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18화 (437/520)

제9장. 아쉬움은 남을망정, 후회는 없다 (2)

모처럼 들른 증평이었다.

강찬과 석강호, 제라르, 그리고 이제는 아예 가족으로 느껴지는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를 맞아 곽철호는 드럼통마다 불을 피워 놓았다.

반갑다.

불과 며칠 전에 보았는데도 이렇게 볼 때마다 가슴 찡한 반가움이 생긴다. 함께 사선을 넘는 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감정일 거다.

“이거지!”

드럼통 위에 놓인 석쇠, 한쪽에 푸짐하게 쌓인 고기를 보며 석강호가 만족한 얼굴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새로운 얼굴들과 인사하고, 아는 얼굴들과 악수를 나누며 시간이 훌쩍 지났다.

활활 타오르는 불 위에 돼지고기를 얹으면 그냥 바로 숯덩이가 된다. 그래서 대원들은 페트병의 뚜껑에 못으로 구멍을 내고는 타오르는 불을 조절해 가며 고기를 구웠다.

뜨거운 고기를 씹느라 이 빠진 사람처럼 입을 놀리는 제라르를 보며 강찬은 픽 하고 웃었다.

“꽉! 여기로 와!”

특히 좋아하는 곽철호를 부른 제라르가 고기를 한 점 집어서 입에 넣어 주었다. 서양 놈들은 원래 저런 짓 잘 안 하는데, 상추쌈을 처먹기 시작하더니 식성과 습관이 급격히 변했다.

“무슨 일입니까?”

적당히 고기를 먹고 났을 때였다.

음료수 잔을 든 박철수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상황이 상황이고,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냥 놀러 온 것은 아닐 거라 짐작한 모양이었다.

“증평팀을 아프리카로 파병했으면 싶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대원들이 모두 들었다. 중간에 함께 서 있던 강철규와 남일규까지.

화로에 둘러서 있던 대원들의 시선이 단박에 강찬에게 달려들었다.

“대통령님의 결정이 나겠습니까? 국방부나 국회가 동의하지 않을 텐데요.”

“이번에도 국가정보원 요원 파견으로 처리할 생각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처절한 전투를 경험했던 박철수다. 그래서 그는 목적 따위 묻지 않았다.

말할 수 있으면 알아서 해 줄 거고, 비밀로 해야 할 내용이면 물어도 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쯤 짐작하고 있을 위치이기도 했다.

강찬은 주변에 늘어서 있는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파병을 말했는데 다들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증평팀이 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임무라는 뜻이고, 출발과 동시에 죽음이 대원들 틈에 살포시 끼어 기회를 엿본다는 것을 모두 짐작할 텐데도 말이다.

“고성의 차세대 발전 시설의 테스트를 성공리에 마쳤다.”

굳이 시간 끌 것 뭐 있겠나?

브리핑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이 인원이 듣는 거니까.

타다닥!

드럼통에서 튄 불똥이 추임새를 넣는 것처럼 튀어 오른 다음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본 가동을 앞두고 기존의 강대국들은 아직 우리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대한민국이 그런 힘을 갖는 것이 불편한 곳들쯤 다들 짐작할 텐데.”

대원들이 서로 눈을 마주친 뒤에 다시 강찬을 향해 시선을 가져왔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와 뜻을 함께하던 나라들의 변화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변화를 그들에게 분명하게 밝혀 줄 생각이다.”

대개 미국이나 영국, 이스라엘, 일본을 생각하는 대원들이 이게 아프리카 파병과 무슨 상관이 있나 하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아프리카로 가서 프랑스와 영국이 지배하는 나라들을 독립시킨다.”

멍하니 이야기를 듣던 대원들에게 얼음물을 퍼부은 것처럼 삽시간에 서늘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아울러 현재 파병된 부대를 이용해 치안과 보안을 지원한다.”

차동균이 손을 반쯤 들었고, 강찬의 시선을 받자 바로 입을 열었다.

“숫자가 너무 부족하지 않습니까?”

“제라르가 외인부대 출신 병력을 선발해서 지원할 거다. 알고 있다. 그래도 병력이 모자란다. 그래서 준비하려 하는 병력은 결정 나는 대로 알려 주겠다.”

강찬은 피식 웃으며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이런 통보를 듣고도 누구 한 사람 걱정하는 눈빛이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반정부군, UIS, 외인부대와 교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그 모든 교전을 통해 세계에 분명하게 알려 준다. 우리 몫을 뺏으려 한다면 저들도 가진 것을 우리에게 뺏길 수 있다는 것을!”

