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기회 한 번은 반드시 남겨 놔 (2)
사무실 안쪽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TV에서는 사망자의 숫자가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푸르른 계절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빛나는 햇살 너머에서 사천을 덮친 시커먼 죽음이 강찬을 향해 입맛을 다시는 느낌이었다.
너무 드러났다.
증평팀, 606, 대테러 특수팀, 석강호, 제라르, 비무장팀, 또 뭐가 있는지 모르지만, 이걸 모르는 적은 없다.
예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뒤집힌 거다.
모르는 곳에 숨은 적들과 완전히 드러난 대한민국.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요?”
그때, 봉지 커피를 타 온 석강호가 테이블 맞은편에 앉으며 담배를 집어 들었다.
“지진이 일어난 게 중국이라는 게 이상한 거지.”
“후우, 누군가 꾸민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강찬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잠수함도 그렇고, 이번 건도 그렇고. 아무래도 뒤에 남은 놈이 너무 많았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엄청난 이익이 달린 일은 간혹 사람 목숨 값이 별거 아니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강찬은 담배를 끈 뒤에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유리 아래로 펼쳐진 도로에 차량들이 길게 늘어졌고, 그 양옆으로 사람들이 가득했다.
저런 곳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유도 모르고 다쳤을까 싶었다.
“만에 하나, 저 지진이 발전 시설 때문이라면, 지금 발전 시설을 다시 가동시켰을 때 지진이 일어날까?”
“저것보다 더 큰 지진이 일어나지 않겠소?”
“그렇겠지?”
석강호가 눈을 껌벅이며 강찬의 표정을 살폈다.
“해 보려는 거요?”
강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지.”
결심이 섰는데 시간 끌 것은 없는 거다.
강찬은 바로 전화기를 들어서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쯤 가고 난 다음이었다.
[김형정입니다.]
강찬은 왼손으로 담배를 하나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팀장님, 지금부터 4시간 뒤에 발전 시설 가동 테스트를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준비해 주세요.”
[예?]
김형정은 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발전 테스트라고 하셨습니까?]
“예.”
석강호가 손을 뻗어 라이터를 켜 주는 바람에 일단 짧게 대답했다.
[부원장님, 중국에서 일어난 지진 때문에 거의 모든 연구원들이 매달려 있습니다. 적어도 분석 결과가 나온 다음에 결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거기에 대통령님의 재가도 필요합니다.]
김형정은 예상대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재가는 제가 요청하겠습니다. 시간 확인하세요. 지금부터 정확하게 4시간 뒤입니다. 제가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강찬은 시계를 힐끔 보았다.
“7시 전에는 도착합니다. 도착하기 전까지 준비를 마쳐 주세요. 정확하게 4시간 뒤 19시 26분에 테스트하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김형정과의 통화를 끊은 강찬은 고개를 돌렸다.
“최종일! 5분 뒤에 고성으로 출발한다. 준비해 둬.”
“알겠습니다.”
최종일의 답과 동시에, 우희승과 이두희가 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뭐요? 그랬다가 지진이 일어나면 어떡하려고 그러쇼? 양범이 위험하담서요?”
“다예.”
“예.”
강찬이 다예라고 불렀다.
“고성에 간다. 준비해.”
“알았소.”
궁금함의 대가리를 꾹 누른 석강호가 안으로 들어갔다.
“휴우.”
강찬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또다시 창밖을 보았다.
숨은 놈들에게 연속해서 뒤통수를 맞은 꼴이었다.
“차량 준비되었습니다.”
그때 무전을 받은 최종일이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 직후에 석강호가 탁자로 걸어와 2자루의 권총을 건네주었다. 늘 하듯이 발목에 하나, 다른 하나는 허리 뒤쪽에 걸었다.
“어딜 갑니까? 같이 가지요?”
석강호를 본 모양인지 제라르가 강찬에게 다가왔다.
“앉아 봐.”
강찬은 제라르에게 몇 가지 지시를 전했다.
“다른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전화기 꼭 가지고 있어.”
“알겠습니다.”
답을 들은 강찬은 몸을 일으켜 사무실을 나섰다.
기다리던 석강호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막 탔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바로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바실리다.]
강찬은 피식 웃으며 ‘말해.’라고 답을 했다.
[양범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실험을 다시 하겠다는 이유가 따로 있겠지?]
이걸 알고 싶었다.
도대체 바실리가 어떻게 알고 전화했는지?
이런 소식이 어디까지 전해지는지도.
발전소에 도착하면 알게 될 거다.
“내가 아는 바실리라면 짐작할 것 같은데?”
강찬의 대꾸 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점점 더 무서운 괴물이 돼 가는군.]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이 수화기를 통해 넘어왔다.
[멋진 계획이군. 불행한 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일 테고, 다행인 건 이렇게라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거겠지.]
