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13화 (432/520)

제7장.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1)

도이슨은 눈끝을 매섭게 치켜떴다.

“우리가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메시지 같군. 찾아내 주겠다는 의미처럼도 들리고. 웃기는군. 지진이 정확하게 5분 뒤에 일어나란 법은 없을 텐데.”

“테스트를 하는 즉시, 바로 연락이 올 것입니다.”

도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시스템은?”

“여진을 일으킬 정도를 최대한 맞추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테스트 시간이 빨라지지만 않는다면 지진을 발생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도이슨은 가벼운 웃음을 책상 위로 흘렸다.

“대단한 인간이군. 몇만 명의 죽음을 담보로 체스를 두자는 꼴이라니. 준비를 마쳐 둬. 이래도, 저래도 우리는 여진만 일으키면 될 테니까.”

책상 앞에 있던 요원이 빠르게 고개를 숙이고 움직였다.

***

통보했던 2차 테스트 예정 시간은 19시 26분이었다.

지진이 있었다.

사망자가 4만 명이 넘는다.

그런 상황에서 곧바로 실시하는 2차 테스트인 거다.

중국에서의 지진, 비무장지대의 교전, 국가정보원 대테러팀의 경계를 알고 있던 연구원들이 긴장을 풀지 못한 얼굴이었다.

오후 7시 20분.

강찬이 중앙 통제실로 들어서자 연구원들의 시선이 단번에 달려들었다.

김형정, 석강호, 그리고 최종일 일행과 들어선 강찬은 김관식이 앉았던 가장 뒤쪽 자리에 앉았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일지 몰라도, 이곳에 있는 연구원 중에 강찬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강 소문도 들었다.

저 사람에게 찍히면 목이 돌아가거나, 아니면 누구라도 이마에 구멍이 난다.

북한의 군 기지에 꽁꽁 숨어 있던 장광택의 이마를 뚫은 남자, 이스라엘 정보국 수장의 이마를 뚫었고, 다윗의 별 목을 잘라 창에 걸어 버린 남자.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강찬에 대한 소문은 그랬다.

연구원들을 쭉 둘러본 강찬이 빨간색 불이 들어와 있는 얇은 마이크에 고개를 가져갔다.

“다들 알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많은 인명 피해가 일어났던 만큼 현재 대통령의 재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제자리에서 실험에 대기해 주기 바랍니다.”

능숙한 프랑스어가 마이크를 통해 중앙 통제실을 메웠다.

쇳소리가 묻은 것처럼 건조한 음성이었고, 그만큼 날카롭게 들렸다.

통역이 석강호와 김형정, 최종일 일행에게 강찬의 말을 전해 주고 있었다.

“대통령님의 재가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오늘 테스트는 가상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강찬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예상 실험 시간은 오후 19시 35분입니다. 각자 준비해 주세요.”

말을 마친 강찬이 마이크에서 몸을 세우자, 연구원들은 각자의 모니터와 기계 장치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준비해 주세요.”

고개를 돌린 강찬이 지시했고, 김형정이 빠르게 움직였다.

***

도이슨은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달았다.

평범한 회사의 능력 없는 간부쯤으로 보이지만, 그는 조쉬보다 냉정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게 해 놓고, 그것이 연기될 수 있다고 떠들다니. 대통령의 재가조차 확인하지 않고 달려갈 정도로 무모한 인간은 아니었을 텐데?”

그의 책상 앞에 서 있는 요원은 답을 하지 않았다. 공연히 엉뚱한 말을 꺼냈다가 결과가 이상하게 흐르면 책임질 방법이 없다.

“혹시 모르니까 대기하도록. 저렇게 해 놓고 불쑥 실험을 했을 경우에도 반드시 지진이 발생해야 한다. 실험과 지진의 연결이 10분을 넘기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

“알겠습니다.”

요원이 밖으로 나갔다.

***

김형정이 강찬의 의자 뒤로 돌아왔고,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기다렸다는 것처럼 강찬의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대장, 준비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그 지역에서 발생되는 모든 신호가 우리 손에 잡힙니다. 대신 이대로 30분 이상 연결을 끊게 되면 자체 방어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제라르의 음성이 건너왔다.

“수고했다.”

통화를 끝낸 강찬은 날카로운 눈으로 연구원들을 바라보며 손을 들었다.

달칵.

강찬은 마이크를 켜는 그 간단한 소리 하나로 연구원들의 시선을 당겨 갔다.

“실험은 예정대로 강행합니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연구원들이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을 때였다.

김형정이 강찬의 앞에 설치된 3개의 버튼 커버를 차례대로 열었다.

“5분 뒤입니다. 준비해 주세요.”

연구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언젠가 정보국 총회에서 정보국장들을 상대할 때처럼 강찬은 깍지 낀 손을 앞에 두고 연구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그때 책상에 올려 둔 강찬의 전화기가 몸을 떨어 댔다. 전화기를 든 강찬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말해.”

[3개의 신호가 잡혔습니다. 위성을 통한 연결입니다.]

