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부)-1화 (420/520)

제1장. 너무 조용한 거 아니요? (1)

2013. 5. 25. 16:35 증평 특수부대 훈련장

오래된 2차선 도로의 가드레일을 덩굴들이 휘감고, 짙은 녹색의 향기가 증평의 훈련장을 뒤덮는 시기였다.

“뒈지고 싶어!”

차동균의 거친 고함이 녹색의 푸름을 저 멀리 패대기쳐 버렸다.

“뛰어! 뛰라고! 헉헉!”

“헉헉! 헉헉!”

헬멧, 방탄조끼, 탄창, 소총, 권총 2자루, 대검 2자루를 걸었고, 등에 20킬로그램짜리 군장도 짊어졌다.

처벅처벅! 처벅처벅! 찌익!

군화가 증평의 거친 산비탈을 미끄러질 때마다,

“달려! 달리라고!”

차동균이 귀신같이 나타나서 대원의 등을 잡아 주었다.

“넘어지면 동료가 죽는다! 헉헉! 적이 우리를 쫓아오지 못하게! 헉헉! 절대로 우리 앞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가자!”

“우- 아악!”

비틀거렸던 대원이 눈을 번들거리며 고함을 질렀다.

오전에 곽철호가 이끄는 1조를 상대한 시가전에서 살아남은 7명의 대원들이었다.

“헉헉! 헉헉!”

처벅처벅! 처벅처벅!

“너희는 조국의 최후의 보루다! 대한민국이! 태극기가! 마지막에 기댈 곳이 너희다!”

“으아-!”

고함을 지르는 대원이 좀 더 늘어났다.

미칠 일이다.

공수부대에서 날고 긴다는 대원들이 악에 받쳐 뛰고 있는데, 누구 한 사람 차동균을 이길 수가 없는 거다.

“헉헉! 헉헉!”

“으아아아-!”

대원들의 고함이 좀 더 커졌다.

“증평의 특수팀이 꽂는 어깨의 대검은! 헉헉! 선배들의 피 값이다!”

철퍼덕!

대원 한 명이 넘어졌다.

와락! 콰악!

거친 숨을 토해 낸 차동균이 냅다 달려들어 대원의 군장을 뺏다시피 벗겨서 어깨에 짊어졌다.

“허억! 허억!”

“일어나! 이 새끼야! 허억! 허억!”

다른 대원 둘이 달려들어 넘어진 대원을 일으켰고, 또 다른 대원 한 명이 소총을 집어 들었다.

“달려!”

저벅저벅! 저벅저벅!

“으아아-!”

한계를 넘어선 대원들은 자꾸만 고함을 질러 댔다.

저 뒤쪽에서 비슷한 고함이 들렸다. 곽철호가 대원 24명을 이끌고 쫓아오고 있었다.

“2조!”

“예에-!”

“2조!”

“예에-!”

“나의 피로! 허억! 허억! 조국을 지킬 수 있다면!”

차동균이 지른 고함을,

“나는 행복하다!”

대원들이 받았다.

100미터 앞에 깃발이 보였다.

“저 깃발을 지키기 위해! 헉헉! 우리 선배들이 흘린 피를 헛되게 하지 마라! 가자- 아!”

“으아아-!”

증평의 모형 도시 중간에 꽂힌 깃발이었다.

산에서 벗어난 2조 대원들이 30미터쯤을 달렸을 때였다.

“잡아! 잡아야 동료가 살고! 잡아야 대한민국이 산다!”

곽철호의 독기 가득 오른 고함이 들렸다.

“1조!”

“예에-!”

“우리는! 헉헉! 반드시 잡는다! 헉헉!”

“으아아아-!”

1조 역시 미친 사람들 같았다.

눈이 완전히 뒤집혀서 하얗게 번들거렸다. 다만, 군장을 메지 않고 소총을 든 것만 2조와 달랐다.

차박차박! 차박차박!

5월의 햇살이 잔인하게 달려들었다.

“헉헉! 헉헉!”

2조가 깃발을 30미터쯤 남겨 두었을 때였다.

철퍼덕!

중간에 있던 대원 한 명이 또 넘어졌다.

“허억! 허억!”

“잡아! 한 명이라도 잡아!”

곽철호가 이끄는 1조가 바로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와락! 와라락! 와락!

누가 시킨 거 아니다.

