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꼭꼭 숨은 거 같지? (2)
TV 화면에 전에 찍었던 것이 분명한 원산 기지의 모습이 느긋하게 펼쳐졌다.
[북한 당국은 폭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지만, 폭발과 동시에 원산 잠수함 기지 앞 바다에서 수십 미터에 달하는 물기둥이 치솟았다는 제보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뉴스는 다시 원산 기지의 모습을 처음부터 보여 주었다.
폭발은 2마일 바깥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마에 엄지 크기의 케미컬라이트를 켠 대원들이 검은 바다 위에 떠 있었다.
그으으응!
고속단정(RIB)을 탄 606대원들이 밧줄로 된 고리를 팔에 건 채 대원들에게 방향을 틀었다.
그아아앙! 홱! 철벅!
고리에 매달린 대원을 건져 낸 RIB이 다음 대원을 향해 빠르게 방향을 틀었다.
“허억! 허억!”
충분히 감압하지 못하고 올라온 대원들이다.
거기에 압축산소를 이용해 긴 시간 잠수했고, 다시 1킬로미터가 넘는 바다 위를 헤엄쳐 왔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그런 대원들이 분을 이기지 못한 눈으로 원산 기지를 향해 자꾸만 시선을 주었다.
그아아앙! 철벅! 철벅!
파도를 가르며 RIB이 달렸다.
“끝났어! 가!”
마지막으로 올라온 이동술의 외침이 의미하는 것을 모르는 대원은 없었다.
7명이 잠입해서 적의 잠수함 6대를 폭파하고 5명이 돌아왔다.
청와대 지하 회의실 한쪽 벽에도 보도 뉴스가 떠 있었다.
[한반도에 고조된 긴장은 원산 잠수함 기지 폭발을 기점으로 최고조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 나오는 보도는 모두 외국의 보도 전문 채널이었다.
기자의 멘트가 동시통역의 음성으로 전화 통화 때처럼 바닥에 깔려 있었다.
[서해와 동해에 한국, 러시아, 중국의 군함들이 모두 나와 있으며, 한국과 중국은 이미 전투기를 발진시킨 상태입니다.]
활주로와 항공모함에서 이륙하는 전투기의 모습이 화면에 올라왔다.
[북한은 포격을 중지한 채 침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침묵이 끝난 뒤에 그들이 어떤 행동을 가할지에 따라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의 멘트가 끝날 때 화면의 음성이 뚝 잘렸다.
[대통령님, 출장조의 무전입니다. 황태범 여단장을 찾고 있습니다.]
“연결하세요.”
문재현이 지시를 전하자 황태범 앞의 마이크에 붉은빛이 들어왔다.
[출장조 이동술입니다!]
“보고해.”
[AS 마쳤습니다.]
“인원은?”
[진동수, 박노준이 현장에 남았습니다.]
말이 떨어진 직후다.
입술에 힘을 꽉 주었는데도 황태범이 울음을 참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 수 있었다. 독하고 냉정하게만 보이던 그가 평소에 대원들을 어떻게 여겼는지를 한눈에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고생했다. 돌아와서 보자.”
그의 앞에 켜져 있던 붉은빛이 아쉬움을 붙든 것처럼 사그라들었다.
“대통령님.”
시선을 든 황태범을 문재현 역시 감정을 억지로 누른 얼굴로 보았다.
“무전을 직접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의 주권과 영토를 지키는 데 해군특수전전단을 앞에 세워 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그의 작고 찢어진 눈이 진심을 전하고 있었다.
“앞으로 더 강해진 특수전전단을 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굳은 다짐이 회의실을 울리고, 묵직한 침묵이 그 뒤를 따랐다. 작전에 성공한 기쁨만큼이나 돌아오지 못한 대원 2명의 무게가 커다랗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잠수함을 폭파하고 5명의 대원이 귀대했다는 무전을 받은 다음이었다.
유일하게 돌아오지 않았던 남일규는 뜻밖에도 북한군 소좌와 함께 돌아왔다. 어깨에 꽂았던 대검을 손에 든 그는 평소와 다르게 지옥에서 막 돌아온 사람처럼 살벌한 느낌이었다.
그를 힐끔대던 소좌는 강철규와 증평 특수팀을 보자 아예 질려 버린 사람처럼 사정없이 눈빛이 떨렸다.
떨리는 눈빛을 한 소좌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갓 오브 블랙필드가 뉘기요?”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강찬의 시선을 받은 남일규가 속삭이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저쪽의 초소를 돌 때 간혹 바깥에 모자를 뒤집어 걸어 놓은 곳이 있습니다. 주로 야간 정찰에서 정보를 주고받을 때 사용하던 방법인데, 선배님이 활동하시면서 생겨난 일입니다.”
남일규의 시선을 따라 강철규를 보았던 북한군 소좌가 얼른 목을 움츠렸다.