제라르의 음성이었다.

[각국의 신호가 달라서 해당 위성을 찾는 데까지 10분 정도 걸립니다. 위성 발신기는 김형정 팀장이 가진 기계로 충분히 확인 가능합니다.]

빠른 프랑스어가 전화기를 타고 건너왔다.

피식.

전화기를 내려놓은 강찬은 30명 남짓한 연구원들을 내려다보았다.

“다예.”

그러고는 마이크를 통해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석강호를 불렀다.

“지금부터 내가 지적하는 놈들은 모조리 이마를 뚫어 준다.”

“예.”

김형정은 원래 강찬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놀랄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놀랄 일이 생길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지금 그의 표정이 딱 그랬다.

철커덕!

능숙하게 권총을 꺼낸 석강호가 두 손으로 잡은 권총의 총구를 앞으로 내렸다.

철컥! 철컥! 철컥!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는 뭐, 이 정도 알아서 하는 짬밥인 거다.

삽시간에 중앙 통제실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놀라고 당황한 연구원들이 질린 눈으로 강찬을 바라보는 앞이었다.

“내가 실험을 강행하겠다고 한 뒤로 이 발전소에서 3개의 위성 신호가 잡혔다. 물론, 외부 교신을 모두 막아 놓았기 때문에 그 신호는 전달되지 않았다.”

쇳소리 묻은 강찬의 차가운 음성이 마이크를 타고 통제실을 가득 메웠다.

통역이 오히려 강찬의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전해 주었다.

김형정은 놀란 얼굴이었고, 최종일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얼굴이었으며, 석강호는 그냥 이마나 빨리 찍어 줬으면 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정보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위성 신호를 분석하면 나온다. 러시아와 프랑스에 연락한 연구원은 좌측으로 나와라.”

김형정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들의 정보원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지금 같은 순간에 이렇게 냉정하게 그들을 압박하는 것은 생각도 못했었다.

“정보요원이라면 내가 바실리와 라노크 위원장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알 거다. 그 두 사람을 위해 정보를 넘긴 것이라면 이번까지는 용서한다.”

말을 잠시 멈춘 강찬이 연구원들을 향해 피식 웃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정보요원이라면 이런 순간에 버텨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악착같이 버텨라. 특히, 정보총국 요원은 반드시 견뎌 내야 한다.”

통역의 말을 전해 들은 김형정이 의아한 눈으로 강찬을 보는 순간이었다.

“끝까지 버틴 정보원은 예우 차원에서 한 방에 이마를 뚫어 주마. 그리고 해당 정보원의 가족, 친인척, 전화번호에 이름이 있는 사람, 그리고 앞집, 뒷집, 옆집을 모두 사살해 주겠다.”

잔인한 경고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그때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울렸다.

강찬은 시선을 연구원에 둔 채로 조용하게 전화기를 들었다.

“말해.”

강찬은 잠자코 전화기의 내용을 듣기만 했다.

정말 짧은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연구원들을 노려본 강찬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다예.”

“예.”

강찬이 마이크에 대고 석강호를 부른 직후였다.

쭈뼛쭈뼛.

프랑스 연구원 한 명이 처참한 얼굴로 조용하게 움직였다.

강찬은 그를 향해 시선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다음은 러시아.”

강찬의 쇳소리가 상황실에 다시 울렸을 때, 젊은 러시아 연구원이 볼을 씰룩이며 좌측으로 움직였다.

“최종일, 저 두 사람에게서 위성 발신기 회수해서 가져와.”

한국말이다.

통역이 강찬의 말을 전하는 동안, 최종일이 그들에게 움직여서 명함 크기의 기계장치를 들고 돌아왔다.

최종일이 강찬의 좌측에 그것들을 올려놓은 다음이었다.

강찬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김형정이 기다렸다는 것처럼 품에서 리모컨 모양의 기계를 꺼냈다.

연구원들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위성 신호를 탐지하는 기계다. 모스부호나 음성신호를 변형해서 보내기 때문에 남은 사람 중 누가 가지고 있더라도 걸리게 되어 있지.”

누구라도 움직이기만 해 보라는 것처럼 강찬은 날카롭게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김형정이 연구원을 향해 한 걸음 움직인 순간이었다.

“끄윽!”

듣기 거북한 비명과 함께 목을 움켜쥐었던 연구원 한 명이,

철퍼덕!

뻣뻣하게 굳은 채 바닥에 처박혔다.

개새끼가 뒈지려면 좀 조용하게 쓰러지던가.

이 사이에 끼웠던 독을 깨물었거나, 반지에 끼고 있던 침으로 찔렀을 텐데, 강찬이 보기엔 자빠질 때가 가장 아팠을 것처럼 보였다.

“최종일, 가서 확인해.”

사람이 죽은 것에 놀란 연구원들이 양쪽으로 갈라섰고, 그 틈으로 최종일이 빠르게 움직였다.

명함 크기의 기계가 바지 주머니에서 나왔다.

