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414화 (41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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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최선을 다하겠다.

“무슈 강!”

그라펠트가 항의처럼 강찬을 불렀고,

철컥! 철커덕! 철컥! 철컥!

움찔하는 경호원을 향해 소총의 총구가 달려들었다.

그래도 이성이 남아 있는지 그라펠트가 손을 들어 경호원들을 제지했다.

“그라펠트.”

놈은 대답하지 않은 채로 노려보기만 했다.

그래? 그럼 끝까지 가주지.

끄드등.

강찬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매서운 눈매, 붉은 노을만큼이나 강렬한 눈빛, 듬직한 어깨, 목덜미에 두껍게 붙은 거즈, 전날의 처절했던 전투가 고스란히 묻은 검은 군복과 팔뚝에 달린 태극기.

그라펠트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프랑스에서 함께 교육받던 강찬이다.

물론 당시에도 만만치는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당시에는 러시아의 안드레이가 끝까지 해볼 만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의 뒤에서 후광이 피어나는 느낌을 그라펠트는 처음 받았다.

그래도 모사드와 이스라엘의 특수 부대 사이렛 매트칼 출신의 그라펠트다. 그런데도 지금의 강찬이 뿜어내는 위압감이 얼마나 강렬하던지, 그는 시선에 담긴 반항의 빛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라펠트.”

“위, 무슈 강.”

경호원들이 긴장한 눈으로 강찬과 그라펠트를 번갈아 본 다음이었다.

“내가 이스라엘을 침공하겠다는 것은 부당한 짓이고, 두 번이나 북한을 이용해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키려 한 너희는 억울하다는 거냐?”

그라펠트는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이놈이 모사드의 수장이든, 이스라엘의 부총리든, 그건 상관없다. 내게 이놈은 한반도에 두 번이나 전쟁을 일으키려 수를 쓴 놈이고, 지그펠트를 끝까지 빼돌린 놈일 뿐이다.”

그라펠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젠장!

이렇게 되면 강찬이 지금 한 말을 인정한 꼴이 된다.

“적어도 다른 사람을 죽이려 할 때는 제 목숨 정도는 걸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너는 돌려보낸다. 그러니 원하는 것을 말해. 전쟁이냐, 가자지구의 평화 협상이냐?”

“그건 내가 결정할 부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10분 주겠다. 너의 답에 따라 내가 북한으로 갈지, 아니면 이곳에서 병력을 지휘해 이스라엘로 갈지를 결정한다.”

모사드의 수장이던 차피에게서도 못 느꼈던 이런 섬뜩한 위압감을 이 사람에게서 느끼게 되다니!

이 사람이 정말 함께 교육받던 강찬 그 사람 맞는 거지?

그라펠트는 누구에게인지 모를 질문을 떠올렸다.

“만약 북한에 갔을 때 지그펠트가 없다면 이스라엘이 무척 곤란할 거다. 그리고…….”

그라펠트가 강찬의 다음 말에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10분은 아까부터 흐르고 있다.”

이어진 강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것처럼 그라펠트가 옥상의 구석으로 움직였다.

철컥! 철컥! 철컥!

경호요원들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소총의 총구가 따라다니고 있어서 옥상은 아직까지 죽여주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강찬은 시선을 돌려 옥상의 입구에 선 로버트를 보았다. 최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로버트가 대원 둘에게 지시를 내렸다.

쩔걱. 쩔걱.

그린베레 둘이 죽은 차피의 팔과 다리를 들어 옥상 입구로 움직였다.

뒈지면 다 저렇게 되는 거다.

살아서 아무리 잘난 척하던 놈이라도.

그러니 남을 저렇게 만들려고 했다면, 그것도 한반도라는 땅에 전쟁이라는 걸 일으킬 생각이었다면, 제 놈이 죽거나, 이스라엘에 전쟁이 일어날 것 정도는 각오했어야 맞다.

강찬은 몸을 돌려 옥상의 벽에 팔을 걸치고 섰다.

