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411화 (41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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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태극기 달고 있잖아요.

붉게 차오르는 혈액 팩을 바라보며 강찬은 답을 하지 못했다.

대원들이 쭉 서 있는데 ‘내 피를 받으면 죽지는 않아!’라고 어떻게 말을 하겠나. 그것도 수혈받은 당사자인 강철규에게 말이다.

목덜미에 난 상처에 석강호가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도배하듯 붙이는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확실히 나이란 무섭다.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강철규는 강찬의 곁에 서서 지켜보기만 할 뿐,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세 번째 혈액 팩이 가득 찼다.

더는 피를 뽑기 어렵다는 것처럼 대원이 주저할 때였다.

“그걸로 적당히 나눠서 수혈해.”

석강호가 단호하게 말을 건네고는 강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만합시다. 아직 전투가 남았잖소?”

강찬은 이를 악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몸뚱이가 그만하자고 악을 쓰는 참인 데다, 석강호의 말대로 아직 전투가 남아서 그랬다.

“내게도 수혈을 했었나?”

대답은 석강호가 했다.

그것도 입을 열지 않고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래서 내가 살아난 건가?”

“나머진 나중에 얘기해.”

이번 답은 강찬이 했다.

강철규가 볼을 씰룩이며 바라보다가 옥상 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던져 놓으면 혼자서 백 명쯤 죽일 듯한 눈빛이었다.

어둠, 바람, 그리고 둘러선 적이 전부인 세상에서 중상자들에게 피를 나누어 넣었고, 그동안 곽철호와 대원들은 무기를 점검했다.

“대략 300명쯤 남았을 거다.”

그때 주위를 둘러보던 강철규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이대로 한 번 더 붙으면 견디기 어렵다. 적도 그걸 짐작해서 전열을 가다듬는 거겠지.”

강철규는 새끼를 잃은 수사자처럼 독이 잔뜩 오른 눈빛이었다.

“내가 나가겠다. 두 명만 지원해다오.”

강찬은 몸을 일으켰다.

“잠깐만.”

그리고는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어두운 계단을 거쳐 그나마 윤곽이 보이는 2층의 복도를 걸었고, 바로 방으로 들어섰다.

“지금 나가는 게 속은 후련할지 모르지만, 좋은 방법은 아냐.”

“물론 나간 셋은 돌아오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대로 있는 것보단 분명 효과적인 전투를 할 수는 있다.”

“그럼 나하고 석강호가 따라가도 되겠어?”

강철규가 화난 듯한 눈빛으로 강찬을 보았다.

“부원장이 희생될 거라면 지금 이런 전투조차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내겐 마찬가지야. 내가 석강호나 다른 대원을 죽을 곳에 보내놓고 아침을 맞을 것 같아? 그럴 바엔 다 함께 최선을 다해 버텨보는 게 백번 나아. 그러니까 그만해.”

강찬이 돌아서기 위해 몸을 돌리는 참이었다.

“부원장!”

강철규의 간절한 음성이 강찬을 붙들었다.

긴박하고 처절한 순간이어서 그럴까?

강철규의 마음이 그대로 강찬에게 전달되었다.

죽어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저 마음이.

강찬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고 강철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원래는 이런 사람이었을 거다.

상처가 없었다면, 고통스러운 환각이 없었다면, 분명 이렇게 강찬을 대해주었을 사람.

“아버지.”

움찔!

강철규의 머리와 눈빛이 분명 그렇게 움직였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 내가 살자고 대원들을 죽을 길로 내보낼 수 있을지. 아버지가 정말 중요한 인물이어서 내가 대원 둘과 죽으러 나가겠다고 하면 보내줄 수 있겠어?”

강철규는 마른 침을 삼킬 뿐,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은 아버지 같은 지휘자가 무엇보다 필요해. 그러니까 아까처럼 1층을 도와줘. 알았지?”

내용이 슬펐나?

강철규는 어쩐지 우는 사람처럼 보였다.

영감이 다 늙어서 감정이 풍부한 척하기는!

