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98화 (398/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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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8 그가 살아 있다고?

차르르. 찰캉.

교도관이 고리로 된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다.

“2133번. 이송.”

점심 잘 먹고 오후가 시작되는 미결수 방에 뜬금없이 전해진 명령이었다.

수감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철규를 보았다.

재판을 받다가 이송되는 경우는 하나밖에 없다.

추가 건이 생겨서 다른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할 때다.

어린 수감자들이 나서서 강철규의 짐을 싸주었다.

5분 걸렸다.

“건강하세요.”

방에서 설치던 못된 놈이 찌그러든 덕분에 그동안 편하게 지냈던 수감자들이,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강철규에게 인사를 건넸다.

강철규는 방을 나와 짐을 들었다.

복도를 내려와 몸을 묶은 다음 버스에 탄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저 강찬의 소식만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도관은 정문 쪽을 향해 걸었다.

그거야 뭐, 이유가 있겠지.

강철규가 복도를 돌아 두 번이나 쇠창살을 지났을 때였다.

“선배님!”

“이사님!”

남일규, 양동식, 오광택이 강철규를 맞았다.

공범이라고 얼굴조차 못 보게 하더니?

다들 무슨 일인가 할 때였다.

철컹.

정문과 연결된 쇠창살 문이 열리고 김형정이 교도소장과 함께 다가왔다.

어색하게 인사하려던 오광택이 뻣뻣한 김형정의 표정을 보고 눈치를 살폈다.

“가시죠.”

김형정 또한 굳은 표정이었다.

다 같은 선수들끼리다.

척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 착하면 미운 놈 뒤통수 갈기는 소리, 그렇다면 지금은? 다른 말 하지 말라는 의미 정도는 모두 알아듣는 수준인 거다.

‘혹시……?’

강철규는 자꾸만 생기는 기대를 털어내려 애써 하늘로 시선을 주었다.

분명 김형정의 눈에, 얼굴에 묻은 밝은 빛을 보았다. 이렇게 공범 넷을 김형정이 데리러 왔다면 대강 짐작해도 되는 거 아닐까?

그동안 밥 잘 먹고 있었다.

강찬에게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저벅저벅.

정문까지 걸어가는 고작 50미터가 50킬로미터쯤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정문 옆으로 있는 작은 통로에서 마지막 서류에 사인한 김형정이 네 사람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가 민원인 대기실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승합차 세 대가 앞에 멈춰 섰고, 차에서 내린 요원들이 네 사람을 감쌌다.

드르륵.

“얼른 타시죠.”

있으라고 할까 봐 걱정인 곳이다.

다들 빠르게 몸을 실었고, 곧바로 차가 출발했다.

교도소 담벼락 옆을 달려 주차장으로 방향을 틀 때였다.

김형정이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원장님의 특별 부탁입니다. 완벽하게 무장한 버뮤다 섬을 공격합니다. 대통령님과 국가정보원장님께서 보증을 서셨습니다. 이 작전이 끝나면 다시 수감됩니다.”

강철규는 입가에 담기는 미소를 감추기 위해 어색한 얼굴을 창으로 돌렸다.

“부원장이라뇨?”

역시 오광택이다.

그가 따지는 것처럼 김형정에게 머리를 디밀었다.

“강찬 부원장님이십니다.”

남일규와 양동식, 오광택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김형정과 강철규를 번갈아 보았다.

“살아……? 살아 있다는 겁니까? 그 새끼……! 아니 강찬이? 아, 씨발! 그러니까 강찬이가 살아 있다는 겁니까?”

“예.”

김형정의 답이 나왔을 때, 승합차의 창을 향한 강철규의 눈에, 조그맣게 변한 교도소 담벼락의 초소가 들어왔다.

억지로라도 밥 많이 먹고 있길 잘했다.

아니었다면 멍청한 늙은이라고 욕먹었을 테니까.

“야! 이 개새끼야!”

어지간해서는 이렇게까지 심하게 욕을 하지 않는 박철수다. 그런데 그가 전화기에 대고 상처가 울릴 정도로 악을 바락바락 써대고 있었다.

“너희 두 새끼……! 이거 내가 평생 안 잊는다!”

[“죄송합니다.”]

잔뜩 긴장한 채로 눈치를 살피는 부관 앞에서 이번엔 박철수가 아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야지! 이렇게 됐어야지! 출동은 언제냐!”

[“바로 선발해서 출발하랍니다.”]

