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5화 (424/520)

제3장. 꼭꼭 숨어라 (1)

저수지 외곽에 켜진 등불이 물 위에 달처럼 그려진 시간이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강찬의 전화기가 울었다.

이 전화기는 시도 때도 울려서 사람을 꽁꽁 묶는다.

번호를 확인한 강찬은 통화 버튼을 누른 다음, 귀에 가져갔다.

“여보세요?”

[3차장입니다. 아프리카 잠비아에 파견된 특수팀 대원 한 명이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됐습니다.]

어쩐지 숨어 있던 찜찜함이 주둥이를 커다랗게 벌리고 달려들 준비를 마친 느낌이었다.

[허은실, 21세, 하사로 이번에 첫 파병입니다.]

설마 짝다리 허은실은 아니겠지?

강찬은 석강호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상태는요?”

[오른쪽 정강이와 어깨에 총상을 입은 상태에서 절벽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허은실 대원이 잠비아의 런시아에서 위성 신호 발신기를 구해 오다가 총격을 받은 거라고 진술했습니다.]

위성 신호 발신기?

강찬의 눈빛이 변한 직후였다.

[허은실 대원이 부원장님 이름을 직접 거론했습니다. 일본의 정보원이 가지고 있던 위성 신호 발신기라는 말을 꼭 전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허은실 대원을 알고 계실 거라고 했습니다.]

짝다리 허은실이 대원으로 아프리카에 갔단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위성 신호기의 분석은요?

[이쪽에서는 어렵습니다. 현재 무장한 대원 3명이 한국으로 이동 중입니다.]

“고생했습니다. 허은실 대원의 치료에 신경 써 주세요.”

[내일 중으로 근교의 병원으로 이송할 예정입니다.]

“아! 허은실 대원에게 말을 전해 주실 수 있나요?”

[말씀하시면 바로 전하겠습니다.]

“멋진 일을 해냈다고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찬은 피식 웃으며 호수를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했었다.

그리고 그 이상했던 뭔가가 머리끄덩이를 잡혀 호수 위로 떠오르는 거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이면 대가리가 홱 돌아간다.

그리고 말이다.

우리도 한 번쯤 잘살아 보자.

너희만 그렇게 배터지지 말고. 이 개새끼들아!

1차 테스트를 전후로 일이 터질 게 분명했다.

적들이 좀 더 방심하라고 무장 대원들의 고생을 빤히 알면서 장성에서 시간 보내고 있는 거다.

대가리가 보일 때까지. 참는다. 참아야 한다.

강찬은 빠르게 저수지의 길을 따라 엄지환 노모의 집을 향해 움직였다.

“올라가야겠는데?”

걸음을 돌린 강찬은 빠르게 석강호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강찬의 뒤에서 이두희가 무전을 보내고 있었다.

***

2013. 5. 25. 21:40 강원도 고성 차세대 발전 시설

김관식과 김형정은 언젠가 석강호가 가장 존경한다던 이순신 장군처럼 살았다. 한 번 집을 나서면 언제 들어갈지 모르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늘 꼿꼿하고 깨끗하던 김관식의 얼굴이 초췌하게 변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보고 챙기고 지시만 내린다면 사실 이렇게까지 힘겹진 않을 거다. 그러나 김관식과 김형정은 보고서에 올라온 내용을 가능한 한 눈으로 확인하고 다녔다.

발전 시설 바깥에 있는 도로를 따라 한 바퀴를 돌고 나면 그것만 정확하게 17킬로미터였다.

경계, 보안, 연구원들의 보고까지.

두 사람은 화장실에서조차 보고서를 들고 있을 정도였다.

“김 팀장님, 이 보고서에 올라온 설비를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점퍼 차림의 김관식이 안전모와 무전기를 들고 상황실을 나섰다.

“후-!”

김형정은 혹시 코피가 나나 싶어서 검지를 구부려 코 아래를 문질렀다. 멍한 데다 축축한 게 영락없이 코피가 나올 때의 느낌이었다.

차세대 발전 시설을 위해 흘린 피가 적지 않았다.

1차 테스트라고 하지만 이것이 성공하면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세계의 중심이 된다.

유라시아 철도는 이미 북한과 연결되어서 아직 시작인데도 엄청난 물동량을 소화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생산된 전기가 북한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 유럽을 책임지는 시대.

한국이 성공하면 러시아와 프랑스, 중국이 다시 발전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김형정은 문득 강찬과 석강호, 그리고 증평의 대원들이 보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어울려 가평에 들러 보고 싶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가동이 시작되면 김관식과 김형정도 조금은 여유가 생길 거다.

