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2화 (421/520)

제1장. 너무 조용한 거 아니요? (2)

2013. 5. 25. 03:39 CIA 뉴욕 위장 기지

미국 CIA 국장 스웨이든은 눈을 갸름하게 뜨고 유리창 너머에 시선을 집중했다.

특수부대에서 고르고 고른 최정예 대원 20명이 각종 기계에 연결된 채 누워 있었다.

스웨이든은 시선을 돌려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현재까지의 결과는 성공적입니다. 20명 모두 몸에서 블랙헤드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발전 시설의 테스트다. 정식 가동 전에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나와야 돼. 그래야 피를 구해 준 중국과 기술을 지원한 영국, 그 외에 이스라엘, 일본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어.”

“하루면 충분합니다.”

스웨이든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정보 세계의 새로운 질서?’

그는 복도를 걷는 동안 입술 한쪽을 들어 웃었다.

어처구니없게 한국이라는 말도 안 되는 나라에 빼앗겼던 세계 질서와 권력을 되찾아 올 날이 멀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그는 기다리던 검은색 대형 차량에 곧바로 올랐다.

요원들이 앞과 뒤의 차량에 올라탔고, 밖에 있던 요원 한 명이 소매를 들어 ‘출발한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3대의 차량은 곧바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강찬의 눈을 피하기 위해 미국 정보국의 수장이 요원으로 위장해서 새벽에 움직이고 있었다.

승용차의 뒷좌석에 앉은 스웨이든은 불만 가득한 눈으로 창밖을 노려보았다.

창밖은 번화한 세계의 중심 뉴욕이었다.

스웨이든은 총회장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며 윽박지르던 강찬의 얼굴과 눈빛을 떠올렸다.

무섭다.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일본의 힘을 우습게 안 대가 역시 무섭고, 두려운 건 마찬가지일 거다.

한국의 부질없는 욕망이 얼마나 혹독한 응징으로 세계사에 기록되는지를 보면 알게 된다.

“흠.”

스웨이든은 야비한 희망을 눈 끝에 달았다.

안에서 치고, 밖에서 조인다.

가장 먼저, 그 빌어먹을 갓 오브 블랙필드의 수족을 자르는 일이 우선인 거다.

증평 특수팀, 그리고 비무장왕.

강찬의 실질적이며 상징적인 무력을 제거하고 나면, 놈에게는 달랑 두 놈 남는다.

스웨이든 비어져 나오는 미소를 굳은 얼굴 안에 억지로 구겨 넣었다.

아직 웃기는 이르다.

놈이 피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며 웃기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1차 테스트?

그것을 위해 영국이 최고의 선물을 준비해 두었다.

“우리가 준비한 선물이 분명 마음에 들 거다. 갓 오브 블랙필드.”

자꾸만 나오는 웃음을 그는 다시 한 번 독한 눈빛 너머로 깊숙하게 눌러 버렸다.

***

2013. 5. 25. 10:45

잠비아 은돌라(Ndola) 근교 런시아(Luanshya) 재래시장

동양인보다 재래시장에 깔린 들소 대가리를 찾는 게 쉬운 거리였고, 번화가에서 제법 떨어진 빈민촌이라 외국인, 특히 여자들이 드나드는 것은 극히 위험한 곳이었다.

아프리카의 시골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흙바람에 적응해야 한다.

뿌옇게 달려드는 흙먼지에 몸을 돌리면 요건 완벽하게 초짜,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저어 대면 몇 번 다녀 본 사람, 그저 얼굴만 살짝 돌리면 능숙한 사람인 거다.

허은실은 그런 런시아 재래시장의 흙바람 속을 멋진 군복과 베레모를 입은 모습으로 걸었다.

특유의 껄렁대는 걸음걸이, 어지간해서 밀리지 않는 깡, 그리고 흑인 남자 셋을 아예 곤죽으로 만들어 놓은 실력까지, 재래시장 사람들은 그녀를 은마마(EunMama)라고 불렀다.

은돌라의 한국 기지 근처에 그나마 괜찮은 식당이나 가게들이 많은데, 허은실은 휴일마다 꼭 런시아 재래시장을 찾았다.

5월부터 7월이 겨울이다.

비 오는 날이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덜덜 떨어 대는데, 차를 탄 한국인들은 눅눅하다고 에어컨을 틀어 대는, 딱 그 정도의 겨울이 런시아 재래시장을 깔고 앉은 시기였다.

“은마마!”

아프리카인 특유의 뚝뚝 부러지는 발음으로 흑인 청년이 손을 들었다.

“뭄아빠(Mum Apa, 뭐 찾아)?”

“디다(없어)!”

영어를 사용하는 잠비아 사람들 틈에서 현지어를 지껄이는 한국 여자 은마마가 근처의 허름한 가게 탁자에 앉았다.

“오랜만이야!”

허은실은 두툼한 콧수염이 희끗하게 바랜 주인을 향해 어깨를 들썩여 주었다.

“늘 하던 거로?”

