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힘이 최고지? (1)
강찬과 석강호, 제라르, 거기에 최종일 일행까지 들어서면서 미사리 조정 경기장의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흥분과 긴장, 그리고 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팔에 단 이들이 느끼는 어쩔 수 없는 사명감이 넓은 잔디밭을 카펫처럼 뒤덮은 거였다.
거기에 모두 문재현의 발표를 보고 난 다음이었다.
북한군을 어떻게 통제할지, 명령 체계는 어떻게 할지에 대한 걱정을 표정 한쪽에 억지로 눌러 둔 얼굴들이 강찬과 일행을 맞았다.
강찬이 본부 막사로 움직이자, 대원들 전체가 주변을 둘러싸는 것처럼 모였다.
“아프리카를 우리만으로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전체를 3개의 조직으로 운영한다.”
브리핑과 달리 기다란 직사각형의 탁자 주변으로 대원들이 모였고, 마치 야유회 일정을 듣는 듯 편안하게 서서 강찬의 이야기를 들었다.
“증평팀과 606, 대테러팀은 반군 중에서 저항이 심한 곳을 직접 타격한다.”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강찬의 말을 받아들였다.
“제라르가 이끄는 용병팀은 목표 지역을 장악하고, 그곳에서 북한군 병사들을 지휘 통제한다.”
궁금한 것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강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동균이 손을 들었고, 눈짓과 동시에 바로 입을 열었다.
“북한군과는 아무래도 감정이 복잡할 수 있습니다. 정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거나 반항할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입니까?”
“용병의 경우와 같다고 보면 된다. 돈을 받고 나온 용병들에게 군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단,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해고한다.”
용병을 관리해 보지 못했던 대원들은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때부터 본인들더러 알아서 움직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걔들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단체로 나설 때는 어떻게 합니까?”
“일단 버리고 물러나. 그곳에서 반군과 싸우다 뒈지든, 그 지역을 장악하든. 중요한 건, 그럴 경우 우리는 대금에서 제외하고 주면 되고 손해를 보았다면 다른 놈들 급여에서 공제하고 주면 된다.”
“그런 명령에 반발하거나 반항하면 어떻게 합니까?”
처음이라 그럴 거다.
전쟁터에서 모두 총을 들었는데 상대방이 대들면 남은 게 뭐가 있겠나.
강찬은 피식 웃으며 차동균을 바라보았다.
“차동균, 왜 그렇게 약해져서 그래? 전쟁터에 나가서 우리 쪽에 총구를 들이미는 놈들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강찬은 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강철규를 바라보았다.
“그런 놈들이 있다면 모가지를 걸어 주면 되지.”
대원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답이었나 보다. 다들 놀란 얼굴로 돌아보는 것이 그랬다.
강철규는 시선을 맞추는 것처럼 대원들을 둘러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북한의 인민무력부장 박상식은 자존심이 무척 강하고, 계산이 빠르며 정치적으로도 탁월한 인물이다. 북한은 한반도로 넘어올 긴장을 아프리카에 털어 내고 돈도 받는다.”
그런 계산도 있구나.
고개를 끄덕인 대원들이 강철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가 키운 대원들을 잘 알고 있다. 물론 그가 아끼던 지휘관 둘을 여기 남일규가 일주일 간격으로 서울 구경을 시키는 바람에 관계가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놀랐다는 눈빛과 황당한 웃음이 남일규를 스쳐서 다시 강철규에게 향했다.
강철규는 분명 이전보다 말이 늘었다.
교관을 한 덕분인 것 같기도 했고, 다르게 보면 이번 파병에서 북한군을 상대하는 노하우를 어떡해서든 건네주려는 열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 위대한 지도자에 대해 모욕만 하지 않으면 그들도 무리해서 달려들지 않을 거다.”
“지도자를 모독하면 어떻게 됩니까?”
대원 중 한 명이 멍청하기 그지없는 질문을 던지고는 아차 싶었는지 뒤통수를 긁어 댔다.
강철규는 넉넉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이해할 수 있다는 얼굴로 그 대원을 돌아보았다.
“북한군 중 누군가가 후배 앞에서 우리 부원장을 모욕하면 어떻게 하겠나?”
“그렇다면 그건 바로……!”
