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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나도 거기에 맞춰 주마.
강철규의 무전은 모두 들었다.
그리고 무전이 끝나는 순간에,
철컥!
강찬은 권총을 뽑아 현지 책임자 리코를 겨눴다.
다들 무슨 일인가 할 때였다.
“저 개새끼 묶어.”
강찬이 지시를 내렸고, 윤상기가 대원 한 명과 달려들어 놈을 꽁꽁 묶었다.
세계적인 수준은 이럴 때 증명된다.
당황스럽고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그 와중에 차동균은 옥상으로 대원 넷을 지원 보냈고,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남은 대원들이 창에 매달려 주변을 경계했다.
“차동균. 함께 나갈 대원…….”
강찬이 지시를 내리는 순간이었다.
덜컹! 끼이익!
문이 열렸고,
철컥! 철컥! 철커덕!
강찬을 시작으로 대원들이 소총을 겨눈 앞에서 외곽에 배치되었던 대원들이 급하게 들어서고 있었다.
꽈다당
그리고 대원 네 명이 목과 가슴이 피투성이인 대원 둘을 끌다시피 들어와 함께 바닥으로 무너졌다.
다급하게 달려들어 부상자 둘을 챙기는 순간이었다.
강찬은 문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들어선 사람은 대검을 손에 들고 번들거리는 눈빛을 한 남일규였다.
“강 선배님 말씀대로 북한 8군단 특임조입니다. 비무장 지대에서 우리에게 원한이 많았던 놈들입니다.”
“인원은?”
“정확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50명 수준입니다.”
“차동균. 대원 열 명을…….”
“부원장님.”
강찬의 지시를 남일규가 자르고 들어왔다.
“강 선배님은 내일 회담에 부원장님께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나가시길 바라시고, 우리 후배들이 또 다른 적의 함정에 대처할 수 있게 이 싸움을 맡겨달라고 하셨습니다.”
서둘러 나가서 밖에 있는 두 사람을 지원하고 싶은 다급함이 깔렸는데도 남일규는 한마디, 한마디를 꾹꾹 눌러서 전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눈빛을 하고 말이다.
“부탁드립니다, 부원장님. 저놈들은 우리처럼 싸웁니다. 전에 증평에서 훈련했을 때처럼 흙바닥에 몸을 숨겼다가 튀어나오는 놈들입니다. 싸우는 방식이 달라서 저기 두 후배처럼 분명 다치고 상하는 후배가 더 나올 겁니다. 그러니 강 선배와 저, 동식이가 해결하게 해주십시오.”
목숨을 건 남자들의 눈빛은 무섭도록 강렬하다.
지금의 남일규처럼 말이다.
무거운 침묵과 긴장이 1층을 휘감고 있었다.
지금 이럴 시간이 있는 건가?
강찬이 힐끔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눈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남일규가 강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늘 밤이 이렇다면 내일 또 다른 함정이 있을 겁니다. 후배들은 그때 부원장님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1초가 아쉽고 다급한 순간이었고, 바로 문밖에서 50명이 넘는 적을 두 사람이 상대하는 상황이었다.
강찬은 도저히 세 사람을 외롭게 둘 수는 없었다.
“내일 회담 따위 안 해도 됩니다.”
강찬의 결정에도 남일규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위한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강 선배와 우리 비무장 팀은 조국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보셨던 대로 그래서 동식이는 딸 소미에게도 죄를 지었습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이 대원들을 모르세요? 세계적인 수준이라서 쉽게 당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싸움은 특성상 함께 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강 선배와 제가 다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놈들을 반드시 드러나게는 하겠습니다. 그때 나서주십시오.”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
저 뜻을 무너트리고 대원들을 끌고 나가던가, 아니라면 저 눈빛에 담긴 뜻을 받아주던가.
고민하는 이 짧은 순간이 아까워서 길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한다.
강찬은 마음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대신 옥상에서 지원 사격은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원장님!”
