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27화 (446/520)

제4장. 함께 보고 싶습니다 (1)

위고의 일 처리는 나무랄 데 없었다.

달려온 경찰 기동대가 호텔을 둘러싼 채 대치하는 동안, 대기했던 정보총국 요원들이 호텔로 뛰어들었다.

“정보총국 대테러팀 테오입니다. 이쪽으로 총국장님이 오신답니다. 올라가서 기다리시면 어떻겠습니까?”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프랑스 남자가 강찬의 앞에 대기했다. 부총국장이 또 다른 부총국장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살해 버린 상황에서도 그는 침착함을 잃지 않은 얼굴이었다.

“지금은 밖으로 나가기도 곤란합니다. 2층에 있다는 인원도 지하로 이동시켜서 조치하겠습니다.”

강찬이 계속 입을 다물고 있자 테오가 뒤를 힐끔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는 것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테오.”

“예, 부총국장님.”

“남은 차장이 몇 명이지?”

“저를 포함해서 5명입니다.”

그 정도면 다른 곳에 있는 네 놈이 일을 일으키기는 어렵다.

경찰차의 불빛이 로비를 훑으며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상황이었다. 시간을 더 끄는 건 서로를 곤란하게 하는 일이라서 강찬은 ‘안내해.’ 하고 말을 건넸다.

“위고는?”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대테러팀 복장에 소총을 든 요원들이 일제히 로비로 뛰어들었다.

프랑스와 한국 정보국은 주요 호텔과 비행기 편에 일정 객실과 좌석을 확보해 놓는다. 왜 그런지 궁금한 적이 있는데 이럴 때 사용하는 건가 싶었다.

테오가 안내한 방은 9층이었다.

안쪽으로 침실이 있고, 그 바깥으로 소파가 놓인 거실이 있는 구조였다. 창밖에서는 경찰차의 불빛에 방송용 카메라의 조명, 카메라 플래시가 뒤엉켜 그야말로 난리가 따로 없었다.

“차를 드시겠습니까?”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냐?”

“부총국장님과 함께 있으라는 총국장님의 지시입니다.”

강찬은 픽 하고 웃으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총국장 에르완은 단둘이 만나기보다는 테오가 지켜 주길 바라는 게 분명했다.

이 정도면 정보총국 꼴, 말 다한 거다.

테오가 재떨이를 가져다주고, 이어서 티 테이블에서 커피를 타서 강찬에게 놓아주었다.

담배를 다 피운 강찬이 커피를 반쯤 마셨을 때였다.

방의 벨이 울렸고, 테오가 문을 열었으며, 단단해 보이는 요원 다섯과 함께 에르완이 들어섰다.

“오랜만이오.”

“그렇군요. 앉으시죠.”

에르완과 악수한 강찬은 맞은편의 자리를 가리켰다.

테오가 에르완의 앞에 홍차를 놓아주었는데, 그러고도 그를 비롯한 요원 5명은 방에 그대로 있었다.

“부총국장, 오늘 일을 설명해 줄 수 있겠소?”

사람은 감이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무언가 결론을 내리겠다고 결심했을 때 흔히 던진다.

강찬은 밖을 향해 잠시 시선을 돌렸다.

밖의 풍경이 궁금해서?

그렇게 순진하게 살면 이 방에서 시체로 실려 나가 은골로 옆에 던져지는 거다.

강찬은 유리에 비친 방 안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문 앞에 둘, 강찬의 방향에 테오와 하나, 그리고 에르완 방향으로 둘, 권총에 든 탄약은 7발.

이 정도면 해볼 만은 하다.

누가 먼저 뽑느냐가 문제겠지만 말이다.

“총국장님, 은골로가 어떤 짓을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부총국장의 판단을 이해는 합니다. 그렇다고 증거도 없이 그를 이런 식으로 제거해 버리면 보고는 어떻게 해야 하겠소?”

강찬이 피식 웃자 에르완이 힐끔 테오를 바라보았다.

“테오.”

“Oui.”

강찬이 불렀고, 테오가 답했다.

“너만 남고 요원들을 밖으로 보내. 명령이다.”

“이보시오! 부총국장!”

“조용히 해!”

강찬이 으르렁거린 직후였다.

휘익!

요원들의 손이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휙! 철컥!

강찬이 발목에 걸었던 권총을 뽑아 에르완의 이마에 들이댔다.

“이게 무슨……?”

테오가 손을 뻗어 요원들을 제지한 상태에서, 다섯 놈 모두 상의 안쪽이나 허리에 손을 건 자세였다.

“국적도 다른 동양인이 걱정할 정도인 정보총국의 앞날을 모른 척하면서, 보고 따위를 걱정하는 정보총국장을 볼 줄은 몰랐다.”

