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기회 한 번은 반드시 남겨 놔 (1)
2013. 5. 27. 09:30 고성 차세대 발전 시설
테스트 당일이었다.
고성의 차세대 발전 시설 중앙 통제실은 오전 9시부터 또 다른 긴장에 휩싸였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그래서 프랑스, 러시아, 한국의 연구원들이 굳은 얼굴로 테스트 시간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9시 30분쯤 되었을 때 김관식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예, 대통령님.”
[테스트 준비가 되었다면 10시에 시작했으면 싶습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좋은 결과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부터는 신의 영역이겠지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에 상관없이 이 순간을 위해 헌신해 준 청장 이하 직원들에게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김관식은 나직하게 숨을 뱉어 각오를 다진 뒤에 무전기를 들었다.
“테스트 시간은 오전 10시입니다.”
긴장에 묻혀 있던 흥분이 차세대 발전 시설 한가운데서 서서히 피어났다.
***
강찬이 있는 사무실은 물론이고, 국가정보원, 그리고 테스트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시계를 힐끔거렸다.
10시다.
테스트에 성공하면 한국은 세계의 중심에 한 걸음을 더 내디딘 것과 같다.
전쟁을 계획했을 정도로 악랄한 적의 손아귀를 뿌리쳐 가며 지켜 낸 발전 시설이 그 성능을 보여 줄 시간이었다.
강찬은 봉지 커피를 앞에 두고 테이블에 있었다.
주둥이를 벌리고 달려들었던 찜찜함은 잠수함을 폭발시켰는데도 전혀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전쟁보다 더한 위험이 뭐가 있을까?
긴장을 처먹은 눈을 번들거리는 석강호, 볼의 상처를 굳히고 날카로워진 제라르.
저 두 놈도 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본능으로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벽에 걸린 시계가 오전 9시 5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2013. 5. 27. 09:59 고성 차세대 발전 시설
연구원들이 로켓 발사 전의 상황실처럼 각자의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테스트 1분 전입니다.”
김관식은 중앙 통제실의 가장 뒤편,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전면의 모니터를 살폈다.
왼편에 에너지를 뿜어낼 블랙헤드의 모습이 있었고, 오른쪽 화면에는 각종 수치들이 ‘0’이라는 숫자를 표시하며 테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
송창욱의 염원이 담긴 일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 낸 그의 조부가 남긴 태극기를 통해서 말이다.
“테스트 30초 전입니다.”
달칵. 달칵. 달칵.
김형정이 책상 앞에 있는 작동 스위치의 커버를 열었다.
김관식은 그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핼쑥해진 얼굴이 당연하게 보일 정도로 힘겹게 일했다.
‘잘될 겁니다.’
김관식의 시선을 받은 김형정이 입술만 움직여 웃었다.
잊고 있었는데 그는 특수부대 출신의 국가정보원 요원인 거다. 그의 지금 눈빛이 그것들을 일깨워 주었다.
“테스트 10초 전입니다.”
김관식은 강찬이 떠올랐다.
지금 가장 곁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었다.
“테스트 5초 전입니다.”
김관식이 굳은 얼굴로 버튼에 손을 올렸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오늘을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테스트 2초 전.”
제발! 제발!
김관식의 검지 끝이 가늘게 떨렸다.
“테스트 가동.”
꾹! 꾹! 꾹!
김관식이 3개의 버튼을 차례로 누른 다음이었다.
우우우우우웅!
건물 전체에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왼편 화면에 있던 블랙헤드가 붉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김관식은 홱 시선을 돌렸다.
세상에!
디지털 수치들이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테스트다! 테스트!
그래서 저 수치가 50에 도달하면 성공인 거다.
왼편 화면에 올라온 붉은빛이 강해지면서 수치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올라갔다.
우우우우웅.
진동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39, 40, 41, 42, 43…….
숫자는 계속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50.
50에서 멈춘 숫자가 변함없이 화면에 올라와 있었다.
전기다! 전기가 생산되고 있는 거다!
별이 된 많은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일!
저 수치만으로도 대한민국의 1년 전력 사용량의 5배에 해당하는 전력이 생산된다.
“1분 경과했습니다.”
제발! 이대로! 지금처럼!
테스트를 기다리며 보내던 것과는 정반대로 1분이 1년처럼 기다랗게 흘렀다.
“2분 경과했습니다.”
이러다 덜컥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
사람이 이런 상황에 놓이니까 자꾸만 소심해진다.
김관식은 50이란 숫자와 흘러가는 시간을 자꾸만 확인했다.
“3분 지났습니다. 테스트 종료합니다.”
꾸욱! 꾸욱! 꾸욱!
김관식은 3개의 버튼을 작동할 때의 반대 순서로 눌렀다.
우우우우-!
블랙헤드가 아쉽다는 것처럼 붉은빛을 거둬들였다.
“발전 시설 이상 없습니다.”
“전력 공급 이상 없습니다.”
“정지 후 이상 신호 없습니다.”
마지막 보고가 끝나자,
“우와- 아아아!”
연구원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옆에 있는 동료들과 손을 마주치거나 악수를 나누었다.