피식.

강찬의 웃음을 본 강철규가 억지로 입 끝을 움직였다.

“어떻게 할 거야?”

“아들이 부탁하는 건데……. 알았다.”

“고마워. 존댓말은 좀 더 시간을 줘.”

처음 봤다.

지금처럼 인자하고 부드러운 강철규의 미소는.

강찬이 다시 옥상으로 움직일 때였다.

옥상에서 담배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1층에 있으마.”

그래서인지 강철규가 아래층으로 움직였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강철규의 발걸음 소리가 강찬이 계단을 밟는 소리에서 멀어지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어색하고 낯간지러울 줄 알았다.

그런데 차라리 후련했다.

또다시 적이 들이닥치면 결과를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면 마지막 기회를 잡은 건지도 모른다.

“후우.”

나직하게 숨을 내쉰 강찬이 옥상으로 올라섰을 때 석강호는 바닥에 담배를 비벼끄고 있었다.

“다함께 담배 하나 피웠소.”

“잘했다. 나도 하나 주라.”

“푸흐흐.”

석강호가 담배를 꺼내 강찬에게 디밀었고, 바로 라이터를 켜주었다.

“후우!”

강찬은 연기를 뿜으며, 석강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담벼락에 등을 기댔다.

저격수 셋이 경계를 서는 안쪽에 대원들이 강찬과 비슷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고개를 돌리다가 곽철호와 눈이 마주쳤다.

이럴 때면 이상하게 웃음이 나온다.

피식. 히죽.

차동균이 그러더니 곽철호도 석강호와 비슷하게 웃는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런 적은 많았는데 이게 또 왜 웃음이 나오는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후우,”

강찬이 담배 연기를 뱉어내고 다 피운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끌 때였다.

“적이 움직입니다!”

이두희의 낮고 단단한 말이 들렸다.

철컥! 철커덕! 철컥! 철컥!

누구랄 것 없이 소총을 겨누며 옥상의 담벼락에 붙었다.

30미터쯤 떨어진 어둠 속이다.

적들이 행진을 앞둔 것처럼 방패를 앞세우고 있었다.

치잇.

강찬은 빠르게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적들이 다시 올 모양이다. 그래 봐야 3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적이다.”

석강호와 곽철호, 대원들이 강찬을 힐끔 보았다.

“이 싸움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살아나가는 대원을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30명으로 500명을 이긴 전설과 이 경험을 간직한 선배를 후배들에게 남겨준다.”

감정이 끓어 올랐는지 곽철호와 대원들이 이를 악물며 눈빛을 빛냈다.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특수팀의 전설을 만드는 거다. 우리 모두 이곳을 살아나가는 더럽게 재수 좋은 대원을 위해 멋지게 싸우자.”

무전이 끝난 다음이었다.

“후아! 후아! 후아!”

기다렸다는 것처럼 섬뜩한 고함이 어둠을 뚫고 건물을 위협했다.

철컥! 철커덕! 철컥! 철컥!

시작이다.

방패 뒤의 적들이 소총을 앞으로 겨누는 것이 보였다.

강찬은 석강호에게 시선을 주었다.

피식. 히죽.

“얼른 내려가쇼.”

“부탁한다.”

“푸흐흐.”

좋아! 해보자, 이 개새끼들아!

강찬이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치이잇.

기다란 무전 연결음이 들렸고,

“대장.”

느닷없는 음성이 무전기를 통해 강찬을 찾았다.

“폭격 전에 위치를 확인한다. 건물 외곽에 아군이 있다면 건물로 철수하길 바란다.”

박승용? 대한민국 전투비행단 박승용 소령?

강찬이 멍하니 고개를 돌려 석강호와 곽철호를 보았는데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치이잇.

“반복한다. 폭격 예정이다. 아군은 서둘러 건물로 철수하길 바란다.”

강찬은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웃으며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치잇.

“현장이다. 아군은 전부 건물에 있다.”

치이잇.

“라져, 대장! 이후 전투는 우리가 맡는다.”

