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415화 (41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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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최선을 다하겠다.

해가 이마쯤 있는 오전 10시 경이었다.

띵. 띵. 띵. 띵.

중국의 선양 타오셴 국제공항에 도착했음을 안전벨트 시그널이 알려주었다.

“정말 많이도 돌아다니는 거요.”

“그냥 돌아다닌 거면 얼마나 좋겠냐?”

강찬의 대꾸에 석강호가 히죽 웃었다.

죽고 죽이는 싸움을 위해 다녔다.

그아아아아앙!

말을 하는 사이 날개의 뒷부분이 불쑥 나왔고, 엔진음이 커다랗게 울리며 비행기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민간항공기다.

활주로에 내려서는 것을 신경 쓸 것이 없어서 강찬은 편안하게 앉아 착륙을 기다렸다.

드드드드드드드!

뭔 놈의 국제공항 활주로가 몸이 좌우로 이렇게까지 흔들리는지.

우우우우우웅.

느긋한 속도로 활주로를 움직인 비행기가 공항의 구석에 멈춰 섰다.

창밖을 본 강찬은 특유의 웃음을 웃었다.

평소라면 절대 활주로에 있지 않았을 시커먼 승합차와 승용차들이 보였고, 그 중간에 서 있는 양범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도어 오픈.”]

기장의 멘트에 대원 둘이 문을 열었다.

훅.

선양의 냄새는 쿠바보다 자극적이었다.

서늘한 바람을 타고 강한 양념 냄새가 강찬을 덮쳤다.

가장 먼저 강찬이 문을 나섰고, 그 뒤를 양복 차림의 석강호, 제라르, 그리고 최종일 조원들이 따랐다.

“강찬 씨, 반갑습니다.”

양범이 입가에 미소를 달고 강찬에게 손을 내밀었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사람끼리의 악수는 언제나 기쁜 일이다.

양범이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강찬을 살폈다.

“이제는 정말 정보 세계의 일인자처럼 보이는군요.”

“위원장님, 바실리, 그리고 양범 씨에 비하면 이제 겨우 이름이나 올린 걸 텐데요. 그리고 이 모습은 제게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양범이 석강호에게 시선을 주었다.

전에 함께해서 얼굴을 아는 사이다.

“오랜만입니다.”

“반갑소.”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길 기다린 강찬이 비행기로 시선을 주었다.

“대원들이 군복을 입고 있습니다. 민간 공항이라 곤란하게 할까 봐 일단 기내에서 대기 중입니다.”

“괜찮습니다. 내려오라고 하시죠. 무기도 그대로 들고 내리면 됩니다.”

중국의 정보국장이라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강찬의 시선 앞에서 양범은 무언가 남긴 듯한 얼굴이었다.

이런 건 급할 건 없다.

천천히 알아보면 되는 거니까.

강찬은 최종일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치잇. “무기 소지하고 내려온다.”

당연하게 최종일이 무전을 했고,

쩔걱. 쩔걱.

무장한 대원들이 줄줄이 내렸다.

“전에 도움받았을 때와는 또 달라 보이는군요. 경험과 뛰어난 지휘관이 특수팀에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배운 것 같습니다.”

양범이 부러운 시선으로 증평의 대원들을 바라본 후에 일행이 탈 차를 배정해주었다.

“강찬 씨는 나와 함께 가시죠. 가는 길에 드릴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시죠.”

둘이서 뒷좌석에 앉기 무섭게 승용차가 움직였다.

무장한 중국 대원들이 지켜 선 출구를 통해 차는 곧바로 공항을 빠져나왔다.

“바실리 국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주었으면 한다고 전해달랍니다.”

“일을 마치면 그럴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이 중국과의 수교를 원하던데요? 이번에 모사드의 책임자가 된 그라펠트가 직접 부탁했던 일입니다.”

“가능하도록 추진하겠습니다. 그라펠트와는 친분이 있었습니까?”

“라노크 위원장님께서 정보국 연수를 보내주셨을 때 함께 교육받았던 인물입니다.”

양범이 감탄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계산해 두셨던 모양이군요. 이러니 위원장님을 뵐 때마다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잡담이 끝났음을 양범의 표정을 보고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전에 공산당 간부들이 사용하던 초대소를 준비했습니다. 그곳에서 중요한 인물과 만날 생각입니다.”