“용건은?”
강철규의 질문에도 소좌는 눈을 이리저리 굴릴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갓 오브 블랙필드에게 직통으로 전해야 하지비.”
그러면서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말해.”
그가 질문처럼 시선을 돌렸고, 강찬은 답처럼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원산의 잠수함 6척은 모두 폭파되었다. 북조선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 이후로, 자본주의의 괴뢰들이 북남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면, 우리 북은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뛰어난 영도력 아래 지금과 같이 현명하게 대처할 것이다.”
이 새끼가 지금 북한 뉴스를 전하나?
소좌는 외웠던 게 분명한 말들을 특유의 과장된 억양을 담아 쏟아 냈다.
“이상은 위대한 북조선의 인민무력부장이 남조선의 전사 갓 오브 블랙필드에게 직통으로 전하라는 지시입네다!”
강찬이 시선을 준 곳에서 강철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는 의미였다.
“오늘 북조선은 위대한 수령 동지의 영도력 아래 남조선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음에도, 철책선 앞을 노렸다!”
야밤에 몰래 침투한 비무장지대에서 이런 지랄 같은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기가 막힌 모양인지 석강호는 아예 입술 한쪽을 들어 가며 심정을 표시했다.
“괴뢰들의 잠수함이 폭파된 이상, 남조선의 전사들은 더 이상 자본의 괴뢰들을 핑계로 위대한 북조선을 모욕하지 말라!”
분명 겁을 먹었는데도 어쩌면 저따위 소리가 술술 나오는 건지, 녹음기를 삼킨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알았다. 철수하겠다.”
강찬은 분명하게 답을 주었다.
“감사합네다!”
답을 한 소좌가 남일규의 손에 들린 대검을 보고 빠르게 눈치를 살폈다.
“혼자 갈 수 있어?”
“물론입네다! 위대한 북조선의 전사…….”
“죽여 버리기 전에 얼른 가.”
말을 꿀꺽 삼킨 소좌가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2013. 5. 27. 03:25 강원도 인제군 장승리 제21수색대대
강찬과 강철규를 비롯한 증평의 특수팀이 들어서자, 606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용은 모두 알고 있었다.
쩔걱. 쩔걱.
강찬은 대원들이 자리한 앞쪽으로 움직였다.
“고생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위장 크림을 지우지 못해서 대원들의 번들거리는 눈빛이 유독 강조되어 다가왔다.
“내일 테스트 시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테스트가 종료될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며, 고성을 지원한다. 힘들겠지만, 다들 기운 내자.”
말을 마친 강찬은 대원들을 쭉 돌아본 뒤에 회의실을 나섰다.
결국, 2명의 대원이 돌아오지 못했다.
작전 성공의 기쁨보다 그 가족들의 울음이 더 크게 다가오는 새벽이었다.
강찬은 그길로 석강호, 제라르, 최종일 일행과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마음 같으면 부대에 함께 남아서 테스트 결과를 확인한 뒤에 움직이고 싶었다.
그런데 잠수함 폭파 작전부터 테스트까지, 러시아와 중국, 프랑스와 해야 하는 통화는 물론이고, 국가정보원, 차세대 발전 시설 상황실과의 통화를 생각하면 사무실로 움직이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
새벽에 달리는 건 무엇보다 길이 막히지 않아서 좋다.
라이트를 받은 발광 표시들이 훅 하고 달려들었다가 빠르게 승합차의 뒤로 사라졌다.
“이거 계획한 놈들은 어쩔 거요?”
강찬의 시선을 당겨 간 석강호가 주둥이를 비틀었다.
“잠수함 밀거래는 생각도 못했는데. 아무튼 이거, 미국과 이스라엘, 일본 놈들이 꾸민 짓인 거는 확실한 거 아뇨?”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쟎냐. 잠수함은 폭파했는데 위성 증거야 그걸 가지고 있던 일본정보국 요원을 붙잡은 게 아니니까 그 새끼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뗄 거고.”
“그럼 우리도 모가지를 콱 돌려 주고 모르는 일이라고 합시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뇨? 막말로 은실이랑 이집트 요원이 정보를 얻어 내지 못했다면 지금쯤 고성이 날아간 거잖소.”
강찬은 대꾸하지 않았다.
일단 테스트까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씩씩대던 석강호가 강찬의 반응을 보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누구보다 표정이나 눈빛에 담긴 감정을 알아채는 사이다.
강찬의 눈빛이 번들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본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2013. 5. 27. 04:25 서울 송파구 잠실
차민정은 세상에서 이제 2살 된 아들이 제일 예쁘다.
이도 나왔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면 쪼르르 달려와서 허벅지를 안고 매달린다.
“엄마!”
집에 들어설 때, 아들은 종일 그녀를 기다렸다는 얼굴로 차민정을 바라봐 주었다.