강찬의 권총 앞에서 에르완은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병신 같은 새끼.

당장 이마에 구멍이 뚫리는 한이 있어도, 군인 출신인 정보총국장은 무조건 당당한 표정과 강렬한 눈빛을 뿜어내야 하는 거다.

요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는 더더욱 더.

“얼마나 많은 요원이 임무를 위해 죽어 나가는지 알고나 있나? 너의 그 돼먹지 않은 정치질에 오염된 요원들이 오늘도 내 손에 죽었다. 지시를 거부할 권리조차 없다고 훈련받은 프랑스의 소중한 자식이 말이다.”

당장 방아쇠를 당기고 싶었다.

국적이 프랑스인이었다면, 부총국장으로서 이런 개 같은 놈은 일단 죽여 놓고 판단했을 거다.

로망 이후로 잘못된 수장이 조직을 망가트리면 어떤 꼴이 되는지를 프랑스 정보총국이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자신이 없다면 물러나. 그렇게라도 해서, 적어도 너와 은골로의 영달을 위해 프랑스의 영광을 이루고자 목숨을 건 요원들을 더는 모욕하지 마라.”

강찬의 경고를 받은 에르완이 또다시 테오를 살폈다.

끝까지 비겁한 새끼.

이 새끼를 지금 죽여 버리면?

요원 5명쯤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말 걸리는 것은 테오였다. 저 산전수전 다 겪은 놈이 다섯 놈과 함께 덤비면 이 작은 방에서는 아무래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피할 수 없다면 결단을 빨리 내리는 게 좋다.

강찬이 빠르게 방 안을 살피는 순간이었다.

“부총국장님, 요원들을 내보내겠습니다. 권총을 맡겨 주실 수 있습니까?”

강찬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테오의 나직한 말이 들렸다.

강찬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테오를 돌아보았고, 기다렸다는 것처럼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총국장의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대화하길 바랍니다. 부총국장님이 호텔을 나설 때까지의 안전은 프랑스의 영광과 정보총국의 명예를 걸고,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정보총국에도 아직 인물이 남아 있는 건가?

하긴, 저놈은 아까도 총을 뽑으려 하지 않고 요원들을 말렸으니까.

웃기는 건 테오는 부총국장인 강찬을 부를 때만 존칭을 사용했다는 거였다. 물론 멍청한 에르완이 그것까지 눈치챘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눈과 눈이 마주쳤을 때 강찬은 어쩐지 야전에서 마주친 오래 생활한 강직한 군인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강찬은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에 권총을 서서히 가져왔다.

“너희는 모두 나가서 대기해.”

에르완이 놀란 눈으로 테오를 보았고, 요원들은 어쩔 줄 몰라서 에르완과 강찬, 테오를 번갈아 보았다.

이왕 결정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남자는 신뢰를 지켜 줄 때 빛난다.

강찬은 편안한 태도로 테오를 향해 권총을 건네주었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면 강찬도 방법은 없다.

테오가 강찬의 권총을 조심스럽고 능숙한 동작으로 받은 뒤에 요원들을 향해 돌아섰다.

“총국장과 부총국장님의 대화다. 내가 이곳을 책임진다. 너희는 모두 나가서 대기해.”

다부진 자세와 당당한 태도였다.

저런 인간은 반드시 요원들 사이에 소문나고, 또 신뢰를 얻는다.

강찬의 짐작대로 요원들이 짧게 고개를 숙인 뒤에 곧장 방을 나섰다.

공평한 거 같지만, 사실 이런 분위기가 에르완에게는 더 불편할 거다. 자기편이 한 명도 없으니까 그렇다.

“부총국장,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그럼 그 부분에 대해 말하지요. 왜 갑자기 정보총국이 정보를 일방적으로 통제했는지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거야 은골로가…….”

“내가 부총국장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게 좋습니다.”

강찬의 말에 에르완이 답하지 못했다.

피식.

“참고로 정보총국은 같은 직급끼리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 정도는 기억하고 말씀하길 바랍니다. 내게 정보를 통제하는 것은 은골로가 지시할 사항이 아닙니다.”

강찬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거야 원, 멍청한 세흐토 브니므 보스를 앞에 두고 으르렁대는 2인자도 아니고.

찰칵.

“후우.”

강찬은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라노크 대사님, 아니 위원장과의 약속이 아니었다면 프랑스 정보총국의 몰락 따위 고개도 돌리지 않았을 겁니다.”

말을 마친 강찬은 입술 한쪽을 들며 웃었다.

라노크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에르완의 눈끝이 떨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겹기도 할 거다.

물러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를 따르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면,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 비교되는 것도.

“부총국장은 아프리카를 통해 프랑스에 공공연하게 대항하지 않았소?”