여기서 잡히면 지금껏 지랄 맞게 견뎌 온 훈련 탈락이다.

그런데도 대원들이 이를 악물고 쓰러진 대원들에게 달려들었다.

“하악! 캐액! 캑! 놔두고 가!”

1조를 본 대원이 악에 받친 고함을 질렀는데,

“개새끼야! 허억! 허억! 너 같으면 그냥 가겠어!”

다부진 동기의 대꾸를 듣고는 이를 악물며 일어섰다.

“와아아-!”

1조는 10미터 앞까지 와 있었다.

“달려! 달리면 돼! 달려!”

차동균은 넘어진 대원의 뒤에 있었다.

전투가 벌어져도 저 지휘관은 분명 저런 모습으로 총알을 막아 줄 거다.

“으아-! 으아아-!”

넘어졌던 대원이 울음을 터트렸다.

“간다! 으아! 난 갈 거다!”

차박차박! 차박차박!

2조의 선두가 깃발을 지났고,

휘이익! 철퍼덕!

마지막에 넘어졌던 대원이 콘크리트 바닥에 냅다 몸을 던졌다.

“우와- 아!”

깃발을 통과한 대원들이 미친 사람들처럼 고함을 질렀다.

터억! 턱! 꽈악!

마지막으로 깃발을 통과한 차동균이 냅다 달려들어 대원들의 헬멧을 끌어안았고, 대원들은 대원들대로 차동균과 동기들을 안았다.

철퍼덕!

“헉헉! 헉헉!”

그때 1조가 들어왔다.

“우와아-!”

1조 대원들은 그대로 달려가 2조 대원들과 뒤엉켜 바닥에 엎어졌다.

“해냈다! 우리 해냈어!”

2조 대원들 7명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마지막 훈련을 통과한 2조 7명은 이제부터 왼쪽 어깨에 대검을 거는 증평의 특수팀 자격을 얻는다.

전 세계의 모든 특수팀이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증평의 특수팀 말이다.

스페츠나츠와 백랑대가 가장 두려워했다는 대한민국 특수팀의 전설, 비무장왕이 교관으로 있는 특수팀. 서울 구경의 창시자 남일규가 강철규를 모시는 특수팀.

“우와- 아!”

대원들은 하얗게 말라 버린 입을 커다랗게 벌리며 하늘을 향해 고함을 바락바락 질러 댔다.

박철수는 모형 도시 건물 위에서 대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미친놈들.”

그의 혼잣말을 들은 부관이 슬쩍 시선을 돌린 다음이었다.

“최 장군님이 훈련을 마치고 널브러진 대원들에게 해 주셨던 말이다.”

“예!”

엉뚱한 부관의 대답에 박철수는 픽 웃었다.

그는 5월의 따가운 햇살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벌써 1년이다.

차세대 발전 시설의 가동 테스트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을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장군님! 보이십니까? 저놈들이 세계의 모든 특수팀이 경계하는 증평의 특수팀입니다. 저놈들이 왼쪽 어깨에 건 대검을 보면 어지간한 군대는 가까이 오지도 않습니다.”

하늘 어딘가에 최성곤이 듣고 있다는 것처럼 박철수는 또렷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

2013. 5. 25. 09:35 이집트 국가정보원 분실

김광민은 분실장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야! 이 새끼야!”

“보내 주십시오!”

국제빌딩에서 동기를 잃었고, 눈앞에서 선배 엄지환을 잃었던 김광민은 오늘따라 물러서지 않았다.

“차세대 발전 시설 테스트를 앞두고 분명 뭔가 있는 겁니다. 분실장님! 다르미코프가 만났던 그리스 해군 정보 장교입니다. 분명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무기 거래가 있습니다. 그리스 해군 퇴역자들이 관계된 거래요!”

상황을 전한 김광민은 다부진 눈을 하고 물러서지 않았다.

정보원을 만나는 일은 흔히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급하게 들어온 거물급의 제안, 그리고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을 요구하는 정보는 엄지환을 잃었을 때만큼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다르미코프는 미국의 정보국도 어쩌지 못하는 무기상입니다. 보내 주십시오! 정보를 우리에게 팔겠다는 건 분명 우리나라와 관계있는 거 아닙니까?”

잠시 노려보던 분실장은 담배를 집어 내밀었다.

