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93화 (393/520)

0393 / 0419 ----------------------------------------------

21-5 너흰 너무 늦게 안 거야.

건물을 받친 듯한 크고 작은 황금색 기둥이 시선을 끌고, 물이 솟구치는 검은색 대리석 조각 좌우로 에스컬레이터가 몸을 숨겼다.

노란색 바닥, 빛이 쏟아지는 화려한 문양을 갖춘 로비, 그 양쪽에 놓인 고급스러운 소파.

모든 것들이 들어선 이의 시선을 잡아끌기 제 나름의 자태를 뽐낸다. 그런데도 하얀 원피스 차림의 남자 네 명은 옥수수를 스치는 늑대처럼 데스크로 곧바로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매니저의 인사에도 최종일은 오만한 태도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석강호가 얼른 앞으로 나섰다.

“모하메드 빈 왈아드님이시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귀빈을 뵙게 된 것을 신께 감사드립니다.”

버즈 알 아랍 호텔의 매니저가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일행을 맞았다.

“방은 준비되었겠지?”

“물론입니다.”

매니저가 비굴한 미소를 얼굴에 한껏 담았다.

“혹시 디파짓은 어떻게 하실지……?”

석강호가 고갯짓을 하자 우희승이 샤넬 사각 가방을 인포메이션 테이블에 올렸다.

찰칵. 찰칵.

가방 가득히 담긴 것이 모두 100달러짜리 지폐다.

“이렇게 준비하시다니! 디파짓은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석강호가 조심스럽게 최종일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전했다.

최종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매니저를 보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우리 모하메드 빈 왈아드님께서 직원들에게 내리시는 신의 가호다.”

석강호가 나직하게 말과 함께 백 달러짜리 뭉치 세 개를 꺼내 매니저에게 건넸다.

“신의 축복이 왈아드님께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황송한 표정으로 돈을 받아든 매니저가 날듯이 데스크를 돌아 나왔다.

우희승이 가방을 다시 챙겼고, 역시나 가방을 들고 있던 이두희가 최종일의 앞을 지켜섰다.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버즈 알 아랍이 자랑하는 객실입니다. 이쪽으로! 저를 따라오십시오.”

석강호가 예약한 이 호텔의 특실은 하룻밤 숙박비가 삼만 달러가량이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매니저가 복도 오른쪽의 객실을 열었다.

황금색 기둥과 붉은색 카펫, 네 명이 모두 대 자로 누워도 몸이 겹치지 않을 것처럼 커다란 침대, 빨려 들어갈 것처럼 생긴 소파, 그리고 다시 안쪽으로 독립된 방이 세 개다.

바깥 거실에 있는 저 커다란 침대는 용도가 뭘까?

혼자 이 방을 사용하는 사람을 위해서?

“테이블에 객실 사용을 도와드릴 아이패드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언제고 말씀해 주십시오.”

매니저가 공손하게 물러간 다음이었다.

이두희가 품에서 전화기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네 명의 아랍인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전화기에서 울려 나왔다.

이두희가 들고 있던 가방을 탁자에 올리고 자물쇠를 열었다. 그리고는 손바닥만 한 도청 방지 장치 세 개를 꺼내 최종일과 우희승에게 주었다.

두 사람이 안쪽 방을 둘러보고 적당한 곳에 장치를 두고 설치한 후 돌아왔다.

끄덕.

최종일이 먼저 신호를 보냈고,

끄덕.

우희승이 이어서 답을 했다.

그런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이두희가 탁자에 올려놓은 메인 장치의 스위치를 켰다.

깜빡. 깜빡. 깜빡.

빨간 불이 세 번 점멸한 다음, 도청 방지 장치는 곧바로 파란색 신호를 내비쳤다.

“도청은 없습니다.”

전화기를 들어 남자들의 대화를 끈 이두희가 이어서 가방의 안쪽 덮개를 벗겨냈다.

권총, 소음기, 탄창, 대검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시간 확인해.”

“3시간 여유 있습니다.”

석강호가 지시했고, 최종일이 답을 했다.

“더럽게 비싼 방이 왜 이렇게 더워?”