픽 하고 웃은 강철규가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위대한 우리 부원장을 모욕하지 않는 한, 위대한 지도자도 굳이 건드릴 필요 없지. 죽여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강철규의 상상하지 못했던 비유에 강찬은 느닷없이 위대한 지도자와 동급이 되어 버렸다.
선배가 있다는 건, 또 그런 선배가 특수팀 전설이라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특수팀의 전설이 북한의 인민무력부장을 알고 있고, 북한군의 특성마저 정확하게 꿰고 있다면 더 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강찬은 물끄러미 강철규를 보았다.
이렇게 한 걸음 떨어져서 볼 때가 가장 좋은 건가?
어둠이 내려앉은 미사리에서, 강을 넘어온 물비린내가 뒤덮은 잔디에 습기를 뿌려 대는 시간이었다.
***
문재현은 원래 미사리 조정 경기장으로 가서 대원들과 요원들을 격려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선 전화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밀려들었다.
미국, 프랑스, 중국의 정상들이 하는 전화도 그렇지만, 당장 그동안 만나 왔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이번 조치의 의미와 신청 방법을 묻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다.
국가정보원에서는 또 엄청난 양의 첩보가 올라왔다.
아프리카에서 UIS를 탄압할 경우, 한국을 응징하겠다는 경고가 주를 이뤘다.
통화를 원한다는 내용의 메모가 집무실 책상 구석에 잔뜩 쌓여 있었다.
“이제야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조금이나마 실감하는군요.”
집무실에서 몸을 일으킨 문재현은 고건우, 전대극과 함께 뒤뜰로 움직였다.
“언젠가 부원장이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었습니다. 맞기만 하면 상대는 그게 당연한 줄 안다는 말 말입니다.”
문재현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어두워진 청와대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경제력을 쥐었다는 건 참 좋은 일이군요. 북한의 병력을 돈으로 사 올 생각을 하다니, 확실히 젊음이 만들어 내는 상상력은 제약이 없나 봅니다.”
“부원장은 좀 특이한 케이스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건우의 농 섞인 대꾸에 세 사람이 가볍게 웃었다.
“우리는 다음 세대가 보다 창의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연륜으로 쌓은 경험을 건네주고, 그들이 그 위에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이룰 때.”
문재현이 단단한 얼굴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우리의 인재들이 세계의 많은 분야에서 빛날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강대국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가 확신처럼 던진 말이 어둠 속 저 멀리 날아갔다.
***
문재현의 발표는 스웨이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여유를 단숨에 지워 버렸다.
미국 대통령의 압박이 들어온다면 19명의 한국 잠입도 당장 문제가 될 소지가 많았다. 그렇다고 당장 위치조차 불분명한 강찬을 노리기도 어렵다.
짐작은 한다. 미사리 조정 경기장.
“기가 막히는군.”
스웨이든은 쓰게 웃었다.
총을 맞거나 목이 잘려도 살아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겠다는 의도가 아닌 다음에야 비무장왕에, 증평 특수팀이 득시글거리는 그곳에 19명을 굳이 보낼 일은 없는 거였다.
띠루루. 띠루루. 띠루루.
스웨이든은 얼른 전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이오?]
비겁한 인간.
도이슨은 손실을 계산하느라 한 시간이나 시간을 끌어 놓고 마치 사우나에서 갓 나온 듯한 목소리를 던지고 있었다.
“도이슨, 한국에 지진을 일으킬 수 있겠소?”
[현재로는 어렵소.]
숨도 안 쉬고 바로 답이 건너왔다.
[무엇보다 에너지를 다시 모아야 하고…….]
“갓 오브 블랙필드가 두려운 건 아니오?”
스웨이든의 질문에 나직한 한숨이 푹 들려왔다.
[프랑스가 벌써 흔들리고 있소. 쉽게 이야기합시다. 우리가 한국에 지진을 일으켰다가 그를 상대하게 된다면, 미국은 그동안 무슨 일을 할 거요?]
“그야…….”
[비밀 병기로 그를 제거하겠다는 약속이 먼저였소. 만약 이 상태에서 모든 것이 드러난다면 우리는 중국에 천문학적인 배상을 해야 합니다.]
스웨이든은 당장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아프리카 파병, 고작 그것뿐이요. 그런데도 그는 한반도의 위기를 아프리카로 끌고 갔고, 중국의 구미를 당기게 했으며, 프랑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소. 인정할 건 인정합시다.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치기 어린 어린애만은 아니란 것을.]
