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402화 (40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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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등잔 밑이 어둡다.

또 하루를 더 보냈다.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된 호텔의 객실.

그러나 집과 호텔은 확실하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강찬은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고, 바로 물병을 꺼내 들었다.

왜 이러지?

짜라락.

뚜껑을 열어 물을 마시며 강찬은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벨기에와 뤽상부르로 연결되는 지방도시다.

늘 그렇듯이 아침을 밝히는 빛은 평화로움을 뒤집어썼고, 중세 유럽의 모습을 간직한 건물들은 커피 냄새를 맡은 프랑스인들처럼 뾰족한 탑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늪 바닥에서 자고 일어난 것처럼 축축하고 불쾌하게 다가왔던 느낌이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 햇살에 말라붙는 진흙처럼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이럴 땐 달달한 봉지 커피 한잔 때려주는 게 기분 전환에 최고인 건데…….

어깨, 팔, 그리고 허리를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거짓말처럼 가슴의 상처가 아물고 있어서 지금은 움직임을 조심할 필요는 없었다.

달칵.

그때 제라르가 잠에서 막 깬 얼굴로 거실로 나왔다.

“일어났냐? 여기.”

강찬은 옆에 있던 물병을 하나를 집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상하게 이 새끼를 보니까 커피 생각이 좀 더 간절해졌다.

“커피 좀 주문해.”

“Oui.”

아침을 먹어야 하고, 주문하면 당연하게 따라오는 것이 커피다. 그런데도 제라르는 질문 하나 없이 물병을 주둥이에 문 채로 전화기를 들었다.

하여간 저 새끼는 조금만 더 교양있게 행동해도 생긴 게 더 빛났을 거다.

아침 햇살을 받아 초록빛을 뿜어내는 눈동자, 매력적인 이마, 기다란 속눈썹, 오뚝하게 솟은 코, 게다가 어딘가 분위기를 잡아주는 볼의 상처, 그리고 주둥이에 물고 있는 물병.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린 강찬이 몸을 풀고 있을 때, 찌르르릉! 하는 벨 소리가 들렸다.

긴 다리를 움직인 제라르가 짜장면 배달 온 서양놈 꼴로 투박하게 커피잔과 포트를 받아왔다.

쪼로로록.

“여기 있습니다.”

강찬 옆에 놓인 탁자에 제라르가 커피잔을 올려주었다.

“오늘 한국에서 다예와 특수팀이 도착한다.”

“오후 1시쯤이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잔을 들던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예에게도 따로 말을 하겠지만, 느낌이 지랄 같다.”

“대장하고 하는 작전이 밋밋하게 끝나면 그게 이상한 겁니다.”

그게 그렇게 되나?

시선을 주었을 때 제라르는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웃는 얼굴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일 거 같다. 나, 너, 다예, 그리고 한국에서 오는 특수팀까지. 이 작전이 끝났을 때 다 같이 살아 있었으면 싶다. 그러니 커피 마시고 난 후부터 긴장 풀지 말고 있어.”

이런 식으로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시선을 돌린 곳에서 제라르가 웃음을 지우고 강찬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둘 다 반바지에 반소매 티셔츠 차림이었다.

드러난 허벅지와 무릎, 목 아래, 그리고 팔뚝에 섬뜩한 흉터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함께 지옥 같은 전장을 뚫고 나왔다는 증표 같은 거였다.

강찬은 적당하게 식은 커피를 마신 뒤에 잔을 내려놓았다.

“너는 양복을 입고 내 뒤에 있어야 할 거다. 만약 상황을 봐서 다예까지 그렇게 된다면 우리 셋이 모두 전투에 빠지게 된다. 증평 팀이 세계적인 수준이 되긴 했지만, 만약의 사태에 얼마나 대처해 줄지는 모른다.”

“아예 지그펠트가 이 기회를 노린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만나는 순간에 우리 쪽에서 먼저 해결해 버리지요?”

당연하게 제라르가 말한 방법을 고민했었다.

그러나 답은 다르게 나왔다.

“셔먼, 이 개새끼가 중간에 끼어있는 게 그 이유 때문 아니겠냐? 우리가 먼저 손을 쓰면 미국이 무언가를 요구하겠지. 반대라면 어떨까?”

“셔먼이 저쪽에 붙은 거 말입니까?”

강찬은 피식 웃으며 제라르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건 이미 아는 사실이고. 반대로 지그펠트가 무언가 멋진 계획을 성공시켜서 우리와 셔먼을 모두 제거한다면?”

“대장이 있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거기에 내가 있고, 부족해서 그렇지, 다예 그 새끼도 먹은 값은 할 겁니다.”

