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공항에 도착하면 요원이 안내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건 뭐, 생각지도 못했던 든든한 아군을 전쟁터 한복판에서 만나러 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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