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407화 (407/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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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그러게 왜 그를 건드려서!

차동균의 지시로 건물 외곽에 경계병이 배치되었고, 옥상에서는 야간 투시경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북한의 8군단 특임대를 발견하고부터 지금까지 숨 가쁘게 상황이 펼쳐졌다. 거기에 프랑스 어로 된 통화가 주를 이루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대원들이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거다.

조명을 최대한 줄여놓은 건물, 2층에 앉은 강찬은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치잇.

“지금부터 현재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겠다. 우리나라에서 전투비행단과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 35여단이 출발했다.”

김형정과의 통화를 들었던 석강호가 히죽 웃으며 강찬을 보았다.

“그 외에 러시아에서 전투기와 스페츠나츠를 태운 항모가 출발했고, 중국에서 역시 전투기와 화이트 울프를 태운 항모가 출발한 상황이다.”

‘러시아, 스페츠나츠, 화이트 울프’라는 단어를 들은 제라르가 볼의 흉터를 늘이며 웃었다. 이놈은 프랑스어 통화를 들은 덕분에 그나마 내용을 짐작하고 있었다.

“지그펠트를 감싸는 이스라엘을 아랍권 전체가 공격하기 위해 준비 중이고, 우리나라는 워치콘 1단계, 데프콘 2단계를 발령했다.”

차동균이 자부심 넘치는 눈빛으로 곽철호를 본 뒤에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모사드와 사이엣 매트칼이 나를 노린다는 협박 전화가 있었는데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른다.”

강찬의 무전을 듣고 싶었을까?

최소한의 조명만 남긴 2층 건물로 바다에서 달려온 바람이 끝없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어떤 짓을 하든, 나는 이곳에서 반드시 지그펠트를 잡겠다. 또 하나!”

이번엔 뭘까?

석강호와 최종일, 차동균 등이 강찬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앞이다.

“양동식 선배의 희생에 대해 분명하고 확실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겠다.”

그래! 그거지!

우리가 아는 대장은 이런 사람이었지!

지켜보던 이들의 눈에 담긴 감정은 그랬다.

“어려운 밤이 될 거다. 항모와 대한민국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어떤 도발이 있을지 모른다. 그때까지 모두 최선을 다해 이 건물에서 버틴다. 이상!”

무전을 끝낸 순간이었다.

“푸흐흐.”

석강호가 특유의 웃음을 웃으며 강찬의 테이블로 건너왔다.

“이럴 땐 또 우리가 봉지 커피 한잔쯤 때려줘야 하는 거 아니겠소? 애들 교대도 좀 해줘야 하고.”

“알아서 지시해.”

“그럽시다.”

석강호가 차동균과 최종일에게 지시하는 동안, 강찬은 제라르에게 프랑스 어로 무전의 내용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콩고에 있을 때 같습니다.”

“뭐가?”

“우리 구대만 남아서 버텼던 적 있잖습니까?”

“그런가?”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쓰게 웃었다.

콩고 반군에 포위되었던 외인부대 13연대를 구출하러 간 작전에서였다. 대원들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다가 AK 소총과 코뿔소 뿔을 파는 야시장의 2층 건물에 갇혔던 적이 있었다.

“여깄소. 뭔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 웃어요?”

석강호가 봉지 커피가 담긴 잔을 강찬과 제라르 앞에 놓아주고는 테이블에 앉았다.

“전에 우리 콩고 야시장에 갇혔던 때랑 비슷하다는 말을 해서 웃었다.”

석강호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은 어떻소?”

“아직 안 좋아. 뭔가 더 있을 것 같다.”

“알았소.”

강찬의 눈빛과 말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석강호가 눈빛을 번득이며 어두운 창을 힐끔 보았다.

강찬은 차동균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되면 내일 회담은 물 건너갔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위험할 테니 그때까지 돌아가면서 식사하고, 조금씩이라도 휴식을 취하게 해.”

“알겠습니다.”

어둠만큼이나 진한 차동균의 답이 곧바로 나왔다.

***

[“셔먼! 북한의 8군단을 이용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자가용 비행기 안에서 전화기를 든 셔먼이 곤란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았다.

[“대사를 보내보았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요지부동입니다. 게다가 CIA 국장인 당신이 북한군을 이용해 자국의 요인 공격했고,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는데 변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분노를 억누른 음성이 계속해서 건너왔다.