“인원은 추렸어?”

[“예.”]

“이 개새끼들! 하하! 이 나쁜 새끼들! 푸하하하!”

부관의 눈에 솔직히 박철수는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승인은?”

[“원장님이 직접 대통령님께 재가를 받겠답니다. 이번에도 국가정보원 파견 작전이 될 것 같습니다.”]

“야! 이 씨……! 그 정도면 된 거지! 하여간 너희 두 놈! 하하! 이 개새끼들! 후하하하!”

부관이 마른침을 삼키는 앞에서 박철수는 여전히 정신 사나운 모습을 바로잡지 못했다.

“명단 불러라.”

박철수가 책상에 무언가를 적는 시늉을 하자 부관이 얼른 메모지와 펜을 가져다주었다.

“윤상기! 이충도! 야! 계급 빼고 그냥 막 불러, 인마!”

메모를 하는 동안에도 박철수는 전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세상인심은 참 무섭다.

소나기처럼 달려들던 면담 요청이 강찬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한순간 맑아진 날씨처럼 뚝 끊겼다.

청와대의 뒤뜰이었다.

“부원장. 어쩌면 이렇게…….”

파랗게 피어나는 잔디를 향해 앉은 문재현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로 말을 잊지 못했다.

“건강은 괜찮습니까?”

문재현이 붉어진 눈으로 고건우를 보았다.

안심된다는 표정이었다.

“알겠습니다. 목소리를 들어야 승인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전화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원장과 의논해서 처리할 테니, 부원장은 꼭 무사히 돌아오세요.”

통화를 끝낸 문재현은 점잖게 전화기를 돌려주었다.

“우스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그리고 석강호 요원과 직접 통화를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우리나라로 향하고 있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문재현은 고건우의 보고를 들으면서도 솟아나는 웃음과 감정을 애써 자제하는 얼굴이었다.

“대통령을 이렇게 속이다니……, 부원장을 감봉처리라도 해야 할까 봅니다.”

고건우가 웃음을 터트렸다가 얼른 표정을 수습했다.

“아비부와 지브릴의 사망에 대해서 더는 언급하지 않겠답니다. 대신 국제호텔 테러와 황 전 원장, 송 전 청장의 사건을 이선에서 무마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부원장의 의견은요?”

“대통령님과 의논 후에 다시 통화할 예정이어서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방문에서 우스만이 공개 사과를 제안한 상태이고, 사건에 연류된 두 사람을 제거했으니, 이 기회에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문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시다. 나중에 부원장과 꼭 통화해서 참고할 게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고건우의 답을 들은 문재현이 무언가 떠오른 것처럼 시선을 들었다.

“시기하는 이들이 많아서 걱정이었는데 부원장이 그 문제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버리는군요.”

“저는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었습니다.”

고건우의 말을 들은 문재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뜰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우리가 가진 자원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강대국이 우리의 인재를 경계하고 노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쩐 일인지 우리에게서는 세계적인 인물이 꼭 태어나거든요.”

문재현이 고건우를 보고는 다시 뒤뜰로 시선을 가져갔다.

“오늘은 볕이 정말 좋습니다.”

파랗게 올라오는 잔디 위로 따듯한 햇볕이 널따랗게 퍼져 있었다.

“황 전 원장과 송 전 청장이 함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요. 그들을 지키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고 아쉽습니다.”

문재현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분들이 지켜주었겠지요? 그동안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셨던 호국영령들과 함께요.”

이럴 때 어쭙잖은 답을 해서 또 뭐하겠나.

고건우는 모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문재현이 바라보는 뒤뜰의 잔디로 시선을 주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드르륵. 드르륵.

구급차에서 내려진 네 명이 연달아 간이침대에 실려 병원으로 들어갔다.

공항에서부터 함께 움직였던 김형정이 석강호의 옆을 달렸고, 병원에서 기다리던 차동균과 곽철호가 최종일의 침대로 달려들었다.

그냥 커다란 수박 크기다.

눈도, 코도, 볼도, 입술도, 퉁퉁 부어서 머리 전체가 둥그렇게 보였다.

유헌우가 혼이 빠진 얼굴로 의료진과 매달렸고, 연달아 이동용 엑스레이와 링거들이 들어왔다.

“나가 계세요!”

촤아악! 촤악!

의료진이 김형정과 차동균, 곽철호를 밀어내고 네 사람의 모습을 커튼으로 가렸다.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까지!

