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19화 (438/520)

제10장. 출발은 이틀 뒤다 (1)

스웨이든은 당당하고, 도이슨은 긴장을 풀지 못한 얼굴이었다.

“19명이 한국으로 출발했소. 준비는 어떻소?”

“지진은 염려 마시오. 그런데 최근 소식들을 보면 아프리카로 이동할 모양이던데, 그 전에 결과가 나오겠소?”

“그가 아프리카로 움직인다면 우리는 보다 쉽고 완벽하게 그를 제거할 방법이 있지요. 그러니 한국을 완전히 가라앉힐 최후의 일격에 실패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스웨이든의 다짐에도 도이슨은 여전히 불안을 털어 내지 못한 눈빛이었다.

“한국은 아픈 과거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라를 팔아서라도 지금의 위치를 지키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은 국민의 늘어나는 수입이 오히려 불안할 수밖에 없소.”

“우리는 한국에 그다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도 계산해야 할 거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 미합중국의 손길을 바라는 이들이 뭉치고 있으니, 그가 제거되기만 한다면 한국은 다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얌전했던 고양이로 돌아갈 겁니다.”

창밖을 힐끔 보았던 도이슨이 ‘흠.’ 하고 나직한 신음을 뱉어 냈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친한파가 존재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쯤이야 얼마든지 정리가 가능한 일이오.”

“프랑스와 중국은 문제없겠지요?”

“라노크와 양범이 힘을 잃었고, 그 대가로 돌아가는 이익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번 일이 성공한다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아프리카는?”

“쿠흐만을 의지하면 됩니다. 프랑스 외인부대도 어쩌지 못한 아프리카를 한국의 특수부대와 퇴역한 용병들로 점령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발상인 거요.”

말을 하던 스웨이든이 강찬을 떠올린 것처럼 입가에 야비한 웃음을 달았다.

“그의 투지와 꺾이지 않는 용맹함에 1라운드가 끝났다면 2라운드는 연륜과 경험으로 승부가 날 겁니다. 그의 부족한 인생 경험이 그를 지옥으로 안내하겠지요. 그의 동료들과 함께.”

도이슨은 보일 듯 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웨이든의 마지막 말이 그를 설득한 게 분명했다.

***

무산 황호 초소는 살벌함으로 넘쳐 났다.

단 2명이다.

강철규와 남일규는 5명이나 되는 초병들을 몰아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서 있었다.

그나마 강철규는 어깨에 걸쳐 놓은 대검조차 뽑지 않았다.

“연락해.”

남일규의 지시였다.

황호 초소의 북한군 소위가 얼른 전화기를 들었고, 빠르게 연결했다.

헛소리를 지껄일 수도 있는데?

강철규가 구석으로 몰아 놓은 넷을 노려보고, 남일규가 전화하는 소위의 목에 대검을 걸고 바싹 당긴 자세를 보면 그런 생각 싹 달아난다.

비무장왕과 서울 구경의 창시자는 떠도는 전설인 줄만 알았던 초병들은 아예 염라대왕을 만난 얼굴이었다.

“황호 초소입네다!”

북한군 소위가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남조선의 비무장왕이 인민무력부장 동지와 통화를 원한답네다! 황산의 깃발을 기억하라는 말을 전하면 알 거라고 했습네다! 시간은 3분이랍네다!”

빠르게 말을 뱉어 낸 소위가 눈알을 굴린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비무장왕이 맞습네다! 내래 분명하게 장담함다!”

철컥.

통화가 끝난 직후에 남일규가 시계를 보았다.

북한군이 비상을 걸고 달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분명 3분이다. 그까짓 거, 강철규와 남일규는 웃으며 돌아간다.

1분이 흘렀다.

강철규가 피식 웃으며 남일규를 돌아볼 때였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전화기가 급하게 울어 댔다.

***

국가정보원 지하 회의실이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은 날들이었는데, 특히 오늘은 입을 열기도 어려울 정도의 침묵이 회의실을 뒤덮고 있었다.

강찬과 고건우, 두 사람뿐이었다.

“부원장, 이 정도면 우리는 제국주의에 물들어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 계산은 한 거겠지요?”

고건우가 탁자에 올린 손을 끼운 채 질문을 던졌고, 강찬은 분명하게 ‘예.’ 하고 답을 했다.

“이 모든 작전을 국가정보원 정보총국에서 담당하겠다는 것이구요?”

