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성공을 믿어 주는 지휘관이 돼 (2)
두두두두두두두두.
주변에 높은 건물이나 산이 없는 곳에서 군용 헬리콥터 소리는 말 떼가 달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동안 늘어졌던 몸뚱이에 긴장을 채워 넣기 위해 용병들이 훈련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점심을 먹은 지 꽤 됐으니 늦은 오후쯤이었다.
말라위, 밀롱드(Milongunde) 기지 위로 덩치가 커다란 헬리콥터가 날아들었다.
“뭐야!”
네로는 헬기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가뜩이나 바람 불 때마다 흙먼지가 확확 날리는 밀롱드의 초원에 군용 헬리콥터가 날아들어서 눈과 입으로 흙가루를 퍼붓는 거다.
“구대장! 누구요?”
소총을 오른쪽 어깨에 건 제라르를 향해 네로가 으르렁거렸고,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대원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누구냐고!”
듬직하게 배가 나온 네로가 두 번째로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린 제라르가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가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던 분.”
“뭐……? 뭐라고 그랬소?”
네로는 헬리콥터가 일으키는 바람을 피해 팔로 머리를 감싼 자세였다. 그런 그가 잔뜩 찌푸린 얼굴을 돌렸다.
“갓 오브 블랙필드.”
“와하……! 에이! 퉤퉤!”
흙먼지를 뱉어 낸 네로가 뒤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우리 지휘관 갓 오브 블랙필드다! 그가 왔다!”
“히이- 오!”
“와아- 우!”
200명이 넘는 용병들이 괴성을 지르며 장난감 가게를 털러 들어간 아이들처럼 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왜 말 안 해 줬소?”
두두두두두두두두두!
헬리콥터가 거의 내려앉아서 입고 있는 군복이 태풍을 만난 것처럼 거칠게 펄럭였다.
“적이 대장을 노리고 있다!”
“미친놈들이지! 죽음의 신을 노리다니!”
네로가 핏대가 서도록 고함을 질렀고, 그때 헬기가 출렁하며 바닥에 내려앉았다.
고개를 숙인 상태로 강찬이 헬리콥터에서 내렸다.
검은색 대테러팀 복장이었는데 완전무장한 대원 3명과 함께였다.
“예상보다 젊소!”
“과거의 우리 대장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제라르가 씨익 웃으며 강찬을 맞았고, 주변에 모인 용병들이 기대에 찬 시선으로 갓 오브 블랙필드를 바라보았다.
***
전화를 받은 스웨이든은 광기에 사로잡힌 것처럼 분통을 터트렸다.
“아프리카라니! 그가 어떻게 거기에 있다는 거냐!”
[잠비아 은돌라 한국 기지에서 곧바로 말라위 밀롱드로 이동했습니다. 이쪽 요원들이 부족하고 행동에 제약이 많아서 그의 행적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후우-!”
스웨이든은 넥타이를 이리저리 당겨 늘어트린 다음, 목에 걸린 셔츠 단추를 거칠게 풀었다.
“보란 듯이 움직이겠다? 현재 UIS 상황은?”
[어제 오후에 무기까지 전부 넘겨서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입니다.]
스웨이든이 짧게 고민할 때였다.
[국장님, UIS 공작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의 속을 갈퀴로 긁는 듯한 아프리카 담당자의 의견이 넘어왔다.
“이유를 말해.”
[병력이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거기에 프랑스 정보총국이 돌아섰기 때문에 외인부대까지 그의 지시에 따를 확률이 높습니다.]
“이봐, 앤더슨. 언제부터 우리가 UIS의 공작을 하며 그들의 안전이나 승산을 계산했지?”
[죄송합니다. 저는 다만, 효과적인 공격을 위해 목표를 바꾸시면 어떨까 해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스웨이든은 붉게 물든 눈으로 벽면 모니터에 펼쳐진 지도를 노려보았다.
“우선은 계획대로 진행한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다음이었다.
그는 바로 새로운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세 번 울리고 나서 ‘헬로우.’ 하는 굵직한 대꾸가 넘어왔다.
“여행은?”
[순조롭습니다. 관광지도 충분히 살펴 두었고, 구입할 상품의 확인도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쇼핑을 시작해라. 두 번째 계획대로 돌아보는 게 좋겠다.”
[알겠습니다.]
“행운을 빈다.”
[감사합니다.]
통화가 또 끝났다.
그런데도 스웨이든은 또다시 다른 번호를 찾아 버튼을 눌렀다.
[헬로우-]
이번엔 더럽게 어색한 억양의 영어 발음이 넘어왔다.