이 새끼는 석강호가 들으면 펄쩍 뛸 말을 늘 진심처럼 뱉는다.

“그렇더라도 만에 하나, 지그펠트가 나와 셔먼을 동시에 해결할 수만 있다면, 놈은 손해 볼 게 없다. 가진 게 많으니까 그저 창고를 열어 적당한 것을 미국에 쥐여주면 되는 거지. 그 뒤에 엄청나게 벌 기회를 사는 꼴이잖냐.”

제라르가 그때까지 들고 있던 커피를 홀랑 털어 넣고 잔을 내려놓았다.

“대장은 이제 정보국 수장이 다 된 것 같습니다.”

강찬의 시선을 받은 제라르가 변명처럼 입을 열었다.

“어제 우즈만과 만날 때 사실 좀 놀랐습니다. 대장이 원래는 이런 일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점잖게 그를 상대하던데요.”

강찬은 픽 웃고는 고개를 털었다.

“너도 봤잖아? 점잖게 나오는 영감을 상대로 악악대서 뭐할 거냐? 아무튼, 이번 작전으로 모두 끝내자. 그런 다음, 우리 셋이 놀러도 다니고 좀 쉬기도 하자.”

말을 마친 강찬은 샤워실로 움직였다.

고민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고민한다고 풀릴 일이었다면 구태여 목숨 걸고 싸울 일도 없는 거다.

“아침 주문해 놔. 오늘은 미국식으로!”

“Oui!”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

라노크는 들고 있던 전화기를 겨우 내려놓았다.

바실리는 말할 것도 없고, 루드비히, 양범, 그 외에 유럽 각 나라의 정보국 수장들과 연달아 통화하느라 그랬다.

라노크가 자동차 뒷좌석만큼이나 세워놓은 침대에 기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샌드위치를 좀 드시겠습니까?”

“그보다는 홍차가 낫겠다.”

“알겠습니다.”

라파엘이 공손하게 차를 따라 침대 중간에 세운 간이 탁자에 올려주었다.

“고맙군. 시가도 준비해 주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라노크의 지시다.

그런데도 라파엘은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기다랗고 둥그런 쟁반에 시가와 라이터, 재떨이를 담아 왔다.

“흐음.”

라노크는 시가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찰칵.

그가 볼을 좁힐 때마다 라이터 불이 빨려 들어갔고, 이어서 시가의 끝에 커다란 불꽃이 피어났다.

“후우. 아프리카도 아니고, 유럽도 아니다. 러시아 주변, 중국 주변, 이란이 아니라면 결국 미국이 병력을 동원한다는 뜻인가?”

기껏 불을 붙여 놓고도 라노크는 창밖을 노려볼 뿐, 시가와 홍차를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띠루루. 띠루루. 띠루루.

그때 전화벨이 울려서 라파엘이 얼른 들어 라노크에게 건네주었다.

“바실리. 알아냈나?”

[“옛 소비에트 연방의 특수팀 출신자부터 나토 관련자들까지 모조리 훑었지만, 흔적이 없다.”]

“영국에서 얻은 건 없나?”

[“프랑스 정보국의 보고 대로다. 이튼은 이미 이번 일에서 발을 뺐고, 한국이 얼른 차세대 발전 시설을 완성하기만 바라고 있다.”]

라노크가 무섭게 가라앉은 눈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셔먼이 이번 일에 미국의 모든 것을 걸 수가 있을까?”

[“라노크. 놈은 우리와 달라. 절대 그럴 놈이 아니다. 그리고 만약 미군이 움직여서 우리와 군사적 충돌이 생긴다면 지그펠트가 가장 바라마지 않는 세계전쟁이 시작된다는 것 정도는 생각할 놈이다.”]

잠시 날카롭고 무거운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결국, 또 무슈 강과 한국의 특수팀을 지켜보며 판단해야 하는 건가?”

[“그를 주연으로 만들었을 때 각오했던 일 아닌가? 이제 조연의 비애를 제대로 실감하는 것 같군.”]

라노크가 입술 한쪽을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어냈다.

“마지막으로 다시 살펴보고 상황을 지켜보자.”

[“그러지.”]

짧은 답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

오후 1시, 이제 자라나기 시작한 포도나무가 아니라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햇살이 빌레 라쉬 보흐 공항 달궜다.

검은 정장과 선글라스를 낀 정보총국 요원들이 공항의 일반인 출입을 통제한 상황이었다.

강찬은 제라르와 함께 공항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시작이다.

돌이킬 수 없는 막판 싸움.

저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 중 누가 살고, 누가 죽어서 돌아갈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싸움은 물릴 수도 없다.