“도이슨? 당신 혹시?”
[나를 더 자극하면 정말 내가 그에게 갈지 모르오. 그러니 그를 제거하겠다는 약속을 먼저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거요.]
스웨이든의 감정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도이슨의 전화가 툭 끊겼다.
“젠장!”
스웨이든은 전화기를 꽉 움켜쥐었다.
방법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뒤집을 한 수가.
***
토론회처럼 시간이 흘렀다.
이동에 거의 하루가 걸리기 때문에 지금 잠이 좀 부족해도 비행기에서 충분히 보충할 수 있고, 무엇보다 하루쯤 못 잔다고 빌빌거릴 대원도 없었다.
강찬은 우선 제라르와 따로 시간을 가졌다.
“네로와 북한군 통제에 신경 써라. 말라위부터 시작한다. 베이스를 그곳에 두고, 필요하다면 반군의 거점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통제 지역을 넓힌다.”
“Oui.”
외인부대 특수팀 사령관의 눈을 한 제라르가 그에 걸맞은 답을 건네고 있었다.
“대장, 정말 외인부대와도 충돌을 각오하고 있는 겁니까?”
강찬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대장이 아프리카에 들러 주는 게 좋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인질 구출 작전으로 어차피 갓 오브 블랙필드라는 닉네임이 알려진 데다, 이번 일의 지휘자라고 떠들어 놓은 것도 있어서 그렇습니다.”
제라르의 입장이나 새롭게 모인 용병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어쩌면 꼭 필요한 일일 수도 있었다.
“제라르.”
“Oui.”
“우리의 1차 타깃은 잠수함 판매와 국가정보원 요원을 사살한 다르미코프고, 2차 타깃은 지진을 일으킨 놈이다.”
“알겠습니다.”
강찬은 먼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모든 정보국이 단절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프랑스 정보총국이 지진에 대한 정보를 입 다물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번 기회에 이 모든 것을 털어 내지 못하면 우리는 또 이런 싸움을 나서게 될 거다.”
말의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제라르가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웃었다.
“왜?”
“대장과 함께 작전을 나간다고 생각하니까 참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미친놈.”
둘이서 잔잔하게 웃었다.
“난 언제나 평범하게 사는 일상을 꿈꾼다. 가능하다면 너, 다예가 옆에 있었으면 싶고, 더는 내 사람들이 위협받지 않는 그런 삶.”
“그거야 알고 있습니다.”
짧게 대답한 제라르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씩은 작전이 있는 거지요?”
“그런 거 싫다니까!”
“정말 한 번도 없습니까?”
“확!”
결국, 둘이서 킬킬거리며 웃고 말았다.
아프리카로 가는 길이다.
몸조심하라는 말 따위 전혀 의미 없는 장소인 걸 강찬, 제라르, 석강호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무기는?”
“프란다스의 개가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여 준 강찬은 몸을 일으켰다.
석강호와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와 함께 있었다.
다가간 강찬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쪽 일행을 살폈다.
다른 사람 아닌 남일규가 자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다섯이 우선 움직일 거요.”
아마 급하게 결정한 일인 것 같았다.
그에 대해 강찬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석강호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렇다.
남일규가 함께 간다는 것이 무엇보다 든든했는데, 반대로 강철규와 남일규가 떨어져 있어도 될까 하는 염려도 생겼다.
언제부터 영감이 혼자 있는 것까지 생각했다고.
강찬은 픽 하고 웃으며 대강 이야기를 나눴다.
“이집트 분실장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수니파 살라피주의자들은 대가리만 제거할 거고, 그게 끝나는 대로 다르미코프를 찾아 움직이겠소.”
“그놈 위치는?”
“국가정보원이 추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종일이 빠르게 답을 했다.
“만약 위치가 부정확하거나 함정 같으면 일단 아프리카로 합류해. 그곳에서 나와 다시 움직이거나 아니라면 우리 쪽에서 덫을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남일규는 조용하게 듣고만 있었다.
이런 양반이 독이 오르면 그 섬뜩한 서울 구경을 시킨다. 직업란에 관광 가이드라고 적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조심하세요.”
“선배님을 부탁드립니다.”
강찬의 말에 남일규가 조용하게 답했다.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그리고 아침이 밝기 직전에 모든 인원이 조정 경기장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