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406화 (40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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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그러게 왜 그를 건드려서!

탕수육, 팔보채, 짜장에 짬뽕까지 쭉 돌린 다음, 멋지게 계산대로 향했는데 카드가 정지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문재현의 표정이 딱 그랬다.

“북한 8군단 특임대가 분명하겠지요?”

“현지에 우리 증평 특수팀, 비무장 팀 출신 강철규요원까지 있어서 부원장의 판단을 의심할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고건우의 답을 들은 문재현이 시선을 뒤뜰로 돌렸다.

이제 고건우는 완벽하게 국가정보원 원장의 눈빛과 표정, 그리고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얼마나 든든한지.

그런데 이상하게 이럴 때면 황기현이 떠오르고, 그의 소개로 만났던 송창욱이 생각난다.

우리에게 힘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을 위해 애쓰던 황기현을 지켰을 거고, 송창욱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조부의 낡은 태극기를 지금껏 지니고 있을 거였다.

문재현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올라오는 감정을 털어내려 애썼다.

대통령이다.

어떤 결정에도 국민의 안전과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장 앞에 두어야 하는 사람.

바싹 마르는 입술 때문에 탁자에 놓인 물을 마신 문재현이 다시 하늘로 시선을 주었다.

이제 와 믿지도 않던 신을 찾으려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터전을 위해 피 흘린 선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판단, 국민과 국가에 이익되는 현명한 결정을 하려는 노력이었다.

미국과 싸울 생각을 하다니?

기가 막혀서 실없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하여간 대한민국은 엄청난 인물을 가졌다.

전화 한 통으로 러시아와 중국, 프랑스의 병력을 동원하는 인물.

문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러시아, 중국, 프랑스가 어떤 나라들인데 이유 없이 강찬의 전화 한 통화에 병력을 이동하겠나?

이제 때도 되었다.

강대국의 압박에 눈치 살피며 살던 것을 털어낼 때.

“러시아와 중국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부원장의 지시에 따르겠다는 의견을 전해왔습니다. 프랑스는 이미 외인부대를 파병했습니다.”

고건우의 시선을 받은 김형정이 빠르게 답을 했다.

“미국과 교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들었습니다. 그 정도라면 미국도 이 사건을 알고 있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우리 군을 파병하고, 비상령을 내리면 한미연합사령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파병은 국가정보원 파견으로 처리할 계획입니다.”

“전투비행단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지난번 일로 두 소령이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에 놓였었다고 들었는데?”

“둘 중 하나를 택하셔야 합니다. 공식 발표를 하시던가, 아니라면 러시아, 중국과의 합동 훈련이라고 우길 수밖에 없습니다. 교전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이…….”

답을 하던 김형정이 곤란한 표정으로 뒷말을 삼켰다.

문재현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처리하겠다는 의견을 삼킨 게 분명했다.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미국과 심각한 갈등이 야기될 것이 뻔하고, 그 모든 책임이 문재현을 노리는 칼날로 변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해한다는 것처럼 문재현이 질문을 꺼내 들었다.

“비상령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나요?”

“북한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핑계를 대거나 역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후자의 경우, 미국의 반응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문재현이 낮은 신음을 뱉은 다음이었다.

“미국이 부원장의 상황을 모를 리가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그가 건넨 질문에 김형정이 바로 답을 했다.

문재현은 뒤뜰로 향했던 시선을 들었다.

저 하늘 어딘가에서 황기현, 송창욱을 비롯해 대한민국에 모든 것을 바친 순국선열들이 지켜보고 있을 거다.

‘제 결정이 현명한 것이길 바랍니다.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오래도록 자랑스러울 판단이길 바랍니다. 우리가 바른길로 나갈 수 있도록 도우소서.’

간절한 기도처럼 소망을 전한 문재현이 시선을 내렸다.

“원장.”

“예, 대통령님.”

고건우를 불렀던 문재현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김형정을 보았다.

