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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뭐네?
일곱 량짜리 기차의 앞머리가 보일 정도로 커다랗게 돌아가는 철길을 달릴 때였다.
중국 요원이 다가와 양범에게 무언가 말을 전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세요.”
강찬이 답을 했고, 양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요원과 함께 자리를 비운 직후였다.
“모여 봐.”
강찬은 대원들 전체를 불렀다.
석강호, 제라르,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 그리고 곽철호와 대원들, 전체를 다 합쳐도 스물이 안 되는 인원이었는데, 대신 최정예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대원들이었다.
“이 작전은 위험하다. 전투의 어려움보다는 환경이 최악인 거다. 솔직하게 지휘관으로 이런 작전은 거절하는 게 맞다.”
강찬은 제라르를 위해서 빠르게 불어로 같은 말을 했다.
“난 두 가지만 봤다. 우리가 이 작전에서 지그펠트를 제거할 수 있다면 다시는 해외로 떠돌며 엉뚱한 작전에서 대원을 잃는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대한민국은 지금껏 이룬 것들을 안정적으로 쥘 쉬 있다는 것.”
철커덩! 철커덩!
강찬이 불어로 말을 반복하는 동안, 누구 한 사람 시선을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도박이라고 본다면 승률은 반반이다. 내가 걱정하는 건, 우리가 이 작전에서 지그펠트를 제거하고 났을 때 북한의 반응이다. 우리를 그 자리에서 사살하려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히죽.
석강호가 긴장을 처먹은 눈으로 웃었고, 다들 비슷한 눈빛과 표정을 지었다. 여기 있는 인원들은 이제 작전이나 전투에 대한 공포쯤 아예 느끼지 못하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대원들이 가서 이용만 당하다가 전멸당하는 건 우리 방식이 아니니까…….”
강찬이 말을 던진 직후였다.
다들 기대에 찬 시선이 달려들었고, 한 박자 늦게 말을 들은 제라르가 볼의 흉터를 늘이며 자부심 넘치는 눈빛으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만약에 사태에 대비한다.”
언제 양범이 올지 모른다.
강찬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상황이 예상대로 끝난다면, 아무 일 없다. 반대로 내가 염려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작전 지역을 벗어나…….”
철커덩! 철컹! 철커덩! 철커덩!
“김정도를 사살한다.”
대원들이 빠르게 시선을 교환한 다음, 번들거리는 눈으로 다시 강찬을 보았다.
“곽철호.”
“예!”
“윤상기, 이두희, 그리고…….”
강찬은 추가로 대원 네 명을 더 지적했다.
이름이 불린 대원들이 돌아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외곽을 지켜.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일이 생기면 바로 발포한다.”
“알겠습니다.”
대강 이야기가 끝났다.
강찬은 느긋하게 대원들 한 명, 한 명씩을 돌아보았다.
“위험한 작전이다. 혹시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그때는 시간이 없을 테니까 미리 말한다.”
강찬은 피식 웃은 다음에 다시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
석강호와 대원들, 그리고 제라르가 기가 막힌다는 웃음과 표정으로 강찬에게 답을 했다.
철커덩! 철커덩!
기차는 계속해서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창을 거쳐 들어오는 볕이 평화로움을 한껏 강요하고 있었지만, 기차는 터무니없는 작전을 향해 달려가는 길이었다.
몇 가지 질문들이 오갔고 석강호의 되지도 않는 농담이 오갔다.
세계적인 팀?
불가능한 명령이 내려졌을 때, 받아들이는 그들의 태도가 가장 기본적인 평가의 기준이 된다.
북한으로 달려가는 기차 안에서 대원들은 진심으로 세계 최고의 대원들이 보일 수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철커덩. 철커덩.
긴 비행을 마쳤고, 곧바로 바쁘게 움직이다가 뜻밖에도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것도 북한으로 향하는 기차에 말이다.
눈빛들이 번쩍번쩍 살아있는 대원을 볼 때의 행복을 과연 몇 사람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
기차가 또다시 머리를 보일 정도로 휘어져 달릴 때였다.
양범과 요원 서넛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강찬 씨. 건물 구조도를 받아왔습니다. 우선 받으시고, 저건 북한군 군복과 중국 군복입니다. 반은 북한군, 반은 중국에서 호위를 위해 지원한 병력으로 위장할 계획입니다.”
강찬은 대원들이 군복을 받는 사이, 양범이 건네준 구조도를 받아서 펼쳤다.
2층 건물이다.
내부라고 아래층은 커다란 규모의 응접실과 주방, 방 2, 다음 장으로 넘긴 위층은 좀 더 작은 응접실에 방 4개가 있는 구조였다.