늘 함께 지내지만, 분실장이 권하는 담배를 받는 건 매번 어려운 일이다.

“피워! 이 자식아! 갑자기 말 잘 듣는 놈 흉내 내지 말고.”

찰칵.

주저하던 김광민이 공손한 태도로 라이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광민아, 너 후배 잃어 본 적 있어?”

고개를 들었을 때 분실장은 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심장에 박힌다. 그놈들이 여기! 콱 박혀서……!”

가슴을 두드려 보인 분실장이 ‘에효!’ 하는 한숨처럼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묵직한 침묵이 오래된 회백색 벽을 타고 바닥에 깔렸다.

낡은 책상,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구형 전화기, 당장 눈을 돌리면 이곳은 지지리 실적 못 올리는 수입상의 모습이었다.

테스트를 앞두고 특수팀, 국가정보원의 모든 요원이 비상대기인 거였다. 정보원들은 이런 때 확실한 정보를 건네고 평생 만지지 못할 돈을 쥔다. 더구나 상대가 그리스 해군 정보 장교다.

“몇 시라고 그랬지?”

“오전 10시 30분입니다.”

“후우-!”

연기를 길게 뱉어 낸 분실장이 볼을 씰룩였다.

“해 보자. 테스트 직전에 다르미코프가 나타난 것도 그렇고, 그리스 해군 정보 장교가 직접 나섰다면? 그래! 네 말대로 해 보자.”

“감사합니다.”

분실장이 심각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눈빛을 빛내며 담배를 재떨이에 꾹 눌렀다.

***

2013. 5. 25. 16:35 장성군 고성면 고산 부락

5월의 햇살은 태양이 손을 뻗어 얼굴에 바로 뿌리는 것처럼 뜨거웠다.

고추밭을 살핀 엄지환의 모친은 이가 다 나간 오래된 부엌칼을 들고 상추밭으로 향했다. 시들시들한 놈들을 뜯어다가 토끼에게 던져 줄 참이었다.

닭도 키운다. 이번에 새끼를 낳아서 염소도 7마리로 불었다. 염소는 한 마리에 40만 원쯤 해서 잘 키우면 그럭저럭 짭짤한 수확이었다.

햇살이 좋은 날, 상추가 배춧잎처럼 자란 것을 볼 때, 문짝을 다 뜯어먹은 염소가 문틀을 들이받고 뛰쳐나와 남의 밭을 망쳐 놓는 것을 볼 때, 엄지환의 노모는 턱없이 눈물이 올라왔다.

보고 싶다. 아들이.

지금처럼 상추를 따다가 몸을 일으키면 저 골목 어귀에서 아들이 손을 흔들며 나타날 것만 같다.

그래서 엄지환의 노모는 애꿎은 상추를 뜯으며 입술을 길게 늘인 채 소리 없는 울음을 울어 댔다.

더운 날, 시장통에 들렀던 아들을 그냥 보낸 게 지금껏 가슴을 후벼 파 댔다. 그때 차가운 미숫가루라도 한 컵 먹여서 보냈다면, 아들놈 등이라도 한 번 두드려 줬으면, 지금 이렇게 가슴에 얹히지는 않았을 텐데.

“이놈아. 에미, 안 보고 자퍼? 에미 좀 델꼬 가야!”

엄지환의 노모는 해가 기울어진 상추밭에 앉아서 꺼이꺼이 울음을 터트렸다.

외삼촌이랑 친척들 앞에서는 굳세게 버티는데, 이렇게 해질녘 밭에 있을 때는 억지로 버티던 둑이 툭 터진 것처럼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노모를 홀랑 잡아먹곤 했다.

“지환아! 이 썩을 놈아! 보고 자퍼서 먹는 것도 살로 안 가고야! 누워도 잠이 안 들어야! 날 좀 델꼬 가야! 시방이라도 쪼까 데꼬 가! 이놈아!”

산의 그림자가 노모를 덮고 어둠으로 울음을 감춰 주려는 시간이었다.

철퍼덕 앉아서 우는 노모의 뒤쪽 저 멀리에서 시커먼 남자들의 모습이 다가오고 있었다.

외지인이 들어올 일 거의 없는 장성의 고산 부락이다.

노모는 꽃무늬가 희미해진 치마 끝자락을 잡아 눈과 코를 닦았다. 눈이 침침해서 다가오는 사람이 단번에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내 이럴 줄 알았소.”