“웃기는군. 이따위 기계로 그렇게 신호를 보내도록 이곳에 있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니.”

최종일이 가져다 놓은 기계를 힐끔 본 강찬은 김형정에게 시선을 주었다.

대략 5분쯤 걸렸다.

중앙 통제실에 있는 연구원들이 위성 신호기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말이다.

“더는 없습니다.”

김형정이 마지막으로 연구원에게서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꾹! 꾹! 꾹!

강찬은 커버를 열어 두었던 스위치 3개를 내리 눌렀다.

“블랙헤드의 에너지가 어떤 모양인지 본 적이 있지.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것처럼 구불거렸거든. 그래서 이 에너지는 실험을 한 바로 그 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일어난다. 다른 곳에서는 겨냥하지 않는 한 절대 지진이 생겨나지 않아.”

우우우우웅.

묵직한 기계음이 상황실에 전해진 뒤에, 곧바로 블랙헤드가 붉은 빛을 뿜어냈고, 오른쪽 모니터의 수치가 천천히 올라갔다.

강찬은 연구원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이를 꽉 깨물었다.

‘염병할!’

영국에서 느꼈었던 섬뜩한 느낌이었다.

블랙헤드가 강찬에게서 에너지를 빼내려고 달려들 때와 똑같았다. 블랙헤드가 갇혀 있어서인지 그때보다 좀 더 견디기 수월하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끄응.’

표시 내면 위험하다.

약점을 적에게 알려 주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강찬은 이를 악물고 앞만 노려보았다.

10분이다. 1차 실험이 10분이었으니 느닷없이 실행한 이 실험도 10분은 견뎌야 한다.

모니터에서 올라온 숫자는 이제 겨우 2분 45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럴 줄 몰랐다. 그러나 빨간 돌멩이는 늘 이런 식이었다.

‘개새끼! 푸석푸석해질 때까지 있는 에너지를 모조리 뽑아내 주마.’

강찬은 매서운 눈빛으로 앞쪽의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10분의 테스트가 끝났고, 다시 또 10분이 흘렀다.

스파이 두 놈은 왼쪽에, 연구원들은 죽어 나자빠진 놈들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뉘어 서 있었다.

강찬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위성 신호와 지진 모두 없었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제라르의 짧은 보고였다.

“이곳의 위성 통제를 풀어.”

전화기를 끈 강찬은 마이크를 향해 입을 가져갔다.

“보다시피 이번 지진이 우리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란 것을 증명했습니다. 여러분은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친 강찬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테스트하는 10분의 마지막 순간은 끔찍했었다. 그런데 이런 약점을 연구원들이 보는 곳에서 밝힐 수는 없었다.

강찬은 독이 잔뜩 오른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연구원들이 보기에는 정보원이 있었던 것에 분노하는 것처럼 보였다.

***

차민정은 오후 근무다.

오전 내내 동현이와 놀 수 있었다.

“까르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장난감 차를 탄 동현이가 빠르게 발을 굴러 차민정의 앞에 도착했다.

“정지하세요! 면허증 보여 주세요!”

동현이가 가슴에 댔던 손바닥을 차민정 앞에 내보였다.

앙증맞은 손을 볼 때면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인다.

“어? 술 드셨어요?”

“아니요.”

“이름이 어떻게 돼요?”

“주동현이요.”

차민정은 짐짓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동현이를 바라보았다.

“신호 꼭 지키세요.”

“예!”

발을 굴러 차를 몰고 가면서 동현이는 또 ‘까르르!’ 하고 맑은 웃음을 쏟아 냈다.

“밥 먹자!”

남편이 준비한 건 동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삼겹살이었다.

아이가 있어서 가스레인지에서 구워 접시에 올려놓았다.

셋이서 식탁에 앉았다.

상추에 고기를 얹었고, 밥을 뜬 뒤에 쌈장을 발랐다.

“엄마! 나! 나요!”

“이건 아빠 먼저 드려야지.”

“엄마!”

그러나 차민정은 남편의 입에 먼저 상추쌈을 넣어 주었다.

입이 뾰로통하게 나왔지만, 이런 건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동현이 거.”

샘이 났나 보다. 동현이는 앙증맞은 손으로 상추를 집더니 엉성하게 쌈을 싸기 시작했다.

고기도 흘리고, 밥도 흘리고, 그리고 쌈장도 흘렸다.

“엄마 거!”

차민정은 강한 여자다.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동현이가 내민 쌈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 눈시울이 울컥 붉어졌다.

“이 사람이. 왜 그래?”

차세대 발전 시설의 테스트에 성공했다.

세상의 반쯤을 얻은 기분이었고, 또 그런 일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리고 남편, 아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차민정에게 더할 수 없이 행복한 점심이었다.

“누가 보면 어디 먼 데 가는 사람 같다. 내일은 카레 해 놓을 테니까 기대해.”

“고마웡.”

동현이가 건네준 쌈을 입에 넣어서 답이 이상하게 나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