마지막 장은 건물 외곽 주변 건물을 표시했는데 건물의 규모에 비해 주변에 건물이 멀리 있었다.
“안전옥이라 불리는 건물입니다. 이런 건물은 주로 접대나 향응을 위해 이용되어서 다른 건물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양범이 지도를 바라보며 얼른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퇴로는 어떻게 됩니까?”
“전에 장광택을 사살했을 때와 같이, 작전이 성공리에 끝나면 헬리콥터를 이용할 예정이랍니다.”
강찬은 시선을 들어 양범을 보았다.
“이 기차에 탄 우리 요원들만 20명이 됩니다. 우리가 헬기로 함께 한국으로 넘어가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집니다. 작전이 끝나면 나는 김정도 주석이 북한 내부의 정권을 단단히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돌아갈 생각입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설명이었다.
강찬은 물끄러미 양범을 보았다.
독을 먹을 거라면 접시까지.
그래! 누군가를 위해 독을 먹을 거라면 접시까지 먹을 수도 있는 거겠다. 물론 속아서 독을 먹게 되었다면 독기 충만해서 끝까지 달려들겠지만 말이다.
“김정도가 작전을 성공하고 난 후에 우리를 사살할 상황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철커덩! 철커덩!
기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바람에 말이 제대로 들렸을까 싶은 순간이었다.
“그 점을 나도 염려하고 있습니다.”
양범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강찬 씨와 함께 온 이유입니다. 셔먼의 행동에서 보고 배운 것도 있구요. 우리 요원들과 내가 김정도와 함께 근처에 있겠습니다. 만약 김정도가 배신한다면 바로 현장에서 사살해 버릴 생각입니다.”
뜻밖의 답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당분간 북한 전체를 우리 중국이 통제하게 됩니다. 현재 북한 군부와 당 간부 중에는 우리 세력이 제법 됩니다. 한 마디로 친중 세력이 득세하는 겁니다.”
“그렇더라도 뒤에 분명 문제가 생길 텐데요.”
양범이 의미심장한 느낌의 미소를 그려냈다.
“김정도는 무척 영리한 사람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자신이 죽은 다음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와 우리 요원이 감싸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다른 짓을 하기 어려울 겁니다.”
양범이 강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정보 세계는 어렵다.
그리고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막말로 양범과 요원 놈들이 김정도를 호위하는 것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겠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안심이 됩니다.”
“강찬 씨는 그 짧은 순간에 계산을 마쳤군요.”
강찬의 답에 대한 양범의 반응은 또 예상과 달랐다.
“그런가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계산하고, 마지막 순간을 확인할 때까지는 나를 믿겠다는 뜻이 아니었습니까?”
양범은 따진다기보다는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이왕 나온 이야기다.
강찬은 궁금한 점을 털어내고 싶었다.
“오늘 움직인 중국 요원 정도면 굳이 병력을 이동하지 않아도 양범 씨가 이 일을 해결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김정도가 우리에게 이 일을 부탁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건 좀 다르다는 느낌처럼 양범이 고개를 갸웃했다.
“김정도는 강찬 씨와 어떤 형태로든 인연을 만들고 싶었을 겁니다. 지그펠트가 아니라도 북한을 이용하고자 하는 세력은 많습니다. 러시아, 우리, 심지어 미국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양범은 막힘이 없었다.
“김정도가 강찬 씨와 인연을 맺게 되고, 이번에 내부의 적들을 털어내고 나면 당분간 외부의 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라시아 철도를 승인하는 것으로 남북의 관계도 우호적으로 바뀔 테니까요.”
“참 복잡하게 사는군요.”
“나도 배우는 중입니다. 국제 정세라는 복잡한 계산 뒤에서 이런 일들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정보국의 숙명이라고 봅니다.”
철커덩! 철커덩!
기차 소리 사이에서 대화가 끝났고, 대원들이 알아서 군복을 나누어 들고 있었다.
딱, 한 새끼.
제라르를 제외하고 말이다.
강찬이 피식 웃었고, 양범이 뒤늦게 황당하다는 웃음을 지어냈다.
저걸 어째서 생각 못 했지?
함께 있는 동안은 그저 같은 편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거다.
애새끼가 좀 짧기나 하든가.
길기는 더럽게 길어가지고.
“그나마 맞는 옷을 찾아봐! 그리고 모자 있는 대로 눌러 쓰게 해.”
“찾아는 놨습니다. 그래도 북한군 특수팀 평균 신장 162에 비해 너무 커서 맞는 걸 찾지 못했습니다.”
“제라르! 일단 입어 봐!”
“Oui!”
답을 한 제라르가 군복을 먼저 걸쳤다.