척! 척! 척! 척! 척! 척!

적들이 발걸음 소리를 내며 건물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 최선을 다해서 막고…….

강찬이 계단을 향해 움직일 때였다.

쐐애애액! 쐐애액! 쐐애애애애액!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치잇. “목표 확인했다. 폭격하겠다.”

그리고 박승용의 든든한 무전이 곧바로 들어왔다.

***

바실리가 갸름하게 뜬 눈으로 양범을 보았다.

“옆에 구렁이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공중 급유기 두 대를 지원했을 뿐입니다.”

“위성 사진 분석하고, 한국의 대통령과 통화한 내용은 왜 빼는 거지?”

“국장님이 내게 기회를 준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흥!”

밉지 않은 시선으로 양범을 보던 바실리가 입술 한쪽을 들며 웃었다.

“결국, 자네도 정보국의 국장이라는 거지?”

“보고 배운 게 있으니까요.”

“그렇군. 그렇다면 우리 모처럼 그 한국의 소주란 걸 한잔 마셔줄까?”

“그럴까요?”

바실리가 검지와 중지를 들어 사내를 불렀고, 소주를 준비하라고 시켰다.

“한국의 대통령도 대단하군. 쿠바 땅에 전투기를 보낼 생각을 하다니. 미국의 코앞인 걸 빤히 알면서도.”

“미국의 처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데다, 미국과 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이용한 게 아니겠습니까?”

“대개는 그렇더라도 폭격 명령까지 내리기는 어렵지. 이렇게 해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완벽하게 입지를 다지게 되겠군.”

소주 한 병과 잔 두 개, 그리고 러시아식 감자튀김이 테이블에 준비되었다.

“콧대를 얻어맞은 미국이라니…….”

쪼르륵. 쪼르르륵.

잔에 술을 채운 바실리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양범을 다시 보았다.

“쿠바의 자원을 싹쓸이해서 경제를 살려주었으니 쿠바의 입장에서야 미국보다 중국의 말 한마디가 더 무서웠겠지.”

“대신 이스라엘과는 좀 더 불편해질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바실리가 잔을 들자 양범이 앞에 있는 잔을 마주 들었다.

“그렇더라도 멋진 한 수였다.”

“강찬 씨가 내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으니 이걸로 빚을 갚은 셈입니다.”

“한국과 확실한 관계를 덤으로 얻었잖나?”

“한국 대통령의 결단 덕분입니다.”

양범의 대답과 동시에 두 사람이 동시에 잔을 비웠다.

***

“폭격이 시작되었답니다.”

“아군의 희생은요?”

“부원장이 전화기를 꺼 놓아서 교전이 끝나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건우의 답을 들은 문재현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를 요청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고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문재현은 뒤뜰로 시선을 주었다.

중국이 위성 사진과 공중급유기를 먼저 제안해왔다.

언제 이렇게 대한민국의 위상이 올라갔지?

우즈만이 전화해서 아랍의 병력을 파견하겠다는 뜻을 밝혀왔으며, 이스라엘 부총리겸 외무장관이 직접 전화를 걸어 간곡하게 중재를 부탁하는 일도 있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문재현은 웃을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었던 대원들이 자꾸만 가슴을 파고든 탓이었다.

오늘, 세계의 중심으로 치솟은 대한민국의 위상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숨져 간 우리 대원들과 요원들의 희생이, 그들이 흘린 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맙고 미안합니다.”

문재현은 하늘을 향해 말을 건넸다.

“절대로 여러분의 피와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문재현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선열들이 보고 있다.

그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

“셔먼! 그 늙은이가 모든 것을 망치는군!”

미국 대통령은 전에 없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중국의 공중급유기에 한국의 전투기가 쿠바 영역을 들어갔는데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나? 방법을 생각해 봐!”

각료들은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프랑스 외인부대 지원 병력까지 곧 도착해! 그런데 우리가 그때까지 병력을 보내지 못한다면 결국, 내가 한국의 대통령에게 립서비스만 한 꼴이 되잖나!”