“4시간 뒤면 알게 될 거다.”
[길지 않아서 좋군. 결과를 기다리지.]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
영국 비밀정보국 SIS의 그란섬 책임자 도이슨은 어려운 퀴즈를 맞이한 얼굴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시도가 말이 되나! 무려 4만 명이 죽었다는데! 이 실험을 바로 다시 한다고?”
그는 문제가 너무 어려운 것에 분통이 터지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도이슨은 곧바로 짧은 한숨을 쏟아 낸 뒤에 거짓말처럼 표정을 바꾸었다.
“정보는 정확한가?”
“이미 사무실을 출발한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흠! 과연 쉽지 않은 인간이군. 다른 쪽의 반응은? 바실리라든가? 라노크 말이야.”
“바실리와 한 번, 짧은 통화를 한 것이 전부입니다.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시계를 힐끔 본 도이슨이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우리 쪽의 준비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자칫하다가는 엉뚱한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고, 그 외에 에너지 파동을 잡힐 우려가 있습니다.”
양팔을 책상에 올린 도이슨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댔다.
“애초에 한국에 지진을 일으켰어야 했어. 그랬다면 한 번에 끝날 수도 있었던 건데.”
혼잣말을 뱉어 낸 도이슨이 서류를 천천히 살폈다.
“일단 작은 충격이라도 줄 수 있는지를 검토해. 서둘러.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저들에게 꼬리가 잡히지 않는 일이다.”
“알겠습니다.”
요원이 빠르게 답을 하고 방을 나섰다.
“흠!”
도이슨은 책상 오른쪽에 놓인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는 곧바로 숫자 3을 잠시 눌렀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
[여보세요?]
“나요.”
[한국에서의 실험 때문에 그런 건가요?]
“그렇소. 우리가 최선을 다하기는 하겠지만, 벌써 냄새를 맡은 느낌이요. 뭐라도 그를 흔들어 놓을 충격이 있었으면 싶소. 이렇게 된 바엔 계획을 조금 앞당깁시다. 어차피 준비되었던 거 아니오?”
도이슨의 다부진 요구가 건너갔고, 빈칸처럼 짧은 침묵이 흘렀다.
[타깃은 이미 확보된 상태요. 작전을 시작할 테니 원래 계획에 차질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건 안심하시오.”
통화를 마친 도이슨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진정한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가 앞에서 달리고, 강찬과 석강호가 바로 뒤에 달렸으며, 그 뒤를 검은색 승합차가 따랐다.
올림픽 도로에 올라탄 다음이었다.
“뭐요? 정말 실험을 하는 거요?”
“우리 쪽이 너무 드러났다는 말 기억하지?”
“어허! 난 붕어가 아니오.”
석강호가 향어처럼 주둥이를 내밀고는 강찬을 힐끔 보았다.
“영국에서 실험했을 때 말이다. 그때 분명 영국에서만 지진이 났었거든. 그런데 왜 이번엔 우리나라에서 실험을 했는데 중국에서 지진이 일어났을까? 그것도 사천에서?”
“오호?”
석강호가 확실히 놀란 얼굴로 감탄사를 쏟아 냈다.
“그래서? 다음은 뭐요?”
“어떤 개새끼들이 우리의 실험 시간을 알고 거기에 맞춰서 지진을 일으켰다고 치자. 그런데 우리가 또 실험을 한다는 거다.”
“그럼 또 지진을 일으키면 되는 거 아니요?”
에이! 돌대가리 새끼!
이놈은 혹시 생각하는 능력이 저 아래 한계치에 걸려 있는 게 아닐까?
그래도 한편이다.
강찬은 올라오는 한숨을 나직한 숨에 감췄다.
“우리가 엉뚱한 버튼을 누르면?”
“그게 뭐… 오!”
“이제 알겠냐?”
“푸흐흐, 이 새끼들은 실험인 줄 알 테니까 지진을 또 일으킨다는 거 아니요?”
이제야 알겠다는 것처럼 떠들던 석강호가 홱 표정을 바꾸어서 강찬을 보았다.
이럴 줄 알았다.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별로 실망스럽지도 않다.
“어찌 되었건 지진이 또 일어나는 거 아뇨? 그랬다가는 양범이 견디기 어려울 텐데요? 중국의 피해도 생각해야지 않겠소?”
그리고 예상했던 딱 그 질문이 석강호에게서 건너왔다.
“연구원 중에 분명 정보를 주는 놈이 있겠지? 테스트 시간이라든가?”
“그렇소.”
“그렇지 않은 연구원들이 더 많겠지?”
“그건 또 그렇겠지요. 아! 답답하우! 그냥 확 말해 주쇼!”
강찬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실험을 포기한다고 말하는 거다. 재가가 안 나왔다고. 핵심 연구원들에게만. 그리고 실제로는 실험을 하는 거지.”