입고 있던 양복과 셔츠를 벗자 단단한 근육질 몸과 섬뜩한 흉터들이 놈의 강인함을 돋보이게 했는데…….
“푸흐흐.”
“푸읍!”
대놓고 웃음을 터트린 석강호와 달리 다들 시뻘겋게 변한 얼굴로 웃음을 참느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팔뚝 중간에서 끝난 소매와 정강이 중간에서 할 바를 다한 바지 길이, 웃기려고 한 건 아니겠지만 두 팔을 앞으로 뻗은 제라르의 모습이 참고 있던 웃음에 불을 질렀다.
사람 멍청해 보이는 거 참 한 방이다.
강찬은 물론이고, 지켜보던 양범조차도 흐느끼듯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살벌한 작전을 나선 기차 안인데 당장은 ‘코미디 열차’에 올라타서 하이라이트를 보는 꼴이었다.
저 꼴로 소총을 들고 뛰어다닌다고 상상하면?
강찬은 또다시 흐느끼듯 웃고 말았다.
“너는 그냥 양복 입어라. 그리고 우리 인솔자 하자.”
답을 한 제라르가 눈을 부라리며 옷을 갈아입었다.
“저 새끼! 푸흐흐흑! 저 모습은 평생 못 잊을 거 같은데? 푸흐흐.”
“그만해.”
“그러려고 하는데……. 푸흐흐흐!”
제라르가 진심으로 인상을 구겨댄 덕분에 대강 웃음이 지나갔다.
철커덩! 철커덩!
소총을 거꾸로 세우다시피 상의 안에 집어넣어 가며 군복을 입었고, 권총과 탄창들을 적당히 걸었다.
야간 작전이라서 그나마 다행인 수준이었다.
김정도의 식성에 맞춘 것인지는 몰라도 맛이 참 심심한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운 다음, 경계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잠이 들었다.
이게 한두 번이어야 잠도 설치고 하는 거지.
그런데도 양범은 우리 대원들의 모습에 또 한 번 감탄하는 얼굴이었다.
양범이 멀쩡한 얼굴이라 강찬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에도 기차는 쉼 없이 달렸다. 가끔은 초라한 역을 지나쳤고, 배고픈 논과 밭을 지나쳤으며, 메마른 하천을 넘어서기도 했다.
철교를 세 번 건너고도 한참을 더 달려 21시 40분이 넘었을 때쯤이었다.
기차의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고 있었다.
철커더엉! 철커더엉!
“깨워.”
강찬의 지시에 대원들이 모두 일어났다.
“어흑!”
석강호가 특유의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어난 다음이었다.
중국 요원이 양범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했다.
“김정도가 함께 보자고 합니다.”
“그러시죠.”
여기까지 와서 사양할 것 없는 일이다.
강찬은 중국 군복을 입은 채로 양범과 함께 움직였다.
식당칸, 휴게실 분위기 칸, 중국 요원들이 있는 칸을 지나자 바로 김정도가 있었다.
북한에서 데려온 놈들은 이 칸을 지나서 있을 게 분명했다.
화려한 척했지만,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내부 구조에 소파 한 세트, 테이블 두 개와 책상 두 개가 전부인 칸이어서 촌스러움이 자연스레 풍겼다.
“앉으라.”
무언가 각오한 듯한 표정으로 김정도가 소파의 맞은편을 가리켰다.
“밤 10시 30분에 평양역에 도착할 기고, 그곳에서 빠스로 코쟁이가 있는 건물로 갈 거니이까, 공작을 엄폐하기요. 구조도는 받았지?”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김정도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과 뒤에 있을 일에 대한 염려를 이겨내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부원장 동무. 성공하기요.”
김정도가 손을 내밀었고, 강찬이 웃으며 맞잡았다.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강찬이 일어섰고, 양범은 남았다.
뒤에 무슨 말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걸 의심해서 앉아있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강찬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대원들을 불러놓고 구조도를 펼쳤다.
“10시 30분 평양역 도착, 그곳에서 버스로 움직인단다. 그대로만 된다면 이동 간에 문제 될 것은 없을 것 같은데 마지막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도록. 곽철호!”
“예!”
“바깥쪽을 부탁하고, 우리가 내린 순간부터 버스를 확보해.”
“알겠습니다.”
대략 작전 지시가 끝났다.
철커더엉! 철커더엉!
양범은 대략 20분쯤 뒤에 돌아왔다.
깊은 밤이다.
기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역에 들어섰다.
위쪽에 팔각모서리를 가진 둥근 탑과 그 아래로 네모난 건물, 평양역은 어딘가 예전 서울역을 축소해놓은 구조처럼 보였다.