짧은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나는 늘 우리 조국이, 대한민국이 강대국이 되길 희망했습니다. 희생과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원장과 다르게 자꾸만 감당해야 할 몫이 두려워집니다.”

문재현이 대통령다운 눈빛과 음성으로 뜻을 전했다.

“이 결정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집니다. 어쩌면 오래도록 우리 역사에 죄인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고건우가 긴장한 얼굴로 집중하는 앞이었다.

“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쿠바에 파견 나간 우리 국민을 공격한 북한의 행위를, 우리 영토와 주권을 노린 심각한 침략 행위로 간주합니다.”

김형정이 마른 침을 삼키는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전군에 워치콘 1단계, 데프콘 2단계를 발령합니다.”

이번엔 고건우가 마른 침을 삼켰다.

“부원장의 요구대로 전투비행단,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 35여단을 파견하겠습니다. 내 지시를 군과 한미연합사령부에 전달하고, 후속 조치를 부탁합니다.”

전군 비상령을 넘어 실탄 지급과 부대 편제 100% 충원 상황이다.

비장한 얼굴로 답을 한 고건우와 김형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홀로 남은 문재현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로 시선을 들었다.

믿는다.

지금은 그의 판단을 믿어주어야 할 때다.

대한민국은 인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

절대 우리 손으로 우리의 인재를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문재현이 단단한 표정으로 집무실로 향했다.

***

우즈만과 통화를 마친 직후였다.

기다렸다는 것처럼 벨이 울렸다.

번호를 확인한 라노크는 먼저 입술 한쪽을 올리며 웃음 다음에야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알로?”

고작 한 마디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라노크는 가면을 뒤집어쓴 것처럼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노크!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이렇게까지 흥분한 셔먼의 음성을 듣다니!

[“애송이야 그렇다고 쳐도 자네나 바실리, 양범, 루드비히가 그 장단에 춤을 주면 안 되는 게 아닌가!”]

셔먼이 전에 없이 강한 어조로 달려드는데도 라노크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라노크!”]

“듣고 있다.”

[“어쩔 셈인가!”]

“목소리를 낮춰.”

[“지금 그게 중요한……!”]

“그리고 앞으로 그를 부를 땐 예의를 갖춰라.”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웃음이 건너왔다.

“정보총국의 신용을 걸어서 무슈 강을 불러냈다면 우리 쪽은 자네와 미국 CIA의 신용을 믿고 회담에 나섰다. 그런데 그의 목숨을 노렸다면 그에 따른 책임 정도는 져야 하지 않겠나?”

[“나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일이라니까!”]

“그 정도 책임도 감당하지 못할 거였다면 쿠바에 부르지도 말았어야지.”

말문이 막힌 것처럼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셔먼. 충고를 하나 해도 될까?”

[“부탁하지.”]

“미국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했던 브랜든의 최후가 어땠는지를 상기하는 게 좋겠다. DIA가 자네를 벼르고 있다는 것도. 내 기억으로는 그의 제거 지시를 자네가 직접 내렸던 것 같은데?”

[“고작 한국 출신의 애송이를 믿고 나를 협박할 수 있다고 믿나?”]

“내 경고를 통화가 끝나기 전에 무시하다니, CIA가 그 정도로 힘 있는 기관이라는 걸 내가 몰랐던 건가?”

[“그런 건 아니다. 말이……심했다. 사과한다.”]

커다란 숨소리가 들린 다음, 셔먼의 사과가 이어졌다.

[“라노크. 도움을 부탁한다.”]

그리고는 꼬리를 내린 듯한 당부가 연달아 건너왔다.

[“그는……. 아니 무슈 강은 자네의 조언만큼은 받아들이지 않나? 세계 전쟁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길 원한다.”]

“이 정도 선이라? 그를 공격했고,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무슈 강에게 조용하게 넘어가라고 조언하란 건가?”

[“원하는 걸 말하면 최대한 보상하겠다.”]

“셔먼.”

셔먼이 조용하게 라노크의 말을 기다렸다.