김형정이 감정을 꿀꺽 삼키고 마당으로 나가자 차동균, 곽철호가 따라나섰다.

방지병원은 또다시 무장한 요원들과 정장 요원들로 인해 살벌한 분위기였다.

“커피 한잔 드립니까?”

차동균의 질문에 김형정이 눈을 흘겼다.

“왜 이러십니까? 부원장님 지시 사항이고, 저희도 사무실에 억류되어 있었습니다.”

차동균이 눈짓을 하자 곽철호가 얼른 안으로 움직였다.

미워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는 사이다.

차동균이 넉살 좋은 얼굴로 권하는 담배를 집으며 김형정은 픽 하고 웃고 말았다.

“자! 자! 커피 왔습니다.”

셋이서 곽철호가 가져온 종이컵을 사이좋게 받아들었고, 담배에 불도 붙였다.

“안 되겠다. 저쪽으로 좀 더 가자.”

병원이다.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걸려서 세 사람은 건물과 담벼락 사이로 움직였다.

“하여간 너희는! 내가 박철수 장군하고 얘기해서 너희는 꼭!”

“거! 커피랑 담배 받으시고 그러시면 어떡하십니까? 저희도 억류되어 있었다니까요.”

“소총 들고?”

김형정의 기발한 대꾸에 차동균이 웃음을 터트렸고 김형정이 따라 웃었다.

웃음을 털어낸 김형정이 병원 건물로 시선을 주었다.

“후! 다들 무사해야 할 텐데…….”

“괜찮으실 겁니다.”

“그래야지.”

담배 불똥을 털어낸 김형정이 커피를 훌렁 마셨다.

“대원들 선발은?”

“장군님께 명단 넘겼습니다.”

차동균이 나직하게 하는 답을 들으며 김형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에는 내가 여기 있기 어렵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족이 대통령님과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행사라 아무래도 손이 많이 부족해.”

“대원들 절반이 오늘 중으로 먼저 올라옵니다.”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김형정이 든든하다는 얼굴로 차동균과 곽철호를 보았다.

“이번 작전을 지켜보는 눈이 많을 거다.”

“그런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분명 직전과 똑같은 얼굴이고 눈빛인데, 그 안에 담긴 번득이는 각오를 보면서였다. 김형정은 이 순간 처음으로 차동균과 곽철호가 그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확실하게 달라졌다고 느꼈다.

세계적인 특수팀 지휘관은 이런 건가?

언제 이런 모습이 되었지?

말과 보고서로 전해 듣는 평가와 이렇게 마주 서서 두 사람이 풍기는 위압감을 직접 느끼는 것은 확실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미워서 그렇다!”

선배고, 그동안의 작전을 지원하며 얼굴을 익힌 사이다. 게다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최성곤이란 아픔을 공유한 사이이기도 했다.

“아! 저 셋째 생겼습니다.”

“뭐?”

차동균이 입을 헤벌쭉 늘이며 말을 이었다.

“아들일 겁니다. 이름도 정해 놨습니다. 차성찬! 최성곤 장군님의 성에 강찬 부원장님의 찬 자를 붙여줄 생각입니다.”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잖냐?”

“요즘은 테스터기 정말 잘 나옵니다.”

김형정은 “축하한다.”하며 차동균의 손을 잡아주었다.

석강호를 비롯한 요원 셋이 엉망이 되어서 들어온 병원 앞이다. 당연히 웃고 떠들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처절한 전투를 앞둔 차동균과 곽철호를 마냥 무겁게 대할 수만은 없어서 김형정은 함께 웃어주었다.

“가봐야겠다. 석 선생하고……. 아니다.”

이런 두 사람에게 무슨 잔소리가 필요하겠나?

김형정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길 때였다.

병원으로 네 명이 들어섰다.

이제 이 병원은 어지간한 나라의 특수팀이 달려들어도 안심해도 될 거다.

강철규, 남일규, 양동식, 오광택과 인사를 마친 김형정이 병원 밖으로 움직였다.

“오셨습니까?”

“후배들이 고생이 많아. 안은 어때?”

“치료 중이라 대기하고 있습니다.”

양소미의 납골묘에 다녀온 양동식이 차동균의 팔뚝을 다독여주었다.

강찬은 새롭게 감은 붕대를 하고 1인용 소파에 앉았다.

제라르, 하얀 대가리 잉어와 함께 늦은 식사를 마친 참이라, 커피와 담배를 즐길 시간이었다.