[“쿠바 현지에 있는 한국 요인팀이 북한군의 시체를 확보했다고 들었습니다. 셔먼! 쿠바에서 한국의 요인과 회담을 제안한 것이 당신이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굵직하고 나직한 음성으로 셔먼이 답을 한 다음이었다.

[“후우! 셔먼!”]

탄식처럼 한숨을 내쉰 대통령이 안타까운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한국은 우리에게 절대적이고 상징적인 우방입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우리에게 가장 우호적이며, 그 어느 곳보다 요충지인 한국을 상대로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는 있습니까?”]

“이번 일은 저 역시 당황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셔먼의 대꾸가 있은 다음이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셔먼. 나는 대변인을 통해 이번 한국의 조치를 지지할 것이며, 한미연합사령부 역시 워치콘과 데프콘을 명령한 한국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게 할 것입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그건 아주 위험하고 극단적인 결정입니다.”

[“셔먼.”]

빠르게 오간 대화 뒤에 따라온 나직한 부름은 어딘가 무섭다.

“말씀하십시오, 미스터 프레지던트.”

그래서 셔먼은 얼른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무엇보다 미합중국의 이익이 가장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며, 그것을 위해 CIA가 헌신하는 것에 감사합니다.”]

셔먼이 “감사합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답을 한 다음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은 우리에게 단순한 우방 이상의 위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북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할 유일한 거점이며, 우리의 오래된 혈맹입니다. 그들과의 신뢰를 저버린다면, 이제 누가 우리의 약속을 믿어주겠습니까?”]

두꺼운 안경을 탁자에 올려놓은 셔먼은 눈가를 매만지며 답을 하지 못했다.

[“저들은 북한군의 시체까지 증거로 가지고 있으며, 프랑스, 러시아, 중국, 독일은 당신이 한국의 요인을 쿠바로 불렀다는 것을 증언할 의사가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럴까?

셔먼이 마른침을 삼키며 전화에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셔먼. 쿠바에서 약속했던 오전 11시까지 이번 일을 해결하세요. 이것이 내가 그동안 미국을 위해 헌신해 온 당신에게 주는 최대한의 배려입니다.”]

억누른 분노와 함께 건너온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내 말을 이해했습니까?”]

“물론입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좋군요. 그렇다면 결과를 기다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후우.”

셔먼은 전화기를 탁자에 내려놓고 비행기 좌석의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

우즈만의 접견실 문이 묵직하게 열렸다.

수행원과 경호원을 앞세운 남자는 양복 차림에 하얀 머리칼을 하고 있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스라엘의 부총리를 뵙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겠습니까?”

악수를 나눈 뒤에 우즈만은 손을 내밀어 소파를 가리켰다.

“편하게 앉으시면 됩니다.”

차피 프레슬리 이스라엘 부총리 겸 외무부 장관이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하고는 우즈만의 옆자리에 앉았다.

곧바로 차와 대추야자가 담긴 접시, 그리고 재떨이가 탁자에 준비되었다.

약속된 회담이 아니라 전격적인 방문에 의한 일이었다.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음에도 우즈만은 시간을 할애했고, 급하게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 회담을 알았다면 전 세계 기자의 절반쯤이 달려들었을 정도로 중요한 만남이었는데 모사드는 그만큼 비밀리에 자리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나 역시 긴 시간을 내기는 어렵군요.”

차피의 말을 우즈만이 받았다.

“우리 정부는 이번 왕자님의 계획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하고,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작정하고 온 것처럼 차피는 거침이 없었다.

“또한, 이 일을 처음 거론한 한국의 국가정보원 책임자와 한국 정부에 엄중하게 항의할 것이며…….”

“부총리.”

우즈만이 나직한 음성으로 차피의 말을 막았다.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차피의 날카로운 시선에도 우즈만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한국의 지시에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하게 밝히지만, 이번 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제안에 아랍세계가 뜻을 합한 일입니다.”

“일정을 미루는 것조차 강찬이라는 한국인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미국 대통령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과 지시를 받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의 대통령에게는 그런 말을 하셨으며 또 왜 이스라엘 침공이라는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우즈만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사나운 눈빛으로 차피를 바라보았다.

“부총리. 느닷없는 방문이 이런 무례한 질문을 쏟아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오늘의 만남은 여기까지로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우즈만이 수행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입에서 “손님을 배웅해라.”라는 한 마디가 나오면 회담이 끝나는 상황이었다.

“왕자님. 무례한 점이 있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차피가 우즈만의 시선을 붙들기 위해 급하게 사과를 쏟아냈다.

인자함 뒤에 감춰진 연륜은 이래서 무섭다.