“외인부대 2개 연대와 특수팀, 러시아의 쿠즈네초프급 항모와 스페츠나츠, 중국의 항모와 화이트 울프가 이동 중이다. 거기에 실린 전투기만 80대. 한국에서 이동하는 것은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통증을 느낀 듯한 셔먼의 신음이 답을 대신해서 날아들었다.

“직전에 우즈만과 통화가 있었다. 시아파와 수니파가 손을 잡았다면 믿겠나?”

[“그럴 리가……?”]

“그러니 좀 더 현실을 똑바로 보고, 무슈 강을 달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와. 정보총국과 러시아 KGB, 모사드가 자네 머리에 총알을 꽂기 전에. 아! DIA가 빠졌군.”

말을 마친 라노크가 종료 버튼을 누른 다음, 전화기를 침대의 빈자리에 놓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서 있는 라파엘을 보았다.

“늙은 너구리 때문에 자꾸만 바실리의 못된 모습을 흉내 내게 되는군. 홍차를 한 잔 주겠나?”

“준비하겠습니다.”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라파엘이 답을 했다.

***

“바쁜 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즈만이 특유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붉고 화려한 카펫, 벽을 지키는 황금색 기둥, 아랍풍의 창.

원래대로라면 있어야 할 세 명의 수행원을 모두 물리친 우즈만이 조용하게 통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잠시 전화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우즈만은 상대가 앞에 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존중해준 미합중국과 미스터 프레지던트께 감사합니다.”

다시 이어진 대화에서도 그의 음성은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나 혼자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시아파와 수니파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아랍권 전체가 환영하는 분위기인 것을 미스터 프레지던트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즈만!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된다면 우리도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충돌을 피할 수 없겠군요.”

부드러운 음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우즈만의 답이었다.

[“그는 아랍 세계와 여러 번 충돌을 빚어왔습니다. 제가 아는 한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분 중 한 분이, 왜 그런 그의 터무니 없는 결정에 동조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즈만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그리고는 나직하게 미국 대통령을 불렀다.

“다윗의 별이 아랍 세계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먼저 고민해 주셨으면 합니다. 비록 무슈 강이 우리와 여러 차례 충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이해합니다. 반대로…….”

우즈만이 잠시 호흡을 고른 다음 말을 이었다.

“왜 미국과 같이 신뢰 있는 나라의 정보국 수장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미스터 프레지던트께 보고하지 않고 행동했겠지만 말입니다.”

당장 건너온 대꾸는 없었다.

“우리는 미국이 중심이 된 세계 질서에 늘 동의해 왔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우리 세계의 충돌이 있을 때도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릅니다. 다윗의 별이 실체를 드러냈음에도 미국이 그를 감싼다면 우리의 행동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연륜 있는 이들의 음성은 무섭다.

부드러움 속에 대항하기 어려운 강단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우즈만. 나는 아랍 세계와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니 이번 결정을 며칠만 늦춰 줄 수는 있겠습니까?”]

“먼저 무슈 강에게 양해를 구해주십시오.”

[“왜 그 결정까지 그가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실제로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음성이었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우즈만이 세 번째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그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남을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신뢰 있는 눈빛을 하고 있습니다.”

[“우즈만. 세상은 그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 감상적인 이유로 국가의 위험을 초래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확실하게 불쾌하다는 음성이었는데 우즈만은 옅은 미소를 피워냈다.

“아랍권이 하나로 뭉치는 게 국가적 위험을 초래하는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내 말이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러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렇지만 미스터 프레지던트. 정보를 받아들이는 창구를 좀 더 늘리기를 조언하겠습니다. 셔먼의 이번 행동으로 프랑스, 러시아, 중국, 독일, 그리고 아랍 전체가 무슈 강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통화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우즈만은 단호한 음성이었다.

“이럴 때는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얼굴에 묻은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며, 오늘 통화에 감사합니다.”

깊은 한숨이 건너왔고, 다음으로 “고맙습니다.” 하는 답이 이어진 뒤에 전화가 끊겼다.

어쩌면 불편한 통화였다.

