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17화 (436/520)

제9장. 아쉬움은 남을망정, 후회는 없다 (1)

진해 속천항 공판장 앞이었다.

이동술이 서 있는 앞에서 박점순은 바다를 향해 철퍼덕 주저앉아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랐다.

“어머니-”

“우리 노준이가 여린 구석이 있다 아이가.”

늘어진 가슴이 오래된 꽃무늬 셔츠 아래에 있었다.

“글마가 다음번에는 딸아로 태어나라 안 했나? 걱정 말그래이. 내사 무신 일이 있어도 25년은 더 살기다. 그래야 노준이 딸아로 안 태어나겠나?”

말을 마친 박점순이 종이컵을 들어 힘겹게 막걸리를 넘겼다.

“우리 노준이가… 딸아로 태어나라 했으니까 글마가 스물다섯 될 때까지는 악착같이 살다 죽을 끼라. 그래서 글마 딸아로 나서, 내사 공부도 잘허고, 효도 마이 하는 딸아 될 끼다.”

말을 마친 박점순이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이라. 그라지 마라. 니는 내한테 죄송한 거 암 것도 엄다.”

두 손을 위로 들어 손바닥 안쪽으로 눈물을 닦아 낸 박점순이 다시 막걸리를 따랐다. 휘어 버린 손가락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우리 글마, 마이 아프지 않았제?”

이동술은 울음을 삼키느라 답을 하지 못했다.

“내 다 안다. 잠수함 폭파됐을 기라는 방송 봤다 아이가. 우리 노준이가 했을 기라. 노준이, 글마가 했을 기라. 그런 일 있으믄 글마는 절대 남 시키는 아이 아이라.”

박점순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막걸리를 마셨다.

“노준아이! 기다리그래이! 내사 이십오 년 더 살고 갈기다! 그라이께 꼭 기다리그래이!”

“어머니.”

또다시 막걸리를 따르려는 박점순의 손을 이동술이 잡는 순간이었다.

볼과 턱이 눈물로 흥건한 이동술을 보는 순간, 박점순은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우야꼬! 우리 아 아팠으면 우야꼬! 바다에서 무서봤으면 우야꼬! 그리 간 아 가슴에 제주도 여행 안고 갔으믄 우야꼬! 노준아이! 미안타이! 에미가 정말 미안타! 우야꼬! 내 새끼! 몸 아프고 맘 무겁게 갔으믄 우야꼬!”

박점순의 애닳는 울음이 바다 저 먼 곳을 향해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

양동식은 하여간 악착같았다.

이건 뭐, 훈련에 미친놈이거나 그게 아니면 원래부터 미친놈, 둘 중 하나처럼 보였다.

핏! 피윳! 핏! 핏!

“그만!”

날이 없는 대검을 들고 상대를 잡는 훈련을 할 때였다.

강철규가 전에 없이 날카로운 음성으로 훈련을 막아섰다.

“양동식.”

“하사 양동식!”

“이곳에 네놈의 그 잘난 성격 자랑하러 왔나? 미친놈처럼 설쳐서 앞에 있는 적을 죽이는 동안, 옆에 있는 동료나 뒤에 있을 적은 생각 안 해?”

“시정하겠습니다!”

강철규는 날이 번들번들하게 선 눈으로 양동식을 노려본 채 잠시 말이 없었다.

“혼자서 그따위로 날뛰면 네가 표적이 된다. 그런 너를 구하기 위해 동료들이 목숨을 걸어야 하고. 그 뒷일을 감당할 수 있나?”

양동식은 답을 하지 못했다.

“양동식.”

“하사! 양동식!”

강철규가 불렀고, 양동식이 단단하게 답을 했다.

비무장왕이다. 특수팀의 전설.

저벅저벅.

강철규가 양동식에게 걸어가자 팽팽한 긴장감이 훈련장 주변을 단숨에 휩쓸었다.

“너는 근성이 있다.”

양동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특수팀의 전설이 전하는 말이었다.

“마지막까지 냉정해라. 빈틈을 만들지 마.”

“알겠습니다!”

답을 한 양동식이 의아한 눈빛으로 강철규를 보았다.

그의 눈이 평소와 다르게 애잔하게 느껴져서였다.

***

고건우가 돌아간 뒤에 강찬은 창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전에는 정보국들과의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정치권까지 싸움이 확대된 느낌이었다.

하나씩 한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니까.

경고를 무시했던 놈들에 대해서 확실하게 마무리한다.

다시는 대가리를 쳐들지 못하게.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석강호가 양손에 커다란 비닐봉지를 2개나 들고 들어왔다.

“나 왔소.”

“뭐냐?”

“저녁에 출출할 거 같아서 사 온 거요.”

석강호가 테이블에 봉지를 올리자 달달한 양념 냄새가 훅 풍겼다.

“이게 그 유명한 닭강정이란 거 아뇨.”

