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401화 (40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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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그의 변치 않는 성품에 감사해라.

힘겹게 눈을 뜬 유혜숙이 안쓰러운 얼굴로 강대경을 보았다.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게 자신을 위해준 남자요, 한결같은 모습으로 가정을 지켜준 남편이었다.

살면서 왜 다툼이 없었겠나.

당연하게 미울 때도 있었고, 이해 안 돼서 화나는 모습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럴 때도 저 사람은 가정을 향한 방향만큼은 단 한치도 비튼 적이 없었다.

강대경에게서 시선을 든 유혜숙이 그의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유헌우, 강철규, 김형정, 그리고 검은색 군복을 입은 남자.

강찬이 입었다던 군복과 비슷한 복장이어서 유혜숙이 놀란 눈을 할 때였다.

“여보.”

강대경이 나직하게 유혜숙을 불렀다.

“놀라지 말고 들어. 내가 혼자 말하면 당신이 안 믿을 것 같아서 내가 부탁드렸어.”

아들을 잃었다.

세상천지에 그보다 더 놀랄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런데도 사람은 또 묘해서 유혜숙은 단숨에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강찬을 잃었을 때의 충격이 고스란히 살아난 탓이었다.

“우리 아들을 노리던 놈들이 있었나 봐.”

말을 건넨 강대경이 놀란 유혜숙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래서 살아 있다고 하면 또 노릴 거라 죽었다고 거짓 발표를 했었대. 여기 유 원장님께서 그렇게 발표하고, 국가정보원의 김 팀장님이 도움을 주셨다네.”

이 양반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말귀를 이해하지 못한 유혜숙이 유헌우와 김형정을 보았다가 다시 강철규, 차동균에게 시선을 주었다.

“여보. 우리 아들 지금 프랑스로 피해 있어. 나하고 통화했고, 지금 당신 전화 기다려.”

유혜숙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잘못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당시에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여기 계신 이분들이 찬이가 죽었다고 발표했던 모양이야.”

강대경이 쥐고 있던 유혜숙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김 팀장님과 강 이사님은 믿지? 유 원장님도 그렇고. 이분들이 우리 찬이를 감춰 주셨고, 저 뒤에 계신 분이 지켜주셨대. 그 덕분에 지금은 프랑스에서 안전하게 있는데, 깨어나자마자 당신을 찾았고, 당신이 전화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어.”

“우리 아들……이?”

“그래. 우리 찬이가.”

유혜숙은 아직 믿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그런 눈빛 저 깊은 곳에 피어난 옅은 희망 한 조각을 악착같이 붙들고 있었다.

“통화할 수 있겠냐?”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진짜지?”

“통화해 보자. 잠깐만.”

강대경이 전화기를 꺼내 들자, “그럼 우리는 나가 있겠습니다.”하고 강철규가 함께 섰던 이들을 둘러보았다.

드르륵.

네 명이 병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는 순간이었다.

“아들? 아들이야? 아들 맞아?”

하는 유혜숙의 음성이 들렸다.

드르륵.

차동균이 서둘러 문을 닫았다.

누구랄 것 없이 네 사람이 함께 복도 중앙에 있는 의자로 걸음을 옮겼다.

“강 대표가 대단한 분이네요.”

유헌우가 병실을 힐끔 보면서 꺼낸 말에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다. 반대해서가 아니라 다른 말을 꺼낼 여지가 없어서였다. 여기 있는 네 사람에게 어렵게 부탁했고, 강찬과 유혜숙을 위해 거짓말을 지어냈다. 저걸 어떻게 탓할 수 있을까.

“다행입니다.”

강철규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병실에서 시선을 가져왔다.

유혜숙과 통화를 마친 강찬은 잠시 감정을 추스른 다음,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루드비히와는 대략 30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눴다.

통화를 마친 강찬은 전화기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목을 좌우로 꺾어댔다. 태어나서 가장 전화를 오래, 많이 했구나 싶은 하루였다.

“대강 끝난 겁니까?”

제라르는 여전히 강찬의 옆에 있었다.

“그런 거 같다. 어디 가서 전투를 치르는 게 낫지 이 짓은 정말 못하겠다.”

“잘 어울리는데요?”

“너도 좀 해볼래?”

“절대 아닙니다. 나는 현장 체질입니다.”

제라르가 사정없이 고개를 내저었을 때였다.

찌르르릉.

객실의 벨이 요란을 떨어댔다.

하여간 이 호텔은 엘리베이터에서 시작해서 벨까지, 오래된 것들을 악착같이 잘도 쓴다.

