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나도 한 번쯤 제대로 된 일 하고 (2)
닭다리를 하나씩 먹었고, 뽀얀 국물에 밥도 말아 먹었다.
장독에서 오래 묵었던 열무김치와 그보다 더 오래된 배추김치, 오이, 풋고추와 된장이 반찬의 전부였는데 단 한 가지도 물리는 법이 없었다.
평상 주변에 모깃불을 펴고, 엄지환의 노모와 석강호, 최종일, 우희승이 빙 둘러앉아서 고스톱을 쳤다.
“에고! 나 안 할라요!”
피박에 광박을 옴팡 뒤집어쓴 엄지환의 노모가 버럭 성을 내며 앞에 둔 동전을 움켜쥐었다.
“왜 이래요? 얼른 주세요!”
“성님이 이랄 수가 있소?”
“어허! 일단 줄 건 주고 하시라니까.”
깔따구들이 모깃불 바깥에서 하늘을 뒤덮은 것처럼 날고 있었다.
석강호는 미꾸라지 괴롭히는 메기처럼 엄지환의 노모에게 달려들었다. 버둥대는 미꾸라지의 어깨를 부둥켜안은 메기가 악착스레 그 곱은 손에 들린 천4백 원을 뺏었다.
“뭐시요! 이런 법은 없소!”
“푸흐흐.”
지켜보던 강찬과 최종일 일행이 실없는 웃음을 터트리는 앞에서 천4백 원을 뺏겼다고 억울해하는 노모의 눈에는 생기가 걸려 있었다.
“성님 좀 나무라 주쇼!”
“제가요?”
이제는 강찬에게 좀 더 편하게 대하는 노모의 모습이 고맙기도 했다.
“산책이나 하고 올게요.”
강찬이 슬쩍 일어나자 최종일과 우희승의 눈빛이 단박에 바뀌었다.
“앉아 있어. 두희랑 갈게. 이 앞에 저수지까지 걸어갔다 올 테니까.”
노모는 눈치채지 못한 눈빛들이 오갔다.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는 최종일과 우희승을 두고, 강찬은 이두희와 함께 노모의 집을 나섰다.
논, 그 옆으로 도랑, 다시 논.
논과 논 사이로 난 시멘트 도로를 걸어 15분쯤 걸어 올라가면 더럽게 큰 저수지가 있었다.
선선한 바람에 묻어 달려드는 오월의 냄새를 뚫고, 강찬은 이두희와 함께 씩씩하게 걸어 저수지에 도착했다.
좋았다. 후련하기도 하고.
강찬은 난간에 붙어 장판지처럼 고요한 수면을 바라보았다.
이럴 땐 역시 담배 하나 깨물어 줘야 하는 거다.
“여기.”
이두희에게 담배를 건네준 강찬이 라이터를 켰다.
찰칵.
“후우.”
이두희의 귀에 걸린 무전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 어딘가에 완전무장한 대원들이 날을 바짝 세우고 대기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요원들도 포함되었으니, 강찬이 이렇게 한 번 움직이는 데 최소 30명의 무장 인원들이 수고해야 한다.
파닥! 첨벙!
수면 위로 튀어 오른 저 물고기는 하마터면 저격수의 총에 맞을 뻔했다는 걸 알고 있을까?
테스트가 끝나면 이 빌어먹을 위원장의 자리를 내던지고 조금은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막말로 돈가스 먹으며 다예, 제라르와 킬킬거리며 사는 걸 원했지, 전화로 이거저거 지시하며 인상 쓰는 건 적성에 전혀 안 맞는 일인 거다.
‘뭐하냐? 이렇게 방심하고 있잖냐? 테스트할 때까지 이렇게 지내 줄 테니 얼른 대가리를 내밀어.’
강찬은 피식 웃으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골통들을 모아 놓은 교실에서 몇 달씩 싸움 한 건 없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다 던지고 싶다.
엄청난 기업들이 달려들어 대한민국 곳곳에 상상하지 못했던 건물들이 들어서고, 대학 등록금과 의료비를 국가가 부담하는 순간부터 이민과 국적 포기자들이 물밀듯 달려들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할 수 있는 걸 다한 게 아닐까?
그런데 말이다.