김관식은 긴장을 뱉어 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김형정과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다.
***
2013. 5. 27. 10:04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바쁘게 걸어온 비서관이 문재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님, 차세대 발전 시설 김관식 청장입니다.”
문재현은 빠르게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대통령님, 1차 테스트는 성공입니다.]
왜 그럴까?
어째서 더할 수 없이 기쁘고 반가운 소식을 들었는데 콧날이 시큰해지더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까?
비행기에서 레일을 타고 내려오던 대원들의 시신, 오열하던 가족들, 마지막까지 성공을 염원하던 송창욱, 황기현.
“고생했습니다.”
[본격 가동까지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문재현은 맞은편 벽에 양손을 맞잡고 서 있는 전대극을 보았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전대극도 테스트 성공을 통화와 문재현의 표정을 보고 짐작했을 거다.
중간에 거울을 놓은 것처럼 두 사람의 표정이 비슷했다.
***
2013. 5. 27. 10:04 국가정보원 정보총국 강찬 사무실
1차 가동 테스트 성공 소식은 강찬에게도 바로 전해졌다.
[고생하셨습니다.]
성공 소식을 전한 김형정이 마지막에 붙인 말이었다. 지난 일들이 떠올랐는지 그의 음성 끝이 잘게 떨렸다.
“건강 챙기시며 하세요.”
[예.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김형정과의 통화를 끝낸 강찬을 석강호가 빤히 바라보았다.
“성공했단다!”
“그래! 이 씨발!”
저 새끼는 왜 성공했다는데 욕을 하지?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에게 달려간 석강호가 연신 손뼉을 마주쳤다.
강찬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작 잠수함을 준비한 것으로 적들의 계획이 끝난 거라고?
강찬은 피식 웃으며 창밖을 보았다.
막아야 하는 쪽이 강찬이라면 절대 그렇게 끝내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
2013. 5. 27. 02:03 그란섬 영국 비밀 기지
영국 비밀정보국 SIS 그란섬(Grantham) 비밀 기지.
최고 책임자 도이슨은 긴장을 털어 내려는 것처럼 자꾸만 엄지와 검지를 비벼 댔다.
앞쪽 벽 한쪽에 걸린 한국 시간이 오전 10시 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고성의 차세대 발전 시설 테스트가 있고 3분이 지난 시각이었다.
2분 남았다.
도이슨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진정한 작전은 이제부터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진정한 첫걸음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시간이 10시 4분으로 바뀌었다.
[가동 1분 전.]
비밀 기지 상황실의 모습이 도이슨 앞의 모니터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갓 오브 블랙필드! 이제 너도 끝이다!’
[가동 30초 전.]
디지털 숫자로 표시된 시간이 29, 28, 27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도이슨의 심장 역시 그만큼 거칠게 뛰었다.
[가동 10초 전.]
신이여! 영국에 영광을!
10, 9, 8, 7…….
도이슨은 책상에 올린 양손을 꽉 쥔 채로 모니터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가동!]
위이이이이이잉.
나직한 진동이 비밀 기지 전체를 흔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지진 발생. 지진 발생.]
기다리던 보고가 올라왔다.
도이슨의 평생에서 비밀정보국 요원에 선발되었다는 통지 이후로 가장 짜릿한 멘트가 귀를 파고들었다.
“예에-!”
도이슨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모니터를 향해 냅다 함성을 내질렀다.
***
2013. 5. 27. 10:25 국가정보원 정보총국
웅웅웅. 웅웅웅.
대강 전화할 곳은 다 끝났다. 그런데도 종료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또다시 전화기가 울어 댔다.
“여보세요?”
[바실리다.]
이놈에게는 분명 테스트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 줬었다.
[TV를 보는 게 빠르다. CNN을 확인해.]
바실리는 당황하거나 놀라는 법이 없다.
대신 이렇게 착 가라앉은 음성을 날릴 때면 더럽게 급한 내용이라는 뜻이었다.
“CNN을 틀어 봐.”
강찬의 표정을 본 이두희가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고, 채널을 옮겼다.
지진에 관한 보도였다.
“지금 보고 있다.”
[공교롭게 테스트 5분 뒤에 중국의 사천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영국의 실험에서 지진이 발생했던 터라 강찬은 당장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번 일로 당장 양범이 위험에 빠졌다. 2차 테스트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다면 돌이키기 어렵지. 사천에서의 사망자가 상당하니까 이건 정보위원회에도 치명적인 오점이 된다.]
강찬은 듣고만 있었다.
[프랑스와 우리 쪽 연구진이 내용을 분석 중이다. 2차 테스트는 결과가 나온 뒤에 진행했으면 한다.]
“책임자에게 그렇게 전하지.”
전화가 바로 끊겼다.
처참하고 급박한 상황이 TV 화면을 통해 계속 이어졌다.
“뭐요?”
“시험 가동 5분 뒤에 발생했단다.”
석강호가 TV에 주었던 시선을 얼른 가져왔다.
“우리 때문에 저게 일어났다는 거요?”
“양범이 궁지에 몰리는 모양이다. 우선 연구원들이 내용을 분석한 뒤에 다시 의논하기로 했다.”