“에고! 성님! 성님이 어짠 일이라요?”

어린 딸이 아빠 품을 파고들 듯이 노모는 벌떡 일어나 석강호를 부둥켜안았다.

“오셨소?”

그러면서 강찬을 보고는 얼른 아는 체를 했다.

“안 울기로 해 놓고, 이게 뭐요? 얼굴은 왜 이래요?”

석강호가 두툼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 주는 게 쑥스러웠는지 노모는 눈도 닦고, 땀도 닦는 치맛자락을 들어 코를 쓱 문질렀다.

“저녁은 자셨소?”

“배고파요.”

“갑시다! 내 얼른 달구 새끼 한 마리 잡을라니까!”

노모가 상추밭에 놓아두었던 부엌칼을 냅다 주워 들고 석강호와 강찬, 최종일 일행을 재촉했다.

조금 전까지 울던 노모는 어디 가고 지금 엄지환의 모친은 닭의 목을 따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한 일인 양 생기가 돌았다.

“먼저 가 계세요! 담배 하나 피우고 갈 테니까!”

“그랄 게 뭐 있소! 마당에 평상 놨소!”

애처럼 매달리는 노모를 보며 강찬이 웃었고, 일행은 다 같이 걸음을 옮겼다.

마당의 평상은 좁지 않았다.

대신 닭장, 토끼장, 그리고 염소와 집 지키는 개 냄새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앉아 있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퀴퀴한 냄새가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이보다 더한 냄새에서도 밥을 먹던 강찬과 석강호다.

“여태 저녁을 못했으니 얼마나 시장할 겨! 우선 이걸루다가 시장기 감추고 계쇼.”

석강호를 만나면 이상하게 노모의 사투리가 확 준다.

참외를 몇 개 내다 준 노모가 칼을 다부지게 잡고 닭장으로 향했다.

비명을 지르던 닭 2마리가 노모의 손에 날개를 잡힌 채 뒤뜰로 모습을 감춘 다음이었다.

찰칵.

강찬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이곳은 변함이 없다.

올 때마다 우는 얼굴이던 노모가 석강호를 보고 활짝 웃는 것부터, 닭이나 오리가 구슬픈 울음을 끝으로 뽀얗게 삶아져 상에 올라오는 것까지.

“무슨 일이쇼?”

“뭐가?”

담뱃불을 붙이느라 석강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후-! 왜요? 가동 테스트 한다니까 긴장돼요?”

“내가?”

강찬이 픽 웃자 석강호가 비슷하게 따라 웃었다.

“그냥! 가동 테스트를 한다니까 이 일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생각났다. 차세대 발전 시설이 지환이 어머니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기도 하고.”

석강호가 입술 한쪽을 올리며 웃었다.

“왜?”

“하여간! 대장은 마음에 두었던 놈들 죽은 시기가 되면 꼭 이럽디다. 대장 흉내 내던 병아리도 그렇고. 몇 놈 있잖소.”

강찬은 피식 웃으며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혹시 욕구 불만 아니오?”

“뭐?”

“그렇잖소? 피 끓는 몸인데? 전혀 생각이 안 나면 오히려 검사를 받아 봐야 하는 거요.”

“확!”

둘이서 킬킬거렸고, 듣고 있던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다른 놈들이 너무 조용한 거 아니요?”

“그렇긴 하지.”

강찬은 담배를 스테인리스 종지에 눌러 끄며 고개를 끄덕였다.

“찜찜한 것도 있고. 이 새끼들, 분명히 뭔가를 꾸밀 거다. 전에는 우리가 드러난 적을 상대한 거였는데, 지금은 거꾸로 우리는 다 드러났고, 저놈들은 대가리를 감추고 있는 거라서 그것도 영 지랄 같고.”

“후-! 걱정할 게 뭐 있소? 여차하면 달려가서 모가지를 홱 돌려 주면 되는 거지.”

“하여간 단순해서 정말 좋겠다.”

“얼레? 그래도 내가 제라르 그 새끼보다는 훨씬 낫잖소?”

강찬이 웃었고, 최종일 일행은 시선을 돌렸다.

“뭐요? 정말 그렇다니까요! 어? 너희는 또 왜 그래?”

석강호가 뜬금없이 진지한 얼굴을 바싹 디밀며 답을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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