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조국의 부름을 감사하게 (2)
2013. 5. 26. 21:05 강원도 화진포 근해
606 훈련의 30퍼센트는 UDT/SEAL과의 합동훈련이다.
수송함에 탄 606대원들이 비장한 자세로 수송선을 지켜 주는 가운데, 해군특수전전단 수중 폭파팀 대원 7명은 다시 한 번 장비를 점검했다.
수송함 한쪽에 흔히 TV에서 볼 수 있는 특수부대용 널따란 고무보트 IBS와 모터 보트를 상어 이름 하드처럼 전체적으로 뾰족하게 개조한 립이 매달렸다.
그 앞쪽에서 UDT 대원들이 차례로 가슴 넓이의 판을 앞에 매달았다.
압축산소를 사용하는 트래거다.
대원들이 트래거의 장착을 마치자 수중 폭파팀 현장 지휘관 진동수는 DPD(수중 추진기)의 장치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너울에 걸릴 때마다 배의 앞머리가 커다랗게 들렸다가 떨어졌다.
DPD는 봅슬레이같이 생겼다. 대신 두 사람이 겹치는 모양새로 손잡이를 잡고 매달려 있는 게 앉아서 타는 봅슬레이와 달랐다.
장비를 확인한 진동수가 몸을 세워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았다.
대한민국을 노리는 잠수함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대한민국의 수중 폭파팀이 북한의 원산 잠수함 기지로 가는 건 더 놀랍다.
이 작전을 위해 증평의 특수팀이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교전을 벌이고, 606은 IBS와 립을 타고 폭파 2마일 바깥에서 대기한다.
바다에 살다 보면 얼굴색이 늘 검다. 밤이면 위장 크림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진동수는 6명의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확실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빠르게 끝낸다. 그 속도가 증평의 특수팀, 그리고 대원들의 희생을 줄인다.
배의 앞부분이 또다시 높다랗게 들렸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고개를 돌린 곳에서 복면을 한 606대원이 눈빛을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해한다. 전에 진동수도 그랬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구출 작전, 국제빌딩의 테러 장면을 보면서 대신하고 싶었었다.
함께 훈련했던 대원들의 희생을 보면서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주지 못하는 것이 그토록 죄스럽고 안타까울 수 없었다.
지금 수중 폭파팀 7명을 바라보는 606의 심정이 그때와 같을 거다.
‘바다는 우리가 책임진다. 뒤를 부탁한다.’
진동수가 고개를 끄덕였고,
‘절대 물러나는 일 없습니다.’
헬멧과 복면을 한 대원이 답처럼 눈을 번득였다.
2013. 5. 26. 21:29 강원도 고성 차세대 발전 시설
김형정을 찾은 대테러팀은 빠르게 건물의 곳곳에 자리 잡았다.
건물 위쪽에 저격수, 그리고 초소와는 별도로 요소마다 대원들이 몸을 숨겼다.
지금 시멘트 바닥에 엎드린 대원들은 내일 언제일지 모를 발전 시설의 테스트까지 몸을 일으키지 못한다.
치잇.
[조별 보고.]
치잇.
[저격조 위치 확보.]
치잇.
[A초소 위치 확보.]
대원들의 보고가 이어졌고, 모든 위치의 대원 보고가 있었다.
치잇.
[매 시간 10분, 29분, 47분에 지금 순서대로 보고한다. 답이 없는 조 발생 시, 근처의 조가 확인하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 선 발사 후 보고한다.]
신일국의 무전을 김관식과 김형정도 들었다.
이 시간 이후로 허가 없이 외부로 나가는 사람은 바로 저격수의 목표물이 된다.
고성의 차세대 발전 시설이 날카로운 긴장에 휩싸였다.
2013. 5. 26. 21:42 강원도 인제군 제21수색대 철책선
멀리 그 유명한 금강산이 보이는 곳이었다.
누가 뭐래도 비무장지대에서는 강철규가 왕이었다.
침투를 위한 마지막 철책을 앞두었을 때,
“지휘를 맡아 줘.”
강찬이 나직하게 요구했고, 강철규는 먼저 시선을 돌렸다.
“부원장, 우리가 하려는 것이 진짜 전투인지, 아니면 소란을 만들어서 적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려 줄 수 있나?”
“굳이 희생자를 만들 필요는 없어.”
의아했지만, 강철규가 질문했을 때는 다 이유가 있을 거다. 그것도 비무장지대에 들어서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혹시 통할지 모르겠는데, 전에 우리끼리 하던 방법이 있다.”
