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412화 (41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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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늦은 거지? 그렇지?

휘이이이잉! 휘이이잉!

아직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전투기가 돌아간 뒤에 부상자들을 2층 방으로 옮겼고, 김형정과 통화를 했으며, 부상의 정도에 따라 휴식을 취하게 했다.

강찬은 제라르와 함께 옥상에 있었다.

“또 살았습니다.”

“그럼 죽을 줄 알았냐?”

제라르가 기가 막힌다는 것처럼 웃고 난 다음이었다.

저벅저벅.

석강호와 곽철호가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왔다.

“뭐야?”

“어렵게 만든 거요. 내가 또 이런 거에 소질 있잖소?”

두 놈이 양손에 밥공기 같은 그릇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커피다. 그것도 봉지 커피.

“불을 어디서 구했냐?”

“테이블 부서진 거랑 의자 부서진 거 태웠소. 조금 있다가 가져올 컵라면도 기대하쇼.”

확실히 저 새끼는 없어서 못 먹는다면 모를까, 있는 걸 지켜보고 있을 놈은 아니다.

석강호가 건넨 밥공기를 강찬이 받았고, 제라르는 곽철호가 건네주는 밥공기를 받았다.

한 모금을 마시자 몸과 마음이 동시에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자! 또 이런 땐 이걸 함께 해줘야…….”

석강호가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무식한 것과 별개로 이놈은 확실히 운치를 안다.

넷이서 주둥이에 담배를 물고 번갈아 불을 붙였다.

“후우.”

이게 육체 건강에는 지랄일 텐데, 죽음을 코앞에 두었다가 살아난 이후의 정신 건강에는 이만한 것도 없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그때 강찬의 전화기가 울렸다.

하필이면 이런 때!

강찬은 왼손에 밥공기, 입에 담배를 문 채로 전화기를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부원장님. 미국에서 셔먼의 위치를 알려주겠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코 큰 새끼들이 무슨 수작을 하려고 이러지?

[“DIA에서 직접 온 연락이고, 정보를 반드시 부원장님께 알려드리라는 당부도 있었습니다.”]

“미국이 왜 그런 짓을 하려는 거죠?”

[“국제 사회에서 잃어버린 명분을 얻으려는 계산 같습니다. 뭐라고 해도 부원장님을 속여서 제거하려고 했던 모양새라, 셔먼을 우리에게 넘겨 명분도 찾고, 나중을 기약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하겠구나 싶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우선 부상자들을 옮기고 나서 결정하지요. 지금 당장은 움직일 방법도 없습니다.”

[“외인부대가 거의 도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부상자 수습하게 되면 이후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통화를 마친 강찬은 내용을 한국말과 프랑스 말로 두 번 전했다.

넷이서 옥상 너머의 어둠을 감시하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자동차의 불빛이 줄줄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염병!

불빛이 이렇게나 반가운 걸 보면 살긴 살았나 싶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인 거다.

치잇. “차량이 접근 중이다. 외인부대로 보이지만, 혹시 모르니 1층 입구 경계해.”

강찬은 무전을 통해 현관을 지키게 했다.

부르르릉! 부르릉! 부르르릉!

트럭은 곧바로 건물로 다가왔다.

그것도 기다랗게 늘어져서 거창하게.

10분쯤 지난 다음이었다.

끼이익! 끼익! 끼이익!

라이트 불빛을 앞세운 지프와 트럭들이 건물 앞에 멈춰 섰고, 익숙한 외인부대 복장의 군인들이 내렸다.

“제라르! 부상자들을 먼저 살피게 해. 외곽 경계 부탁하고.”

“Oui!”

제라르가 바로 옥상에서 내려갔다.

“담배 있냐?”

강찬의 말에 석강호가 담배를 건네주었다.

찰칵.

불을 붙일 때쯤 제라르가 현관을 나가 외인부대원 앞에 다가서는 것이 보였다.

늘 곁에 있어서 평소에는 잘 모르겠지만, 저렇게 외인부대를 통솔할 때의 제라르는 확실히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자세며, 눈빛, 표정, 그리고 몸 전체에서 뿜어나오는 카리스마. 그런데 저런 새끼가 왜 옆에 있을 땐 조금 모자란 놈처럼 헬렐레하거나 슬픈 눈빛으로 보이는 건지.

피식 웃은 강찬은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후우.”

하긴 옆에 있는 다예처럼 초지일관 무식해 보이는 것보다는 좀 나은 걸까?

강찬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석강호가 입을 열었다.