제라르가 벌떡 일어나서 문으로 움직였다가 위고와 함께 들어왔다.

어디서 동양의 인사법에 대해 주워들은 모양이었다.

어색하고 묘한 동작으로 고개를 숙여 보인 위고가 강찬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우즈만은 오후 8시까지 이곳 호텔로 도착하겠답니다.”

“오후 8시…….”

시간을 계산하던 강찬의 시선에 소파에 걸린 위고의 짧은 다리가 들어왔다. 틀림없이 바지를 사고 나서 밑단을 뭉텅 잘랐을 텐데 저럴 경우는 좀 깎아 줘야…….

“셔먼에게서도 연락이 있었습니다.”

얼굴을 바라보자 이번엔 이마로 시선이 갔다.

이놈은 몸 전체로 사람의 시선을 흐트러트리는 능력을 지녔다. 어쩌면 그냥 전화로 보고받는 게 훨씬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지금은 대화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쿠바의 프라야 산타 루시아(Playa Santa Lucia)를 면담 장소로 지정했습니다. 경호 인원은 양쪽 모두 30명, 그 외에 수행 인원 5명입니다.”

“정보총국의 분석은? 납득할 수준인가?”

“장소가 쿠바인 것을 고려하면 우리에게 불리한 조건입니다.”

강찬은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위고를 바라보았다.

“쿠바는 미국과 근접했고, 버뮤다와 바로 연결됩니다. 그런 곳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도움을 얻을 곳이 없습니다.”

제라르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위고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위고. 내가 이 면담을 거절하게 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어떻게 되지?”

“질문의 내용이 너무 광범위해서 답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별로 그랬던 것 같지는 않았지만, 강찬은 질문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지그펠트를 계속 제거하려고 했을 때, 놈이 사고 칠 수 있는 것 중 가장 큰 게 뭐가 있냐는 거지. 버뮤다에 숨는 게 단순히 몸을 피하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나온 답이었다.

“지그펠트는 세계 전쟁을 유발할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위고는 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위고. 누구 한 사람의 결정으로 세계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보는 건 좀 과하지 않나?”

“지그펠트라고 보시면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다윗의 별이란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다윗의 별이 운영할 수 있는 막대한 금액은 아프리카 반군 전체를 동원할 힘이 있고, 무기 밀매상이 거래하는 미사일 전체를 동시에 날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닙니다.”

“반군이나 미사일 몇 개로?”

강찬이 고개를 저을 때였다.

“그가 결정하는 순간, 멕시코, 이란, 아프리카의 몇 개 나라가 주인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들은 바로 국제전을 시작합니다.”

“흠.”

제라르를 힐끔 본 강찬은 나직하게 신음을 터트렸다.

듣고 보니 가능한 일이겠구나 싶어서였다.

“다윗의 별이 주무르는 경제에는 그런 어두운 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반군의 지원도 마다치 않습니다. 국제적 불안 요소와 국지전만큼 커다란 파생 수익을 안겨주는 요소는 없으니까요.”

강찬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게다가 러시아 주변의 나라들과 중국의 소수민족이 독립을 요구하며 분쟁을 일으키게 할 겁니다. 그 정도면 세계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죽여야 할 놈이란 뜻으로 들리는데?”

강찬의 질문에도 위고는 답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보고 알 수 있었다.

‘판단은 당신의 몫이다.’라는 글자를 딱 붙여놓은 듯한 그의 표정을 보면서 말이다.

“답은 언제까지 주기로 했지?”

“결정해주시면 정보총국이 셔먼에게 통보하기 했습니다.”

“알았다. 만나기로 한다. 다만, 정확한 시간은 한국과 의논해서 따로 통보하겠다고 전해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위고가 자리에서 일어나 또다시 어색한 방법으로 인사를 마치고 객실을 나섰다.

***

쩔걱. 쩔걱.

소총은 분해해 놓고 보면 사실 별거 없다.

조립해도 마찬가지다.

거무튀튀하게 생긴 몸뚱이, 총구, 방아쇠.

그런데 그것들이 강인하게 생긴 군인의 어깨에 걸려서 쇳소리를 낼 때면, 엄청난 위압감을 풍긴다.

강철규와 이야기를 나눈 김형정이 차동균, 곽철호와 별도로 시간을 가졌다.

그다음이었다.

증평 대원들이 감추어 두었던 눈빛을 번득인 것은.

곧바로 병원에 설명하기 어려운 흥분과 긴장이 떠돌았다.