플랫폼에는 북한 군인들이 잔뜩 나와 있었다.
강찬이 시선을 주었을 때, 양범도 이때만큼은 긴장한 얼굴이었다.
김정도가 군인들과 촌스러운 정장 차림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몸을 움직였다.
하나만 삐끗해도, 누군가 수를 쓰기만 해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날카롭고 예리하며 살벌한 긴장감이 강찬이 탄 객차에 넘실거렸다.
김정도가 환영나온 인원들을 쓸다시피 몰고 플랫폼을 나가고 5분쯤 지났다.
평양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적막이 역 전체를 휘감고 있을 때였다.
북한 요원이 분명한 양복 차림의 남자가 역사 방향에서 나타나 강찬이 탄 객차를 향해 손짓을 했다.
저 새끼는 기차에서 안 내렸으니 분명 북한놈이다.
“가시죠.”
양범의 말에 강찬은 먼저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최대한 조심하고 여차하면 갈겨.’
이 정도 뜻은 모두 알 수 있는 거다.
양범과 정장 차림의 중국 요원들이 먼저 내렸고, 그 바로 뒤에 제라르, 그리고 강찬과 대원들이 뒤를 따랐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군복 사이에서 소총 소리가 나지 않도록 적당히 팔로 누르며 걷는 걸음이다. 그 와중에도 언제고 권총을 뽑거나 소총을 당겨서 사격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
강찬은 플랫폼을 빠져나오는 동안 건물들 곳곳을 날카롭게 훑었다.
누군가 숨어서 기관총 한 번 긁으면 절반은 죽는다.
오래된 대리석 난간, 어둠을 반쯤 먹은 유리, 불 꺼진 공간, 문틀.
모든 것이 수상했지만, 딱히 이상한 것은 없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작은 역 하나 빠져나오는 데 5분쯤 걸렸다.
그리고 정문이 아니라 왼편으로 나 있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을 때 바로 앞에 버스가 나타났다.
“이 버스입니다. 우리 요원 한 명이 동행할 겁니다. 나는 이곳에서 김정도 주석 쪽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이 말을 왜 이제야 하지?
배신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양범은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분명히 있어 보였다.
정보국의 숙명일지 모른다.
무엇보다 본능이 주는 경고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었다.
“나중에 보죠.”
강찬은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 버스에 올랐다.
한 명, 한 명.
운전석 뒤에 강찬이 앉았고, 중국 요원이 맞은 편, 그리고 나머지 대원들이 올라오는 순서대로 좌우로 번갈아가며 자리했다.
부으으응.
10년쯤 된 관광버스 느낌이었다.
대원들이 어둠 속에서 바깥쪽을 살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촌스럽게 느껴지는 도시였다.
11시 이전에 등이 거의 꺼진 도시.
교통사고도 그렇고, 휴대용 미사일, 기관총 난사, 심지어 운전사가 버튼을 눌러 버스를 폭발시킬 위험까지.
지그펠트, 이 개새끼가 사람을 끝까지 괴롭힌다.
장광택을 사살하러 왔던 것과는 다른 북한의 길을 20분쯤 달리고 나서였다.
끼이익.
이면 도로의 한쪽에 버스가 멈춰 섰다.
강찬은 운전석의 맞은편 출입문 창으로 구조도에 담긴 건물을 보았다.
고개를 돌렸을 때 중국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망설일 것이 없다.
강찬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버스의 문이 열렸다.
버스의 계단을 내리며 앞 단추를 풀자 갑갑해 하던 소총이 기쁘다는 것처럼 나왔다.
철컥! 철컥!
버스 안에서 소총을 겨눈 소리가 들렸다.
치잇. “버스 확보했습니다.”
이두희가 운전이라면 또 한 가닥 한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중국 군인과 북한 군인의 복장이었다.
이웃 건물과의 거리 100미터, 버스에서 건물까지 50미터.
저벅저벅. 저벅저벅.
아무리 썩었다고 이곳 경비를 이렇게나 허술하게 두나?
강찬이 조명이 붙은 건물 벽에 시선을 주었을 때였다.
“뭐네?”
확연하게 보일 정도로 손과 주둥이가 번질거리는 북한군이 억울한 듯한 질문을 터트렸다.
이 새끼들은 뭘 처먹고 있었을까?
철컥! 푸슝! 퍼억! 푸슝! 퍼억!
그러나 궁금증은 소총 두 발로 털어냈다.
와라락!
강찬과 대원들이 건물로 달려들었고,
푸슈슝! 퍼억! 푸슝! 푸슝! 퍼억!
왼쪽으로 돌았던 제라르와 최종일 쪽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