“예? 뭐요?”
“간단하잖냐. 실험에 성공했는데 지진이 또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 그리고 양범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
석강호가 감탄한 눈으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야! 운전할 때는 좀!”
점선을 먹어 가던 승용차가 얼른 제자리로 들어섰다.
“어허! 이건 맡겨 두쇼. 그나저나 대장은 이제 정말 정보국의 수장이 된 모양이오.”
“골 아프다.”
고개를 끄덕이며 운전하던 석강호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만약에 말이오. 만에 하나, 그러다가 진짜 실험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 거요?”
강찬은 기가 막힌 눈으로 석강호를 보았다.
“영국에서의 지진 얘기는 어디다 팔아먹었냐?”
“아!”
“이번 실험에서 지진이 일어나려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어야 한다니까.”
“누가 뭐랬소?”
석강호는 왼팔을 핸들에 걸쳐 놓은 채 여유 있는 자세로 차를 몰았다.
“개새끼들이 왜 이렇게 지랄들인 거야? 우리가 잘되는 게 그렇게 배가 아픈 건가?”
도로는 그렇게 막히지 않았다.
이대로 쭉 달려서 고속도로에 올라타 대략 3시간 30분이면 발전 시설에 도착한다.
“하여간 우리는 어째 쉽게 가는 법이 없소.”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안이다.
차창 밖의 풍경은 늘 보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신문과 방송에서 몇 조, 몇십 조, 떠들기는 더럽게 떠드는데, 사는 모습은 그냥 거기서 거기인 거다.
“빵이라도 하나 챙겨서 출발할 걸 그랬나?”
석강호 역시 변함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
한눈에도 알아볼 만큼 어마어마해 보이는 시멘트벽에 돔 형태의 지붕을 머리에 쓴 중앙 건물, 시골 바닷가에 느닷없이 나타난 프랑스 미녀처럼 멋을 부린 부속 건물, 그리고 미녀의 엉덩이를 힐끔거리는 듯한 초소들.
고성의 차세대 발전 시설 입구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 45분쯤이었고, 국가정보원 대테러팀은 이미 철수한 다음이었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흐트러진 입구 바리케이드를 통과한 강찬은 석강호, 최종일 일행과 함께 곧바로 중앙 통제실 위쪽의 상황실로 움직였다.
상황실은 중앙 통제실 전체를 한 번에 내려다보는 구조였다.
“어서 오십시오.”
김형정은 발전 시설에 수명을 갉아 먹힌 사람의 몰골이었다.
석강호, 최종일 등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그가 강찬을 소파로 안내했다.
“청장님은 청와대에 가셨습니다. 앉으시죠.”
셀 수도 없이 많은 계기판과 바쁘게 움직이는 연구원들을 석강호가 신기한 눈으로 살피는 동안, 강찬과 김형정은 자리에 앉았다.
“사망자가 엄청난 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테스트를 하실 생각입니까?”
“준비는요?”
“실험하는 데 이상 없다는 답은 들었습니다.”
상황을 전한 김형정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강찬이 몇만 명의 죽음을 담보로 이런 실험을 하겠다는 거다.
도대체 왜?
그의 눈은 그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최종일, 물 있어?”
강찬의 요구에 김형정이 아차 하는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니 물 한 컵 내놓지 못했다.
최종일이 냉장고에서 꺼낸 생수 2병을 건네주었다.
강찬은 물병의 뚜껑을 열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물병을 슬쩍 탁자에 기울였다. 누가 봐도 흘린 게 아니라 분명하게 물을 따른 거였다.
강찬은 오른손 검지로 ‘스파이. 위성 신호 감지 장치 준비하세요.’라고 적고는 휴지를 뽑아 글씨를 지웠다.
시선을 든 김형정은 방을 둘러보았다.
이곳의 방음장치라면 도청은 정말 불가능하다. 김형정의 모든 것을 걸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는 설명이 없었다.
이번엔 강찬이 답을 요구하는 눈으로 김형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찬을 의심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김형정이 단단하게 답을 한 직후였다.
“동작 버튼은 제가 직접 누르겠습니다. 연구원들에게 시간은 통보하셨죠?”
“예.”
“시간을 변경하겠습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최소 인원만 통제실에 남겨 주세요. 테스트 시간은 대통령의 재가에 따라 정해진다고 말할 생각입니다. 아시겠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부는 모른다. 그러나 대강은 짐작하겠다는 얼굴로 답을 한 김형정이 곧바로 방을 나섰다.
“나나 되니까 이해하는 거지, 김 팀장님, 지금 머리 꽤 아플 거요. 그나저나 전기세 엄청 나올 거 같지 않소?”
석강호는 아무래도 중앙 통제실의 불빛에 정신이 팔린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