박철수가 볼을 꿈틀했고, 강철규와 남일규는 무언가 찡하고 올라온 얼굴이었다.

“예전에 얻어맞고 겨우 복수하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당당하게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고, 우리의 힘으로, 우리를 노리는 적에 당당하게 맞선다! 그것이 프랑스이든, 영국이든, 미국이든, 상관없다!”

박철수가 느끼는 감정이, 강철규와 남일규를 흔드는 흥분이 대원들 사이로 퍼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희생이 따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 파병이 성공으로 끝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을 노리려는 나라는 가진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져와야 할 거란 교훈을 남기게 될 거다.”

강찬이 대원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대한민국은 변한다. 차세대 발전 시설 가동 이전과 이후로! 그리고 그 기준점은 증평의 특수팀과 아프리카에서 시작하겠다.”

강찬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푸흐흐.”

석강호의 웃음이 배경처럼 깔릴 때, 박철수는 강철규를 바라보았다.

‘선배님,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특수팀의 전설과 현직 특수팀 장군은 벅차오르는 감동이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는 듯 비슷한 얼굴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

***

라노크는 전화기를 귀에 대고는 옅은 미소를 떠올렸다.

[주연을 좀 말려야 하지 않겠나?]

“젊은 시절의 바실리는 좀 더 심했던 것 같은데?”

[그때와는 시대가 달라. 무엇보다 이번의 타깃은 프랑스가 아닌가? 게다가 양범을 그대로 둘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어.]

“바실리, 새로운 질서에 순응하는 게 어떤가?”

[하! 라노크가 늙어 버렸군.]

기가 막혀 하는 바실리의 대꾸를 라노크는 홍차를 마시는 여유로 받았다.

[혹시 이번 기회에 프랑스 정보국의 체계를 바꾸려는 건가?]

“그거야 내가 결정할 몫이 아닌 것 같은데?”

[음흉한 프랑스인이 결국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군. 어쩐지 로리암에 들어앉은 것처럼 얌전히 산속에 처박혀 있더라니.]

홍차를 따르는 모양이었다.

바실리가 높다랗게 주전자를 들어서 따르는 홍차 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건너왔다.

[한 가지만 알고 싶다. 만약 무슈 강이 우리의 의지를 저버리고 그의 욕심에 따라 움직이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라노크는 당장 답하지 않은 채 시가를 입에 물고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지루할 법도 한데 바실리는 다른 말 전혀 없이 답을 기다렸다. 반드시 라노크의 생각을 알고 싶다는 의미와 같았다.

“바실리.”

시가에 불을 붙이고 난 라노크의 부름에도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원하던 답을 내놓으란 침묵이었다.

“미래를 알고 싶다면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보란 말쯤 알고 있을 텐데?”

[정보 세계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값어치 없는 것인지를 먼저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라노크는 멀리 있는 호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가 변한다면, 내가 할 답은 하나밖에 없다.”

잠시 뜸을 들이는 것처럼 숨을 내쉰 라노크가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아쉬움은 남을망정, 후회는 없다.”

대꾸는 없었다. 그저 바실리 특유의 ‘흥!’ 하는 웃음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

서울로 돌아온 강찬은 곧바로 남산호텔로 향했다.

11층 VIP룸에 들어서자 거실에 있던 중국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부장 대행 모려휘가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입니다. 앉으시죠.”

모려휘가 내민 손을 강찬이 맞잡았고, 그가 권하는 대로 소파에 앉았다.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자동차의 불빛과 화려한 차림의 건물들이 기웃거리는 거실이었다.

중국 쪽 요원 셋이 모려휘의 뒤에, 그리고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가 강찬의 뒤에서 손을 앞으로 맞잡고 서 있었다.

중국 요원 한 명이 조용하게 움직여 뚜껑 덮인 차를 테이블에 올려 주었다.

“차를 드십시오.”

알고 있다. 방에 있는 사람 모두.

지금껏 강찬이 한마디도 안 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려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양범 부장의 일은 오해가 있습니다.”

모려휘 역시 차에는 관심도 없다는 것처럼 어색한 한국말로 바로 용건을 꺼내 들었다.

“주석의 지시였습니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지진이 일어난 이유를 파악할 때까지 업무를 정지하고 안전 가옥에서 지내게 했을 뿐입니다.”