가족을 멀리 보내더니 이놈은 아예 먹는 거로 욕구를 푸는 게 틀림없었다.

“뭐해? 얼른들 와서 먹자.”

석강호가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최종일과 이두희, 우희승이 음식을 나눠서 안쪽으로 가져다주었다.

“먹어봐요.”

석강호를 시작으로 양념 범벅인 닭 조각을 먹기 시작했다.

달달하고 매콤한 양념 맛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밤에 많이 먹지 않아서 강찬은 서너 조각을 먹고 말았다.

“넌 어디 다녀와?”

“이번에 이집트에서 희생된 대원 집에 다녀왔소.”

손가락과 입술에 양념을 잔뜩 묻힌 석강호가 또 다른 조각을 집어 들며 뱉은 답이었다.

“아버님, 어머님과 누님들이 있습디다. 꿋꿋하게 견디고는 있던데 그게 쉽게 받아들여질 일은 아니지 않겠소?”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석강호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처럼 닭강정을 계속해서 먹어 댔다.

“다르미코프란 무기상 새끼가 지시한 게 확실하다고 합디다. 무기상인데 김광민의 사살을 지시한 놈이고, 행동은 이집트 수니파 살라피주의자들이 움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들었소.”

석강호는 닭강정을 계속해서 먹고 있었다.

적당히 먹은 최종일과 이두희, 우희승이 손을 닦고 지켜보는 앞이었다.

“언제까지 기다릴 거요? 이런 일이 생기면 응징하겠다고 증평 애들 저렇게 훈련시킨 거 아니오? 다르미코프 먼저 칩시다. 그래서 우리 요원들 건드린 개새끼들은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거라고 확실하게 가르쳐 줍시다.”

석강호는 남은 닭강정이 수니파 행동대원인 양 우걱우걱 먹어 댔다. 그러지 않으면 분을 풀기 어렵다는 눈빛이었다.

“다예.”

강찬이 부르자 닭강정을 잡았던 석강호의 손이 멈췄다.

양념이 묻어 입가가 벌겋게 변했고, 양손 엄지와 검지에 닭강정처럼 양념을 뒤집어썼는데, 눈은 매섭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엄지환의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냥 참고 있자니 분통이 터져서 이렇게 뛰쳐나가 닭강정이라도 우적우적 먹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전에 지브릴 제거할 때 기억하지?”

한쪽에서 커피를 타던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의 고개가 홱 돌아왔다.

“넷이서 필요한 인원 추려서 그리 가라. 이집트에서 그날 가담했던 놈들 모조리 제거하고, 다르미코프의 모가지를 걸어 놓고 와.”

석강호가 입을 히죽 벌리며 웃었다.

이 사이에 닭고기가 끼어 있어서 더럽게 더러워 보였다.

“아프리카에서 활동한 일본 정보원 놈들 추적한다. 얼른 이집트 해결하고 파병 부대로 움직여. 지금부터 아프리카를 하나씩 우리가 점령한다.”

석강호의 고개가 비틀렸다.

외인부대 인원수로도 다 해결하지 못했던 일이다. 당연하게 한국이 가진 병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프랑스 최고 통치자가 우리에 맞서겠다면 우리는 그들의 몫을 뺏는다. 필요하다면 누구든 제거해.”

“진심이오?”

강찬이 피식 웃자 석강호가 히죽 웃었다.

“병력은 어쩔 거요?”

“퇴역한 외인부대 특수팀을 끌어모을 생각이다. 국가정보원 정보총국 외인부대를 만들 생각이지.”

“오!”

탄성을 질렀던 석강호가 그 끝에 또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부족하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그럼 대장은요?”

“나는 이 빌어먹을 작전을 꾸미는 놈들의 대가리를 돌려 주러 가야지.”

“갑자기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유가 뭐요?”

아직 주둥이와 손가락에 양념을 덕지덕지 단 채로 석강호가 던진 질문이었다.

강찬은 먼저 피식 웃었다.

“내가 제대로 2대나 맞았다. 그럼 어떻게 할 것 같으냐?”

“그야 죽도록……. 푸흐흐.”

석강호가 잔인한 눈빛을 하고 더럽게 웃었다.

***

스웨이든은 앞자리에 앉은 원피스 차림의 아랍인을 향해 찻잔을 가리켰다.

“어떻습니까? 원유 생산량을 더 늘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정작 그가 건넨 것은 엉뚱한 말이었다.

“보시다시피 당분간 원유 가격이 올라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세계적인 불황에 생산량을 줄이는 일도 없을 테니까요.”

“미스터 스웨이든, 원하는 것을 말해 보시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마호메드 압살라 쿠흐만은 이렇게 돌아가기보다는 바로 용건을 듣고 싶은 눈치였다.

“핵융합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그거야 예전부터 있었던 기술 아니오? 투입 원가 1에 산출량 10은 되어야 겨우 수지가 맞는데 핵융합은 오히려 투입 10에 산출량 1이어서 포기했던 기술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요?”