태양은 이미 저 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대지의 한 뼘쯤 위로 아직 붉은 기운이 기다랗게 남아서 오늘의 여운을 뿌려대는 시간이었다.

어딘가 허전해서 강찬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등 뒤에서 석강호와 제라르, 곽철호, 윤상기가 소총을 들고 있는 것을 안다.

평소 같으면 함께 총을 들었을 거고, 이럴 때라도 다 같이 담배를 나눠 물었을 거다.

그러나 부대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싸움이다.

원했든, 아니든 간에, 지금 대한민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강찬이라면 이런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는 거다.

저놈들 눈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끔 말이다.

찰칵.

“후우.”

보고 싶다.

강대경, 유혜숙, 김미영, 김태진, 김형정, 그리고 한국의 거리가.

다 함께 소박한 식당에 들어가서 돈가스 잘라 먹고, 언젠가 오광택과 함께 갔던 그 식당에서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놓고 하얀 쌀밥 먹고 싶다.

그런데 유슬이 아버지부터, 홀어머니를 두고 간 엄지환, 양동식의 죽음이 강찬을 붙잡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희생된 대원들, 아프리카에서, 리비아에서, 그리고 국제 빌딩에서 총을 맞고 계단 아래로 떨어진 대원까지.

그들이 던진 목숨이 바탕이 되어 오늘은 쿠바에서 또 다른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양동식과 또다시 열 명이 넘는 대원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싸움이었다.

대원들이 누구를 위해 죽었을 거 같나?

강찬을 위해?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강찬이 죽었다는 소식에 병원 앞에 하얀 국화와 초를 들고 모였던 그 사람들을,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도화지를 들고 서 있던 그 어린 여자아이를, 그리고 태극기와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위해…….

그들은 하나뿐인 목숨을 주저하지 않고 던졌다.

남은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이란 걸 알면서도.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원하는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면, 죽어간 그 대원들과 요원들이 바라던 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지금보다 독해질 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싸움? 전투?

어떤 새끼들이 나서든!

누가 앞을 막든 반드시 이겨낼 거다.

“후우.”

강찬이 담배 연기를 뱉으며 어두워지는 하늘과 땅을 천천히 둘러볼 때였다.

“무슈 강.”

그라펠트의 음성이 들렸다.

천천히 돌아선 강찬의 앞에서 그라펠트는 굳은 얼굴이었다.

“1시간 뒤에 총리가 직접 가자지구의 평화 협상을 제안할 예정입니다. 또한, 차피는 해외 출장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발표할 것입니다.”

아직 남은 것이 있는 게 분명해서 강찬은 잠자코 그라펠트를 보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무슈 강의 약속을 원합니다.”

“내용을 말해.”

“이후로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않을 것, 지그펠트의 이전 잘못에 대해 더는 이스라엘에 책임을 묻지 않을 것, 마지막으로 중국과 수교하게 해 줄 것.”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건 두 번째밖에 없겠는데?”

“무슈 강이 최선을 다해준다고 약속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강찬은 그라펠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여간, 이 새끼고, 저 새끼고, 뭔 조건들을 이렇게 다는 건지.

“내가 얻어가야 하는 것들입니다. 새로운 모사드의 책임자가 된 내게 주는 선물이라고 여겨주십시오.”

말을 알아들은 제라르가 볼의 흉터를 길게 늘였고, 로버트가 놀란 눈으로 강찬과 그라펠트를 번갈아 보고 난 다음이었다.

“너라면 한번은 믿어주마. 좋아. 네가 말한 세 가지 조건을 이행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약속한다.”

“고맙습니다, 무슈 강.”

차피가 쓰러졌던 바닥에 시선을 던졌던 그라펠트가 다시 강찬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가보겠습니다.”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라펠트가 몸을 돌렸고, 남은 놈들이 그의 뒤를 따라 옥상에서 내려갔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석강호와 제라르, 그리고 두 사람이 소총을 내린 다음이었다.

“로버트.”

“위! 무슈 강!”