빠르게 달리는 차 안에서 양범이 나직한 음성으로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 들었다.

“최근 북한은 내부 불안 요소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 제한조치까지 겹쳐서 염려스러울 정도입니다. 자칫하면 국지적인 도발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이 양반이 겁을 주려고 이러는 건 아닐 거다.

강찬의 시선 앞에서 양범이 결심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초대소에 북한의 김정도 주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들이켰다.

차창 밖으로 높다란 빌딩들과 초라한 옛 건물이 뒤엉켜 있는 것만큼이나 머릿속이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요?”

“북한의 장성과 당 간부들이 김정도 주석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번에 북한에 들어간 지그펠트가 북한의 지도부 인사들에게 막대한 부를 약속하는 모양입니다.”

하여간 개새끼!

반드시 목을 돌려줘야 하는 새끼!

“지그펠트의 의도는 북한 주석을 제 입맛에 맞게 교체하고 당분간 그곳에서 안정을 찾던가, 아니라면 지도부에게 도피처와 망명 자금을 제공하고 한국과의 전쟁을 일으키는 것, 둘 중 하나로 보입니다.”

“북한이 그런 식으로 주석을 교체할 수 있나요?”

“지그펠트가 김정도의 아들을 꼬드기고 있어서 상황이 심각합니다.”

하여간 사방이 개새끼투성이인데 희한하게 개새끼들은 잘도 뭉친다. 그러다 목적을 이루고 나면 서로 물고 뜯고 지랄을 떨어대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주석이 원하는 게 뭔가요?”

“그 부분은 저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기차로 선양 역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나는 바로 공항으로 움직였으니까요. 공식적으로 그는 지금 선양의 중국 정보국 건물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군요.”

양범이 모른다면 정말 몰라서 그런 답을 한 거라고 믿는다.

아군은 그렇게 대하는 것이 맞다.

생각할 여유를 주는 것처럼 양범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사실 이런 일에 생각할 건 없다.

만나자면 만나고, 그다음은 방법을 찾아 지그펠트의 대가리를 돌려주면 되는 거니까.

대략 40분쯤 달렸다.

그런 다음 비포장이나 다를 바 없는 길로 빠져나갔다.

오래된 3층 건물이었다.

외곽에 얼굴까지 가린 대원들이 소총을 들고 있는 것과 입구에 달린 낡은 나무판에 새겨진 붉은 글씨가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중요한 인물이라 그런가?

정도가 지나치다 싶었는데 몰래 자리를 비운 북한 주석을 위한 보안쯤 되려면 이 정도는 또 이해할 만했다.

하여간 이놈의 나라는 뭘 만들든 간에 무식할 정도로 크게 만든다.

운동장만 한 마당 겸 주차장에 차가 멈췄고, 강찬과 양범이 차에서 내렸다.

“다예.”

“예!”

석강호가 빠르게 강찬의 앞으로 왔다.

“이 건물 입구에 대원 배치해. 그리고 현관 안쪽에 최종일 조와 대기하고.”

“알았소.”

석강호가 곽철호에게 움직였다.

“제라르!”

“Oui!”

“건물 입구를 증평 팀이 맡는다. 너는 다예와 현관에 대기해.”

“Oui!”

어쩌면 양범이 기분 나쁠 수도 있을 거다.

중국에서 이런 지시를 했기 때문에.

그러나 최소한의 조치는 하고 싶었다.

여기서 어쭙잖게 주석이란 놈이 죽어버리면 꼼짝없이 폐차시킨 자동차 할부금 내는 꼴이 되는 거다.

“언짢으셨다면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양범이 손을 뻗어 입구를 가리켰다.

강찬은 그가 안내하는 대로 초대소 1층 안쪽에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식당처럼 보였다.

붉은 커튼, 붉은 카펫, 붉은 식탁보.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붉은색 일색이었는데 열댓 명은 앉을 수 있을 만큼 무식하게 커다란 원형 식탁이 놓여 있었다.

강찬은 창의 앞쪽 식탁으로 시선을 주었다.

뒤로 넘긴 머리, 살이 많은 볼살, 두꺼운 목, 커다란 덩치, 그리고 풍성한 공산당 복장.