1인용 소파에 팔을 걸친 강찬은 깍지 낀 손을 허벅지에 올린 채 대꾸조차 없었다.

“우리 안전부는 이번 일로 위원회는 물론, 위원장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모려휘.”

이번엔 모려휘가 입을 닫고 강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진의 원인에 대해 조사하는 것을 뭐라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양범 씨가 구금되어야 하지? 그 이유를 말해 봐.”

대꾸가 없는데도 강찬은 상관없다는 투였다.

“차세대 발전 시설의 테스트에 맞춰서 지진이 일어났다면, 당연히 우리에게 협조 요청이 있어야 맞지 않나? 일방적으로 양범 씨를 구금하고 자체적인 조사를 하겠다? 내가 그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우리는 공정한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고, 그 결과를 통보한 이후에 합동 조사를 할 생각도 있습니다.”

강찬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양범 씨는 이 발전 시설을 통해 중국과 중국의 인민들이 더는 부족한 에너지로 고통받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4개 나라다. 대한민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뾰족하게 생긴 모려휘가 강찬의 분위기에 눌리지 않으려는 것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중국이 이런 식으로 표정을 바꾸겠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를 거다.”

“위원장.”

모려휘의 호칭과 음성이 싹 바뀌었다.

“위원장의 개인적인 능력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을 한국의 부속 국가로 생각하는 듯한 그 견해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피식.

강찬은 마치 모려휘의 대꾸를 예상했다는 것처럼 특유의 웃음을 먼저 던졌다.

“중국의 잠재력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중국이 잠재력과 힘을 가졌다고 해서 얼굴을 바꾸는 것까지 내 앞에서 당당하게 지껄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모려휘의 눈빛이 더욱 빛났다.

그러나 상대가 그따위 눈빛을 인정해 줄 사람이 아닌 강찬이라는 게 문제였다.

“늘 그런 식이었지. 서해에 어선을 막겠다고 지껄이고도 늘 개떼처럼 배를 보내고, 존중하겠다고 하면서도 뒷말에 이러저러한 걸 바란다고 토를 다는 것도 그렇고.”

말을 마친 강찬이 결심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간 이후로 우리 해상에 들어선 중국 어선은 경고 없이 발포할 거고, 격침에 따른 모든 피해는 중국 측에 있는 것으로 하겠다.”

“그것과 이건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고 정보국은 그런 문제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내겐 같아!”

강찬의 단호한 음성에 모려휘가 움찔했다.

“정치권이 결정할 문제라고 할 셈이냐? 그런데 왜 이전에는 이걸 양범 씨가 의논했었지? 나와 통하는 유일한 창구를 막아 놓고 존중하라고?”

한쪽 입끝을 올린 강찬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모려휘는 악착같이 버텼다.

“오해하지 않는 게 좋다. 우리는 중국의 관광객 수입을 바라던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너희 따위 국교를 단절해도 앞으로 생산하는 전기로 얼마든지 살아간다. 석유처럼 시굴도 필요 없지.”

무언가 한마디를 하려는 것처럼 모려휘의 입이 꿈틀거리는 순간이었다.

“유라시아 철도를 끊겠다는 소리 따위 지껄일 거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을 거다.”

모려휘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누구든 중국 쪽에서 유라시아 철도의 단절 이야기가 나온다면 맹세코 내 손으로 철도를 끊어 버릴 거다.”

강찬의 예상이 맞았던지 모려휘의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적어도 양범 씨는 함께 아시아를 뭉치고, 낙후된 아프리카에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할 계획은 가지고 있었다. 고작 우리끼리 싸워서 자리를 지키려는 너 따위와는 그릇이 달라.”

말을 마친 강찬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황한 모려휘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강찬을 올려다본 직후였다.

“중국과 정보국 교류를 중단한다. 1개월을 주마. 그 시간 안에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모든 중국 정보원을 출국시켜라. 그 뒤에 발견되는 놈들이 있다면 모조리 시체로 돌아가게 될 거다.”

한 조각 여운도 남기지 않은 채 강찬이 돌아섰다. 그리고 바로 방을 나섰다.

“이게 도대체……?”

모려휘는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이다. 한국이 어떻게 중국을 이렇게 대할 수 있지?

“무언가 다른 것을 손에 쥔 건가?”

혼잣말로 던진 질문에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동안 한국이 무섭게 성장했다고 해도 아직 이 정도는 절대 아닌데?

화려한 서울의 불빛이 멍한 모려휘의 낯빛을 훑으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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