대통령이 답답한 듯 말을 토해낸 다음이었다.

“셔먼을 버리십시오.”

NSA 국장이 결심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의 위치를 미스터 강에게 전달하는 겁니다.”

“우리의 정보국장을 팔았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라는 건가?”

“지그펠트와 함께 있다고 알려주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요원도 그쪽으로 파견하면 됩니다. 러시아와 중국의 항모가 버뮤다를 칠 때, 우리는 한국의 병력과 함께 지그펠트를 제거한 공로를 얻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입을 꾹 다물고 NSA 국장을 노려보았다.

“러시아가 이미 이란의 차세대 발전 시설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어설프게 그걸 말리려다간 아랍 전체가 우리의 적으로 돌아섭니다.”

“아랍이 이란의 시설 공격을 지원한다니!”

“셔먼이 일을 꼬아 놓아서 우리는 움직일 공간이 없습니다. 이대로 사태가 진정되면 차세대 발전 시설을 손에 쥔 한국과 점점 멀어집니다.”

다른 각료들이 입을 다문 것으로 NSA 국장의 뜻에 동조하고 있었다.

“한국에 주둔하는 우리 군을 뺀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가 있다면 한국은 얼마든지 그러라고 할 겁니다. 무엇보다…….”

미국 대통령과 각료들의 시선을 받은 NSA 국장이 무겁게 말을 이었다.

“미스터 강이 존재하는 한, 한국은 더이상 이전의 한국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한국에 좀 더 적극적이고, 친화적인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흐음…….”

“미합중국의 이익을 위한 일입니다. 셔먼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그나마 수습할 기회마저 잃을 수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또다시 신음같은 한숨을 내쉴 때였다.

뚜으으.

인터폰이 울렸다.

찰칵.

“무슨 일이야?”

[“한국의 대통령이 통화를 원한다는 연락입니다. 30분 내로 답변을 듣고 싶다는 요청이었습니다.”]

“잠시만!”

버튼에서 손을 뗀 미국 대통령이 인터폰에서 시선을 들었다.

“셔먼의 현재 위치는?”

[“버뮤다 상공에 있습니다.”]

“지그펠트는?”

[“셔먼과 접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대 의견은?”

각료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다면 셔먼의 위치를 누가 한국에 전달하지?”

“DIA가 한국의 국가정보원에 전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번엔 지금껏 침묵하던 DIA 국장에게로 시선이 달려갔다.

“지시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답이 나왔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미국 대통령은 말을 마치고는 바로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예쓰, 미스터 프레지던트.”]

“한국의 대통령과 전화 연결해 줘.”

[“알겠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깍지를 낀 손을 책상에 올리고 각료들을 노려보았다.

어쩐지 자꾸만 한국에 눌리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강찬이라는 한국인을 우리가 데려올 방법이 있을까?”

질문을 던진 것과 동시에 그는 답을 얻었다.

각료들의 얼굴에 떠오른 어두운 표정이 더할 수 없이 분명한 답이었다.

***

“양범 씨에게 수고했다고 전해주겠나?”

[“함께 듣고 있으니 직접 전하지?”]

바실리의 답에 라노크는 바로 입을 열었다.

“양범 씨. 멋진 계획이었습니다.”

[“유럽 정보위원회에서 내가 정보국을 다시 장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덕분입니다. 개인적으로 강찬 씨에게 갚을 것도 있었습니다.”]

“좋군요.”

라노크가 웃는 낯으로 말을 건넨 다음이었다.

[“주연께서 저렇게 활약하는데 침대에만 누워 있자니 체면이 안 서는군. 내일쯤 나는 러시아로 돌아갈 계획이다.”]

“그렇다면 나도 움직여야겠군.”

바실리의 짧은 웃음이 넘어오고 전화가 끊겼다.

라노크는 새로운 번호를 찾아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루이입니다.”]

“로망을 제거해.”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철컥!

[“이봐! 위원장님을 바꿔…….”]

푸슝! 푸슝! 푸슝!

꽈다당! 털썩!