“이제 어쩔 거요?”

“우리 아직 지그펠트란 그 개새끼, 코빼기도 못 봤다. 그 새끼 모가지 돌려주러 가야지.”

“푸흐흐.”

석강호가 개를 눈앞에 둔 배고픈 호랑이처럼 눈을 번들거렸다.

외인 부대원들이 만들어낸 소란이 활기처럼 느껴지는 밤이었다.

제라르의 지시로 부상자들에게 그나마 제대로 치료를 하고 난 다음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요란을 떨며 느닷없는 헬리콥터가 날아왔고, 경계를 섰던 외인부대에서 무전이 건너왔다.

“아파치 두 대에 블랙호크 여덟 대입니다.”

강찬은 피식 웃으며 날아오는 헬리콥터를 노려보았다.

아파치에 블랙호크라면 정체야 빤한 거 아니겠나.

두두두두두두.

“저, 이 씨……!”

석강호가 욕을 뱉다 말고 인상을 찌푸렸다.

개새끼들이 좀 멀찍이 내리든가!

하필이면 죽은 놈들의 팔다리가 널린 한중간에 내려서서 피에 젖은 흙먼지를 사방에 뿌려댔다.

“Move! Move!”

아니나 다를까, 미국 그린베레였다.

상황을 보면 빤히 짐작할 텐데도 놈들은 마치 극적인 전투 한 중간에 내려선 것처럼, 소총을 들고 바쁘게 내려섰고, 급한 척 경계를 섰다.

“어이구! 저 지랄들 좀 보쇼!”

석강호의 말에 강찬은 바람 빠지는 것처럼 웃었다.

거 왜 있잖나?

시상대 다 치우고 청소까지 마쳤는데 뛰어오는 마라토너. 막말로 그런 선수들에겐 박수라도 쳐주겠는데 이놈들은 속이 너무 들여다보이는 짓이라 미운 거.

강찬이 한심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을 때 한 놈이 바쁘게 뛰어 올라왔다.

“캡틴!”

아프리카에서 함께 싸웠던 놈을 보낼 줄은 몰랐다.

그러나 어떤 자리, 어떤 경우에도 죽음을 함께 뚫고 나온 전우는 반갑다.

“오랜만이야.”

“연락받고 바로 달려왔습니다.”

“연락을 언제 받았지?”

로버트는 답을 하기 곤란한 얼굴이었다.

피식.

명령으로 사는 놈에게 이런 걸 악착같이 따져서 뭐하겠나.

강찬은 그냥 웃고 말았다.

“인사나 하지?”

“오랜만입니다.”

로버트가 강찬이 고갯짓으로 가리킨 석강호, 제라르, 곽철호와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부상자들을 우선 미국으로 이송하겠습니다.”

강찬의 시선을 본 로버트가 바로 말을 이었다.

“상태가 위급하다고 들었습니다. 부상자들의 안전은 제 명예를 걸고 지키겠습니다.”

강찬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한 말이었다.

특수팀 지휘관의 약속은 무겁다.

특히나 이렇게 똑바로 바라본 시선에 명예를 걸었다면 더욱 더.

위급한 대원들을 위해서도 가장 현명한 선택이어서, 강찬은 석강호, 곽철호와 의논한 뒤에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

부상자들을 헬리콥터로 옮길 때였다.

윤상기가 곤란한 얼굴로 강찬을 찾았다.

“강 선배님이 이곳에 남으시겠답니다.”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는 밤이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그렇게 고집을 피울 줄 짐작하고는 있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옥상에 있던 인원과 함께 강철규에게 움직였다.

“외인부대 2개 연대와 특수팀, 미국의 그린베레까지 있는 거잖아. 지금은 일단 헬리콥터 타고 병원으로 가.”

강철규가 고집스러운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아버지.”

곽철호, 윤상기가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강찬과 강철규를 힐끔거렸고, 석강호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주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병원에 가 있으마.”

강철규가 몸을 돌려 헬리콥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푸흐흐.”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낫잖아.”

“누가 뭐랬소? 나도 다음부터는 아버지라고 불러야겠소.”

“저도 그러겠습니다.”

곽철호가 영문도 모르고 끼어들었다.

쩔걱. 쩔걱.

강찬은 강철규를 따라 부상자들이 실린 헬리콥터를 향해 움직였다.

소문을 어떻게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강찬을 처음 보는 외인부대와 그린베레 대원들이 신기한 눈으로 강찬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강찬은 남일규, 차동균, 오광택을 비롯해서 대원들의 모습을 일일이 확인했다.