“미스터 가와구치, 우리가 시작하겠소.”
뜻밖의 소식이라 그런지 기뻐 날뛸 줄 알았던 상대방은 답이 없었다.
“청이 하나 있소. 시선을 뺏어야 할 필요가 있으니, 파괴 전문 요원을 해상으로 침투시켜 주시오. 남쪽이면 좋겠소.”
[미스터 스웨이든, 그런 거라면 굳이 해상 침투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국적을 이용해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선을 뺏겠다는 의미요. 조금은 시끄럽게 들어가 주면 더욱 좋을 거요. 이번 작전이 성공한다면 그는 분명 크게 흔들릴 겁니다.”
나직한 한숨이 먼저 들렸고, 다음으로 ‘알았습니다.’ 하는 답이 건너왔다.
전화를 끊은 스웨이든은 다시 지도를 노려보았다.
죽이지 못하면 이쪽이 죽는 싸움이었다.
위성을 통제하는 강찬을 죽이려면 더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금껏 통화하던 전화기를 내려놓고, 스웨이든은 CIA 내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번호를 누르고 잠시 기다린 다음이었다.
“미스터 바이스 프레지던트, 스웨이든입니다.”
그리고 그는 미국 부통령과 통화를 시작했다.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고 싶습니다. 물론 미합중국의 발전에 크게 중요한 문제이고, 부통령님께 좋은 기회가 될 이야기입니다.”
말을 건넨 스웨이든이 테스트의 통과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긴장된 표정으로 상대의 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럼 2시간 뒤에 찾아뵙겠습니다.”
그는 모처럼 밝은 얼굴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
국가정보원 이집트 분실장 민환근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새벽닭이 울기 전에 돌아온 석강호와 남일규, 최종일 일행을 맞이하고 나서였다.
이들이 상대한 적이 누군가.
과격하기로 소문난 수니파 살라피주의자들이다.
그런 그들의 수뇌부를 제거하러 달랑 5명이 들어간 건데, 불과 4시간이 되기 전에 모두 멀쩡한 얼굴로 들어왔다.
물론 석강호와 남일규, 최종일이 피범벅이 돼서 돌아오긴 했다만, 그게 적의 몸뚱이에서 나온 거라면 이건 또 걱정할 게 아닌 거다.
여차하면 이집트 분실을 다시 만드는 한이 있어도, 어떤 문책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요원들과 함께 달려들 각오였다.
“커피 있소?”
“그럼요.”
그래서 완전무장으로 대기하던 이집트 분실 요원들이 지금 민환근과 비슷한 얼굴로 봉지 커피를 타고 있었다.
좁은 사무실이다.
벽에 걸린 선풍기, 낡은 창문, 오래된 책상, 번호를 촤르륵, 촤르륵 돌려서 사용하는 구형 전화기.
봉지 커피의 달달한 향이 사무실에 가득한 뒤에 곧바로 담배 연기가 뿌옇게 차올랐는데, 누구 한 사람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혹시 몰라 옥상에 경계를 세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시간에 창문을 활짝 열고 있는 건 위험한 일이다.
“후배는 담배를 안 피우나?”
“피웁니다.”
남일규의 질문에 막내 요원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이리 와. 이거 받아.”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석강호가 대뜸 담배를 디밀었다.
그의 얼굴과 손에는 아직 적의 피가 시커멓게 굳은 채 달라붙어 있었다.
“예의는 다른 곳에서 차려. 지금은 우리 모두 적을 상대하는 동료로 있다. 그렇게 따지면 나 역시 남 선배 앞에서 함부로 담배를 피우기 어렵다.”
막내 요원이 힐끔 시선을 돌린 곳에서 민환근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철컥.
라이터는 최종일이 켜 주어서 막내 요원이 상체를 숙인 채 불을 붙였다.
“이쪽에 보복이 있지는 않겠소?”
“당분간 특별하게 작전을 하지 않는다면 그 정도는 감당합니다. 만약 적들의 낌새가 심상치 않다면 일단 피신한 뒤에 대대적인 응징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란 지시도 있었습니다.”
“푸흐흐.”
답을 들은 석강호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잔인하게 웃었다.
“이제 다르미코프, 이 개자식을 잡아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생각을 좀 해 봤는데요.”
남은 커피를 홀랑 털어 넣은 민환근이 좁은 사무실에 있던 이들의 시선을 단번에 가져갔다.
“오늘 밤 작전으로 저쪽도 어떤 형태로든 보복을 준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조만간 우리가 했다는 것을 알게 될 거고요.”