[“명령을 이행했습니다.”]

“좋아.”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라노크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침대 너머로 시선을 주었다.

“홍차를 준비할까요?”

“그래 주겠나?”

“알겠습니다.”

라파엘이 몸을 돌려 포트와 잔이 올려진 테이블로 움직인 다음이었다.

“라파엘.”

“예, 위원장님.”

라노크가 불렀고, 라파엘이 답을 하며 몸을 돌렸다.

“무슈 강이 약속대로 프랑스의 인재를 키워줄까?”

어려운 질문이다.

“저는 위원장님의 지시를 따를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라파엘은 평소와 비슷하게 답을 했다.

“자네는 내가 왜 로망을 제거했는지 아는군.”

라파엘이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본 라노크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슈 강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낼 정도까지 성장하다니…….”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담겼다.

***

쐐애애애액!

박승용은 눈을 날카롭게 뜨고 지상을 바라보았다.

‘저 많은 적을 상대로 30명이 버티고 있었다니!’

외롭게 서 있는 건물과 그곳을 둘러싼 적을 보는 순간, 박승용은 가슴 한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태극기와 대한민국을 위해 지금껏 싸워 온 아군이다. 이제부터 이 싸움을 우리가 맡는다. 편대, 공격을 시작한다.”

사이드 스틱을 앞으로 밀어낸 박승용은 곧바로 미사일 버튼을 눌렀다.

푸시이이이. 푸시이이이.

적들 사이에서 허공을 향한 소총의 불빛이 보이는가 싶은 다음이었다.

쿠으으으응! 콰으으으응!

화끈한 불기둥이 높다랗게 치솟았다.

보기는 통쾌하지만, 아래에는 지옥이 펼쳐진다.

그러나 박승용은 엉뚱한 생각에 이를 악물고 있었다.

태극기를 단 전투기로 쿠바의 땅에서 페루의 특수 부대를 상대하다니!

대한민국은!

이렇게나 강하고 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쐐애애애액! 쐐애애애애액!

푸시이이이! 투타타타타타타! 푸시이이이!

미사일과 기관총을 퍼붓는 이기도와 편대원의 뒤를 지켜주면서 박승용은 가슴이 뜨거웠다.

‘배워라! 대장이라 불리는 저 인물의 기개와 강단, 그리고 용기를 가슴에 담아라!’

쐐애애애액! 쐐애액! 쐐애애액!

어두운 하늘과 땅을 화염이 환하게 밝힐 때마다 적들의 숫자가 확연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고맙다.

이렇게 외로운 곳에서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지켜준 강찬과 저 대원들이 말이다.

중국이 목표 지점의 정보와 공중급유기를 제공해 주었다.

폭격이 끝난 다음, 돌아갈 비상공항도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위상을 떨칠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워서 박승용은 자꾸만 가슴이 뜨거워졌다.

쐐애애애애액! 쐐애애애애액!

“1번기! 졸리세요?”

아차차!

너무 구경만 하고 있었나?

그렇다고 졸리냐는 질문을 던져?

“철수해도 될 것 같습니다.”

웃음을 떠올린 박승용의 귀로 이기도의 든든한 무전이 들어왔다.

쐐애애애액! 쐐애애애애액!

편대원들이 뒤에 붙어 명령을 기다리고 있어서 박승용은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치이잇.

“폭격이 끝났다. 돌아가도 되겠나?”

치잇.

“고맙다. 돌아가도 좋다.”

치이잇.

“라져, 대장. 대한민국을 부탁한다.”

무전이 끝났다.

그리고 임무도.

쐐애애애액! 쐐애애애애액!

그런데도 박승용은 편대원들을 이끌고 건물 위 하늘을 커다랗게 돌았다.

이렇게라도 저들의 의지에 답을 하고 싶었다.

대한민국에는 저들을 응원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있음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박승용은 건물을 향해 짧게 경례를 하고는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편대, 돌아간다.”

쐐애애애애애액!

어두운 쿠바의 하늘을 대한민국의 전투기들이 가로지르며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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