두두두두두두두.

“다녀오마.”

헬리콥터 소리 때문에 강철규가 한 말은 입술 모양을 보며 알았다.

알고 있었을 거다.

지금처럼 하얀 낯빛으로는 더 이상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것을, 외인부대와 미국 그린베레까지 온 이상 지금은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강찬이 피식 웃자 강철규가 한쪽 입술을 들며 웃었다.

헬기에서 몸을 돌린 강찬은 뒤에 서 있던 로버트를 보았다.

“로버트! 너의 약속을 믿는 거다.”

“그 점은 염려 마십시오!”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로버트가 검지와 중지로 하늘을 가리켰다.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부상자들을 태운 헬리콥터가 떠난 다음이었다.

“제라르! 식사하고 아침까지 쉰다. 외인부대에 다시 한 번 경계 지시해.”

“Oui!”

“곽철호! 대원들 식사 마치면 전원 다 재워.”

“알겠습니다.”

프랑스와 그린베레 대원들이 가져온 음식을 배불리 먹었고, 외인부대의 간이 침구를 이용해 2층 방에 누웠다.

적들의 시체를 한곳으로 모으느라고 밖이 시끌시끌했는데 눈을 감자 잠이 삽시간에 몰려들었다.

‘지그펠트 이 개새끼.’

강찬은 놈의 목을 돌려주는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하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미국이 결국 우리를 제물로 삼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부총리겸 외무장관인 차피 프레슬리가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만약 미국이 셔먼을 미스터 강에게 넘긴다면 이제 그의 적은 우리만 남게 됩니다.”

총리가 주관하는 이스라엘 안보담당 회의다.

모두가 침울한 표정으로 차피의 발언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국은 최근 미국과 대등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끝까지 버티면, 하나로 뭉친 아랍권은 물론이고, 러시아, 프랑스, 중국을 동시에 상대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후우.”

총리가 모사드 담당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미스터 강이란 사람의 성향은?”

“여기 그라펠트가 그와 함께 교육을 수료했습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으시는 것이 판단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총리와 참석한 이들의 시선을 받은 그라펠트다.

그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 마디로 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를 제거하든가, 양보하든가, 둘 중 하나가 아니라면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라펠트의 발언에 가뜩이나 무거웠던 회의장의 분위기가 납을 끼얹은 것처럼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제거할 방법은?”

짧은 침묵을 깨고 총리가 던진 질문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영상을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라펠트가 시선을 돌리자, 벽 한쪽에 있는 화면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활약하는 강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500명의 쿠드스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쟁취했고.”

총리가 불편한 시선으로 그라펠트에게 시선을 돌리자, 바로 화면이 꺼졌다.

“다시 아프가니스탄에서 UIS를 섬멸했으며, 쿠바에서 30명의 인원으로 500명을 상대했습니다.”

“그라펠트. 그가 잘난 것을 묻는 게 아니라 죽일 방법을 물은 것으로 아는데?”

“사이렛 매트칼의 전멸을 각오하면 대략 5%의 성공 확률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웃을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총리는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가 지금 만으로 19세라는 것이 사실인가?”

“확실합니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총리가 기가 막힌 것처럼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라노크가 한국에 있었던 점, 그리고 그의 부친이 프랑스 공트 자동차 판매 회사를 설립한 점, 외인부대 제라르 드 미르미에가 그의 곁을 지키는 점, 한국의 국가정보원에서 그를 관리하고, 프랑스 정보국에서 교육한 점 등을 비춰볼 때…….”

그라펠트가 서류에서 시선을 들었다.

“그는 한국과 프랑스가 비밀리에 키워낸 인물이라는 판단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후우. 모사드가 그토록 감시한다던 라노크가 결국 그런 성과를 이루다니……. 믿을 수가 없군. 자!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안은?”

총리의 시선을 받은 차피가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제거, 전면전, 그리고…….”

“미국처럼 우리도 지그펠트를 그에게 넘기는 것밖에 없겠군.”

“그렇습니다.”

커다랗게 숨을 내쉰 총리가 상체를 세우고 둘러앉은 이들을 날카롭게 돌아보았다.

“지그펠트를 넘겼을 때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가장 큰 부담은 분석했나?”

아픈 질문이었다.

강찬의 힘을 인정하고, 이스라엘이 고개를 숙이겠다는 가정에서 나온 질문이라 그렇다.