저놈은 어쩐지 강찬의 지시를 직접 받는 것이 신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비행기가 있는 곳까지 헬리콥터를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 가능하다면 30분 뒤에 출발하겠다.”

“위!”

로버트가 바로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저 새끼는 뭐가 저렇게 좋은 거야?”

강찬을 따라 다들 원래 앉았었던 자리에 앉았다.

프랑스 어를 아는 제라르야 당연하게 상황을 이해하고 있어서 강찬은 석강호와 곽철호, 윤상기에게 지금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개새끼가! 뒈질 소릴 지껄였었구만! 그런 줄 알았으면 몇 방 더 갈겨줄걸!”

석강호가 분한 얼굴로 차피가 널브러졌던 곽철호의 발밑을 노려볼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강찬의 전화가 울렸다.

“알로?”

[“무슈 강. 이 늙은이의 바람을 이렇게나 빨리 이루어주어서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소.”]

부드럽기만 했던 우즈만의 음성에 흥분이 제대로 섞여 있었다.

이 새끼들이 벌써 발표할 수가 있나?

강찬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따로 연락을 해왔소. 1시간 뒤에 평화 협상을 제안할 예정이니, 답변을 준비해 두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잘 되셨네요.”

[“고맙소, 무슈 강! 그곳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구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신께서 불쌍하게 죽어가는 그 아이들을 위해 무슈 강을 보내신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아랍인들이라고 다 악인들만 있는 건 아니겠지.

강찬은 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구해주지 못했던 여자아이들을 떠올렸다.

그때 이런 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즈만께서 뿌린 씨앗을 그 아이들이 수확한 것이라 믿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될 것을 기대한다고 하셨잖습니까?”

[“무슈 강.”]

우즈만은 목이 멘 듯한 음성이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동안, 나는 언제나 무슈 강이 만드는 질서를 따를 것을 신께 맹세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늙은이에게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연락하세요.”]

“건강하세요.”

기분 좋은 웃음이 넘어오며 통화가 끝났다.

또 하나를 정리한 느낌이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을 때였다.

쩔걱. 쩔걱.

로버트가 어두워진 옥상에 나타났다.

“헬리콥터 준비가 끝났습니다.”

“고맙다.”

로버트가 뿌듯한 표정으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

몽골의 한국 기지는 분주함과 어수선함이 뒤엉킨 분위기였다. 러시아와 중국의 거물 둘이 철수하는 바람에 이런저런 준비가 한창인 탓이었다.

바실리는 양범과 함께 여전히 컨테이너에 있었다.

“모사드의 수장을 죽일 생각을 하다니. 이제 나는 무슈 강의 적수가 못 될 것 같군.”

“저는 강찬 씨가 중국으로 온다는 것이 더 놀랍습니다. 지그펠트를 찾아낸 것도 그렇지만, 돌아오는 길에 바로 북한으로 향하겠다고 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누구든 간에 찍히면 죽는군.”

말을 뱉은 바실리와 듣고 있던 양범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짧지 않은 웃음이 지나간 다음이었다.

“강찬 씨가 한국을 일방적으로 내세우지는 않을까요?”

양범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실리를 돌아보았다.

“흐흠.”

“너무 급하게 성장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걱정스럽습니다.”

작은 돌풍 하나가 피어났다가 컨테이너 반대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는데 바실리는 잠시 그 모습에 시선을 주었다.

“그는 자기 사람들을 감쌀 줄 안다. 라노크를 중심으로 한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잊을 남자는 아니라고 믿어야겠지.”

“그렇군요.”

양범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바뀐다면 우리도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겠지. 피 냄새가 한동안 진동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껏 그렇게 질서를 만들어 오지 않았나?”

바실리가 입술 끝을 올리며 웃었고, 양범이 비슷하게 따라 웃었다.

“주연을 만나거든 한 번쯤 러시아에 들러달라고 전해주겠나?”

“그러겠습니다.”

양범이 답을 들은 바실리가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내쉬었다.

