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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드러나는 비밀.
TV를 끈 고건우가 리모컨을 책상 한쪽에 내려놓았다.
국가정보원 요원의 보고가 먼저 있었고, 다음으로 인터넷에 동영상이 올라왔으며, 이어서 해외 보도 전문 방송이 속보로 지브릴 살해 건을 보도했다.
“마지막에 석 선생이 외친 것을 이용하면 뒤쪽에서 협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몽골에 있다는 바실리와 면담을 해보는 건 어떻겠나?”
강찬이 없어지고 나서 또다시 실감한 일이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장은 바실리와도 쉽게 만날 급이 못 된다는 것 말이다. 아프고 부끄럽지만, 현실을 그만큼 냉정했다.
“원장님. 병원에 있는 라노크 전 대사를 먼저 만나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방지병원이니까 바로 면담을 요청할 수 있고, 우리에게 우호적인 데다 바실리와도 바로 통하는 인물입니다.”
김형정의 의견에 고건우는 번쩍 정신이 든 얼굴이었다.
“일단 약속을 잡아봐.”
“석 선생이나 최종일 요원이 진술을 어떻게 할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암살을 지시했다고 솔직히 밝히는 것도 검토가 필요한 일입니다.”
“흠.”
고건우가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마음만 너무 급했다.
지금까지 이런 엄청난 공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무엇보다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고, 다음으로 정보 세계의 인맥이 너무나도 보잘것없었다.
세계적인 인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었나 보다.”
행정통이던 고건우다.
그런 그가 최근에 자꾸만 감정을 내비치곤 했는데, 그래도 그는 김형정을 비롯한 간부들의 의견을 경청해 줄줄 아는 그릇이었다.
“자네 말대로 일단 우리 요원들이 파악할 정보를 보고 판단하자. 그렇더라도 라노크 전 대사와 면담은 추진해 봐. 상황을 봐서 움직일 테니.”
고건우는 창밖으로 시선을 주며 두 사람을 떠올렸다.
늘 당당했던 강찬과 가면을 뒤집어쓴 듯한 얼굴의 라노크였다.
라노크는 머리 쪽을 세운 침대에 기대 TV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위성 방송에서 보내주는 해외 보도 전문 방송이었다.
“홍차를 좀 더 주지.”
“예, 위원장님.”
정장 차림의 라파엘이 고급스러운 도자기 주전자를 들어 한 세트가 분명한 잔에 홍차를 따랐다.
쪼로록.
하얀색 도자기 잔에 진한 홍차가 담기며 아련한 수증기를 피워냈다.
라파엘이 쟁반에 받쳐 간 잔을 라노크가 힘겹게 들었고, 어렵게 차를 마셨다.
“시가를 하나 피웠으면 좋겠군.”
라파엘이 입가에 달린 미소를 감추는 것처럼 몸을 돌려 쟁반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라파엘.”
“예, 위원장님.”
라파엘이 공손한 태도로 라노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나와 바실리 중 누가 먼저 전화를 할까?”
슬쩍 고개를 돌린 라노크 앞에서 라파엘은 여전히 충직한 얼굴이었다.
“또 그런 일은 모른다고 할 얼굴이군.”
“위원장님을 모신 지난 35년 동안 저는 늘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라노크가 입가에 미소를 달며 TV로 시선을 주었다.
“이번은 아무래도 내가 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바실리의 인내가 제법 늘었어. 전 같으면 지금쯤…….”
띠루루룩. 띠루루룩. 띠루루룩.
라노크가 흥미롭다는 것처럼 시선을 돌렸을 때 라파엘이 전화기를 가져왔다.
전화기를 테이블에 놓은 바실리가 불편한 얼굴로 맞은편에 있는 양범을 보았다.
아직은 서늘한 밖의 공기가 열어놓은 컨테이너 한쪽으로 달려들어서 후련한 느낌이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았는지 신호음이 뚝 끊겼다.
[“바실리, 오랜만이다.”]
“흥! 죽은 걸 확인할 수 있을까 했더니 역시나 실망을 안겨주는군.”
[“자네의 관심 덕분이지.”]
스피커를 이용한 통화다.
함께 듣고 있던 양범이 ‘대단들 하다’는 표정으로 바실리에게 흘깃 시선을 준 다음이었다.
“양범이 함께 듣고 있다.”
바실리가 양범을 소개했고,
“목소리를 듣게 돼서 반갑습니다, 위원장님.”