그런데도 우즈만은 창을 향해 재미있다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신의 뜻을 어찌 거역하겠나.”

그는 웃음을 담은 얼굴로 탁자에 놓인 정보들을 살폈다.

“새로운 질서라…….”

들춰보던 자료를 내려놓은 우즈만이 황금색 지구본을 천천히 돌렸다.

“코레아? 참으로 먼 곳을 선택하시는군.”

버릇처럼 고개를 끄덕인 우즈만이 상체를 세우고 나직하게 말을 뱉었다.

“아랍이 하나로 뭉칠 기회라니! 인샬라(ان شاء الله).”

***

수혈을 마친 강찬은 2층의 방에 앉아서 통화를 계속했다. 이건 뭐 종료 버튼을 누르기 무서울 정도로 전화가 달려들었는데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는 거였다.

바실리와 통화를 마친 강찬이 전화기를 노려보다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벨이 안 울리는 전화기가 이렇게 예뻐 보일 줄은 몰랐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어딜!

그런데 약을 올리는 것처럼 다시 벨이 울렸다.

누구지?

강찬은 전화기를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알로?”

[“그라펠트입니다. 무슈 강.”]

이 새끼가 누구였……?

아! 프랑스에서 같이 연수받던 이스라엘 놈!

강찬은 먼저 피식 웃으며 탁자에 놓인 담배를 꺼내 들었다.

“오랜만이다.”

[“그렇습니다.”]

찰칵.

불을 붙이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라펠트는 말이 없었다.

“후우. 용건을 말해.”

[“무슈 강. 긴말 하지 않겠습니다. 우즈만에게 건넨 제의를 철회해 주십시오.”]

“싫다면?”

[“모사드와 사리엣 매트칼이 무슈 강을 노리게 됩니다.”]

“그 안에 너도 포함되어 있나?”

[“그렇습니다.”]

솔직한 답변이어서 차라리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솔직한 것과 고분고분 말을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른 거다.

“기꺼이 기다려 주마.”

강찬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답을 주었다.

“모사드든, 사리엣 매트칼이든, 그 속에 네놈이 들었든 아니든.”

프랑스 말이어서 말뜻을 알아들은 제라르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내가 셔먼과 지그펠트를 죽이고, 이스라엘을 박살 내는 게 빠른지, 아니라면 네놈 손에 내가 먼저 죽어 나자빠지는지! 결과가 궁금해지는데?”

[“무슈 강. 우리는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말이 바뀐 것 같아서 픽하는 웃음이 먼저 나왔다.

[“느닷없이 아랍권 전체가 이스라엘을 노립니다. 그런데 그 계기가 무슈 강의 말 한마디라면 이스라엘은 공연히 불똥을 얻어맞은 겁니다.”]

“그라펠트.”

[“예. 무슈 강.”]

강찬이 부르자 놈이 빠르게 답을 했다.

“내가 마음을 바꾸려면 두 가지가 필요해. 셔먼과 지그펠트의 대가리.”

그라펠트의 답은 없었다.

“지그펠트의 뒤에 숨어서 이익을 얻던 네놈들이 억울하다고?”

강찬은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며 말을 이었다.

“헛짓하지 말고 둘 중 하나를 택해. 전쟁인지, 아니면 두 새끼의 모가지를 가져오던지.”

종료 버튼을 누른 강찬은 피식 웃었다.

그라펠트, 지그펠트.

이 새끼들이 혹시 친척은 아니겠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바쁘게 돌아간다.

어릴 때 동네 놀이터에 있던 뺑뺑이의 한가운데 서서, 빠르게 도는 바깥을 노려보는 느낌도 들었다.

이 새끼들은 하여간!

국지전까지 이용해 돈을 버는 지그펠트의 뒤에서 팔레스타인 학살을 자행하던 놈들이, 협박이 안 통하니까 느닷없이 억울하다고 지랄을 떤다.

가능하기만 했다면 이따위 전화도 없이 죽이려 들었을 놈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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