“다윗의 별을 찾아내고,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남자를 볼 줄은 정말 몰랐다. 게다가 아랍을 하나로 만들더니, 모사드의 수장을 날려버렸다.”

“어쩐지 그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일이 자연스럽게 이렇게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빌어먹을!”

양범의 대꾸에 바실리가 대뜸 욕을 뱉어냈다.

“무슈 강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그 중심에 내가 설 거라고 믿고 있었지. 흥! 그런데 고작 조연 2가 되다니.”

“그렇다면 내가 조연 3이 됩니까?”

“그건 루드비히와 의논해야 하지 않을까?”

뻔뻔한 답에 양범이 웃음을 터트렸고, 바실리가 따라 웃었다.

“출발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때 총을 멘 사내가 다가와서 굵직한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갈 시간이군. 자네는 자네 세상으로, 나는 내 세상으로. 덕분에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바실리가 내민 손을 양범이 단단하게 잡았다.

***

빠르게 달리는 승합차 안에서 고건우는 연신 서류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누가 나올지는 모릅니다. 중국이 압력을 행사했고, 전에 송금한 사실이 있어서 북한이 면담을 수용하긴 했지만, 어쩌면 엉뚱한 인물을 내세워 물을 흐릴 수도 있습니다.”

김형정이 걱정을 털어내지 못한 얼굴로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부원장의 성격상 물러서지 않을 텐데 그것이 가장 걱정입니다.”

“나와 부원장, 이렇게 둘만 들어가는 건가?”

“부원장의 의사가 어떤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방북 명단에 원장님과 부원장님만 명기했고, 그 외에 다수, 이렇게 적어두었습니다.”

“흠. 쉽지는 않겠군.”

고건우가 쓴 웃음을 지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느닷없이 전화로 요청해온 일이었다.

중국으로 갈 예정이고, 그곳에서 바로 북한으로 넘어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문재현도, 고건우도, 그리고 실무 책임자인 김형정도 그저 웃을 수밖에 없을 만큼 놀라운 강단이기도 했다.

쿠바에서 북한 8군단 특임대를 전원 사살한 지휘관이 바로 북한으로 가겠다는 거다.

“김 팀장.”

“예.”

성남 공항으로 방향을 틀 때였다.

고건우가 불렀고, 김형정이 답을 했다.

“만약의 사태에, 최악의 순간이 와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고건우가 서류에서 시선을 들어 김형정을 똑바로 보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부원장을 구해라.”

김형정은 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렴 북한에서 일이 생겼는데 그걸 구하러 갈 시간과 방법이 있겠나.

그러나 행정가였던 고건우가 죽음을 각오하고 전하는 다짐이어서 김형정은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승합차의 창으로 성남공항이 보이는데도 말이다.

***

공항에서 대기하던 민간 항공기다.

무기를 벗어놓고, 편안하게 가는 비행.

빈자리가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그걸 굳이 표시 내는 대원은 없었다.

“푸흐흐!”

거기에 원래 그런 걸 제대로 못 느끼는 놈도 있었는데, 그런 놈에게 빵과 기내식을 안겨주었더니 저런 웃음이 나왔다.

강찬은 일등석의 중간쯤에 앉아서 라노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양범에게 몇 가지 당부를 전해 놓았습니다. 그렇더라도 북한의 반응은 늘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라노크는 걱정이 앞선 음성이었다.

[“그들의 체제가 무너진다고 판단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잘 알아서 하겠지만, 지금 무슈 강의 위치가 12시간 전과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딘가 낯 간지러운 말이어서 강찬은 대꾸 없이 듣기만 했다.

[“돌아오면 안느와 함께 넷이서 식사합시다.”]

“예, 위원장님.”

[“이런! 호칭이 낯설어서라도 한국의 대사를 다시 해야겠군요.”]

웃음으로 통화를 끝냈다.

전화기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강찬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피식.

언젠가 비행기를 타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라노크를 보며 더럽게 바쁘게 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모습이 꼭 그렇다.

이번만큼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끝낼 거다.

반드시.

그게 좋겠지?

그렇지? 지그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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