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이렇게 지켜 낸 조국이니까 (1)
격구를 끝낸 남북의 대원들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스코어는 비참하게 11:2였다.
“보라우. 우리는 숫자가 이렇게 많지 않네? 남조선 부대야 고르고 골라서 데려왔지만, 전투는 이것과 달라.”
지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북한군 병사는.
용병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증평팀이 9명씩 세 팀으로 나뉘어 뛰었는데, 스코어는 모두 비슷했다.
“우리가 잘 아는 종목이라 그럴 거야. 당신들이 익숙해지면 우리도 오늘처럼은 못 이기겠지.”
그럴듯하게 대꾸한 윤상기가 물을 마실 때, 북한군들이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못 들은 척하라고 지시받았다.
함께 싸울 처지에 공연히 눈 부라려서 좋을 것 없는 거다.
해가 얼마 남지 시간이었다.
씻고 밥 먹기 위해 윤상기가 자리에서 일어설 때였다.
“윤상기 동무, 내일은 다를 기야. 기케 알라우.”
다부진 각오가 넘어왔는데, 윤상기는 사람 좋은 척 웃어 주고 말았다.
성질 같으면 그냥……!
자박자박. 자박자박.
황야를 밟는 운동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성질대로 하지 못한 갑갑함을 땀으로 쏟아 내며 윤상기는 막사로 걸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거지?
낮에 헬리콥터가 2대나 용병 쪽으로 날아온 것을 보면 무언가 중요한 일이 있는 건 분명했다.
윤상기가 막사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대원들을 지켜보던 차동균, 곽철호, 강철규에게 경례하는 순간에 그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강철규는 몰라도 차동균과 곽철호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윤상기는 이유를 캐묻기 어려웠다.
계급도 그렇고, 한 사람만 있는 거라면 슬쩍 엉겨 붙어서 물어볼 만도 한데 다른 사람 아닌 강철규가 있는 거다.
특수팀의 전설 앞에서 어떻게 함부로 행동하겠나.
아쉬움을 안은 채 윤상기는 샤워실로 들어섰다.
안쪽이 시끌시끌했다.
저 새끼들은 또 왜 지랄들인가?
고개를 들이밀며 안으로 들어서던 윤상기는 반가운 심정으로 그만 소란을 떨고 말았다.
강찬과 제라르였다.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두 사람이 군복 바지에 반팔 티 차림으로 탈의실에 있었다.
“언제 오셨습니까?”
“낮에 헬기 타고 왔어.”
대원들과 반갑게 인사한 강찬이 ‘얼른 씻고 나와. 밥 먹자.’ 하고 몸을 돌렸다.
얼른 씻는 거?
증평 특수팀 그런 거 정말 잘한다.
마음 같으면 드럼통 안에 불 피워 고기 굽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선선해도 아프리카다.
엄지손가락만 한 벌이 날아다니고, 그런 벌이 애교로 보일 정도의 독충과 손바닥 크기의 나방이 날아드는 곳에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다는 건 아무래도 위험한 짓이었다.
식당으로 들어간 강찬은 대원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이제는 한식에 완벽하게 적응한 제라르가 옆에 있었고, 강철규, 차동균, 곽철호가 한 테이블에 앉아 하는 식사였다.
무섭게 달렸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아프리카에 한국의 특수부대가 파병된 상황인 거다.
이들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그러나 전쟁을 해야 한다면, 죽고 죽이는 일이 생길 거라면 이렇게 아프리카로 끌고 오는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
북한을 이용해 전쟁을 만들려는 세력을 막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북한의 병력을 가까이, 대신 한국에서 떨어진 곳에 두는 일이었다.
30분쯤에 걸쳐 저녁을 먹었다.
다들 느낀다.
강찬이 있고 없는 것에 따라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누가 뭐래도 증평 특수팀이었다.
식사를 마친 대원들이 눈치껏 종이컵에 봉지 커피를 타서 다시 식사하던 자리로 돌아갔다.
말이 없어도 뜻을 알아차리는 사이다.
이러니 증평의 특수팀이 강찬의 친위대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나.
이런 대원들은 그만큼 존중해 주는 게 맞다.
태극기와 조국을 위해 목숨 건 남자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였다.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앞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대원들의 시선이 단숨에 달려들었다.
“이틀 안으로 이동한다.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콩고 민주공화국이다.”
대원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강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잔인한 반군과 UIS가 점령한 지역이다. 인원수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아이, 여자들이 몸에 폭탄을 두르고 나타나는 곳이다. 우리는 그곳을 가장 먼저 점령한다.”