바쁘게 움직인 김형정이 석강호의 병실로 들어서고 잠시 지나서였다.

“이건 아닌 겁니다.”

찌익! 찍!

석강호가 링거 바늘을 고정시켰던 테이프를 뜯은 다음, 단숨에 바늘을 뽑아 버렸다.

“석 선생!”

“날 빼고 보낼 생각 하시면 안 되는 겁니다.”

아직은 부기가 빠지지 않아서 석강호는 코와 귀 부분이 아직 팽팽했다. 물론 시커멓게 든 멍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저놈들을 좀 보십쇼!”

석강호가 시선으로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를 가리켰다.

김형정에게 반항하지 못하는 세 사람이다.

그렇지만 번들거리는 눈에 함께 가고 싶은 열망을 분명하게 담고 있었다.

“우리 목숨 걸고 지브릴 제거하고 왔습니다.”

“석 선생! 무시하는 게 아니라 몸 상태를 생각해서 결정한 일입니다.”

“뒈지게 두들겨 맞으면서! 저놈들과 얼굴도 못 보면서! 우리가 생각한 건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불똥 튀게 하지 말자! 대장에게 누 끼치지 말자!”

그걸 왜 모르겠나.

대꾸조차 못 한 김형정이 숨을 커다랗게 내쉴 때였다.

“내가 대장에게 전화할 테니 우리 넷 갈 수 있게 준비해 주십쇼. 대장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런 자리에 빠졌다가 진짜 일이 생기면……. 김 팀장님!”

석강호를 바라보던 김형정이 실없는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

우즈만은 다행히 예상했던 모습과 비슷했다.

악수를 나눈 강찬은 제라르를 소개하고 우즈만과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았다.

호텔 레스토랑이었다.

우즈만의 뒤로 하얀 원피스를 입은 수행원과 경호원이 대여섯 명, 강찬의 뒤로 제라르와 위고, 그리고 정보총국의 경호 요원들 십여 명이 선글라스를 낀 채로 지켜 서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젊은 분이군요.”

“실망하지 않으셨으면 싶습니다.”

강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즈만이 미소를 담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신의 눈빛이 모든 걸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의미로 건넨 말이라는 생각에 강찬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보자고 한 것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우즈만은 점잖게 말을 이끌어나갔다.

“어떤 분인지 한번 보고 싶었고, 이 기회를 통해 우리가 보다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단어 하나씩을 끊어서 들었다면 못 알아들을 수도 있는 뚝딱거리는 프랑스 말이었다. 그러나 문장으로 듣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무슈 강.”

강찬의 시선을 분명하게 당긴 우즈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내려오는 격언 중에 날아가는 바람을 등지고 씨를 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석강호라면 단박에 알아들었을지 모르지만, 강찬은 처음 듣는 속담이었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그 수확을 거둘 것이란 믿음으로 씨를 뿌리라는 가르침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아비부와 지브릴의 희생을 잊었고, 한국에서 온 네 분을 돌려드리는 것으로 씨를 뿌렸습니다. 무슈 강이라는 바람을 등지고 말입니다.”

노인네들과 하는 대화는 확실히 무섭다.

어딘가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쿡 찌르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꼭 지금처럼.

“혹시 누군가 수확을 하게 될 때, 그 사람이 우리 사람이어도 무슈 강의 자비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즈만은 눈으로도 분명하게 같은 뜻을 전하려 애쓰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내가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이라는 이유로 적대시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고맙소, 무슈 강.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우즈만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고작 이 몇 마디를 하려고 그 먼 길을 왔다는 건가?

물론 그런다고 아쉬운 게 있는 건 아니었다.

우즈만을 따라 강찬이 몸을 일으킨 다음이었다.

“다음에 정식으로 초대해도 되겠습니까?”

그가 넉넉한 음성으로 강찬에게 말을 건네왔다.

“가능하다면 초대에 응하겠습니다. 그리고 불편할 수 있는 일을 현명하게 마무리 지어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강찬은 부드럽게 우즈만의 말을 받았고, 충분하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우즈만의 태도와 성의에 최소한의 답을 하고 싶어서였다.

“신의 가호로 사우디아라비아가 더는 맞바람을 맞지 않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세상을 끌어가는 바람에 거스르고 살아남는 족속은 없을 테니까요. 무슈 강에게 신께서 더욱 많은 일을 맡기기를 희망합니다.”

덕담인지, 악담인지 모를 말을 남긴 우즈만이 수행원과 경호원들을 이끌고 레스토랑을 나섰다.