나직하게 숨을 내쉰 우즈만이 천천히, 그러나 날카로움이 사라지지 않은 시선으로 차피를 보았다.

“부총리. 우리 산유국들은 더 이상 지그펠트의 농간에 손해 보는 일을 피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가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이 가자지구의 학살 비용으로 들어가는 것도 더는 묵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즈만이 단단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 들었다.

“나와 무슈 강은 아랍세계의 존중이라는 결론을 이뤄냈고, 그에 따라 아랍 세계는 그가 제시한 새로운 세계 질서를 따르려는 것뿐입니다.”

차피가 급한 속을 감추려는 것처럼 차를 마셨으나 우즈만의 노련한 눈빛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는 프랑스, 러시아, 중국, 한국의 병력을 이용해 버뮤다에 몸을 숨긴 지그펠트를 제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부총리. 우리 아랍인들은 신께 올린 맹세를 반드시 지킵니다.”

검지와 중지를 앞으로 내세우며 단호함을 표시한 우즈만이 차피를 똑바로 보았다.

“나는 신께 우리를 존중해주는 무슈 강의 질서에 순응하기로 맹세했으며, 무슈 강이 지그펠트를 제거하기 위해 요구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신의 뜻으로 받았습니다.”

이리 굴리고, 저리 돌렸지만, 결국 우즈만은 강찬의 말을 따르겠다는 거였다.

차피는 늙은 우즈만에게 제대로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왕자님. 그렇다면 우리가 미스터 강과 합의를 도출한다면…….”

“무슈 강이라고 불러주시오.”

두 번째로 말을 잘린 차피가 볼을 씰룩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슈 강과 합의를 도출한다면 결단을 바꾸어주시겠습니까?”

“신께 맹세코 무슈 강의 결정을 존중할 것입니다.”

“흐음.”

차피의 신음이 강찬에게 고개를 꺾어야 하는 그의 처지를 분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었다.

***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벨이 울리는 전화기를 힐끔 본 바실리가 같잖다는 미소로 양범을 보았다.

“늙은 너구리가 꼬리에 붙은 불이 무척이나 뜨거운 모양이군.”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안 받으실 겁니까?”

“속을 좀 태워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도저히 당할 수 없다는 듯 양범의 웃고 나서야 바실리가 손을 뻗었다.

“바실리다.”

[“바실리. 원하는 것이 뭔가?”]

뜻밖에도 차분한 셔먼의 음성이었다.

바실리가 놀랍지 않냐는 것처럼 양범을 보았다.

[“세계 전쟁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게 아닌가?”]

“셔먼.”

[“조건을 말해 봐.”]

반가움이 묻은 대꾸가 바로 날아들었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정답을 외면하지 말자.”

[“흠!”]

“무슈 강을 찾아가서 해결해. 지금은 그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도대체 자네나 라노크 같은 거물이 왜 얌전한 유치원생처럼 한국의 그 애송이를 따르는지 이해를 못 하겠군! 이봐, 바실리! 한국이다! 한국! 러시아와 중국, 우리가 손만 잡으면 언제고 이리저리 흔들 수 있는 한국! 놈은 고작 그 작은 땅덩어리에 있는 애송이일 뿐이라고!”]

결국, 분을 참지 못한 셔먼의 성난 음성이 쏟아져 나왔다.

[“항모에 실린 전투기와 스페츠나츠만 보내도 5분이면 애송이의 시체를 얻게 될 텐데, 왜 이렇게 그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냔 말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셔먼.”

바실리의 부름에 정신이 든 것처럼 셔먼의 음성이 뚝 잘렸다.

“미국의 대통령도 포기하려는 지그펠트를 왜 그렇게 끌어안고 버티는 거지?”

바실리는 평소처럼 냉정한 눈을 하고 있었다.

“이란에 짓고 있던 차세대 에너지 시설 때문인 모양인데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알아둬라. 지금 지그펠트를 놓지 않으면 너에게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다. 하긴! 다윗의 별을 끌어안은 데다 이란의 차세대 발전시설을 삼킨 미국. 그리고 그것을 이뤄낸 국가적 영웅, 셔먼이라. 놓치기 아깝긴 하겠군.”

[“바실리. 미국과 러시아가 양분한 세계 질서가 어때서 그래? 한국의 애송이만 제거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간다니까! 중국 따위 언제고 자네 말을 따를 게 아닌가? ”]

비웃음을 분명하게 토해낸 바실리가 시선을 힐끔 돌렸다.