지금껏 평범해 보이던 대원들의 눈빛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지금의 대원들은 그들이 왜 특수팀, 그것도 세계적인 특수팀이라고 불리는지를 완벽하게 눈빛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용병팀이 안내를 맡고, 증평팀이 적의 중심부를 공략한다. 이어서 북한군이 외곽을 완벽하게 포위하고 밀고 들어갈 예정이다.”
강찬은 대원들을 돌아본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중동에서 지원이 있을 거고, 아프리카의 반군이 콩고 민주공화국으로 몰려올 거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싸움을 아프리카로 가져왔다고 생각해라. 대한민국의 군인을 대표해서 그 모든 싸움을 우리가 맡는다.”
윤상기가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힘겨운 싸움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있는 동안, 적은 반드시 우리의 본거지인 대한민국을 노린다. 그러니 이곳의 싸움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돌아간다.”
대원들이 각오 가득한 눈빛들로 답을 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내일 따로 브리핑이 있을 거다.”
“대장도 함께 갑니까?”
식당에 앉은 대원들의 궁금증을 대신해서 윤상기가 번쩍 던진 질문이었다.
“나는 함께 참여하지 못한다.”
아쉬운 표정이 바람처럼 대원들의 얼굴을 스치고 지났다.
그러나 각진 얼굴에 담긴 날카로운 눈빛들은 변하지 않아서 강찬에게 의지가 되어 주었다.
***
차민정은 새벽에 집을 나서 용인의 주택에서 아침을 먹었다.
외곽을 경계하는 요원들은 아예 비트를 파고 몸을 숨겼을 정도로 최고 수준의 경계 상태였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미쉘과 함께 유럽으로 떠났고, 가까이 보아서도 구별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분장한 요원 2명이 두 사람을 대신해 밭에 있었다.
이런 상황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를 차민정이 아니다.
대테러팀 절반이 프랑스로 향했고, 증평의 특수팀은 아프리카에 있으며, 북한군까지 가세했다면 전쟁과 다르지 않은 상황인 거다.
차민정이 양손을 포개고 서서 밭에 있는 두 사람을 지켜볼 때였다.
치잇.
[승용차 1대, 승합차 1대 접근.]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무전이 날아들었다.
차민정은 빠르게 요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녀를 포함해 근접 경호 요원은 모두 5명이었다.
밤샘 근무를 마친 김 대리가 퇴근해서 지금 이곳의 지휘관은 차민정이었다.
치잇.
[출입 확인되지 않은 차량이다. 지시 바란다.]
두 번째 들어온 무전에 차민정은 소매를 들었다.
치잇.
“탑승 인원과 무기 확인해.”
치잇.
[승용차 한 명, 승합차는 운전석만 확인 가능하다.]
이런 상황, 골백번도 더 훈련했다.
차민정의 눈짓에 근접 경호 요원 넷이 강대경과 유혜숙으로 분장한 요원 둘을 감싸다시피 하고 건물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대한민국이다.
외국과 달라서 의심스럽다고 사격을 명령하기는 어렵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입구를 향해 몸을 돌린 차민정이 다시 소매를 들었다.
치잇.
“저격수 대기.”
치잇.
[저격수 대기 완료.]
차민정이 지시했고, 저격수가 곧바로 답했다.
그녀는 소매에 달린 무전기의 버튼을 다시 눌렀다.
치잇.
“의심스러운 상황 발생 시 우선 발사한다.”
치잇.
[카피.]
무전은 모두 들었다.
이 정도 지시를 받았다면 요원들 모두 완벽하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거다.
무전이 끝날 때쯤 승용차와 승합차가 시멘트 포장길을 울퉁불퉁하게 달려왔다.
차민정은 나직하게 숨을 들이켰다.
적이다!
2대의 차량을 본 직후에, 쿵쾅거리는 심장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차민정은 오른쪽 허리에 걸렸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왼쪽 발목에 매단 또 다른 권총의 무게감도 확인했다.
끼이익.
대문에서 15미터쯤 앞이었다.
길 바깥쪽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요원 2명이 앞으로 나서 차량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양복 차림이라 얼핏 보면 사설 경호원쯤으로 보였다.
끼이이이익.
차량이 멈췄고, 요원 한 명이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앞을 막고 서 있는 요원은 권총을 뽑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운전석 유리가 천천히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부슈- 웅! 퍼서석!
저격수의 사격이 승용차의 조수석 유리를 때렸다. 위험하다고 판단했거나 무기를 보았던 거다.