“그렇습니다.”

노려보듯 강찬을 보았던 고건우가 앞에 놓인 서류 3장을 모두 볼 수 있도록 옆으로 펼쳤다.

“증평 특수팀, 606 특임 대대, 그리고 외인부대 전역자들.”

두 번째 장으로 시선을 돌린 고건우는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고개마저 저었다.

“북한의 제8특수군단사령부라니…….”

“18만에서 20만의 병력입니다. 전투력은 우리에 비해 많이 떨어지지만, 그 정도 훈련받은 병력을 그 정도로 값싸게 쓸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병력이 빠져나가면 전쟁의 위협도 줄어듭니다.”

“이걸 정말 부원장이 생각해 낸 거 맞습니까?”

“비무장왕의 조언을 듣고 참고했습니다.”

마지막 장으로 시선을 돌린 고건우는 지금껏 지켜 오던 속내를 얼굴에 드러내고 말았다.

“CIA 국장과 영국, 이스라엘, 일본의 정보국 수장들까지…….”

그는 아예 질려 버린 눈으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물러갈 세대를 대표해서 부탁하신다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언제까지 얻어맞고 난 뒤에 응징을 나설 수는 없습니다.”

“부원장, 프랑스와 중국이 등을 돌린 상황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 나섰다가 부원장을 잃으면 우리는 돌이키지도 못합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씩 뺏겨도, 당장 지진이 고성에 일어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적들이 왜 고성에 지진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말해 보세요.”

“국가정보원을, 정보총국을 해결한 뒤에 절대 항거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이러는 걸 겁니다. 대통령님, 원장님, 저. 이 중 누가 가장 먼저 타깃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무너진 대한민국을 버틸 사람이 없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고건우는 깊은 침묵에 잠겼다.

아프리카의 첫 번째 나라는 말라위였다.

무라타카 대통령이 독극물이 든 담배를 피운 채 죽은 뒤로 한국의 특수부대가 파병되어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

그때 옷을 벗어던진 강찬의 몸뚱이에 남았던 상처들이 고건우의 뇌리에 뚜렷하게 떠올랐다.

안에서 강한 대한민국을 외칠 때, 누군가는 그런 상처를 안고 돌아오고, 또 누군가는 원산의 깊은 바닷속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목숨을 던진다.

“대한민국을 건드린 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고건우는 웃으려 했다. 그런데 웃음과 동시에 한숨이 나오는 바람에 이상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말과 행동이 이렇게 한결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전 세계를 상대로?

“대통령께 보고하겠습니다.”

“원장님.”

서류를 보았던 고건우가 시선을 들었을 때였다.

“파병이나 북한의 8군단을 사용하는 것은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CIA를 비롯한 수장들의 제거는 예정대로 진행할 겁니다.”

강찬은 전에 없이 강한 눈빛과 음성으로 고건우에게 뜻을 전하고 있었다.

“우리 해군특수전전단 대원 2명, 이집트의 요원 한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걸 넘어가면 우리는 또다시 송 청장님이나 황 원장님, 최 장군과 같이 아까운 인물들을 잃게 됩니다.”

이런 건 뭐라고 말릴 수도 없다.

고건우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저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이대로 얻어맞기만 하면, 우리는 반드시 모두 잃습니다. 대통령님이 물러나면 원장님, 다음은 제 순서라면서요.”

“흠.”

고건우는 강찬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북한과의 연락은 국가정보원에서 합니까?”

“비무장왕을 통하겠습니다. 인민무력부장 박상식과 아는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비무장팀만이 가능한 지극히 우호적인 방법으로 접촉하겠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고건우의 볼이 씰룩였다.

“영국이 만들어 낸다는 지진을 막을 방법도 생각했습니까? 최후의 순간에는…….”

“영국이 첫 번째 타깃입니다.”

강찬의 답이 말을 자르고 툭 튀어나왔는데, 고건우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

미쉘은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느닷없이 달려온 제라르가 던진 요구 때문이었다.

“드라마가 무슨 스크램블 만드는 것처럼 쉬운 줄 알아요? 판매처, 주연, 아니 그보다는 당장 책이 있어야 해요.”

“지난주만 해도 드라마 신청 들어온 책들 읽느라 밤을 새운다면서? 그냥 적당한 거 하나 골라서 만들어. 그리고 이게 스케줄 표.”