남일규가 손을 들어 강찬에게 경례를 붙였다.
이런 인사를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나.
강찬은 얼른 손을 들어 그의 경례에 답을 했다.
끼이익!
남일규가 밖으로 사라진 다음이었다.
“차동균. 창문마다 두 명씩 배치하고 남은 인원 모조리 옥상으로 올려. 한 놈이라도 찾아서 대가리를 뚫어준다. 그리고 저 개새끼, 옥상으로 끌고 와!”
명령을 마친 강찬은 곧바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칠흑 같은 어둠은 오랜만이었다.
별도 달도 구름 뒤에 숨어서 야박하게 빛을 감춘 밤, 그런데도 흙먼지는 여전히 옥상을 쓸고 지나갔다.
철커덕!
이두희가 강찬의 옆에서 저격용 총을 옥상의 벽에 걸어놓은 다음이었다.
강찬은 시리도록 차가운 눈빛으로 몸을 돌렸다.
“리코.”
놈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강찬과 주변을 둘러보았다.
“라면이나 김치는 처음 먹는 사람이 맛있게 먹기 어려운 음식이다. 특히 너처럼 처먹는 건 불가능하지. 잘 판단하고 대답해라. 북한 8군단 놈들이 이곳으로 온 과정은?”
“억울합니다.”
이 개새끼가 강철규, 남일규, 양동식의 목숨을 앞에 두고 장난질을 쳐!
강찬이 방아쇠를 당긴 순간이었다.
타아앙!
권총의 총구에서 불이 번쩍하는 것과 동시에 리코의 왼쪽 허벅지가 커다랗게 터져나갔다.
“끄아아!”
“북한 8군단이 이곳으로 온 과정은?”
“끄으으.”
타아앙!
퍼억!
놈의 오른쪽 다리가 다시 터져나갔다.
“으흑! 으흐흐!”
“입을 굳게 다물겠다? 인정한다.”
“흐으으! 흐으.”
강찬은 놈이 보는 앞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번호를 눌렀다.
[“위고입니다.”]
“쿠바 현지 책임자 리코가 배신했다.”
건너오는 답은 없었다.
“이놈의 신원은 파악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리코를 노려보았다.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도 놈은 아직 억울하다는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억울하겠지.
이렇게 빨리 북한 8군단 특임조의 정체가 드러날 줄 짐작 못 했을 테니까.
“위고. 전에 중국에 안내했던 안내원 놈의 배신에 이어 이런 일이 또 생겼다는 건 정보총국의 수치다.”
[“확실하게 조치하겠습니다.”]
리코의 눈이 통화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번득이는 것을 강찬은 놓치지 않았다.
모자란 새끼!
정보총국의 현지 책임자 정도 되면 듣기 싫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알겠다.
정보전?
분명 지그펠트에게서 나오는 돈에 눈이 멀어서 북한과의 거래에 끼어들었을 놈이?
그렇다면 나도 거기에 맞춰 행동하고 명령을 내려주마.
모르나 본데 라노크라는 스승에게 배우는 동안 바실리라는 초청 강사가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가르쳐 줬거든.
너와 네 주변 놈, 그 어떤 놈도 동전 하나 못쓰게 해주면 되는 거지?
강찬은 리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시는 정보총국에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이놈을 추천한 놈, 이놈과 관련된 쿠바 정보총국 요원 전체, 이놈의 가족, 그리고 이놈의 전화번호에 담긴 놈들 전부를 24시간 안에 전부 사살해라.”
프랑스 말이다.
당연하게 리코와 제라르만 알아들었다.
얼굴이 하얗게 변한 놈을 보며 강찬은 피식 웃어주었다.
“그리고 이놈의 계좌와 재산을 파악해서 단 한 푼이라도 무조건 압류해. 이 지시에 따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관련 직원 전체를 사살하겠다.”
[“지시대로 명령을 하달하겠습니다.”]
위고의 답이 건너온 다음이었다.