남일규를 힐끔 본 강철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죽고 죽이긴 했지만, 의외로 서로 살자고 협상할 때도 있었지. 스페츠나츠와 백랑이 출몰할 때면 특히 그랬다. 심지어 그놈들이 들어왔다는 정보를 주고받을 때도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관광 코스 안내인 설명을 듣는 것처럼 넉넉한 여유도 없었다.
“지휘를 맡겼으니 알아서 해.”
강찬의 대꾸에 강철규가 몸을 돌렸다.
끼이익.
철책선의 중간이 잘리는 것처럼 철문이 열렸고, 대원들이 들어서자 5미터쯤 안쪽에 있는 문이 다시 열렸다.
어둠이 완전히 깔린 시간이었다.
2013. 5. 26. 07:50 뉴욕 CIA 분실
스웨이든은 4개나 되는 앞쪽 벽의 모니터를 지켜보며 깍지 낀 손을 자꾸만 매만졌다.
각종 보도 채널이 화면마다 올라와 있었다.
한국은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오늘 새벽 1시에 잠수함이 출발하면 한국과 북한은 전쟁의 화마에 휩싸인다.
세계가 우려의 시선으로 돌아볼 때, 미국은 핵융합이라는 확실한 상품을 들고 안정적 공급이라는 장점을 설명하면 1차전은 끝난다.
고성의 그 두꺼운 시멘트 건물은 폐기물을 넣기에 그만이었다. 어쩌면 신은 방심하지 말라는 경고와 이런 안배를 통해 보다 확실한 미래를 선물해 주기 위해 지금의 시련을 준 건지도 모른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정보위원회의 권력이 한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함부로 위성 영상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 아팠다.
“흠.”
남은 시간은 3시간. 잠수함이 출발했다는 보고가 들어오면 스웨이든은 바로 백악관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상황을 지켜본다.
그래야 대통령에게 바로 보고가 가능했다.
2013. 5. 26. 21:42 일본 정보국 도쿄 사무실
가와구치는 전에 없이 새벽 일찍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이 넘어가면 한국은 남과 북, 양쪽으로 나뉘어 싸우다가 똑같이 불바다가 된다.
이번 계획을 지켜볼 대일본제국의 전쟁 영웅들에게 반드시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간절한 바람도 전했다.
고성의 타격이 이루어지는 순간, 한국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휴전선 너머로 미군 병력과 전투기가 넘어가게 되어 있다.
가와구치는 몸이 떨릴 정도로 올라오는 흥분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일본은 핵융합의 원대한 계획으로 새롭게 뭉친 강대국 연합에 합류했다. 이후 다시는 한국이 일본을 우습게 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후속 조치도 준비해 놓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려서 가와구치는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셨다.
2013. 5. 26. 21:55 청와대
아프리카, 유럽, 그리고 중남미의 나라들에서 매일같이 방문 신청이 밀려들었다.
그래서 문재현은 오늘도 2명의 대통령을 맞아 무려 다섯 끼를 먹었다.
뒤뜰로 나온 문재현은 곡선으로 이루어진 작은 의자에 앉아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에 경호원이 있었고, 서너 걸음 뒤에 경호실장 전대극이 있었다.
황태범에게 강하게 말했다.
우리를 노리는 잠수함을 폭파하라고, 그래서 대한민국을 지키라고 지시했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 작전에서 희생될지 모를 대원들이 걱정되어서 오늘 먹은 다섯 끼의 음식이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오늘 대원들 말입니다. 그들의 가족들은 오늘 작전을 모르고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전대극의 나직한 답이 들렸다.
문재현은 대원들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던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대신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우리 대원들이 목숨을 내걸고 나섰는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고작 다섯 끼를 먹는 일이라는 게 미안할 뿐입니다.”
힐끔 돌아본 곳에서 전대극이 잔잔하게 웃고 있었다.
대원들을 누구보다 챙기는 전대극이다. 그들의 심정과 처지를 문재현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의아한 문재현의 시선에 답을 하는 것처럼 전대극이 입을 열었다.
“국가정보원 원장이 부원장을 비슷한 이유로 말렸었습니다.”
“부원장이 직접 나섰습니까? 이번 작전에요?”
“예.”
“하아.”
문재현은 그의 심정을 한숨으로 정확하게 표현해 냈다.
“그때 부원장이 한 답을 듣고 원장은 더 말리지 못했답니다.”
“그래! 부원장이 도대체 뭐라고 답을 했답니까?”
“대통령님과 원장님이 대원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증명하겠다고 했답니다. 부원장을 직접 보냈다면 대원들 모두 인정할 거라고.”
문재현은 강찬의 말을 직접 듣는 사람처럼 전대극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모두가 명령만 내리는 게 아니라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나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그것이 목숨을 걸고 나선 대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하는 말에 원장도 물러섰다고 들었습니다.”