‘저 인간이구나!’

분명하게 강찬을 향해 시선을 주고 있는 남자를 향해 양범이 걸었다.

둘이서 식탁 앞에 섰을 때였다.

뚜껑 덮인 찻잔을 앞에 둔 남자가 천천히 일어섰다.

강찬은 그의 가슴에 달린 배지를 본 후에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주석님. 강찬 씨입니다. 강찬 씨. 북조선의 김정도 주석입니다.”

넓은 식당에 달랑 셋이었다.

김정도가 손을 내밀었고, 강찬이 마주 잡았다.

“동무가 우리 인민부력부장을 사살하고, 8군단 특임대를 몰살시킨 주인공이지?”

눈이 똑바로 마주친 상황에서 건너온 말이라 그런지 쓸데없는 긴장감이 세 사람 사이를 흘렀다.

“그 일을 먼저 이야기 할까?”

김정도의 눈이 꿈틀했다.

“이보라우, 부원장 동무.”

불편한 얼굴에서 울퉁불퉁한 음성이 건너왔다.

그것도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는 상태에서.

“일단 앉아서 말씀하시죠.”

그때 양범이 절묘하게 끼어들었다.

김정도는 양범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이 이렇게 넓어서 어디에 앉아야 하지?

강찬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양범이 “강찬 씨. 일단 자리하시죠.” 하며 김정도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강찬과 양범이 김정도의 양옆에 앉은 꼴이다.

내키지 않았지만, 자리로 다툴 곳도 아니었고, 양범의 체면도 있어서 강찬은 잠자코 있었다.

중국 요원이 다가와 뚜껑이 덮인 찻잔을 강찬과 양범 앞에 놓아주었다.

재떨이, 라이터, 담배는 이미 식탁에 올라와 있었다.

북한의 주석이란 인간이 몰래 온 거다.

그만큼 아쉬운 무언가가 있는 건데 차피처럼 거들먹거리는 꼴을 보인다면……, 결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강찬의 시선을 받은 김정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그펠트란 코쟁이가 군부와 당 간부들의 배때기에 기름을 넣었지. 장광택이 동무 손에 사살되고 겨우 잡고는 있지만, 아직은 반동분자들이 많아.”

김정도가 담배에 손을 뻗어 강찬에게 권하는 것처럼 내밀었다.

바로 직전까지 눈을 부라리다 느닷없이 권하는 담배다.

강찬은 잠자코 손을 내밀어 담배를 집었다.

찰칵.

치사한 새끼!

덩치가 커다란 놈이 제 담배에만 불을 붙이고 라이터를 탁자에 올려놓는다.

찰칵.

강찬은 라이터를 들어 불을 붙이고 양범에게 건네주었다. 김정도 앞에서 둘이 머리를 맞대는 것은 또 좀 그렇다.

“보라우.”

김정도가 코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강찬을 불렀다.

저 꼴을 보라는 건 아닐 테고.

강찬은 담배를 든 채로 시선을 주었다.

“쿠바에 우리 8군단 특임대를 보내자고 할 때, 내래 얼른 보내주었지. 부원장 동무가 그곳에 있다믄, 장성들이 믿는 무력을 꺾어줄 것 같았으니끼니.”

“원하는 게 있다면 돌리지 말고 말해.”

김정도가 볼을 씰룩인 다음 숨을 커다랗게 내쉬었다.

“부원장 동무는 지그펠트라는 코쟁이를 노리는 거 아니갔어? 오늘 내래 기차로 평양에 들어갈 기야. 그때 같이 가자우. 그래서 오늘 밤, 부원장 동무가 코쟁이를 제거하라우.”

“대가는?”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북조선 반동분자들을 모조리 처단하는 기야.”

눈을 부라리다 담배를 권한 것만큼이나 느닷없는 제안이었다. 이게 어떤 의도에서 나온 건지 감도 안 잡힐 만큼 엉뚱한 제안이기도 했다.

강찬과 김정도가 동시에 양범에게 시선을 주었다.

웃긴다.

황당한 조건을 내민 놈과 들은 사람이 동시에 양범에게 상대를 믿어도 되는지를 묻는다는 것이.