방탄유리?
차민정이 대문 기둥 뒤로 몸을 날리는 순간,
타아아- 앙! 퍼억!
운전석으로 향했던 대원의 머리가 커다랗게 터져 나갔고,
부으으응! 터어엉!
거칠게 달리기 시작한 승용차가 권총을 꺼낸 요원을 그대로 들이받으며 정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부슈- 웅! 카아앙! 부슈- 웅! 퍼석!
방탄유리가 분명했다.
저격수의 총알에 회색으로 변할 정도로 갈라졌는데도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부으으응! 콰자자자작! 부으으응!
닫힌 문을 그대로 들이받은 승용차가 마당 안으로 뛰어들었고, 그 뒤를 따라 승합차가 들어왔다.
타아아앙! 타아아앙! 타아아앙!
차민정은 조수석을 향해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부슈- 웅! 퍼서석! 부슈- 웅! 퍼석! 부슈- 웅! 카아앙!
저격수들의 사격이 이어졌고,
타아아앙! 타아앙! 타아아앙!
근접 경호원들의 사격이 이어지는데도 차량에 탄 놈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차민정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피해! 폭탄 테러다! 물러나! 서둘러!”
그녀가 화들짝 몸을 들었을 때였다.
우화아아아악!
투명한 막이 덮치는 것처럼 눈앞이 일그러졌고,
콰으으으응! 콰아아아아앙!
승용차와 승합차에서 일어난 엄청난 불길이 전원주택을 완전히 감쌌다.
***
김영철은 공수 224기다.
특수전 130차, 고공 24차, 강하조장 119차, 거기에 정보사 심리전 교육 3기를 마쳤을 정도로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특수팀 정예 중 정예였다.
훈련은 지독했다.
그러나 그는 푸른 군복과 베레모가 주는 영광, 왼쪽 팔에 걸린 태극기를 지킨다는 신념 하나로 훈련을 이겨 냈다.
훈련, 훈련, 그리고 또 훈련.
그의 삶은 훈련과 가족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생활에 감사했고, 군인으로서, 가장으로서 늘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살았다.
기본 강하 40회, 고공 강하 60회가 넘는 베테랑 중 베테랑 김영철은 그러나 군복을 벗어야만 했다.
마지막 고공 강하 때문이었다.
돌풍에 휘말린 대원을 챙기느라 낙하산을 뒤늦게 편 탓이었다.
휘이이익! 콰지직!
중심을 잃은 상태에서 바닥에 내려설 때 끔찍한 통증과 함께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무릎과 정강이에서 뼈가 튀어나왔을 정도의 커다란 부상이었고, 그는 그렇게 군복을 벗었다.
병원에서는 평생 오른쪽 다리를 못 쓸 거라고 알려 주었다.
김영철은 오늘도 자전거에 올랐다.
새벽에 해안도로를 일주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모든 이가 절대 쓰지 못할 거라던 오른쪽 다리를 그는 징그럽도록 악착같이 노력해서 결국 멀쩡한 다리로 만들었다.
예비군 동대장이다.
후배들이 아프리카로 파병 나가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쪽이 텅 비는 것 같았지만, 그는 현재의 임무에 만족했고, 최선을 다했다.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선 그는 오늘도 2시간이나 걸리는 해안도로를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5월 말이었다.
겨우내 게으름 피우던 태양이 조금은 일찍 일어나는 계절이었으나, 그래도 아직은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시간이었다.
숨이 가쁘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20미터쯤 힘겹게 오르막길을 올라간 다음에 기분 좋게 내리막길을 타려는 순간이었다.
멈칫.
속도를 줄인 그는 자전거를 도로 한쪽으로 세우고 안장에서 몸을 기울였다.
아직 수영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해수욕장을 개장한다 치더라도 이곳으로는 관광객들이 들르지 않는 바위뿐이고, 이 시간에는 수영이 금지되어 있다.
김영철은 본능적으로 바닷가 반대편 도로에 몸을 숨겼다.
분명 뭔가 있었다.
힘겨웠던 훈련을 통해 익힌 그의 능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1분쯤 지난 다음이었다.
‘내가 늙었나?’
김영철이 몸을 세우려는 그 순간에 바다에 잠긴 바위틈에서 검은 물체가 흘깃 움직였다.
일단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괜히 신고 잘못해서 소동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주변을 살피듯 움직인 검은 물체가 물로 잠기고 다시 30초쯤 흘렀다.
김영철이 전화기를 꺼내 드는 사이, 이번엔 좀 더 많은 숫자가 새벽 바닷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꾹꾹꾹.