서류를 들춰 본 김형정은 모니터에 시선을 주었다.

***

2013. 5. 25. 22:35 홍콩 주릉반도 침사추이

그라펠트는 야경을 바라보며 조그마한 맥주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홍콩까지 왔다.

정보위원회의 시선에 드러나기 위해 움직였고, 실제로 모든 행적을 밝히다시피 돌아다녔다.

건물들에 매달린 전화, 시계, 자동차 회사의 로고들이 화려한 불빛으로 그를 유혹하려 애쓰는 밤이었다.

일본이 저토록 초보적인 실수를 할 줄은 몰랐다.

그라펠트는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 뒤에 깊게 가라앉은 눈을 뒤로 돌렸다.

화려함의 반대편은 어둠에 잠긴 바다다.

지금까지 준비한 것들로 과연 강찬을 제거할 수 있을까?

그가 기대한 대로 수렁에 빠져 허덕거리다가 과거의 인물들처럼 골목 한구석에서 차갑게 죽어 자빠져 줄까?

피식.

강찬을 흉내 낸 것처럼 웃은 그라펠트가 전화기를 들어 버튼을 눌렀다.

“휴식을 끝내겠다. 돌아갈 준비를 하도록.”

[알겠습니다.]

명령도, 지시도 복잡할 것이 없었다.

이스라엘의 영광을 위해서, 그 어떤 적과 마주해서도 승리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그라펠트는 몸을 일으켰다.

***

미국의 스웨이든은 상황판을 향해 앉은 상태에서 시선만 살짝 돌렸다.

“이스라엘이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잠수함은?”

“도착했습니다.”

“아프리카 상황은 확인했나?”

“프랑스는 눈도 돌리지 못합니다. 외인부대 전체가 비상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움직임은?”

“시리아에 UIS 국가 선포 전쟁에 제대로 휘말렸습니다.”

스웨이든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건 러시아와 독일이군. 러시아야 바실리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바람에 주춤할 거고?”

“독일은 난민들로 위장한 반군들이 계속해서 폭동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우리와 일본, 영국의 경제 협조가 어려워진 이후에는 외부로 눈을 돌리기 어렵습니다.”

스웨이든은 습관처럼 알고 있던 상황을 하나씩 점검해 나갔다.

“우습군. 갓 오브 블랙필드가 그토록 믿던 양범의 아래에서 일이 시작되다니.”

혼잣말처럼 뱉어 낸 스웨이든이 결정한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작전을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전하는 스웨이든이나 답을 한 요원 모두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미국은 얻어맞아 쓰러지더라도 바로 일어서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나라다.

비록 한순간 머리를 숙였을지라도, 그에 대한 반격이 자연스럽게 준비되는 곳이 바로 미국의 시스템인 거다.

어떤 경우에도 꿈이 꺾이지 않는 나라, 패권과 실권을 놓친 적이 없는 나라, 미국이다.

200여 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전 세계의 경찰국이며, 패권국이었으며, 지금껏 미국을 무시하고 살아남은 집단이나 나라는 없었다.

세계의 돈이 한국으로 몰리고 있었다.

미국의 것이어야 할 것들이 말이다.

막말로 한국이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1달러에 600원까지 환율이 바뀌고, 미국의 채권을 가장 많이 가진 나라가 한국이 된다.

“어리석은 욕심은 항상 화를 부르지. 결국, 불행한 한국의 역사에 가장 큰 오점을 남기는 인물로 기록되겠군.”

스웨이든이 혼잣말을 뱉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김광민이 달러가 가득 든 쇼핑백을 내려놓고 테이블에 앉은 다음이었다.

치잇.

[A블럭 확보.]

치잇.

[B블럭 확보. 트럭이 시야를 가린다.]

치잇.

[C블럭 저격 대기.]

보고가 연속으로 들어왔고,

치잇.

[대기조! 트럭 치워!]

날카로운 분실장의 지시가 들렸다.

“샤이(Shai).”

김광민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가온 직원에게 단맛의 홍차를 주문했다. 지금쯤 대기조는 능글맞은 얼굴로 트럭을 하루 사용하는 데 얼마냐며 돈을 건네고 있을 거였다.

치잇.

[트럭 빼라고!]

아직 흥정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달각.

김광민의 앞에 이집트 특유의 홍차 샤이가 놓였다.

그 순간이었다.

치잇.

[B블럭! 승용차 접근! B블럭! 승용차 접근!]

다급한 무전이 들어왔다.

흔히 지나는 차일 수도 있고, 다르미코프의 조직원일 수도 있었다.

치잇.

[C블럭! 승합차! 2대! 2대 접근!]

