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3화 (422/520)

제2장. 나도 한 번쯤 제대로 된 일 하고 (1)

2013. 5. 25. 22:45 북한 평안남도 문천시 잠수함 기지

문천 잠수함 기지는 삼엄한 경계에 휩싸여 있었다.

물론 평소에도 이곳의 방어는 절대 허술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공강병들이 1미터 간격으로 몸을 감춘 비상경계 태세 ‘1호 명령’까지 내려졌다.

허가 없이 접근하는 이가 있다면, 일단 사살해 놓고 뒤에 신원을 확인하는 경계 태세였다.

인민무력부장 박상식은 뒷짐을 진 채 어둠에 잠긴 바다를 노려보았다.

남한의 눈부신 발전을 샘내는 인간들이야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따위 욕심 많은 괴뢰들의 앞잡이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돈이 워낙 컸다.

잠수함 6척을 보관할 장소를 제공하는 대가로 북한은 무려 20년의 예산을 얻는다. 그것도 금융 제재를 전혀 받지 않는 차명 통장으로 말이다.

“더러운 괴뢰들!”

박상식은 바보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차명 계좌가 아니라 차명 은행을 만든다고 해도 미국이 눈감지 않는 한, 이런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것쯤 짐작하는 인물이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위대한 지도자의 점심 메뉴도 알아낸다는 미 괴뢰들의 눈을 피해 잠수함을 감춘다는 건 또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을 거쳐 인민무력부장이 된 박상식이다. 그는 분명 세계정세를 꿰뚫어 볼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남한은 불바다가 될 거다.

전에는 남한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강대국들을 협박했었는데, 지금 강대국들은 아예 남한에 전쟁을 일으킬 계산을 하고 있는 거였다.

통일은 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고, 강대국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전쟁의 참상에 허덕이는 남한이 원조를 바라고 고개 조아리는 것일 게다.

“흠!”

박상식은 자료로 보았던 강찬을 떠올렸다.

‘뭐하고 있네?’

그는 강찬이 장광택을 사살했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복기했었고,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미제들을 까부수라!’

믿을 건 그와 증평의 특수팀밖에 없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 남한이 와장창 무너지면 이곳의 균형에 금이 간다. 그리고 그것은 돈을 먹고 기지를 빌려 준 북조선에도 반드시 불똥을 튀길 거다.

배고파서 돈을 받고 기지를 빌려 줬다.

당장 거부해 봐야 결국 강대국들은 욕심을 차릴 다른 방법을 찾아 북조선을 압박할 거였다.

자본의 괴뢰들은 이 공격을 분명 북한에 덮어씌울 것이 분명했다.

‘갓 오브 블랙필드라 하지 않았네? 잠수함이 6척이야. 모두 들어오기 전에 까부수지 않으면 남조선이 정말 위태로워야!’

어둠 아래 깔린 바다는 박상식의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정하게 일렁였다.

***

런시아에서 은돌라까지 가는 길은 황무지를 가로지른 외길이다.

독수리처럼 높다랗게 떠올라서 볼 때면 그림 같은 장면이지만, 막상 고물 지프를 타고 달리면 도로의 굴곡이 온몸에 전해지는 불편한 길이다. 냄새는 또 어떻고.

끼긱! 덜컹! 덜커덩!

허은실은 지프의 조수석에 앉아 흔들리는 몸을 기울여 사이드미러를 살폈다.

흙먼지가 높다랗게 피어올랐는데, 따라오는 차는 없었다.

‘너무 예민했나?’

뭐, 기름 넣는 데 20불, 수고비 5불로 편안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아까울 건 아니었다.

그르릉! 덜컹!

고르마가 검은 손을 움직여 고물 지프의 기어를 능숙하게 바꿨다. 20분만 달리면 부대가 나온다. 막말로 은돌라에만 들어서도 상황 끝인 거다.

한국의 특수부대는 아프리카 전역에 주둔하고 있었고, 한국의 특수부대를 상대로 테러를 상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후!”

허은실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참 돈 많이 쓴다!

결국, 카페 주인에게 속아서 1달러를 날린 거다.

에라이, 모질아!

허은실이 야트막한 산을 끼고 난 길을 보며 픽 하고 웃은 순간이었다.

부슈- 웅!

섬뜩한 소리가 들렸고,

퍼억!

고르마의 머리가 터졌다.

끼기긱!

허은실의 얼굴과 옷으로 튄 피가 번지는 동안, 머리가 터진 고르마가 운전석 문짝을 향해 기울어졌다.