“돈에 환장한 반동분자들이 아예 코쟁이를 중심으로 뭉치려고 하지. 내래 그 코쟁이를 돌려보내도 반드시 다시 일을 벌일 거이고.”

김정도는 강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로 말을 이었다.

“이참에 반동분자들과 코쟁이를 동시에 처단하면 남은 장성과 당간부들은 고개를 숙일 기야. 기케 해주면 내래 유라시아 철도의 연결을 발표하지. 부원장 동무는 코쟁이 모가지를 따는 거이고, 나는 반동분자들을 몰살하는 거이니, 서로 좋은 거 아니갔어?”

이걸 믿어야 돼? 말아야 돼?

“이번에 정리한다고 해도 내래 오래 살지 못해. 내 피붙이들도 당연히 기케 되갔지. 다만, 우리 북조선이 코쟁이 손에 넘어가지 않으니 나는 기걸로 만족해. 코쟁이가 원하는 거이 전쟁 아니갔네?”

묘한 반말투였는데 어쩐지 이 인간은 이게 존대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하지 말라는 압박이 심해. 철도가 관통하는 곳에 있는 인민들이 바깥세상을 알게 되면 곤란해지지 않갔나? 장성들과 당 간부들은 인민들의 의식이 깨어나 체제가 무너질 걸 염려하고 있지.”

말을 마친 김정도가 목에 무언가 걸린 것처럼 헛기침을 두어 번 뱉어냈다.

“코쟁이가 그걸 노리고 있는 기야. 어차피 이런 거, 뒤를 봐줄 테니 전쟁이라도 하자는 기지. 물자 대줄 거이고, 지면 날를 곳과 돈 준다고 꼬드기고 있지 않네? 이보라우. 권력을 잡았다고 다 되는 기는 아니야. 장성들 몰래 동원할 병력이 없는 기야.”

김정도가 담배를 재떨이에 끄며 아프게 마지막 말을 뱉어냈다.

양범이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진심이 담겼을 확률이 높았다.

“함께 기차를 타고 들어가서 바로 숙소를 친다? 이건가?”

김정도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래 이만 일어나서 선양의 정보국에 있갔어. 양 국장이 답을 주시라.”

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식당을 나섰다.

하여간 저놈도 예의를 배울 필요가 있겠다.

강찬은 양범을 바라보았다.

함께 있었으니 이제는 그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내가 병력을 보내려고 해도 북한에 연결된 선을 완전히 잘라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열차가 북한에 도착하기 전에 분명 정보가 새게 됩니다.”

양범이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지그펠트는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또한, 그가 가진 자금으로 유혹하면 북한 지도부는 충분히 엉뚱한 계산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그런데 주석이 이런 요청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상황을 조율한 다음 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양범은 말끝에 주석이 나간 곳을 바라보았다.

“북한은 신의를 지키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그펠트에 넘어가서 강찬 씨를 팔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게 하나 남는다.

“여기에서 지그펠트를 놓친다면 놈은 분명 또다시 위원장님이나, 바실리, 양범 씨를 노릴 겁니다. 그럼 나는 다시 전 세계를 돌며 놈이 만들어낸 적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걸 알면서 놈을 놓아둘 수는 없습니다.”

양범은 강찬의 속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강찬 씨는 이미 지그펠트조차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을 얻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겁니까?”

“위원장님이나 바실리, 양범 씨가 또 당할 위험보다는 낫습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강찬 씨는 정말 변함이 없군요.”

뜻밖에도 양범은 미소를 얼굴에 올려냈다.

“내가 함께 가겠습니다.”

“중국과 북한입니다. 공연히 나 때문에 곤란해지는 것은 싫습니다.”

“정보 세계의 1인자와 함께 지그펠트를 잡는 일입니다. 곤란하기보다는 내 발언권이 강해지게 될 겁니다.”

어쩐지 낯간지러운 말이어서 강찬은 그냥 잠자코 있었다.

“전에 말했듯이 우리 중국 속담 두 개를 따를 참입니다. 하나는 독을 먹을 바엔 접시까지 먹어라.”

이거야 원!

독을 먹었으면 독기 충만해서 그 접시로 적을 때려야지, 뭘 또 접시를 먹고 있을까?

강찬이 바람 빠지는 것처럼 웃은 다음이었다.