문재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뒤뜰을 향해 섰다.
“내일부터는 하루에 아홉 끼를 먹어야 할까 봅니다. 이걸 시키면 부원장은 분명 접시로 상대방의 머리를 때릴 것 같으니까 그나마 잘하는 내가 해야겠지요?”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전대극의 표정쯤 짐작이 갔다.
2013. 5. 26. 22:26 비무장지역 무산 근교 증평 특수팀
강찬을 아프리카에 던져 놓은 것 같았다.
강철규가 앞섰고, 그 뒤를 차동균과 대원들이 따랐으며, 뒤쪽을 강찬이 맡았다.
남일규는 무슨 귀신처럼 슥 사라졌다가 불쑥 나타나서 강철규에게 손짓으로 무언가를 알려 주고는 또다시 슥 사라졌다.
그렇다고 긴장을 풀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번들거리는 강철규의 눈빛이 그랬다.
휴식 없이 꼬박 걷는 길이다.
그런데 남일규가 다시 모습을 나타내자 강철규가 왼손을 들었다.
대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주변을 돌아볼 때 강철규는 손짓으로 강찬을 찾았다.
강찬은 곧바로 검지와 중지로 눈을 가리켰고, 석강호와 제라르에게 경계 지역을 알려 준 뒤에 움직였다.
어둠, 제멋대로 자라난 풀, 흙바닥.
그 속을 걷는데 강찬은 강철규와 남일규처럼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았다.
강찬이 앞쪽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강철규가 100미터쯤 떨어진 무산의 봉우리 한 개를 지정해서 검지로 가리킨 다음, 다시 검지와 중지를 붙여서 재차 가리켰다.
‘저곳을 갈긴다.’
‘그러면?’
강철규가 오른손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펼쳐 뒤편을 가리켰다.
뒤쪽으로 포격이 있을 거란 의미였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게다가 강철규와 남일규는 이곳에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강철규의 눈이 확신처럼 빛나고 있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리카라면 강철규는 강찬의 뜻을 따라 주었을 거다.
그리고 강철규는 대원들을 함부로 위험에 빠트릴 사람이 아닌 거다.
강찬은 오른손을 머리 위쪽에 들어 두 바퀴를 돌린 다음, 강철규가 가리켰던 봉우리를 향해 손끝을 쭉 뻗었다. 이어서 검지와 중지를 붙여 다시 한 번 그 봉우리를 가리켰다.
공격 지점을 향해 사격을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대원들은 몸을 낮춘 채로 움직여, 나무나 바위 뒤에 몸을 숨겨 혹시 있을지 모를 대응사격에 대비했다.
석강호와 최종일, 이두희가 왼편, 곽철호와 대원들이 오른편, 그리고 제라르와 우희승이 뒤쪽을 경계한다.
철컥!
강찬이 봉우리를 겨냥하자 앞쪽을 노리던 대원들이 모두 소총을 들었다.
시작이다.
어쩌면 이 무모한 작전이 실제로 전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당장 턱밑을 노린 잠수함에 무방비로 얻어맞느니 이렇게라도 적들의 의도를 부수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다.
강찬은 냉정한 눈빛으로 봉우리의 중간쯤을 노려보았다. 시멘트 초소의 안쪽을 충분히 노릴 만했지만, 일부러 약간 아래쪽을 겨눴다.
검지에 걸린 방아쇠를 뒤로 당기자,
타- 아앙!
어둠을 찢어발기는 것처럼 총성이 터져 나왔고,
타다당! 타다당! 타다당! 타다당! 타다당!
그 뒤를 지키는 것처럼 연달아 총성이 울렸다.
2013. 5. 26. 22:41 북한 인민무력부 원산 기지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박상식 인민무력부장은 직접 전화기를 들었다.
[남조선의 공격입네다! 무산 황호 초소를 노린 사격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네다!]
“어디라 그랬네? 다시 말해 보라!”
[무산 황호 초소입네다!]
다급한 보고였다.
퍼뜩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박상식은 뜻밖에도 입가에 미소를 그려 냈다.
“보라우! 이참에 본때를 보여 주갔어! 그깟 사격 신경 쓰지 말고, 남조선 아새끼들의 GP 철책선 앞으로 포를 쏘라우!”
[알갔습네다!]
“남조선에 위대한 우리 지도자의 위엄을 제대로 보이라! 대신 철책선을 쏘라우! 공연히 정전협정을 들고 나오면 골치 아파야!”
[지시하겠습네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박상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움직였다.
“갓 오브 블랙필드! 이 아새끼래! 도대체 못하는 게 뭐이네? 야! 남조선에 정말 위대한 전사래 낫구만!”
그는 어쩐지 이번 전투가 반가운 사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