와락!

허은실은 지프의 핸들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홱! 끼이익! 덜컹! 덜커덩!

꽉 잡은 핸들을 왼쪽의 숲을 향해 틀었다.

반쯤 날아간 고르마의 머리가 훅 달려들었고,

부슈웅-! 카앙!

그 순간 지프의 조수석 문짝에서 불꽃이 커다랗게 튀었다.

‘설마!’

허은실은 고르마의 시체를 밀치고, 상체를 숙여 액셀러레이터를 손으로 꽉 눌렀다.

그아아앙! 부슈- 웅! 카강!

조수석에서 또 불꽃이 튀었다.

아까의 사격 솜씨를 지닌 저격수가 고작 허은실의 몸뚱이를 놓칠 일은 없어 보였다.

콰다당! 퍼억!

지프가 거칠게 튀며 핸들 아랫부분에 허은실의 머리가 세게 부딪쳤다.

물건을 찾으려는 거다! 짐작은 하지만, 혹시 다른 곳에 두었을까 봐 허은실을 산 채로 잡으려는 게 분명했다.

‘정보국?’

일본은 정보요원을 파견하지 못한다.

발견 즉시 사살도 가능한 상황인 건 이곳에 주둔하는 특수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콰작! 콰다당! 부아아아앙!

앞쪽을 세게 부딪친 지프가 거세게 튀었고, 허은실이 짚은 액셀러레이터를 놓으라며 엔진이 악을 써 댔다.

허은실은 고르마의 허벅지 사이를 기다시피 움직여 운전석 문을 열었다.

부슈- 웅! 퍼억!

고르마의 등이 팍 튀었다.

‘너 혹시 우리가 여군이니까, 여자만 상대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붉은 베레모를 쓴 교관의 눈과 고함이 떠올랐다.

털썩!

운전석 아래로 몸을 던진 허은실은 지프에 몸을 숨기고 기회를 노렸다.

숲으로 들어가면 산다.

반대로 도망갈 것을 알아채면 이제부터는 제대로 조준해서 갈겨 댈 거다.

“허억! 허억!”

별거 한 것도 없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가슴은 무섭게 쿵쾅거렸고, 손과 발이 계속 떨렸다.

침을 삼킨 허은실은 앞으로 엎어진 고르마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모자를 벗어 고르마의 손에 얹었다.

한 번이다.

저격용 소총이 노리쇠를 당기는 그 짧은 순간, 딱 한 번.

스윽!

허은실이 고르마의 손을 슬쩍 들어 올리자,

부슈- 웅! 퍼어억!

모자와 그 안에 든 고르마의 손이 커다랗게 터져 나갔다.

와락!

허은실은 산을 향해 미친 듯이 뛰었다.

부스슥! 부슥! 부슥!

“헉헉! 헉헉!”

부서지는 산비탈을 손과 발로 악착같이 올랐을 때였다.

부슈- 웅! 퍼억!

“아악!”

오른쪽 정강이를 생으로 뜯어내는 것 같은 통증이 허은실을 덮쳤다.

부슥! 부스슥! 부슥! 부슥!

왜 그럴까?

왜 이런 순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오른쪽 다리에 총을 맞고도 당당하던 적을 상대하던 지휘관이 떠오를까?

국제빌딩 테러를 지휘해서 인질 모두를 구해 낸 지휘관은 분명 강찬이었다. 마지막에 TV에서 보았던 그의 눈을 아직도 똑똑하게 기억한다.

“이익!”

허은실은 상처 입은 곰처럼 악착같이 기었다.

나! 바보처럼 살았잖아!

센 놈들에게 붙어서 벌레처럼 살았던 거잖아!

나도 한 번쯤은 제대로 된 일 하고 죽어도 되는 거잖아!

부슈- 웅! 퍼억!

허은실이 붙잡았던 나무가 헛소리하지 말라는 것처럼 거칠게 터져 나갔다.

***

2013. 5. 25. 20:15 대한민국 청와대

고건우는 대통령의 집무실에 들어서기에 앞서 나직한 숨을 먼저 토해 냈다. 잠시 옷매무새를 살핀 그는 각오한 얼굴로 집무실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서 오세요.”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문재현이 돋보기를 벗어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책 괜찮습니까?”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미였다.

집무실 뒷문으로 조금만 나가면 바로 뜰이 나온다.

거기에서부터 작은 탁자와 의자들이 봄기운을 만끽하는 옆으로 30분가량 돌 수 있는 산책로가 있었다.