이런 대한민국을 꿈꾸며 목숨을 던졌던 황기현과 송창욱, 그리고 저 아래에서 석강호를 보며 웃는 노모의 아들들이 흘린 피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강찬은 눈빛을 빛내며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마무리를 분명하게 해서 다시는 대가리를 들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다음, 기분 좋게 가평에서 닭 잡아먹으며 살 거다.
기지를 되찾겠다고 달려드는 반군처럼 강대국이란 놈들은 반드시 대가리를 디밀 거다. 지금은 언제 수면 위로 튀어 오를지 모를 물고기들처럼 가라앉아 있지만 말이다.
“후우-!”
어쩐지 이 정도의 여유까지 빼앗길지 모른다는 찜찜함이 깔리는 어둠처럼 강찬을 조여 오고 있었다.
***
버석! 버서석!
“허은실!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는 거야!”
오른쪽 다리를 절룩이며 달리는 허은실이 주문처럼 뱉어 낸 말이었다.
욱신거리던 정강이가 한순간에 끊어질 것처럼 아프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허은실은 ‘잘하고 있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웠다.
부스슥! 부슥!
왼발에 의지해 달리는 길이다.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데,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원하지 않는데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는 거였다.
“나는……!”
절룩! 절룩!
“대한민국 특수팀이다!”
절룩! 부스슥! 부슥!
나뭇가지가 허은실이 밉다는 것처럼 얼굴을 사정없이 할퀴고 지나갔다.
“하나! 나는 대한민국을 지킨다!”
울음 섞인 허은실의 다짐이 잠비아의 런시아와 은돌라 사이의 산길에 흘러내렸다.
“하나!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바보처럼 울음이 터져서 허은실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잘못했어요! 나 바보처럼 살았던 거 맞아요!”
입을 비틀며 울면서도 허은실은 절뚝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만 전하게 해 줘요! 한 번만요! 나도 한 번만 제대로!”
부슈- 웅! 파악!
허은실의 머리 바로 옆 나무가 터져 나갔다.
“허억! 허억!”
무서웠다. 다리의 통증과 숨이 턱턱 막혀서 폐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도 이겨 내기 어려웠다.
부슈- 웅! 퍽!
“끄으-!”
허은실의 오른쪽 어깨 바깥이 제대로 뜯겨 나갔다.
“흐으! 흐으으!”
절룩! 절룩!
뿌옇게 보이는 시선 때문에 나뭇가지를 피하지 못했고, 볼과 이마, 그리고 턱에 가시에 긁힌 상처가 기다랗게 피어났다.
왼쪽 팔로 부여잡은 오른쪽 어깨에서 겁이 더럭 날 정도로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휘처- 엉!
“아악!”
허은실의 몸이 앞으로 푹 꺼졌다. 내뻗은 왼발 밑이 비었다고 느낀 직후였다.
촤아악! 철벅! 철퍼덕! 터억! 철퍼덕!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상태에서 거대한 주먹에 온몸을 얻어맞는 듯한 끔찍한 통증이 계속 몰려왔다.
퍼어억!
커다란 나무에 부딪친 허은실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피를 찾은 것처럼 바쁘게 발을 놀린 지네가 허은실의 손가락을 타 오르는 순간이었다.
꼼짝도 않던 허은실의 손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끄으응.”
차라리 정신을 잃었으면 싶었다.
“끄으.”
허은실은 왼손과 왼발을 이용해 바닥을 악착같이 기었다.
지이익! 지이이익!
징그럽게 생긴 벌레들이 입과 볼을 스치며 지나가고, 풀과 흙이 볼과 턱을 거칠게 긁어 댔다.
허은실은 몽롱한 상태에서 강찬을 떠올렸다.
부스스! 부스스스!
누군가 쫓아 내려오는지 위쪽에서 흙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난 뭐하고 살아야 하는 거지?’
언젠가 카페에서 강찬에게 던졌던 질문이었다.
‘모르겠어! 몰라! 그래서 도와 달라고 했잖아! 먼저 골라 주지 않으니까 뭘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어떤 걸 입으면 보통 애들처럼 보이는 거야!’
트론스퀘어에서 옷을 사 달라고 조를 때 던졌던 말도 떠올랐다.
‘지는 게 죽기보다 싫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잘해 보려고 할 때마다 아무도 안 도와줬… 거든.’
옷을 사고 난 뒤에 했던 말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지이익! 지이익!