석강호가 억울하다는 얼굴로 TV를 노려보았다.
강찬은 방금 내려놓았던 전화기를 들어서 양범의 번호를 찾았다.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강찬 씨, 양범입니다.]
위원장이란 호칭을 쓰지 말라는 부탁이 있은 뒤에 바실리며 양범, 루드비히는 이렇게 지낸다.
“사천 소식은 유감입니다. 도움드릴 일이 없을까요?”
[당장은 상황을 살피고 있습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쁘신 것 같으니까 부탁 하나만 하고 끊겠습니다.”
한국말이다. 그래서 TV에 시선을 주고 있는 석강호와 제라르,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가 빤히 강찬의 통화 내용을 듣고 있었다.
“어려울 땐 가장 먼저 연락 부탁합니다. 언젠가 내가 그랬었던 것처럼요.”
[알겠습니다.]
상황이 그래서인지, 굳은 목소리였지만 양범이 지닌 감정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강찬은 창가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켰다.
염병! 계속 찜찜하더니 결국 이 지랄이다.
정말이지 빌어먹을 이 빨간 돌멩이는 언제고 한 번을 쉽게 가는 법이 없는 거다.
성질 같으면 확 깨부숴서 고생한 사람들끼리 빨간 알 박힌 놈으로다가 반지 하나씩 나눠 가졌으면 싶었다.
***
2013. 5. 27. 09:27 베이징 MSS 부장 집무실
강찬과의 통화를 마친 직후였다.
양범은 책상에 앉아 들어선 이들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MSS)의 부부장 모려휘였다.
그가 예고도 없이 완전무장한 대원들과 함께 들이닥친 거였다.
“부장 동지, 사천에서 일어난 지진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임무를 정지하고, 안전 가옥에서 지내게 하라는 주석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양범은 픽 하고 웃으며 책상 앞쪽에 있는 담배를 집어 들었다.
찰칵.
양범이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어내는 동안 방 안의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모려휘.”
“예! 부장 동지!”
책상에 팔을 올린 양범은 마치 모려휘의 보고를 받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손가락에서 똑바로 피어올랐던 담배 연기가 지금의 상황처럼 흔들린 뒤에 천장으로 모습을 감췄다.
“내 후임이 자네겠지?”
“부장 대행은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양범이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후우, 두 가지만 명심해라. 이번 지진은 분명 적국에서 획책한 계획일 거다. 그러니 우리끼리 총질해서 억울한 피를 흘리는 일은 없도록 해라.”
양범은 천천히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 느긋하게 빨아들였다.
“두 번째. 한국을 얕보는 건 괜찮다. 그러나 강찬이라는 인물을 거스르지 마라. 만약 그를 적으로 돌리게 되면 가장 먼저 나를 찾아라.”
굵직굵직한 양범과 달리 모려휘는 뾰족뾰족하게 생겼다.
“한국은 한낱 봄날 오후의 기분 좋은 꿈을 꾼 대가를 비싸게 치르게 될 겁니다.”
양범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일본의 경제에 눌리고, 미국의 기침에 놀라고, 러시아의 눈초리에 질리며,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의 입김을 무시하지 못하는 한국.”
말을 마친 양범이 눈을 치켜뜨는 것처럼 모려휘를 노려보았다.
“한국을 상대하지 말고 강찬이라는 인물을 상대해. 그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내가 그에게 무릎을 꿇을 기회 한 번은 반드시 남겨 놔. 이게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충고다.”
양범은 책상 위의 재떨이에 담배를 꾹꾹 눌러 껐다.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짧게 돌아본 뒤에 곧바로 문을 향해 걸었다.
“흑랑대가 움직입니다.”
문을 향해 선 양범이 고개만 뒤로 돌렸다. 얼마나 눈빛이 살벌하던지 모려휘는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나더러 그들까지 막아 내란 것은 아니겠지?”
“부장 동지를 구출하겠다고 모인 모양입니다.”
“부장 대행을 하겠다면 적어도 그들 정도는 설득할 배짱과 실력을 갖춰. 그게 아니라면 과분한 자리 욕심 내지 말고 물러나던가.”
양범이 시선을 앞으로 돌리자 무장 대원들이 조용하게 길을 비켰다.
특종부대 백랑대에서 은퇴한 대원들의 모임이 흑랑대였다.
선배와 문파, 가문을 중시하는 중국에서 흑랑의 입김을 무시하는 백랑대 대원은 없다.
비록 명령에 따라 함께 오긴 했지만, 지금 양범의 명령 한마디면 모려휘는 벌집처럼 너덜너덜한 시체가 돼서 바닥을 뒹굴고 남을 상황이었다.
양범은 헬멧과 복면 사이로 드러난 대원들의 눈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특종부대의 명예 안에서 인민의 피를 소중하게 여겨라. 그리고 너희 역시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밍바이러(明白了, 알겠습니다)!”
단단한 답을 들은 양범이 눈끝에 미소를 올린 뒤에 곧장 문을 나섰다.
쩔걱. 쩔걱.
체포가 아니라 호위하는 것처럼 대원들이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모려휘의 지시가 없었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