“아! 잠시 소개가 늦었다. 미국과 러시아가 양분한 세계 질서에 불만을 가득 품은 중국 정보국의 양범 따위가 함께 듣고 있었다. 인사나 나누지?”

“오랜만입니다. 셔먼.”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양범이 대꾸하지 않는 바람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런! 중국 따위가 기분이 별로인 모양이다. 그러니 오늘 통화는 이쯤에서 끝내자.”

바실리가 대뜸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양범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을 본 바실리가 옆을 지키던 사내에게 홍차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후우. 셔먼이 아무래도 군사적 행동을 할 것 같군요.”

“이미 움직였을 것 같은데?”

양범이 힐끔 바라본 앞에서 바실리는 독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 외인부대나 우리가 보낸 항모가 도착하기 전에 해결하려 하겠지. 미국의 병력은 대통령이 막을 테고, 지그펠트는 공식적인 병력이 없다. 아랍은 무슈 강과 손을 잡았으니 아닐 테고. 남은 곳이 어딜까?”

달칵. 쪼르륵. 쪼르륵.

바실리의 말이 끝나는 순간에 소총을 어깨에 멘 남자가 다가와 홍차를 따라주었다.

“북한도 아닐 겁니다. 이미 우리 정부에서 압력을 넣어 놓았기 때문에 더는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바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셔먼은 무언가 믿는 것이 있는 거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 늙은 너구리가 벌써 무슈 강에게 달려가서 조건을 달았겠지.”

“후우.”

연기를 뿜어낸 양범이 재떨이에 담배를 끈 다음이었다.

“만약 내가 우리 항모에게 무슈 강을 공격해서 시체를 가져오라고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우리 주연이 정말 시체로 내 앞에 나타나 줄까?”

바실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양범에게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나는 어쩐지 그가 또 살아나는 기적을 볼 것만 같습니다.”

답을 들은 바실리가 황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불쌍한 늙은 너구리 같으니라고. 그러게 왜 그를 건드려서…….”

그리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깊은 밤, 어두운 밤,

휘이이잉!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지치지도 않고 흙먼지를 날려주는 밤.

쩔걱. 쩔걱.

강찬은 소총을 어깨에 멘 채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넓은 평지에 덩그러니 서 있는 2층 건물이어서, 한 마디로 미사일 갈기기 딱 좋은 표적이었다.

무언가 한 번 더 온다.

강찬은 본능이 주는 경고를 느끼며, 주변을 날카롭게 둘러보았다.

차동균이 넓은 범위로 대원들을 배치해 놓아서 미사일 공격은 그럭저럭 안심할 수준이었는데, 또다시 피어난 찜찜함이 강찬을 자극하고 있었다.

제라르의 말대로 콩고의 야시장에 갇혔을 때 같다.

그러나 강찬은 어쩐지 어둠 속에 선 2층 건물이 현재 처한 한국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등의 틈바구니에서 아등바등 원하는 것을 얻으려 애쓰는 모습이 말이다.

어둠, 바닷바람.

무언가 암울한 것 같은데 고개를 돌리면 든든한 동료들이 있다.

긴장을 처먹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석강호, 볼의 흉터만큼이나 잔인한 눈빛을 번들거리는 제라르, 거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증평 특수팀.

한국의 미래는 인재에 있다는 문재현의 말이 떠올라서 강찬이 피식 웃었을 때였다.

쩔걱. 쩔걱.

소총 소리가 들리며 두 사람이 옥상으로 올라왔다.

고개를 돌린 곳에서 강철규와 남일규가 다가서고 있었다.

‘왜 이래?’

강찬의 시선에 담긴 질문을 충분히 알았을 강철규다.

“부원장. 직접 부딪치는 것은 어렵지만, 사격이라면 자신 있으니 이곳에서 저격을 하겠다.”

낯빛이 하얀 강철규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강찬에게 뜻을 전하고 있었다.

강찬은 말없이 강철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적이 다가오고 있다.’

‘알고 있어. 그렇다고 그런 몸으로 이곳에 있는 건 도움이 안 돼.’

‘내 몫은 하겠다. 이렇게 부탁하마.’

그렇게 입으로 전한 것처럼 의사를 주고받았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을 타고 강철규의 왼쪽 어깨에서 펄럭이는 피 묻은 작은 태극기가 보였다.

피범벅이었던 양동식의 소매에 달려 있던 태극기.

그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태극기였다.

염병!

이런 걸 어떻게 말리겠나?

“후우.”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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