허은실은 악착같이 기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야. 기운 내, 허은실.”
강력 접착제로 붙여 놓았던 몸을 강제로 떼어 내는 느낌이었다. 온몸에서 달려드는 통증은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지이이익!
위에서 미끄러지는 소리도 들렸다.
터억!
허은실은 반복적으로 뻗었던 왼손의 감각에 놀라 앞을 보았다.
쿵. 쿵. 쿵. 쿵. 쿵.
심장이 미친 것처럼 뛰었다.
30미터는 돼 보였다.
샤워기 20개쯤 모아 놓은 가냘픈 물줄기가 폭포 흉내를 내며 떨어지는 바로 앞이었다.
부스스스!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섭다. 두렵다.
아래를 보던 허은실은 이를 악물었다.
폭포 아래 물구덩이가 너무 좁았다. 자칫 물구덩이 주변의 바위에 떨어지면 상상도 하기 싫은 꼴로 죽는 거였다.
“엄마!”
허은실은 뜬금없이 엄마를 찾으며 절벽을 있는 힘껏 당겼다.
부스스! 부스!
상체가 허공에 붕 떴다.
“후! 후! 할 수 있어! 할 수 있는 거야!”
허은실은 왼손을 힘껏 당기며 몸을 비척거렸다. 그리고,
“꺄아아-!”
휘이이익! 첨버- 엉!
뿌연 물속으로 깊게 잠겨 들었다.
***
2013. 5. 25. 20:35 일본 자위대 정보국 도쿄 사무실
일본 정보국 특수조 책임자 가와구치는 날카롭게 든 눈으로 앞에 있는 요원을 노려보았다.
“대일본 제국의 영광을 위해 일한다는 특수요원이 임무 중에 위성 발신기를 도둑맞았다는 보고를 할 수 있다니?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책상 앞에 선 요원의 침묵이 대답이었다.
“칙쇼(畜生, 제길)!”
가와구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왜! 하필이면 한국이냐! 그것도 그곳에는 오지도 않는 한국 특수팀에! 회수도 못하고! 시체도 못 찾고!”
가와구치는 ‘하아!’ 하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가!”
그는 손으로 요원을 내쫓은 다음 멍하니 창밖에 펼쳐진 도쿄의 빌딩들을 보았다.
한국에 이런 꼴을 당할 줄은 몰랐다.
강찬의 눈치를 살피며 벌벌 떨다가 쫓기듯 고개를 떨구고 나오는 게 지금 일본 정보국의 모습인 거였다.
이를 악물고 있던 가와구치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눈을 번들거리며 전화기를 들었다.
5개의 번호를 누른 다음이었다.
신호가 울렸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불행한 일이 있었소.”
어떻게 만든 기회를 이렇게 놓치겠나.
한국이 블랙헤드 에너지를 전기로 바꾼다면, 일본은 전혀 다른 방식을 통해 미국, 영국, 이스라엘과 세계의 정상에 오를 기회를 잡은 거였다.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에 일본 정보국 요원이 아프리카에서 활동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가와구치는 그 무시무시한 증평의 특수팀을 상대해야 한다.
가와구치는 아프리카의 잠비아에서 있었던 불행한 사태를 설명했다.
[믿기 어렵군요.]
“면목이 없소.”
어쩐지 상대방이 뱉은 침이 전화기를 통해 볼에 튄 느낌이었다.
[지금은 우리가 전력을 다해 시선을 흐리고 있어서 그나마 효과가 있었지만, 위원장은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될 겁니다.]
“도와주시오.”
[당장 위원장의 타깃이 되면 증평의 특수팀을 감당해야 합니다. 전면전이 아니라면 그들을 상대할 팀은 전 세계를 통틀어 몇 곳 되지 않소. 불행하게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위원장의 지시를 받고 있지요.]
가와구치는 이를 꽉 깨물었다.
자존심을 모두 버려서라도 이 일을 수습하는 것이 급했다.
“우리는 위원장의 분노를 감당할 힘이 없소. 그러니 계획을 조금만 앞당기면 어떻겠소? 어차피 우리 쪽에 문제가 생긴다면 자금과 핵융합 건에 대해 위원장이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요.”
[음.]
고민 짙은 신음이 넘어왔다.
[테스트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2선의 인물에 대한 공격을 시도해 보겠소.]
“고맙습니다.”
전화는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