“1차 테스트를 앞두고 정보국 요원들로 추정되는 인원의 밀입국이 무섭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문재현은 앞쪽으로 시선을 떨군 채 걸음만 옮겼다.

“서해안의 안중과 부산 쪽에서 수시로 밀입국이 이뤄지고 있고, 가짜 신분증으로 입국하고 있어서, 체포해도 추방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늘 있지요. 그래, 부원장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장성에 있습니다. 하루 정도 그곳에서 머물 것으로 보입니다.”

“그곳에 간 것을 보면 부원장도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군요. 하긴, 지금 그가 가장 힘들겠지요.”

“그보다는 행적을 노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건우의 대꾸를 들은 문재현의 시선이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가동 테스트 전에 분명 모종의 방해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눈치였습니다. 차라리 부원장을 바로 노리라는 의미와 방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하는 눈치였습니다.”

“흠! 그 나이에 그런 판단까지 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문재현은 따라오는 이들을 확인하는 것처럼 뒤를 보았다. 경호요원이나 수행원들에게 대화가 들리지는 않을지를 염려하는 눈치였다.

“1달러가 한화 750원 수준인데도 계속해서 투자 신청이 들어옵니다. 우리 국민을 고용하게 만든 법 때문에 초임 평균이 450만 원까지 치솟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영국은 이걸 견디지 못합니다. 그들이 가져야 했던 부이니까요.”

“이민 신청 대기자가 60만 명을 넘었습니다. 대통령님, 이 부분도 조율이 필요합니다. 국적 포기자들이 다시 국적을 달라고 제기한 소송만도 따로 담당자를 둘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외국인 투자법을 완화해 달라는 요청이 끝없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문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걱정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 모든 게 강 부원장의 덕분입니다. 나는 그와 희생된 요원들, 대원들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고건우는 다른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 상황에서 테스트에 실패하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 외에도 미국이나, 영국, 일본, 이스라엘이 지금껏 침묵하는 것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들은 절대 지켜보고만 있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문재현이 무거운 얼굴로 걱정되는 부분들을 털어놓았다.

“테스트 시점에서 어떡해서든 막아 보겠다는 시도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외곽 경계를 높였고, 테스트 시간은 당일 발표해서 처리할 예정입니다.”

“강대국이었던 그들이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게 쉽지 않겠지요. 테스트가 꼭 성공해야 합니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부원장에게 불만을 품은 군부와 정치권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이 현혹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입니다.”

고건우는 답을 하지 못했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그동안 벌어들인 국고를 물 쓰듯 쓰겠다는 선심성 공약이 쏟아져 나왔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혹해서 그쪽으로 쏠리는 상황이었다.

“정권이 바뀌면 국가정보원장은 당연하게 교체할 겁니다. 그 뒤에 부원장을 지켜 줄 방법이 필요합니다.”

고건우는 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문재현은 상관없다는 것처럼 다시 입을 열었다.

“차세대 발전 시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그런 만큼 저들의 마지막 저항도 거세겠지요. 힘들겠지만,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문재현의 말을 끝으로 대화는 없었다.

그저 생각 많은 두 사람이 산책로를 걷는 소리만 조심스럽게 울려 나올 뿐이었다.

***

이집트 분실장이 권총을 확인한 뒤에 건네주었다.

“문제될 것 같으면 그냥 갈겨. 알았어?”

“걱정 마십시오.”

차칵! 철컥! 철커덕!

김광민이 권총을 다시 확인한 뒤에 품에 넣었다.

“무전기는?”

치잇! 칫!

김광민이 소매를 누르자 분실장과 옆에 있던 대원들의 귀에서 분명한 신호음이 들렸다.

“명심해. 다르미코프는 어지간한 나라는 찜 쪄 먹을 만큼 정보력이 뛰어나. 오늘 정보원이 진짜라고 해도 반드시 놈의 귀에 들어갔다고 판단하는 게 좋아.”

분실장은 권투 경기 직전의 선수처럼 김광민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그가 볼을 씰룩이며 입술을 앞으로 모았다.

달러가 잔뜩 담긴 쇼핑백을 건네준 다음이었다.

탁.

분실장은 김광민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바로 몸을 돌렸다.

“준비해!”

요원들이 밖으로 움직였고, 분실장이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분실장님.”

김광민이 그를 붙들었다.

“감사합니다.”

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분실장이 고개를 짧게 끄덕이곤 문을 향해 움직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