이번에도 고개만 끄덕여 답을 했다. 하긴, 허은실이 친절하고 예의 바른 건 좀 어울리지 않는 짓인 거다.

달각.

겨울에 얼음 담긴 차를 마시는 것 역시 은마마를 돋보이게 하는 행동 중 하나였다.

허은실이 살던 바닥과 가장 비슷한 느낌이 드는 곳이 바로 런시아였다.

휴일에 남들은 좀 더 좋은 곳에 가곤 했는데, 허은실은 이곳이 어쩐지 외가처럼 마음 편했다.

처음 계급장을 달던 날, 파병을 나설 때, 이제야 사람 됐다고 펑펑 울던 모친이 떠올랐다.

“은마마, 여기 일본 사람들 오는 거 알아?”

그때 다가온 주인이 얼음 몇 조각에 잠비아 차가 가득 담긴 잔을 내려다 주며 말을 걸었다. 뚜껑을 덮었고, 그 틈으로 빨대를 꽂아 두었는데 어지간한 생맥주 잔 크기의 컵이었다.

“일본 사람?”

“서양인 모습인데 사실은 일본인이지.”

주인은 심심하던 차에 아예 잘 걸렸다는 것처럼 허은실의 맞은편 의자를 차지했다.

“트완키 알지?”

허은실은 빨대를 입에 물며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그가 안내인을 했거든.”

딱 거기까지 말을 한 주인이 엄지에 검지와 중지를 비볐다.

More information? More Money!

더 듣고 싶다면 돈을 내라는 의미였다.

여기 사람들은 늘 이렇다.

매일 보는 사람이, 매일 똑같은 차를 마시는데, 가격을 물어보지 않은 날은 느닷없이 비싸게 부르는 것도.

허은실은 기도 안 차다는 것처럼 웃으며 차를 좀 더 마셨다. 다음은 윗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배를 꺼냈고, 지포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우.”

담배 연기가 흙바람에 실려 빠르게 달려간 다음이었다.

고민하던 주인이 선심을 쓴다는 것처럼 상체를 허은실 앞으로 기울였다. 오래 씻지 않은 사람 특유의 누린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훅 달려들었다.

“그는 정보원 같아.”

눈만 움직여 주인을 본 허은실이 다시 입술만으로 웃은 다음,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싸리. 난 관심 없어, 후우.”

“정보라니까, 은마마! 한국 정보국에 정보를 팔고 돈을 받아! 내겐 조금만 먼저 주고!”

“관심 없다.”

“미국 달라 10!”

허은실은 차가운 차를 들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속이 다 후련했다. 차 맛은 쌉쌀한 건데, 사탕수수를 쥐어짜서 녹인 단맛이 나중에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오케이! 미국 달라 5!”

허은실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허공을 보았다.

주인이 기대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잠시 고민했던 허은실이 곧바로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싫어!”

허은실은 웃었고, 주인은 섭섭하고 실망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정보국 놈들이 어떤 인간들인데 고작 트완키 같은 안내인에게 정체를 들키겠나.

안 되겠다 싶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린 주인이 허리춤에 손을 넣었다.

“은마마! 이게 트완키가 선물로 받아 온 거야.”

틀림없이 슬쩍한 물건일 거다. 주인이 커다란 손바닥 안에 감싼 물건을 조심스럽게 보여 주었다.

허은실은 손바닥에 들린 물건에서 시선을 들어 주인을 바라보았다.

뭔지는 모른다.

그런데 분명 정교하게 만들어진 명함 크기의 전자 기기였다.

“블랙헤드를 찾는 거라고.”

요거 봐?

고등학교 시절의 허은실을 알았다면 절대 이런 얄팍한 수를 쓰지는 않았을 거다.

멍청하고 바보같이 헛된 시간을 살았다.

대신, 사람 속은 구렁이만큼 들여다볼 정도로 철이 들었다.

“싸리.”

“예스, 은마마.”

“정보원 물건이면 당신과 트완키는 죽어.”

주인이 화들짝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고, 곧바로 물건을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비밀을 지켜 줄 거지?”

“미국 달러 10.”

주인이 기가 막힌 얼굴로 허은실을 바라보았다.

“그 물건 넘기면 1달러와 비밀 유지, 이게 최고야.”

맞은편에 앉은 주인이 몹시 심오한 표정으로 허은실을 보았다. 두 사람 모두 그 물건 때문에 트완키의 몸뚱이에 칼이 박히고 있다는 것을 모른 상태였다.

***

2013. 5. 25. 16:10 CIA 홍콩 카오룽 샹그릴라 호텔

정장 바지에 셔츠 차림의 그라펠트가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석식 시간이라 레스토랑은 투숙객들로 분주했다.

그가 들어서자 안쪽에 있던 말끔하게 생긴 서양 남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케이지.”

“반갑습니다, 그라펠트.”

두 사람은 악수와 함께 인사를 나눈 뒤 바로 음식을 담기 위해 움직였다.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 나와도 됩니까?”

“요즘은 내 주가가 워낙 바닥이라 노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케이지의 질문을 그라펠트가 여유 있게 받았다.