김영철은 일단 신고 번호를 눌렀다.
[해양 경찰입니다.]
“진하리 해맞이 도로 하행 3.7킬로미터 부근입니다. 바다에서 수상한 인원이 해안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여보세요? 전화번호하고 이름, 정확한 위치를 다시 말씀해 주세요.]
검은 물체들은 분명 사람이었다.
주변을 살핀 이들이 한 명씩 빠르게 도로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소총까지 들었다.
“진하리 해맞이 도로! 하행 3.7킬로미터. 해안 침투 병력 발견! 소총 소지! 소총 소지한 병력이다! 신고자 김영철. 전화번호는 확인될 테니 빨리 해경 출동하고, 군에 연락해!”
지시하듯 말을 마친 김영철은 전화를 끊은 뒤에 배터리를 분리했다.
침투한 인원은 모두 9명이었다.
그의 경력이 저들의 동작은 절대 아군이 아니라고, 분명 낯선 움직임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분명 접선 나온 차량이 있어야 한다.
숨 막히는 긴장 속에서 김영철이 좌우를 살필 때였다.
부으으으응.
회색 승합차가 빠른 속도로 다가와 그와 침투 병력 사이에 멈췄다. 누가 봐도 해안도로에서 해 뜨는 바다를 감상하는 것처럼 보여서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늦는다.
저 인원이라면 2분 안에 사라진다.
김영철은 자전거의 핸들을 당겼다. 다른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승합차의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차량의 뒤를 살피는 동안, 바다에서 빠르게 한 명씩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부스슥.
김영철은 자전거를 완전히 당겨 몸에 바싹 붙였다.
벌써 세 놈이나 승합차로 몸을 숨겼다.
“후.”
김영철은 날카롭게 바다를 노려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네 번째 침투자가 승합차에 올랐고, 다섯 번째 침투 병력이 승합차로 달리는 순간이었다.
‘지금!’
김영철은 벌떡 일어나 자전거에 올라탔다.
꽈아아악!
오른쪽 다리로 페달을 밟았고, 도로 건너편을 향해 그대로 달렸다.
2차선 도로다.
삽시간에 도로가 끝났고,
부우웅!
그는 자전거와 함께 바닷가를 향해 허공에 붕 떴다.
침투하던 놈이 놀라 고개를 홱 돌렸고,
드르륵!
반쯤 닫혀 있던 승합차의 뒷문이 거칠게 열렸으며,
와락! 휘이익!
허공에 뜬 상태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은 김영철이 거칠게 몸을 날렸다.
콰아아악! 철퍼덕!
그는 승합차를 향해 달려들던 놈과 함께 바위투성이인 해변에 처박혔다.
이마, 왼쪽 어깨, 허리, 왼쪽 발목에 끔찍한 통증이 몰려들었는데,
와락! 퍽! 퍽!
그는 적을 끌어안다시피 달려들어서 목을 찍었고,
철커덕!
소총을 뺏어 들었다.
철컥.
안전장치를 푼 김영철은 총구를 승합차로 향했다.
기가 막히게 한국제 K-1 소총이었다.
타다다다다당!
그가 방아쇠를 당긴 순간에,
타다당! 타다다당! 타다다다당!
승합차에서 연달아 사격이 있었고,
퍼버버버벅!
김영철의 몸 곳곳에서 피가 튀었다.
끔찍한 고통과 세상이 시커멓게 변한 순간에도,
타다다다당!
김영철은 또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이 소리를 들어라!
누구라도 이 소리를 들었다면, 이곳을 지켜라!
위이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잉!
그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털썩.
그의 고개가 뾰족한 바위로 떨어졌다.
‘조국이 준 임무,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입안에 머금은 것처럼 피가 흥건한 그의 입끝이 슬프게 올라갔다.
천재 화가라 인정받는 아들 김태호가 마음에 걸려서였다.
자폐 증세가 있는 아들이 혼자 남는다.
잘 지낼 거다.
그렇지? 아들아?
이렇게 지켜 낸 조국이니까.
소총 소리가 연달아 울리고, 해군과 육군 기동대가 승합차를 완벽하게 감쌌을 때였다.
됐다. 대한민국은 안전하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후배들이 달려왔으니 안심해도 된다.
올라갔던 그의 입꼬리가 몸과 함께 축 늘어졌다.
일본 정보국 가와구치가 모든 역량을 발휘한 공작은 그렇게 해안도로에서 끝났다.
공수 224기 김영철의 눈부신 활약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