민환근을 향해 몸을 돌려 앉은 남일규와 최종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아프리카에 대대적인 파병이 있어서 UIS와 연결된 세력들은 신경이 굉장히 날카롭습니다.”
서론이 길었다.
그걸 짐작한 것처럼 민환근은 바로 말을 이었다.
“차라리 이쪽으로 우리 군의 대대적인 파병이 있을 거란 정보를 흘릴까 합니다.”
이게 뭔 뜬금없는 소리지?
민환근을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딱 그랬다.
“저쪽 역시 대대적인 준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군을 상대할 무기를 들여오려면 반드시 그리스를 통해 움직여야 하는데, 그때 분명 다르미코프가 움직일 겁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를 말해 줄 수 있소?”
“이번 김광민 요원 건의 최종 지시자가 다르미코프입니다. 오늘 일을 모른 척 넘어가면 그는 무기 밀매상으로 신용을 잃게 됩니다.”
“어떻든 당분간 이집트 분실은 위험하겠군요?”
“그럴 바엔 우리가 먼저 치고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끼리 결정하기는 어렵고, 대장과 의논해 보았으면 싶은데 내가 이 계획을 말해도 되겠소?”
“제가 오히려 부탁드리고 싶은 내용입니다.”
피우던 담배를 종이컵에 툭 던진 석강호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강찬은 원래 번거로운 거 싫어한다.
특히, 쭉 서서 인사하는 거 딱 질색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용병은 정말 마음 편했다.
편한 대로 경례를 한 놈들이 쭉 다가와서 악수를 청하는 거니까 눈을 마주한 채 손을 잡아 주는 인사 정도는 얼마든지 해 줄 만한 거다.
“아프간 작전을 TV에서 보았습니다. 그때는 어찌나 피가 끓던지. 나중에 제라르 구대장이 합류한 걸 보았을 때는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대개 첫인사는 방송을 탔던 아프가니스탄의 인질 구출 작전이었고, 다음은 한국에서 2대에 걸쳐 갓 오브 블랙필드라는 닉네임이 나왔다는 것으로 옮겨 갔다.
전장을 떠나서 사는 것이 어딘가 허전했던 이들이 풍기는 땀 냄새가 싫지 않았다.
하여간 대강 인사가 끝났다.
“저쪽에 막사가 있습니다.”
제라르가 손을 들어 막사를 가리켰다.
뜨거운 태양, 땅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 흙가루 가득한 선선한 바람, 어딘가에 숨어서 느닷없이 덮치는 열기.
쩔걱. 쩔걱.
둘이서 막사를 향해 걷는 동안에 아프리카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제대로 실감 났다.
막사 앞에 도착한 강찬은 픽 하고 웃고 말았다. 앞에 놓인 나무 탁자를 보아서였다.
“어떻습니까?”
“넌 이게 좋으냐?”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막상 탁자를 가져다 놓으니까 양복 입고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사는 거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찬이 탁자에 앉은 다음이었다.
막사 안으로 들어갔던 제라르가 무언가를 잔뜩 겨드랑이에 끼우고 양손에 들고 나왔다.
뭐하는 짓이지?
고개를 돌렸던 강찬은 또다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병에 담긴 커피, 분말 크림, 설탕, 머그잔, 그리고 물을 끓이기 위한 주전자와 버너였다.
“미친놈.”
“다른 대원들 앞에서는 그러지 마십시오.”
“그럴 거면 커피를 타지 말아야지.”
제라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되나요? 그럼 커피를 탈 테니까 차라리 미친놈 소리를 하십시오.”
선선하다고 하지만, 더운 아프리카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버너에 불을 피우는 거다. 살기 위해 꼭 마셔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동물들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산다는 건 참 오묘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어쩐 일이십니까?”
“정보총국에서 일할 사람을 보호해 주기로 했다.”
머그잔에 커피와 크림, 설탕을 넣던 제라르가 힐끔 시선을 주었다.
“군 경험이 없다니까 이곳에서 시작하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퇴역한 이들과 친분도 쌓고. 이렇게 경력 많은 이들을 상대하고 나면 현역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도 있을 거고.”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이 정도 위험을 못 이겨 내는 놈이 정보총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인 제라르가 뜨거운 물을 머그잔에 부었다.
봉지 커피와는 또 다른 냄새가 탁자에서 피어나 아프리카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강찬은 머그잔을 앞에 두고 멀리 시선을 주었다.
지금은 엔조의 얼굴이 어땠는지 제대로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리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가슴에 담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차례로 떠올랐다.
아프리카에서 맡는 커피 향은 강찬에게 그런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