사람들 틈에서 적당하게 음식을 담은 두 사람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둥근 빵을 옆으로 자른 그라펠트가 그 안에 버터를 바르고 작은 채소들과 연어를 넣은 뒤에 입으로 가져갔다.

“음식은 훌륭하군요.”

“다행입니다.”

웃는 얼굴로 대꾸한 케이지는 왼손에 든 포크로 샐러드와 스크램블을 입에 넣었다.

“이렇게 한가하게 뵐 줄은 몰랐습니다.”

“갑갑했으니까요. 여행이라도 떠나 볼까 하던 참에 초대까지 해 주셨으니 덥석 날아올 수밖에 없었지요.”

그라펠트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짓궂은 표정까지 지었다.

한 번 더 음식을 가지러 움직였고, 그 음식을 먹으며 두 사람은 과거 이스라엘에서의 이야기, 현재 사는 이야기들을 빤한 수준에서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커피를 앞에 둔 다음이었다.

띠리리. 띠리리.

그라펠트의 전화기가 울려서 그는 바지에 손을 넣었다.

힐끔 발신자를 본 그라펠트는 고개를 갸웃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상대방의 말이 길었는지 그라펠트는 잠시 듣고만 있었다.

“위원회의 감사가 끝날 때까지 새로운 계획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번 계획도 위원회에 먼저 보고할 수 있도록 준비해.”

통화를 마친 그가 테이블에 전화기를 올려놓았다. 왼손잡이인 케이지가 올려놓은 전화기가 바로 앞에 있었다.

둘이서 시시껄렁한 대화를 20분쯤 나눈 다음이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시간이 되면 해산물과 쇼핑, 그리고 바다에서 바라보는 야경을 권하겠습니다. 그것들을 놓치면 홍콩을 들렀다고 하기 어렵지요.”

케이지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라펠트가 마주 서서 손을 맞잡았다.

“먼저 가세요. 어차피 방에 있을 거라면 이곳에서 커피를 좀 더 즐기다 올라가겠습니다.”

케이지는 사양하지 않고 걸음을 옮겨 식당을 나섰다.

자리에 앉은 그라펠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전화기를 바로 앞으로 가져와 손가락으로 이것저것을 눌러 댔다.

누가 봐도 시간이 남아돌아 하릴없이 인터넷을 검색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원산 집결 완료. 주요 인사 접촉 완료. 일본 내 자금 확보 완료.]

케이지의 전화기에서 지정된 주파수를 이용해 건너온 자료들이었다.

[강철규, 남일규 동선 파악 완료. 그라펠트의 자금 중 일본 소유분 확보.]

일본 정보국의 비밀 요원 케이지가 건네준 정보였다.

내용을 확인한 그라펠트는 미련 없이 삭제 버튼을 눌렀다.

그는 식어 버린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강찬에게 대항했던 정보국 수장들이 모두 비참하게 죽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그라펠트와 스웨이든이 얻은 것도 많았다.

미국은 강찬과 같은 능력을 지닌 20명을 만들고, 이스라엘과 일본은 자금과 블랙헤드를 준비했다.

그라펠트는 픽 하고 웃으며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한국과 프랑스, 러시아는 이번 테스트로 꼼짝하지 못할 곤경에 빠질 거다.

이번 작전에서 이스라엘의 우선 타깃은 양범이다.

그리고 다음은 한국 국가정보원 몇 명, 그리고 그 지랄 같은 프랑스 외인부대 놈인 거다.

***

2013. 5. 25. 13:45

잠비아 은돌라(Ndola) 근교 런시아(Luanshya) 재래시장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서 허은실은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한국 돈 160원의 요금을 받는 미니버스는 늘 사람이 많았다. 그러니 일찍 가서 자리에 앉거나, 아니면 아예 느지막이 도착해서 지붕에 올라타는 게 좋았다.

흙바람을 뚫고 걸어가던 허은실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담배를 꺼냈다.

치잇. 치잇.

바람이 세서 불이 한 번에 붙지 않았다.

라이터에 담배를 바싹 붙인 허은실은 바람을 피해 몸을 돌리며 뒤쪽을 살폈다.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은데 확인하지 못했다.

‘은마마’라는 타이틀을 얻은 이후로 잠비아의 런시아에서 허은실을 노리는 범죄는 없었다. 그렇다면 분명 다른 지역 놈들이거나…….

치잇!

“후우.”

담배 연기를 뱉어 낸 뒤, 입맛을 다신 허은실은 왼쪽 상의 주머니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설마 1달러에 넘겨받은 이 기계가 정말 일본 정보국의 소유라서 정보국 요원들이 쫓아오는 거라고?

“은마마!”

그때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는 키가 껑충한 흑인이 있어서, 허은실은 반갑게 손을 들어 주었다.

“고르마! 차 있어?”

“부대까지?”

“은돌라까지!”

“은마마! 패트롤! 그리고 미국 달러 5!”

“오케이!”

기름 넣어 주고, 수고비로 5달러를 요구했던 고르마가 환하게 웃으며 허은실에게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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