기이이이잉.

활주로에 내려선 민간 항공기가 커다랗게 방향을 틀어 강찬을 향해 다가왔다.

계단을 짊어진 트럭이 달라붙은 뒤로 문이 열렸고, 강철규가 가장 먼저 프랑스의 빌레 라쉬 보흐 땅을 밟았다.

‘괜찮냐?’

‘밥은 많이 먹었어?’

마주친 시선으로 물었고,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웃음으로 답을 했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면, 피식거리는 웃음 대신 안부도 묻고 그랬을 텐데.

이어서 내린 남일규와 양동식이 “부원장님!” 하고 다가와서,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하는 인사를 나눴다.

“야! 이 씨발 놈아!”

와락! 달려든 오광택이 왈칵 껴안는 바람에 심장 근처의 상처가 짜릿하게 울리는 반가움도 나눴다.

다음은 석강호와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였다.

“대장!”

“미친 새끼!”

반갑다.

이 새끼를 보는 건, 늘, 언제나, 그리고 항상 반갑다.

“고생했다.”

강찬은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의 손을 잡아주었고, 그들의 오른쪽 팔을 두드려주었다.

언제 만나서 언제 이런 사이가 된 거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가슴에 담겨서 의지가 되는 사람들이었다.

이어서 차동균과 곽철호, 윤상기를 시작으로 증평의 대원들이 내렸다.

“박 장군님과 김 팀장님에게 말씀 좀 잘해 주십시오.”

“뭔 소리야?”

“저희는 정말 억류되어 있었던 겁니다.”

엉뚱한 인사를 뒤로하고 뒤에 내린 대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반갑고, 고맙고, 마지막으로 든든했다.

다예와 제라르만 있던 세상에서 어느새 이런 든든한 전우가 생긴 거였다.

준비한 버스에 나눠타고 호텔로 향하는 동안, 각자 방으로 들어가 1시간쯤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어딜 가나 꼭 말을 안 들어 먹는 놈이 있는 거다.

석강호는 강찬이 사용하던 객실을 휘휘 둘러보더니 대뜸 짐을 그리 가져다 놓았다.

또, 셋이다.

커피와 담배를 놓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상황을 들었고,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는 건 지그펠트, 그 개새끼가 어찌 되었든 대장을 노린다는 거 아뇨? 그럼 보는 대로 먼저 대가리를 돌려줍시다.”

이 두 새끼의 생각이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단박에 증명하는 석강호의 말이 나왔다.

이런 놈들이 서로 잘났다고 따지는 꼴을 봐야 한다니!

강찬이 먼저 웃었고, 말을 전해 들은 제라르가 따라 웃었다.

“이 기회를 노리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와 지그펠트를 동시에 노릴 수도 있는 거고.”

석강호가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은 내일쯤으로 잡을 생각이다. 조금 뒤에 전체 브리핑을 할 테니까 일단 오늘은 푹 쉬어라. 그래야 제대로 싸운다.”

“알았소. 그런데 여긴 뭐 먹을 만한 거 없소?”

석강호를 위해 샌드위치를 주문한 다음, 셋이서 한 시간쯤을 더 보냈다.

강찬은 위고를 불러 쿠바로 날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고, 거기에 맞춰 약속 시간을 정했다.

오후 3시에 강찬은 호텔 레스토랑에 커피와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게 하고, 직원 전체를 내보내게 했다.

호텔에 워낙 손님이 없는 건지, 아니면 정보총국이 발 빠르게 조치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일반인 투숙객을 구경하기는 어려웠다.

작전이 시작되고 있음이 레스토랑에 모인 이들의 표정과 눈빛, 그리고 주변을 떠도는 긴장을 통해 분명하게 느껴졌다.

“브리핑에 앞서 알려줄 것이 있다.”

먼저 강찬은 우즈만이 이곳을 다녀갔다는 사실과 나눈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우리가 노력한 결과다. 이제 우리는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그런 나라가 된 거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작전을 통해 지금껏 우리가 만들어온 결과에 대해 누구도 반기를 들지 못하게 만든다.”

말을 마친 강찬은 제라르에게 눈짓을 했다.

제라르가 레스토랑 메뉴판 두 개 위로 커다란 지도를 펼쳤다.

“이게 쿠바의 지도.”

지도를 가리킨 강찬은 바로 다음 지도를 펼치게 했다.

“여기가 약속 장소인 프라야 산타 루시아(Playa Santa Lucia)다. 해안으로 바로 연결되고, 이 위성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뒤편은 야산 형태로 구성되었다.”

강찬은 지도에서 시선을 들어 앉아 있는 이들을 보았다.