제라르가 두 번 접은 A4 용지를 내밀었고, 미쉘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걸 펼쳤다.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미쉘.”

제라르의 깊은 눈과 볼의 상처가 완벽하게 미쉘의 시선을 붙들었다.

“당신은 참 괜찮은 사람이야.”

이렇게 가라앉은 표정의 제라르는 처음이었다. 지금껏 보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과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그의 표정과 자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당신에게 드라마 제작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잘 몰라. 그러나 나는 이게 반드시 필요해. 내가 유일하게 따르는 사람을 위한 일이니까.”

미쉘이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제라르의 말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동안, 침묵이 시간을 타고 흘렀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사무실 바깥에서 연기자들과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위험한 일인가요?”

“그럴 수도 있고.”

프랑스어로 오가는 대화였다.

“우리 스태프나 연기자도 위험해질 수 있나요?”

제라르는 먼저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웃었다.

“나보다 더 잘 알잖아?”

“그렇죠. 그 사람은 절대 그렇게 만들 사람이 아니죠.”

한숨과 함께 종이를 내려다본 미쉘이 다시 커다란 눈을 들어 제라르를 보았다.

“당신도 함께 움직이나요?”

“나는 다른 곳에 가게 될 것 같아.”

픽 웃은 미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러면서 묘한 느낌의 말을 던졌다.

깊은 눈과 커다란 눈이 말없이 서로를 보았다.

“출발은요?”

“거기 적혀 있어.”

“우리 말고 당신이요.”

미쉘의 질문을 제라르는 또다시 웃음으로 받았다.

***

강찬은 정보총국 사무실에서 강철규와 마주 앉았다.

사람 마음 참 이상하다.

떨어져 있을 때는 이리저리 친근하게 지내야지 하는데, 막상 마주하면 더럽게 어색하고 뻑뻑한 느낌인 거다.

“사흘 내로 답을 준다고 들었다. 앞에 발표할 것들의 조율은 국가정보원과 직통전화를 통해 의논하겠다는 말이 전부였다.”

“고생했어.”

고작 한마디다. 그런데 온몸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왜 강대경과는 그럭저럭 되는 게 이 양반하고는 안 되는 걸까?

“느꼈겠지만, 감이 안 좋다.”

강찬이 픽 웃었고, 그 웃음을 본 강철규가 피식 웃었다.

이런 대화를 나누면 이상하게 어색함이 싹 사라지고 동지 의식까지 느껴져서 그렇다.

“대놓고 움직이고 있어서 적들도 이미 우리의 계획을 안다고 봐야겠지.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 국가정보원 원장이나 김관식 청장, 그리고 박철수 장군쯤은 경계를 높이는 게 좋겠다.”

“그렇게 할게.”

“부원장을 노리는 놈들도 반드시 있을 거다.”

강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일어나겠다.”

강철규가 몸을 일으켰고, 강찬이 따라 움직였다.

지금 헤어지면 아프리카로, 영국으로 흩어진다.

마음과 달리 뻑뻑한 분위기 속에서 전보다 선명해진 강철규의 목덜미 주름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이마나 눈가는 좀 덜한데, 목덜미에 깊어진 주름은 자꾸만 가슴에 얹힌다.

강철규가 향하는 아프리카도, 강찬이 향하는 유럽과 미국, 일본도, 죽음의 틈새에서 버텨야 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을 위한 임무야. 만약 내가 가지 말라고 하면 멈출 수 있어?”

유치한 거 안다.

뱉어 놓고 곧바로 비겁한 질문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냥 나온 질문이었다.

이런 임무가 아직도 강철규의 가슴에 중요한 일인지 궁금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태극기와 조국을 위해 가족에게 미안한 심정을 이겨 낼 수 있는지가 문득 알고 싶었다.

강찬의 앞에서 강철규는 눈빛을 빛냈다.

“먼저 간 대원들이 내게 던진 바람은 한결같이 후배들을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대원들의 남겨진 가족이 쏟아 내던 울음을 잊지 못한다.”

뜻밖에도 답은 전혀 망설임 없이 나왔다.

“우리 세대는 이렇다. 그래서 부원장이 이번에 말한 계획을 들으며 태어나 처음으로 희망을 보았다. 부원장은 나처럼 멍청한 삶을 살지 않았으면 싶다. 강한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를 바란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는 것처럼 강철규가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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