“부총국장님! 그게 아니라……!”
개새끼! 그러게 사람이 좋게 말할 때 들었어야지!
“리코.”
“예, 부총국장님. 이건 제가 시작한 일이…….”
“이왕 버티려고 했으면 끝까지 가는 근성은 보여줘야지.”
그게 무슨 소리……?
타아앙! 퍼억!
놈의 이마가 터지며 대가리가 뒤로 넘어갔다.
“치워!”
강찬은 말을 마치고 이두희의 옆으로 움직였다.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다들 분위기로 짐작하는 눈치였다.
철컥!
강찬은 옥상의 담벼락에 소총을 걸고 어둠을 노려보았다.
어두운 밤에 불꽃이 튀었고, 숨 막히는 침묵을 찢어발기는 것처럼 총성이 울렸다.
강철규는 무서운 눈으로 옥상을 바라본 다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런 순간에 건물 옥상에서 권총을 쏘다니!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말 외에는 적당한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적에게는 단호함을, 아군에게는 든든함을 선사해준 총소리였다.
옥상에서 너희를 노리고 있다는 경고.
그리고 아군에게는 ‘우리 같은 동료가 있다.’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권총 세 방으로 더 할 수 없이 확실하게 표현해주었다.
외곽 경계를 돌며 발견했다.
아군을 확인하고 다가서는 순간에 거대한 땅강아지가 움직이는 것처럼 뒤쪽 흙이 움직이는 것을.
증평의 대원 둘이 번개같이 뒤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런 종류의 싸움에서 소총은 늘 한 발 느린 무기가 된다.
강철규와 남일규가 달려들지 않았다면 아군 둘은 목을 잃었을 게 분명했다.
적의 목을 가르고 난 후에 알았다.
이놈들이 8군단 특임조라는 사실을 말이다.
놈들이 무기를 몸에 거는 방식이 워낙 독특해서 모를 수도 없었다.
강철규의 비무장 팀을 흉내 내서 왼쪽 어깨에 대검을 건 동양인 특수팀이 세상에 또 있다면 모를까.
왜, 어떻게 이놈들이 여기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누운 자세로 구덩이를 파고 몸을 깊숙하게 숨긴 저놈들을 모조리 치워야 하는 것만 생각했다.
고양이처럼 움직이던 강철규가 한순간 부서지는 흙 속으로 왼손을 슬며시 집어넣었다.
부스스.
그리고는 땅거죽을 헤치고 나아가는 뱀처럼 왼손을 앞으로 움직였다.
그거 아나?
한번 판 흙을 다시 덮으면 반드시 덮은 방향으로 결이 생긴다는 걸?
깊게 암매장한 시체가 빗물을 타고 올라오는 이유, 혼자 만든 비트가 바람결과 다르게 흙먼지를 피어오르게 하는 이유가 그렇다는 걸.
특히나 오늘처럼 바닷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더더욱 쉽게 눈에 뜨인다는 걸 알고나 숨어야지.
부슥.
두 걸음 앞쪽의 흙이 미세하게 움직인 순간,
휘이익!
어둠 속에서 강철규의 몸이 어른거렸고,
푸욱!
강철규는 대검을 땅 깊숙이 꽂고 있었다.
서거걱! 끄드득!
흙에 박힌 대검을 당겼는데 살이 갈라지는 소리와 뼈가 끊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먹물이 번진 것처럼 피가 흙을 적셨고, 곧바로 비릿한 피 냄새도 번져 나왔다.
이 정도로 위장하려면 적어도 반나절의 여유를 가지고 충분하게 시간을 들여야 가능한 일이다.
옥상에서 기관총을 갈겨도 이놈들은 살아남는다.
서거억!
오른편에서 양동식이 적을 베는 소리가 들렸다.
수풀이 무성했다면 다른 매복이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바닥에서는 흙 안에 몸을 숨기는 것이 최선이다.
엉뚱한 놈들.