“간단하게 설명한다. 지그펠트란 놈이 소위 다윗의 별이다. 이 새끼의 후계자를 제라르가 잡아두었다.”

시선들이 제라르로 갔다가 빠르게 돌아왔다.

“하여간 이 새끼 죄는 거론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있었던 모든 테러, 리비아의 우리 요원 암살에서부터 그 뒤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 아프리카의 쿠드스, 아프가니스탄 UIS, 그 모든 일의 뒤에 이 새끼가 있다고 보면 맞는다.”

듣고 있던 이들의 눈빛이 차츰 번들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놈은 세계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있다. 그런데도 나를 보자고 한다. 표면상 이유는 나와 협상을 통해 우리가 준비하는 차세대 에너지 시설을 인정하고, 그에 서로 협조하자는 거다.”

강철규의 입끝이 분명하게 움직였다.

전혀 믿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솔직히 그 새끼가 이런 제안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찜찜한 일이다. 또 있다.”

강찬은 지도 위에 한쪽 팔을 걸치고 앉아 있는 이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 기회를 이용해 누군가가 나와 지그펠트를 동시에 제거하려고 들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이 작전은 그만큼 위험하다.”

위험하다고 한 직후였다.

우습게도 앉아 있던 이들의 눈빛이 좀 더 번들거렸다.

이런 사람들이, 이런 대원들이 서른이 넘게 있는 거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라르와 다예. 그리고 최종일 조는 정장을 입고 나와 함께 움직인다.”

“예!”

듬직한 답이 들렸다.

“증평 팀은 외곽 경계다. 강철규, 남일규, 양동식, 오광택, 이렇게 네 분은 일단 차동균의 지휘를 받되 별동대로 움직여 주시면 됩니다. 질문!”

차동균의 손이 곧바로 올라왔다.

“발포나 교전은 임의로 판단하면 됩니까?”

“물론이다.”

강찬은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우리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그리고 대한민국 특수팀을 대표한다. 알아서 판단하고,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사살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은…….”

차동균의 번들거리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강찬이 입을 열었다.

“전부 내가 진다.”

입으로 뱉어낸 말만큼이나 정확한 뜻을 눈으로 주고받았다.

더는 질문이 없어서 강찬은 마지막 지시사항을 전했다.

“이곳 시간으로 내일 09시에 호텔을 출발해서 10시에 비행, 그리고 현지 시각으로 17시 도착이다. 작전은 다음 날 오전 11시. 이제부터 내일 출발 때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강찬의 말을 끝으로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원장.”

다들 레스토랑을 나설 때였다.

강철규가 나직하게 강찬을 불렀다.

“먼저 가 있어. 잠깐 이야기 좀 나누고 갈 테니까.”

강찬은 석강호에게 말을 전해놓고 강철규와 함께 레스토랑의 한쪽에 앉았다.

“느꼈겠지만, 감이 좋지 않다.”

강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심에서 전하는 말이다.”

강철규는 단 두 마디를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는 투였다.

“올라간다.”

어색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철규를 따라 강찬도 몸을 일으켰다.

엘리베이터까지 함께 걸었고, 함께 탔고, 함께 객실이 있는 복도에 내려섰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강대경에게 말을 전해준 것에 대해.

그런데 막상 그 말을 하려니 어쩐지 미안하기도 해서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참 뻑뻑한 관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강철규가 곧바로 방으로 움직였다.

뭐가 저렇게 바쁠까?

강찬은 고개를 저으며 방으로 돌아왔다.

석강호와 제라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강찬을 맞았다.

“감이 안 좋다고 하더라. 난 몇 군데 전화를 걸어야 하니까 좀 쉬고 있어.”

말을 전해 들은 석강호와 제라르가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은 커피와 담배를 챙겨서 거실의 한쪽으로 움직였다.

가장 먼저 찾은 번호는 당연하게 라노크였다.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었다.

[“바실리와 내가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곳을 모두 조사하고는 있는데, 병력을 따로 동원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부터 미국의 움직임을 주시했다가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일이 있다면 바로 알려드리지요.”]

이 양반이 왜 이러지?

유라시아 발표회장에서부터 쉬커의 납치 때도 전혀 변함없던 라노크의 음성에 긴장이 묻어있었다.

“대사님.”

강찬은 나직하게 라노크를 불렀다.

“이 싸움은 우리가 이길 겁니다.”

잔잔한 라노크의 웃음이 먼저 건너왔다.

[“우리에게 갓 오브 블랙필드가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었나 봅니다. 강찬 씨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강찬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찰칵.

“후우.”

지그펠트?

이번엔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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