잡티 하나 없는 맑은 눈이 그녀를 간절하게 바라보고, 그런 아들을 안을 때, 차민정은 세상을 온통 안은 듯한 행복을 느꼈다.
결혼해서 남편이 해 준 가장 큰 선물.
남편은 이 아이를 만들어 준 것으로 차민정에게 할 수 있는 건 다 해 준 꼴이었다.
유혜숙의 밀착 경호를 위한 새벽조 출근길이다.
“엄마! 엄마!”
현관에서 매달리는 아들을 차민정은 위로 들어 안았다.
이런 아들이 커서 총에 맞아 돌아온다면 심정이 어떨까?
차민정은 유혜숙을 떠올리며 해맑은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동현이, 엄마가 하는 일은?”
“나라.”
‘나라를 지키는 일’이란 말을 끝까지 못하는 아들 좀 봐라. 세상에서 이보다 예쁜 아이가 또 있겠나.
“동현이가 해 줄 일은?”
시무룩해진 아들이 그녀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다녀오세요.”
아직은 긴 문장을 말할 줄 몰랐었다. 그래서 뽀뽀를 해 줄 줄 알았다.
이런 말은 도대체 언제 배웠을까?
차민정은 작고 따스한 아들의 등을 쓰다듬었다.
“이제 가.”
남편이 웃으며 차민정에게 다가왔다.
“동현아! 이제 엄마에게 기운을 줘야지?”
쪽! 쪽!
차민정의 볼과 입술에 뽀뽀해 준 아들이 서러운 얼굴로 아빠 품에 안겼다.
“얼른 가! 조심하고!”
아들을 위해 무급 휴가를 선택한 남편이다.
차민정의 임무를 인정해 주는 남자. 그녀는 손을 흔들어 준 뒤에 얼른 현관을 나섰다.
“후.”
검은 정장, 흰 블라우스.
복장을 살핀 그녀는 높다랗고 으리으리한 아파트 뒤편에 자리 잡은 오래된 빌라를 나섰다.
낡은 계단을 돌아서 내려가면 입구 오른쪽에 우편함이 있고, 그 안쪽으로 자전거들이 있었다.
테스트 당일 새벽이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어젯밤부터 지금까지의 살얼음판 같은 시간 동안 차민정은 긴장을 풀지 못했다.
원산 잠수함 기지에서 폭발이 있었다는 것을 듣는 순간, 그녀는 새삼 강찬에게 놀랐고, 잠수함 기지 폭발 작전으로 전쟁의 위험이 사라졌다고 느꼈다.
그렇더라도 절대 긴장을 풀 수는 없는 일이다.
차세대 발전 시설의 가동을 앞두고 적들은 전쟁까지 계획했었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모든 요원이 독이 잔뜩 올라 덤벼들어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 강하고, 끈질기다.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차민정은 아직 어둠을 털어 내지 못한 주차장을 향해 다부진 자세로 걸음을 옮겼다.
2013. 5. 27. 06:25 강남 국가정보원 정보총국 사무실
강찬이 사용하는 사무실을 국가정보원과 요원들은 ‘국가정보원 정보총국’이라고 불렀다.
한국에도 프랑스의 정보총국과 같은 팀을 운영하라는 허가가 있었고, 그 책임을 부원장인 강찬에게 맡기게 되면서부터 그렇게 부른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온 일행은 샤워를 마친 뒤에 대략 한 시간 정도 잠을 잤다.
그까짓 거 그냥 안 자고 말겠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뒤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를 때는 그저 한 시간이라도 잘 수 있다는 데 감사하며 얼른 자는 게 현명한 일인 거다.
“어흑!”
석강호의 꽉 잠긴 목소리를 들으며 강찬은 몸을 일으켰다.
테스트 당일이었다.
악몽처럼 다가왔던 전쟁의 위협이 밝아 오는 날에 밀려난 어둠처럼 사라졌다.
그런데도 강찬은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떡볶이 한 접시를 먹어도 어묵 국물이 따라오는 세상이다.
숨어서 전쟁까지 계획한 놈들이 이 정도로 물러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손을 들고 철로를 건너는 것과 같다.
그런다고 기차는 서지 않는데 말이다.
회의실 소파에서 일어난 강찬이 밖으로 나갔을 때, 제라르가 물병을 들고 다가왔다.
“안 잤냐?”
“잤습니다.”
물을 마시는 둘의 눈이 비슷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어흑! 목 깔깔하다.”
그리고 뒤늦게 나온 석강호 역시 사방으로 뻗친 머리칼 아래 눈이 살벌하게 빛나고 있었다.
감각으로 아는 거였다.
테스트 전후에 아직 남은 위기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꼭꼭 숨은 거 같지?
강찬은 창밖을 보며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