[“힘겨운 시간이 지났으니 우리가 다시 얼굴을 마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눴다.
“지브릴이 죽었다.”
[“나도 조금 전에 뉴스를 통해 보았다.”]
황야를 향해 시선을 돌린 바실리의 입가에 비웃는 듯한 미소가 걸렸다.
“한국 정보원 혼자서는 절대로 저런 짓을 못한다. 자네가 자꾸만 프랑스인의 시커먼 속을 앞세우겠다면 나 역시 이쯤에서 물러나겠다.”
짧은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쉽게 가자, 바실리. 우리 둘 다 부상 중이잖나."]
모처럼 넉넉한 라노크의 답이 건너왔다.
양범이 그를 만난 이후로 처음 보았다고 느낄 정도로 지금의 바실리는 기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럼 주연께서 바라는 선물을 준비할 차례군.”
홱 양범이 놀란 눈으로 바실리를 보았을 때였다.
[“그가 가져올 커다란 선물에 작은 보답쯤 하는 것이 도리겠지.”]
더욱 놀라운 라노크의 답이 건너왔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강찬이 살아 있다고 어떻게 이렇게 확신할 수 있지?
바실리가 냉정한 눈 끝에 웃음을 달고 있었다.
놀라고 당황한 양범의 시선 앞에서 말이다.
***
붕어를 잡으러 갔다가 피라미인 줄 알고 대를 들었는데 팔뚝만 한 잉어가 물러 나온 느낌?
파르탈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는 강찬의 심정이 꼭 그랬다.
“리비아에서 한국 요원의 살해를 지시한 놈은?”
“싸이롭니다.”
강찬이 던진 시선 앞에서 싸이로는 아예 모든 것을 체념한 사람처럼 보였다.
“요원 살해 이유는?”
“한국 국가정보원 원장에게 정보를 흘린 요원의 입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올라오는 분통을 눌렀다.
일단 듣고 싶은 것이 많았다.
약효가 얼마나 갈지 몰랐고, 언제 이리로 적이 달려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리비아에 응징 갔던 한국의 요원들을 노린 것도 싸이로냐?”
“맞습니다. 그곳에서 강찬과 마주칠 뻔했었다고 들었습니다.”
강찬이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트럭으로 빠져나올 때 스쳤다고 들었습니다.”
번득이며 떠오르는 기억이었다.
저 개새끼!
강찬이 사정없이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는데도 파르탈은 꿈을 꾸는 것처럼 황홀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다윗의 별 총 책임자는?”
“현재는 지그펠트입니다.”
쿵. 쿵. 쿵. 쿵.
“으읍! 읍! 으으으!”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 같던 싸이로가 기둥에 뒤통수를 찌어가며 말을 막으려 애썼다.
“지금 지그펠트의 위치는?”
“호크 베이에 있을 겁니다.”
“호크 베이? 그곳의 위치를 정확하게 말해 봐.”
쿵. 쿵. 쿵. 쿵.
강찬이 눈짓을 하자 제라르가 싸이로에게 걸어갔다.
“남의 인생을 이렇게 망가트렸으면 마지막 순간에라도 반성하는 모습쯤은 보여줘야지.”
묶인 싸이로의 눈빛에 담긴 것은 분명 같잖다는 표정이었다.
“대장이 내 손에 잘못됐었다면…….”
독한 눈으로 싸이로를 바라보던 제라르가 커다란 발길질로 그의 머리를 걷어찼다.
퍼억! 쿠웅!
기둥에 부딪혔던 싸이로의 대가리가 뚝 떨어진 뒤다.
강찬은 파르탈에게 재차 같은 질문을 던졌다.
“버뮤다에 있는 항구입니다. 그곳에서 200킬로미터쯤 나가면 지도에 나오지 않는 섬이 있습니다.”
“방어 무기는?”
“지대공 미사일, 잠수함 두 정, 레이더 기지, 항공포, 아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파르탈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 올라왔다.
“다윗의 별 본부가 거기인가?”
“다윗의 별이 위험하다고 여길 때 몸을 감추는 장소입니다. 다윗의 별은 조직이 아니라 당대의 금융을 운영하는 운영자를 지칭합니다. 지그펠트가 사망하면 다음 다윗의 별은 내가 됩니다.”
더 할 수 없이 황홀한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이어서 하마터면 강찬은 파르탈에게 주먹을 날릴 뻔했다.