이따위 인원으로 강찬을 노려?
강철규는 다시 소리 나지 않게 앞으로 움직였다.
죽겠을 거다.
대가리를 들자니 옥상에서의 저격이 겁나고, 이대로 몸을 숨기고 있자니 한 놈씩 죽어 나가고.
부슥!
또다시 흙이 움직였고
푸욱!
강철규가 삵처럼 움직여서 바닥에 대검을 꽂았다.
끄드득!
대검에 근육과 뼈가 동시에 끊어지는 소리다.
이 소리를 근처에 몸을 숨긴 적은 모조리 듣는다.
양동식은 흙 속에 손을 넣어 세 번째로 죽인 놈의 대가리를 찾았다.
푸욱! 서걱! 끄득! 서거걱!
서너 번의 칼질이 있고 난 다음이었다.
양동식은 떼어낸 적의 목을 놈의 몸뚱이가 묻힌 자리 위에 올려놓았다.
서울 구경이다.
이 소리는 역시 숨어있는 적 모두가 듣는다.
이제야 놈들은 알았을 거다.
이곳에 비무장왕과 서울구경의 창시자 남일규가 있음을.
옥상에서 권총으로 경고해주어서 이놈들은 대가리도 내밀지 못한다.
양동식은 두어 걸음 앞에 숨은 적을 발견하고 빠르게 다가갔다.
푸욱! 서거걱!
그는 적의 몸뚱이에 대검을 박은 다음, 길게 당겼다.
이왕 죽은 거니까 서울이라도 보고 가야지?
양동식은 손을 넣어 흙을 뒤졌다.
벌써 십 년이 넘게 흘렀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 새끼들은 그동안 도통 발전이……?
흙을 뒤지던 양동식이 의아한 눈으로 왼손을 들어올렸다.
쭈욱!
전선이었다.
이건?
양동식은 다시 손을 넣어 죽은 놈의 몸뚱이를 뒤졌다.
서울 구경하기 좋게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왔나?
양동식이 들어 올린 손에 손바닥 크기의 C4가 주르륵 달려 나왔다.
아빠 오실 때 줄줄이도 아니고!
적들이 건물 앞을 포위하고 굳이 어둠이 깔린 시간에 움직인 이유를 알아챈 양동식은 순간 강철규를 찾기 위해 몸을 들었다.
이걸 알려야 하는데!
철컹!
양동식이 놀란 눈으로 바닥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푸우욱!
창처럼 뾰족한 쇠꼬챙이가 흙바닥에서 튀어나와 양동식의 가슴에 박혔다.
이 개새끼들이!
“끄아아!”
그가 이를 악물고 상체를 비틀 때였다.
철컹! 푸우욱! 철컹! 푸우욱!
두 곳에서 더 튀어나온 쇠꼬챙이가 양동식의 상체를 또다시 꿰뚫었다.
“동식아!”
밤이다.
매복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강철규가 요란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C4가 있다는 것을, 쇠꼬챙이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다.
“커르륵.”
그런데 정작 올라온 것은 피 거품이었다.
푸욱! 끄드득! 푸욱! 서걱! 푸욱! 서거걱!
강철규가 대검을 찍을 때마다 적의 몸뚱이 갈라지는 소리가 연신 울려 나왔다.
정말 존경할 만한 선배 아닌가?
전투 능력만 말한 거 아니란 건 알지?
철컹! 철컹!
강철규를 노린 꼬챙이가 두 번이나 튀어나왔다.
양동식은 흙이 튀는 것만 겨우 보았다.
경찰들이 사용하는 봉처럼 스프링 장치로 튀어나오는 꼬챙인가 싶었다.
누워서 총을 움직이지 못할 때 유용하기는 하겠다.
이상하게 더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 전체가 고요하게 느껴졌는데 눈만은 악착같이 강철규를 향하고 있었다.
강철규가 대검을 땅에 박고 기다랗게 긁는 모습이 소리를 제거한 TV를 보는 것처럼 시선에 들어왔다.