***

검은 군복에 무기를 주렁주렁 단 석강호가 퉁퉁 부은 고개를 내밀어 지도를 살폈다.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 역시 같은 모습이었다.

“프랑스로 이동합니다. 장소는 여기, 몽셍마흐땅이라는데 이곳 빌레 라쉬 브흐 공항에서 내려 자동차로 40분 거리입니다. 도착한 후는 물론이고, 그전이라도 부원장님의 지시가 있으면 그에 따르면 됩니다.”

강철규, 석강호, 차동균이 비슷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군 34명과 함께 쿠바로 이동할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함께 움직일 테니 번거롭더라도 몽셍마흐땅으로 바로 올 것, 중무장, 중화기, 그리고 여분의 탄알과 탄창을 넉넉하게 준비할 것, 이것이 지시의 전부였습니다.”

김형정이 전해준 강찬의 지시사항이었다.

다른 말은 다 집어치우고라도 중무장과 여분의 탄알을 넉넉하게 준비하라는 지시만으로도 강찬의 의지와 상황 정도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민간 항공기를 임대해 두었습니다. 출발은 오늘 22시, 성남 공항입니다.”

구차한 말 덧붙일 것 없이 상황이 모두 끝났다.

“그럼 저녁 먹고 좀 쉬었다가 9시쯤 병원에서 나서면 되겠습니다.”

“공연히 병원에 부담될 수 있어서, 저녁은 성남 근처의 식당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대테러 팀 요원들이 병원 경계를 맡으면 그때 출발할 예정입니다.”

상체를 세우던 석강호가 움찔하고는 얼른 눈치를 살폈다.

“아파서 그런 게 아닙니다.”

김형정과 강철규가 시선을 피한 채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머리통이 큰 석강호가 팅팅 부은 얼굴로 눈치를 살피는 꼴을 보았다면 아마 거의 그랬을 거다.

이제는 얼굴 모르는 사람 없고, 서로가 어떤 작전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모두 아는 사이다.

병원에서 버스 두 대로 나눠 타고 움직인 일행은 김형정이 준비한 성남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마쳤다.

외곽에 있는 단독주택을 개조한 형태여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제대로 피할 수 있는 게 제일 좋았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삼삼오오 모여서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강철규는 정원의 한쪽에 놓인 붉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남일규와 양동식, 김형정이 칠 벗겨진 테이블에 둘러앉았는데 역시나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병원에서 출발한 이후부터 강철규는 확실히 말이 없었다.

남일규와 양동식은 그러려니 하는 얼굴이었고, 김형정은 강철규에게 “뭐 언짢은 게 있느냐?”라고 함부로 묻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이쪽 테이블은 본의 아니게 전투에 나서는 분위기가 가장 잘 잡힌 꼴을 하고 있었다.

“선배님.”

남일규가 지나가는 말처럼 강철규를 불렀다.

“혹시 감이 안 좋으십니까?”

김형정이 힐끔 바라보았을 때다.

강철규가 확신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이 저런 느낌을 얻는다는 걸 알고 있던 김형정이다. 그런데 남일규의 질문에 강철규가 고개까지 끄덕이자 의아한 얼굴로 그를 볼 수밖에 없었다.

“늘 그렇듯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찜찜함이 있는 것 같다. 오늘부터 특별히 경계에 신경 써라.”

“예.”

남일규와 양동식이 단단한 음성으로 답을 했다.

“그런 게 느껴지십니까?”

“그냥 감이란 게 경고할 때가 있습니다. 위험하다, 위험하다, 이런 느낌이었다가 일이 벌어질 때면 심장이 뛰기 시작하거나 뭐 그런 느낌인데…….”

말을 하면서도 설명하기가 어색했는지 강철규가 웃었다.

“부원장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던데요?”

“들었습니다. 비슷한 감각을 지니고 있더군요.”

“예.”

고개를 끄덕이던 김형정이 “많이 안 좋은 건가요?” 하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럴 때만큼은 점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부원장님이 부른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보다 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에 확실히 위험을 감지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강철규가 그답지 않게 자상한 설명을 김형정에게 전해주었다.

기운을 잃은 해가 칼을 맞고 쓰러진 것처럼 붉은 기운을 뿌려대는 저녁이었다.

“푸흐흐!”

저 건너편에서 만족한 듯한 석강호의 웃음이 넘어올 때, 강철규는 핏빛 노을에 물든 눈으로 먼 하늘을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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