스웨이든은 먼저 ‘잘 알고 계시군요.’ 하며 웃었다.

“우리는 블랙헤드 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핵융합 에너지에 블랙헤드의 에너지를 이용합니다. 투입 1에, 생산량이 최대 150까지 가능합니다.”

쿠흐만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스웨이든을 살폈다.

“전기를 충전할 필요도 없지요. 그저 핵융합 캡슐 하나면 폐차시킬 때까지 타는 자동차 연료가 나오는 겁니다. 이것을 전기로 변환하면 5백 년 따위의 한계치도 없습니다.”

“폐기물은 어쩔 생각이오?”

스웨이든은 마치 이 질문을 기다린 사람 같았다.

“좋은 나라가 있지요. 시설도 제법 갖춰 놓아서 조금만 손보면 앞으로 전 세계는 폐기물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설이 제법 훌륭하거든요.”

자동차를 오래 팔아 왔던 영업사원처럼 스웨이든의 답은 막힘이 없었고,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보시오, 미스터 스웨이든. 우리 쪽에서는 우즈만을 설득하지 않으면 누가 뭐라 해도 이 일을 진행하기 어렵소. 그리고 그 이유가 무슈 강 때문이라는 건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 아니오?”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워낙 쉽게 답을 하는 터라 오히려 쿠흐만은 의심스러운 얼굴로 스웨이든을 살폈다.

“그가 중국에 남겨 두었던 혈액 팩에서 우리가 밝혀낸 것이 있습니다. 블랙헤드가 만들어 낸 지진파의 압력을 조절해서 건강한 사람에게 직접 쏘일 경우, 세포에 에너지가 남습니다.”

쿠흐만은 스웨이든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얼굴이었다.

“중국과 프랑스는 이미 핵융합에 동의했습니다. 영국과 이스라엘, 일본도 우리와 뜻을 함께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나까지는 필요 없는 일 아니오?”

스웨이든은 그 생각에 동의한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그를 제거합니다. 그 뒤에 우리는 한국인의 손으로 문재현을 제거하고, 우리가 원하는 정권을 심을 생각입니다. 다시 모든 것이 균형 잡힌 예전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폐기물 시설이라는 게?”

“한국의 차세대 발전 시설입니다.”

쿠흐만이 상체를 뒤로 젖히며 숨을 내쉬었다.

“지켜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의 제거가 확인되었을 때,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그리고 일본 동맹을 지지해 주면 되는 일입니다.”

“그가 제거된다면…….”

처음으로 쿠흐만이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

늦게 들어온 제라르는 참 오랜만에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웃었다.

그리고 그는 바로 전화기를 꺼내서 번호를 눌렀다.

[알로?]

“제라르다.”

[오랜만이오. 어쩐 일이오?]

“용병이 필요하다.”

[구대장, 난 지금 행복합니다. 돈도 만족할 만큼 있고. 그러니 공연히 사람 가슴에 바람 넣지 맙시다.]

“알았다. 행복한 삶을 찾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제라르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아쉬운 것처럼 상대의 음성이 달려들었다.

[작전 지역이 어디요?]

“아프리카.”

[미쳤군. 다른 곳도 아니고 그 지옥을 또 들어갈 생각이라니. 하나만 더 물읍시다. 지휘관은 구대장이요?]

“아니.”

뜻밖의 대답이었나 보다.

상대방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구대장이 누구 밑에 있을 줄은 몰랐소. 그래, 구대장이 따르려는 진짜 지휘관은 누구요?]

“행복한 사람은 여기까지만 하자. 구태여 너의 행복을 망가트리고 싶지 않다.”

[지휘관만 알려 주면 바로 끊겠소. 내 입이 무겁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믿소. 그러니 옛 동료의 믿음을 잊지 않았다면 그것만 답해 주시오. 지휘관이 누구요?]

“갓 오브 블랙필드.”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석강호와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가 뭔 소리를 하는 거지 하는 눈으로 돌아본 직후였다.

[필요한 인원, 언제까지, 어디로 가면 되는지 말해 주시오.]

전화기 저쪽에서 급한 음성이 건너왔다.

“이봐, 무리하지 마.”

[그 작전에서 날 뺀다면 남은 평생 내내 구대장을 저주할 거요! 그러니 어디로, 언제까지 가면 되는지 먼저 말하쇼!]

“몸값을 정해야 하지 않겠나?”

[그동안 잔소리가 늘었구려. 돈을 넉넉하게 있소. 그러니 장소, 필요한 인원을 말해요.]

“몇 명이나 가능하지?”

[갓 오브 블랙필드가 지휘한다면…….]

상대가 계산하는 것처럼 잠시 시간을 끌었다.

[그가 원하는 숫자만큼.]

그리고 다부진 답이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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