“그리고 산은 높고 황제는 멀리 있다. 한국에 비슷한 속담이 있습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강찬 씨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실리 국장 말대로 찍히면 누구든 죽는 거니까요.”

이번엔 둘이서 속없는 사람처럼 웃고 말았다.

다 함께 푸짐하게 차려진 점심을 먹고 난 후였다.

강찬은 양범과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였다.

입구가 분주한가 싶더니 중국 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고건우가 식당으로 들어섰다.

“부원장. 몸은 괜찮습니까?”

“예, 원장님. 쿠바에서 해결하지 못해서 이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반가움이 가득 담긴 고건우의 얼굴이 보기 좋았다.

인사를 나눈 강찬은 바로 양범을 가리켰다.

“원장님. 중국 정보국 양범 국장입니다. 양범 씨, 제가 모시는 한국 국가정보원 고건우 원장님이십니다.”

“양범입니다.”

“이제야 제대로 인사합니다. 고건우입니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었고,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양범이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잠시 앉으시죠.”

고건우가 입구를 흘깃 본 다음 자리에 앉았다.

“원장님. 북한의 김정도 주석을 2시간 전에 이 자리에서 만났었습니다.”

“누구요?”

“북한의 김정도 주석입니다.”

당황한 표정의 고건우에게 강찬은 김정도가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정말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부원장. 이건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그럴 겁니다. 다만, 앞으로 다시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아프리카, 쿠바 등을 돌며 전투를 치러야 한다면 우리는 견디지 못합니다. 게다가 북한 지도부가 지그펠트의 돈에 현혹되면 전쟁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부원장은 이미 결심이 섰군요.”

고건우는 강찬의 눈빛을 보며 답을 얻은 듯 보였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한국의 정세, 문재현의 당부, 그리고 이스라엘, 페루, 일본의 호소, 미국의 적극적인 구애까지.

대강 이야기가 끝났을 때, 석강호, 제라르, 최종일 조와 증평 특수팀 대원들이 내려와 고건우와 인사를 나눴다.

“앉아 봐.”

강찬은 대원들과 제라르에게 김정도의 제안과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고건우가 놀랍다는 눈으로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북한에 들어가 지그펠트를 제거하고, 함께 있는 북한 군부의 장성과 당 간부들을 사살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대원들은 강찬의 지시를 묵묵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중국 정보국의 양범 씨가 함께 움직인다. 그가 함께 가면 적어도 김정도가 함부로 서툰 짓을 하기는 어려울 거다.”

“다 같이 가는 거요?”

“그래야지.”

석강호의 질문에 강찬이 답을 했고, 듣고 있던 대원들 모두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인사했던 중국 정보국 국장이 같이 갑니까?”

“예.”

고건우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강찬의 뜻을 받아들였다.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범을 찾아 김정도와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선양역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발은 언제 할까요?”

“20분 뒤에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원들이 소지한 소총에 맞는 탄약이 좀 더 있었으면 싶습니다.”

“준비하죠. 선양역에 통지해 놓겠습니다.”

양범이 답을 하고 밖으로 나섰다.

강찬은 자리로 돌아와 고건우와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원장. 반드시 다시 봅시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고건우와 악수를 나눈 강찬은 초대소 입구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대원들과 함께 승용차와 승합차에 나누어 타고 초대소를 빠져나왔다.

염병!

뭔 놈의 일이 풀리는 거 같은데 쉽게 가는 건 하나도 없다.

40분쯤 달리는 동안 차 안에 날카로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북한으로 들어가 군 장성과 당 간부를 죽이는 일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선양 역 주변은 삼엄한 경계가 펼쳐져 있었다.

기차역에 VIP 대합실이 따로 있는 건 처음보았다.

아무튼, 강찬 일행은 양범과 함께 그쪽을 통해 바로 기차로 다가갔다.

요원이 분명한 정복 차림의 남자가 뒤편 객차를 가리켰다.

빠르게 기차에 올랐고, 채 자리에 앉기 전이었다.

치이이익.

일곱 량짜리 기차가 엔진음을 쏟아낸 후에 천천히 움직였다.

치이익. 철커덩! 철커덩!

역을 빠져나온 기차가 속도를 높였다.

출발이다. 북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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