치잇.

[광민아! 나와! 나와!]

치잇.

[A블럭! 카페 옆 건물에서 정보원 접근 중.]

치잇.

[야! 나오라고!]

김광민이 홍차 잔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치잇.

[B블럭! 승용차가 코너를 돌았다.]

“워치(Watch, 시계)? 굿(Good)!”

네모난 판에 싸구려 시계를 잔뜩 올린 이집트 남자가 김광민에게 바싹 붙었다.

“하다 비캄(Hada Bikam, 얼마요)?”

쇼핑백을 집어 든 김광민이 시계에 시선을 두었다.

치잇.

[C블럭! 승합차! 코너 접근! 거리 20미터! 무기다! AK소총! 무장 병력이다!]

치잇.

[광민아!]

김광민은 이를 악물고 쇼핑백을 들어 놈의 손에 슬쩍 걸쳐 주었다.

“잠수함 거래! 목표 차세대 발전 시설!”

짧은 정보와 함께 시계를 건네준 남자가 바로 몸을 돌렸다.

부으응!

그때 골목 저쪽에서 승용차가 무섭게 달려들었다.

치잇.

[승용차 무기 확인해!]

귀가 아플 정도로 커다란 분실장의 지시가 터져 나왔다.

무기도 없이 지나가는 일반 승용차를 갈겼다가는 이집트 국민 전체가 들고일어날 일이었다.

정보원이 건물로 뛰어든 직후에 승용차의 조수석 창으로 소총이 덜컥 나왔다.

치잇.

[사격해! 사격!]

분실장의 명령이 떨어질 때,

부으응!

승용차가 좀 더 속도를 높였고,

휘이익!

김광민은 바로 옆 건물 입구로 뛰었다. 조금 전에 정보원이 나왔던 그 건물이었다.

터억! 쾅쾅!

문이 잠겨 있었다.

조수석과 그 뒤쪽 창으로 소총을 든 남자들이 상체를 드러냈다.

훈련받은 사람들처럼 상인들이 문을 닫고 몸을 감췄다.

부슈- 웅! 퍼억!

조수석의 남자 머리가 터져 나가는 순간에, 김광민은 곧바로 승용차가 달려오는 방향대로 뛰었다.

부아아앙!

이를 악물고 달리는 그의 바로 뒤에 승용차가 있었다.

부슈- 웅! 카앙!

치잇!

[광민아! 10미터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쏴! 쏘라고!]

부우웅! 부슈- 웅! 카앙! 끼이익!

살고 싶다는 생각? 못했다.

정보! 차세대 발전 시설! 그리고 대한민국만 생각났다.

“헉헉!”

김광민은 악착같이 소매를 들었다.

치잇.

[잠수함! 잠수함 거래다! 목표 차세대 발전 시설! 차세대 발전 시설을 노린다!]

투두둑! 퍼버벅! 부슈- 웅! 퍼억!

부으으응!

김광민이 엎어진 옆을 승용차가 빠르게 지나갔다. 죽은 두 놈을 창에 매단 채였다.

치잇.

[광민아! 야! 조금만 참아! A블럭! 뭐해!]

흙냄새, 웅성거리는 소리,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분실장의 비명 같은 지시들.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이면서 잠이 몰려왔다.

엄지환에게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보여 준 것에 부끄럽지 않을 것도 같았다.

‘선배, 대한민국… 잘되겠죠?’

억지로 버티던 김광민의 고개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

2013. 5. 26. 10:35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관

1차 테스트 하루 전날이었다.

고성의 발전 시설을 팽팽한 긴장이 묶었고, 공수부대와 특수팀 전체가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우르르.

국가정보원에서 나선 강찬을 요원 20여 명이 둘러쌌다.

외곽에서 대기하던 프랑스 정보총국 요원들과 러시아의 요원들까지 합하면 정장 요원만 30명이 넘고, 앞과 뒤로 승합차에 몸을 감춘 무장 대원까지 합하면 50명이 넘는다.

“사무실로 간다.”

강찬의 말에 최종일이 소매를 들어 무전을 보냈고, 정장 요원들이 강찬이 탈 차를 빙 둘러싸고 지켰다.

부우웅.

본관 건물 앞의 화단을 돌아 승용차가 빠져나가는 순간에, 강찬이 탄 승용차의 앞과 뒤, 옆을 승용차와 승합차가 아예 둘러싸 버렸다.

뒷좌석에 앉은 강찬은 창밖을 노려보며 눈빛을 빛냈다.

이 개새끼들이?

감히,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요원을 길거리에서 살해해?

각오는 된 거지?

강찬은 오랜만에 이를 악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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