선배님이 괜찮으셔야 하는데…….
“아빠. 많이 아파?”
‘아니. 정말 괜찮아.’
강철규가 분명 ‘동식아! 야!’ 하며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는데도 들리는 건 소미의 음성이었다.
“벌써 오면 어떡하냐? 한참 더 있다가 와야지.”
‘그러게. 선배님이 걱정이다.’
“동식아! 정신 잃으면 안 돼! 동식아!”
입 모양을 보며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강철규가 자신의 상체를 안는 것도.
“그렇게 그분이 좋아?”
“응, 소미야. 난 강 선배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투욱.
바닥으로 떨어지는 양동식의 머리를 강철규가 붙들었다.
“동식아! 야 인마!”
피 거품을 뿜던 양동식이 거짓말처럼 또렷하게 전한 마지막 말과 함께 말이다.
홰액! 쉬익! 피윳! 휘익! 파악! 휘이익!
귀신과 유령의 대결처럼 보였다.
덜렁 솟아있는 2층 건물의 시야를 가린 둔덕 너머다.
적에게 둘러싸인 남일규는 총을 뽑을 틈이 없었고, 남일규를 둘러싼 적은 총을 겨눌 짬이 없었다.
일곱에서 열에 가까운 적이 바닥에서 치솟으며 남일규를 둘러쌌다.
파악! 피윳! 피윳!
이 새끼들이 서울구경의 창시자를 뭘로 알고!
남일규는 날아드는 대검의 손잡이를 쳐내고 빠르게 적의 몸뚱이에 대검을 꽂아 넣었다.
마음이 급했다.
이놈들이 왜 바닥에 얌전히 처박혀 있는지를 알았다.
얼기설기 연결된 줄.
허리에 감은 C4.
아군을 유혹해서 끌어낸 다음, 이곳에서 모조리 제거할 계획이었던 거다. 그래서 이놈들은 애초에 살아서 돌아간다는 계획 따위 없었을 게 분명했다.
피윳! 피잇!
마음이 급했던 탓인지 남일규는 허리와 어깨, 두 곳에 대검을 맞았다.
홰액! 홱! 홱!
기회를 노리고 날아든 대검을 남일규가 가까스로 피했다.
마지막 대검은 눈 바로 앞을 스치고 지나가서 콧등을 가로로 베고 지나갔다.
이 새파란 새끼들이!
‘이익!’
콰악!
남일규가 독사처럼 눈앞을 베고 지나간 적의 손목을 잡아챘다.
피윳! 푸욱!
그리고는 적의 손목을 벤 다음, 목덜미에 대검을 꽂아 넣었다.
피잇! 피이윳!
그사이 등과 허벅지를 또 베였다.
적의 숫자가 많긴 많았다.
겁이 났다.
이놈들은 어떡해서든 한 명이라도 잡아서 가르고 베어 가며 강찬과 특수팀이 나오도록 유도할 거다.
미끼가 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
소리라도 지를까?
그렇게 하면 최소한 강철규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피잇! 피이잇!
남일규는 다시 왼쪽 허리와 팔뚝에 대검을 맞았다.
저놈의 모가지를 뚫어주고 수류탄을 터트리면?
아무리 대검이 날아와도 그 정도는 해낸다.
‘더 늦기 전에!’
남일규가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푸슈웅!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총소리와 함께 적의 이마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강철규가 돕는 건 줄 알았다.
“동식아!”
그런데 강철규의 고함이 저 멀리에서 들렸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귀신이라도 있는 건가?
너무 억울하고 안타까워 보여서 돕는 건가?
사격은 무서우리만치 정확했다.
그래서 남일규가 엉뚱한 생각을 할 정도의 여유까지 챙겨주었다.
저격용 총소리와 다른 소리!
혹시?
남일규가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철컥!
새파랗게 독이 오른 눈을 번들거리며 강찬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