“금본위 화폐를 포기하고, 당분간 영국과 미국의 경제를 조율하기 어렵습니다.”

답은 재무장관이 했다.

“이 경우 지금껏 숨통을 조여왔던 미국의 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유가의 관리도 우리 손을 떠나게 됩니다.”

“기간은?”

“파르탈이 저들의 손에 있어서, 최단 10년, 최장 30년은 지나야 지금의 경제 기득권을 회복할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총리가 이마를 쓰다듬다가 엄지로 관자놀이를 눌러댔다.

“미국이 셔먼을 빼돌리거나, 가짜 셔먼을 넘길 확률은?”

“러시아, 중국, 프랑스의 위성이 그가 탄 비행기를 정확하게 감시하고 있습니다. 미스터 강은 이미 정보 세계의 새로운 지도자입니다. 그 점을…….”

그라펠트가 총리의 날카로운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불쾌하고 칙칙한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우리가 전면전을 감당할 경우, 승리할 확률은?”

“미국이 우리 편에 설 경우…….”

“셔먼을 팔아먹는 그들이 우리 편에 서겠나? 그러니 이스라엘! 우리 단독으로 싸웠을 경우만 가정해.”

“1% 미만입니다.”

기가 막힌 듯 토해낸 콧소리가 총리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가자 지구를 비운 다음, 러시아, 중국, 프랑스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됩니다.”

“한국인이 아랍을 하나로 뭉치게 하다니!”

총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하긴, 아비부와 지브릴을 그렇게 쉽게 제거할 줄은 상상조차 못 했지. 우리가 그토록 관리하는 와중이었는데도 말이지.”

그가 탄식처럼 긴 숨을 토해낸 다음이었다.

“현재 지그펠트는?”

질문을 받은 모사드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총리만 알아듣는 답이었다.

***

셔먼은 지친 기색으로 얼굴을 길게 쓸어내린 후에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DIA, NSA, CIA, 그리고 대통령 집무실에서 쉴 새 없이 전화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손에 들고 있는 다른 전화기의 번호를 확인하고 버튼을 눌렀다.

[“Your dial is temporary not in service…….”]

종료 버튼을 누른 셔먼은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윗의 별이라는 인간이 이따위 저급한 방법으로 몸을 감출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CIA 국장의 지위를 간직하고, 힘을 쓸 수 있다면 지그펠트가 감히 이런 방법을 쓰지도 못했을 거다.

셔먼이 이를 악물자 축 늘어진 그의 볼이 보기 흉하게 꿈틀거렸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급유를 위해서라도 두 시간 안에 착륙해야 하기 때문에 그 안에 방법을 찾아두어야 했다.

지금 셔먼을 구해 줄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다.

‘무슈 강!’

그는 현명한 판단을 해줄 것이고, 끝까지 약속을 지켜줄 것이며, 지그펠트를 찾아내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줄, 그런 능력이 있는 남자다.

지금은 일단 자존심을 접고 그에게 협조해서 지그펠트를 찾는다.

강찬이라면 분명 관심을 보일 거다.

게다가 그에겐 아직 미국과 CIA란 배경도 있다.

셔먼은 이를 꽉 깨문 뒤에 강찬의 번호를 찾아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

통화 연결음이 세 번 울린 다음이었다.

[“알로?”]

강찬의 답이 건너왔다.

이상하게 든든했다.

페루의 특수 부대 500명을 30명으로 이겨낸 지휘관답게 강인한 음성이었다.

“무슈 강, 셔먼이오.”

[“하고 싶은 말을 해.”]

“협상을 하고 싶소.”

셔먼이 창밖으로 시선을 주며 강찬의 답을 기다렸다.

이 사람은 분명 현명한 판단을 할 거다.

[“셔먼.”]

봐라! 부드러운 강찬의 음성이다.

셔먼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전투기가 당신이 탄 비행기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좀 전에 있었다. 미국의 DIA에서 정보를 알려주었지.”]

“무슈 강!”

[“격추를 승인한다던데? 그러니 이 전화는 좀 늦은 거지? 그렇지?”]

강찬의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셔먼은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쳤다.

[“지옥에 가면 로망이 기다릴 거야. 그러니 마지막 기도나 하고, 너 때문에 희생된 우리 대원 중 양동식이라고 있는데 그 양반 만나지 않게 조심해. 알았어?”]

셔먼이 멍한 상태에서 입조차 떼지 못할 때였다.

[“잘 가. 이 개새끼야.”]

강찬의 마지막 말이 건너온 다음, 전화가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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