프랑스 정보총국이 제공했고, 경계까지 1급으로 세운 호텔이니 그럭저럭 마음을 놓을 만했다.

“이리 와 봐.”

하얀 대가리 잉어가 얼른 다가와서 강찬의 앞에 앉았다.

싸이로를 두들기고, 결국에는 제거해 버린 강찬이 무척이나 두렵고 무서운 모양이었는데, 제 놈이 어떤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느낌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너를 어디로 보낼까?”

“예?”

“정보총국 감시하에 있을래? 아니면 한국으로 가 있을래?”

“나중에는 어떻게 됩니까?”

이 새끼가 무슨 뒷일까지?

제라르가 ‘뭐 이런 멍청한 새끼가 다 있지?’ 하는 표정으로 담배를 들었다.

“네가 한 짓을 잘 모르나 본데, 너 때문에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거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지.”

“저는 계획과 명령만 내렸습니다.”

확!

하마터면 모가지를 돌려버릴 뻔했다.

강찬의 눈이 번득이자 하얀 대가리 잉어가 화들짝 놀라서는 눈을 껌벅였다.

“다시 말하지만 네가 세운 그 계획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많아. 경고하는데 지그펠트나 너는 절대 그렇게 죽지 않을 거라는 기대 따위 버려라.”

‘정말인가?’하는 파르탈의 얼굴을 보며 강찬은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을 죽이라고 할 때는 네놈의 모가지도 걸린다는 것을 잊지 마. 또 하나.”

“예.”

“너에 대한 결정은 지그펠트를 제거한 다음 하겠다. 그때까지 네놈이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서 날 설득해. 아니라면…….”

어리바리하니까 적당히 넘어가면 어떠냐고?

웃기는 말이다.

이런 놈들을 등 뒤에 두고 돌아서면 전혀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은 채로 방아쇠를 당긴다. 어차피 자기만 살면 된다고 느끼는 개새끼들.

너희는 싸워라.

나는 안전한 곳에서 지켜보다가 계획대로 되면 좋고, 실패하면 다른 계획을 세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새끼들.

‘이대로 두었다가는 아무래도 저 새끼 모가지를 돌리지.’

강찬은 고개를 저으며 제라르에게 시선을 주었다.

“밖에 요원 애들에게 이 새끼 보관하고 있으라고 해. 반항하면 사살해도 좋은데 죽이고 나면 반드시 내가 대가리 확인하게 하고.”

“Oui.”

제라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움직이자 파르탈이 자꾸만 움찔거렸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인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얼굴이었다.

“저기…….”

잉어가 뻐끔하고 입을 여는 순간에 정보총국 요원 두 놈이 제라르를 따라 들어왔다.

“데려가.”

답을 한 두 놈이 양쪽에서 팔을 잡자 파르탈이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저 새끼는 정체성이 뭐야?

어떻게 저런 놈이 다음 대 다윗의 별을 이끈다는 거지?

강찬이 방을 나서는 파르탈의 뒷모습을 심오하게 노려볼 때였다.

“아무래도 게이 같지 않습니까?”

“뭐?”

제라르가 황당한 질문을 던졌다.

“주사약 맞았을 때의 황홀한 표정도 그렇고, 걸음걸이, 말투, 마지막으로 대장을 보는 눈빛이…….”

“이 새끼가……?”

제라르의 마지막 말에 소름이 확 끼친 강찬이 인상을 버럭 썼다.

“네가 한 번 시험해 볼래?”

“예?”

“게이 같다며? 네가 슬쩍 유혹해 봐.”

“저 개새끼!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눈을 하면 확 눈깔을 파버릴 겁니다.”

“지랄한다. 에라이!”

길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자! 이제 남은 새끼는 하나밖에 없다.”

“그러시죠.”

제라르와 함께 소파에서 일어난 강찬은 침대로 움직였다.

훌렁훌렁 셔츠와 바지를 벗어서 걸고, 뽀송뽀송한 침대에 눕는 기분이라니!

‘뭐지?’

그런데 마치 누군가 침대에 물을 뿌려놓은 것처럼 알기 어려운 찜찜함이 강찬의 등을 스멀스멀 타고 올라왔다.

피식.

지그펠트가 아무렴 하얀 대가리 잉어처럼 고분고분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으니까 무언가를 꾸미기는 할 거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잘 때는 잔다.

강찬은 심해로 가라앉는 것처럼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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