“저 새끼를 잘 다루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제라르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왕 시작한 질문이어서 강찬은 문재현의 암살 기도부터 국제 빌딩 테러까지 몇 가지를 더 질문했다.
“내가 아비부와 계획했던 일입니다.”
“지그펠트와 연락할 방법은?”
“전화가 있습니다.”
답을 마친 순간이었다.
파르탈이 갑자기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털썩!
그리고는 뒤로 넘어졌는데 여전히 몸을 떨어댔다.
시간이 얼추 20분쯤 흘렀다.
이곳에 더 있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제라르. 저 새끼 해결해.”
“알겠습니다.”
강찬의 지시를 받은 제라르가 싸이로 앞으로 걸어가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자세를 낮췄다.
터억.
한 손으로는 이마, 다른 손으로 턱을 받쳐 든 제라르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복수가 너무 쉬워서 분하기는 한데, 한 가지만 기억해라.”
꿈틀.
싸이로의 의식이 돌아왔는지 놈이 눈을 끔벅였다.
코로 피가 흘러나온 탓에 숨을 쉴 때마다 이상하게 꿀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주무르지 말고…….”
평생을 부리던 하인의 반항을 애써 무시하는 주인처럼, 싸이로는 마지막까지 제라르를 하찮다는 시선으로 보았다.
“죽어서도 대장에게는 반항하지 마.”
싸이로의 눈가가 짧게 떨린 직후였다.
홰액! 으드드득!
제라르가 놈의 턱이 하늘로 가도록 완벽하게 돌린 다음 몸을 일으켰다.
“저 새끼는 일단 차에 태우자.”
제라르가 파르탈의 양팔을 잡고서 질질 끌어서 창고를 나섰다.
“지그펠트라……?”
강찬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인상을 버럭 썼다.
자가용 비행기에 앉은 지그펠트는 TV의 보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불안했었다.
어딘가 찜찜했었다.
대왕 개미를 죽였다고 했을 때도 묘하게 발뒤꿈치가 따끔거리는 느낌이었다.
“결국, 전갈이었나?”
아직 놈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아쉬웠다.
어쩌면 바실리나 라노크가 대왕개미인 양, 한국 국가정보원을 이용해 작업한 것일 수도 있는 거다.
“흠.”
잘못된 투자는 한시라도 서둘러 손을 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한국에 파견했던 두 놈이 모두 죽었고, 겨우 이쪽으로 끌어들인 국가정보원 놈들은 또 모조리 체포 당했다.
“멍청한……!”
아비부의 그 엉뚱한 짓거리만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릴 일도 없었을 거다.
리비아의 국가정보원 요원을 포섭해서 가짜 정보를 보냈고, 한국에 있는 요원을 통해 시기를 조율했으며, 결국 그걸 이용해 아비부가 그들을 살해하게 만든 것까지는 나무랄 곳 없이 좋았다.
멍청하게 자존심을 내세우며 국제빌딩을 노리지만 않았어도…….
띠이이. 띠이이. 띠이이. 띠이이.
그때 전화벨이 지그펠트의 생각을 뚝 자르며 울렸다.
전화기를 들어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상황에 걸맞지 않게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
오늘의 실패 따위 어차피 개미에 물린 셈 치면 된다.
길게 내다보고 한국을 주저앉힐 방법은 수십, 수백 가지쯤 될 거다. 무럭무럭 성장하는 파르탈이라면 앞으로 십 년 내에 한국을 수렁으로 밀어 넣을 거다.
지그펠트는 만족한 얼굴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디냐? 함께 가자니까.”
[“지그펠트.”]
젊고 강한 음성이 그를 불렀다.
번쩍 전화기를 내린 지그펠트가 발신 번호를 확인하고는 서둘러 전화기를 귀에 가져갔다.
“너는 누구냐?”
[“지그펠트냐고 물었다.”]
혹시 이놈이……?
설마 했던 지그펠트는 고개를 저었다.
놈이 살아 있다고 해도 파르탈의 전화기를 가질 수는 없는 거다.
퍼억!
그때 섬뜩한 매질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건너왔고,
[“끄윽!”]
익숙한 비명이 연달아 들렸다.
“파르탈! 파르탈이냐!”
[“이거 재미있는데? 이번엔 반대쪽을 한번 갈겨줘 봐.”]
퍼억!
[“끄윽! 끄아아!”]