“은골로가 정보를 통제하고, 내게 정보원을 보내 임의로 정보를 빼냈으며, 원하는 지시를 막아선 것이 먼저입니다.”

테오가 보는 앞이었다.

그런데도 에르완은 또다시 입이 막혔는지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결정하십시오. 부총국장으로 날 인정하고, 은골로 자리는 공석으로 둔다. 아니면 나를 파면하고 이 시간 이후로 적대적 관계로 돌아선다. 선택은 총국장의 몫이 됩니다.”

“부총국장이 모든 권한을 독점하겠다는 뜻이오?”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총국장 자리를 노리는 게 아니라, 프랑스 정보총국이 다시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제대로 일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일입니다.”

총국장이 무언가 계산하는 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동안, 침묵이 흘렀다.

“부총국장, 당신이 정보총국의 권한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기가 쉽지 않소. 또, 내가 지금 약속하고 뒤에 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믿을 거요.”

“한국 국적을 가졌으니 염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믿음에 라노크 위원장님을 걸겠습니다. 오늘 총국장님의 약속은 테오가 증명할 것입니다.”

말을 마친 강찬이 고개를 돌려 테오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 가벼운 긴장과 흥분이 묻어 있었다.

“만약 부총국장의 지시나 판단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겠소?”

“테오, 위고, 그것도 아니면 라노크 위원장님을 통해서 내용을 파악하고,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겠다면 나를 직접 부르면 됩니다.”

강찬이 죽이지 않으리란 확신이 생겼는지 에르완은 처음보다 훨씬 여유로운 태도였다.

“후! 좋소. 약속하겠소. 부총국장은 당분간 한 명이오. 부총국장의 지시에 대해 다른 말은 않겠지만, 궁금한 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답을 해 줘야 할 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찬이 일어서자 에르완이 마주 서서 손을 내밀었다.

어쩐지 2인자에게 기죽은 힘 빠진 조직의 보스처럼 그는 아직 강찬을 편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찬이 몸을 돌린 다음이었다.

“총국장은 내가 모시겠습니다. 위고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테오가 나직하게 건넨 말을 들으며 강찬은 방을 나섰다.

테오와 둘이 남게 되자 에르완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임 정보총국장을 살해하고, 이번엔 부총국장을 살해하다니. 그것도 파리 한가운데서.”

말을 마친 에르완이 커다랗게 숨을 내쉬며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는 아직 너무 젊어. 저 패기가 언젠가는 독으로 돌아올 거다. 정치권이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 총국장의 자리는 정보총국만이 아니라 최고 통치자의 뜻도 헤아려야 할 테니까.”

변명처럼 쏟아 낸 혼잣말이었다.

호텔 방에 두 사람만 있는 거다.

테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

대테러팀은 라노크가 있는 별장의 네 방향에 저격수를 배치했고, 입구 주변을 확실하게 통제했다.

치잇.

[승용차 접근. 탑승 인원 2명.]

치잇.

[바리케이드까지 지켜본다. 저격수 대기.]

치잇.

[저격수 대기.]

비포장도로의 굴곡을 따라 라이트를 출렁인 차량이 임시 바리케이드에 도착했다.

철컥! 철컥! 철컥!

자동차가 멈추는 순간, 대원 3명이 앞쪽과 양쪽의 유리창에 달라붙었고, 손가락 2개가 없는 통역대원이 운전석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오?”

운전하는 사람이 더 놀란 얼굴이었다.

“라노크 위원장님을 경호하는 중입니다. 신분을 밝히지 못한다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루이, 안느. 위원장님의 경호원이고, 이쪽은 따님입니다.”

“실례합니다.”

고개를 숙인 통역병이 가지고 있는 태블릿으로 사진과 두 사람을 확인하고는 상체를 세웠다.

“신분증 확인하겠습니다.”

번거롭다. 짜증 나는 일이다.

그런데도 루이와 안느는 다른 말 하지 않고 신분증을 내보였다.

“감사합니다.”

“한국인입니까?”

“그렇습니다. 부원장님 지시로 어제부터 경호 중입니다.”

답을 한 통역병은 두 사람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보고는 가볍게 웃었다.

“통과하셔도 좋습니다.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천만에요.”

승용차는 느긋하게 바리케이드를 통과했다.

요원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치잇.

[승용차 접근, 탑승 인원 2명.]

비슷한 무전이 다시 들어왔다.

치잇.

[바리케이드까지 지켜본다. 저격수 대기.]

치잇.

[저격수 대기.]

규정에 맞는 무전이 오가고 대원들이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치잇.

[부원장님 차량이다. 저격수 해제.]

치잇.

[저격수 해제.]

통역병이 아까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리케이드 앞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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