지그펠트는 순간 머리칼 모두가 하늘로 곤두설 만큼의 섬뜩함과 분노가 동시에 솟구쳤다.
“너는 누구냐! 네놈들 따위가 감히 그 아이를……!”
[“죽여줄까?”]
지그펠트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지그펠트?”]
“요구조건을 말해라.”
전화기 건너편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넘어왔다.
[“선택해. 파르탈이 먼저 죽고, 다음으로 네가 죽을지, 아니면 영원히 대한민국에 복종하는 삶을 살지. 멍청아. 내가 그렇게 얌전히 죽어줄 줄 알았나?”]
지그펠트는 등줄기로 소름이 쭉 끼쳤다.
이럴 것 같았다.
어쩐지 그 끔찍한 한국 놈은 죽지 않았을 것 같았다.
[“선택하기 곤란한 것 같으니까 내가 정해주지. 원래 음식은 상대방이 주문한 게 더 맛있게 느껴지니까.”]
지그펠트는 당장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순서대로 죽여주마. 원하는 곳에 가서 잘 숨어 있어라.”]
“파르탈은 어쩔 셈이냐?”
[“네놈들 때문에 희생된 우리 국가정보원장, 연료자원청장, 그리고 대원들과 요원들에게 사과하러 가야지.”]
지그펠트는 강찬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위령탑이나 추모 공원에라도 데려가려는 건가?’
그래서 잠시 멈칫했다가 겨우 질문을 던졌다.
“한국으로 데려갈 셈이냐?”
또다시 피식 웃는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건너왔다.
[“한국은? 지옥으로 가서 네가 오기를 기다려야지.”]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이런 건방진!
당황해서 놈에게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던 것이 억울해서 지그펠트는 곧바로 싸이로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다음이었다.
[“지그펠트. 이렇게 나오면 실망스러워.”]
강찬의 음성이 들리고 전화가 끊겼다.
대왕개미인 줄 알았다.
그런데 놈이 전갈로 바뀌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에 사람보다 커다란 코브라가 되어서 독니를 번들거리는 느낌이었다.
취조실 의자에 묶인 석강호는 멀쩡한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좋아. 네 말이 다 맞다고 쳐주지. 그럼 무기와 돈을 어디에서 얻었는지를 정확하게 말해줘야지.”
눈이 주먹만큼이나 부은 석강호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이 살해되었다. 한국 국가정보원의 지시가 아니라면 적어도 무기와 돈을 공급해 준 놈들은 솔직하게 불어야 우리도 수습을 하지. 그렇지?”
기름을 발라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아랍인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봐. 넌 어차피 죽어. 이 가면, 무기, 돈을 어디서 얻었는지를 대.”
사내는 석강호가 쓰고 있던 가면을 움켜쥐고 눈앞에 흔들었다.
“계속 이렇게 나오면 우린 너와 동료들 얼굴을 공개할 수밖에 없어. 아랍어를 그렇게 능숙하게 할 줄 아는 놈이 설마 왕족을 살해한 사건이 조용하게 넘어갈 거라고 믿지는 않을 거잖아? 그렇지?”
짧은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디브흑(تبغ).”
“흐흠.”
석강호의 말에 커다랗게 한숨을 토해낸 남자가 할 수 없다는 것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다음 석강호의 입에 물려주었다.
“후우.”
석강호의 입에 물린 담배 옆으로 연기로 퍼져 나왔다.
“편하게 가자. 국가정보원 지시지?”
“우리 부원장을 죽인 것에 대한 복수다.”
남자가 기가 막힌 것처럼 웃음을 던졌다.
“좋아. 좋아. 그래서 무기는?”
“이반을 통해서 구입했다.”
“미치겠군. 미사일 거래에도 코빼기도 안 비치는 이반이 고작 권총과 대검을 팔았다?”
석강호의 주둥이에서 또 연기가 피어올랐다.
미운 것처럼 노려보던 남자가 분을 참기 위해 고개를 떨궜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돈은?”
반쯤 타 버려서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재를 바라보던 남자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환치기를 통해서 구했는데 놈의 번호가 기억 안 난다는 거지?”
“푸흐흐.”
석강호가 어깨를 끄덕이며 웃는 순간이었다.
퍼억!
남자가 담배를 문 석강호의 얼굴을 세차게 갈겼다.
퍽! 퍼억! 퍼억! 퍼억! 퍼억!
석강호의 피가 튀어서 남자의 허리 근처가 온통 붉게 물들었지만, 주먹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