석강호가 바구니에 담긴 하얀 수건을 짚어서 얼굴의 땀을 찍어냈다.

바다, 정박해 있는 요트, 수박을 잘라놓은 듯한 건물들, 객실 안 풍경만큼이나 창밖 풍경도 다른 세상에 와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우희승이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탁자에 펼쳤다.

“아까 보니까 5층과 연결된 엘리베이터 앞에 별도의 직원이 있었습니다.”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작정하고 벌이는 일이다.

고작 직원 하나 더 늘어나는 건 변수 축에 들지도 않는다.

“무기 점검하고, 혹시 모르니까 입구 감시하자.”

“예.”

우희승과 이두희가 안쪽 첫 번째 방의 창으로 움직였다. 그곳에서는 호텔 입구가 보여서 지브릴이 돌아오는 것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철컥.

석강호가 권총에 탄창을 꽂고,

철커덕.

노리쇠를 당겼다.

저녁 식사 이후에 지브릴은 이곳으로 와서 세 명과 연달아 면담 약속이 있다.

그때를 노린다.

특실로 올라올 유일한 방법은 전용 엘리베이터뿐이어서 하룻밤에 수천만 원하는 객실도 예약했다.

석강호가 무서운 눈으로 복도로 나서는 문을 노려보았다.

알만 빈 지브릴은 부르즈 할리파(برج خليفة)의 139층 접견실에서 아래를 내려보았다.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의 이름에서 탑이란 의미의 할리파를 따서 붙인 이름이 부르즈 할리파다.

지브릴이 1시간 전에 만났던 바로 그 인물.

“후우.”

지브릴은 자꾸만 나오는 웃음을 감추기 위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대추야자 열 개를 한꺼번에 삼킨 것처럼 꽉 막혔던 목구멍에 아이스티를 부은 듯한 후련함이 바로 이런 느낌일 거다.

지브릴은 TV의 중계를 통해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하얀 국화와 초를 들고 우는 한국인들.

아랍의 용사들이 하늘에서 신께 매달렸으리라!

그래서 위대한 신께서 자신을 위해 그 징그러운 살인마를 지옥으로 던지셨으리라!

살면서 이렇게 통쾌한 순간이 또 있었을까 싶었다.

온건파인 우스만이 더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도 지브릴에게는 쾌감으로 다가왔다.

이제 남은 것은 서둘러서 차세대 에너지 시설을 완성하고, 다윗의 별과 손을 잡고 러시아의 경제를 무너트리는 일이었다.

원유의 무한정 공급, 그것으로 러시아 경제의 절반은 결딴난다. 그다음으로 이어질 루블(RUB)화를 향한 무차별 공격.

“후후후.”

아직 과정이 남았지만, 지브릴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흠!”

표정을 수습한 그가 고개를 돌리자 하얀 원피스 차림의 수행원이 빠르게 다가와 상체를 기울였다.

“저녁 식사 이후의 일정을 모두 취소해.”

“알겠습니다.”

수행원이 군소리 한마디 없이 지시를 받고 물러났다.

권위가 필요한 때였다.

되지도 않게 설치다가 한국에서 죽어 자빠지는 아비부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도 있었다.

이 정도 가졌으면 만족하지 않느냐고?

평생을 써도 다 못 쓸 돈을 가졌으니 베풀기도 하며 살라고?

못 가져본 놈들은 늘 그렇게 모자란 삶대로 모자란 말을 뱉는다.

지브릴에게 부는 능력의 척도와 같다.

부가 축적될 때의 쾌감을 푼돈 벌고, 월급 따위로 살아가는 벌레 같은 것들이 어떻게 상상이나 하겠나.

그런 것들이, 그보다 못한 것들이 외국을 돌아다니며 여행하고 쇼핑을 즐기는 세상이라니!

그런 놈들은 신께서 사명을 주신 지브릴과 자신들이 평등하다고 여긴다.

지랄 같은 세상!

밟으면 밟히고, 눈을 부릅뜨면 겁먹는 것들이 평등?

그래서 지브릴은 강찬 같은 놈이 싫었다.

돈, 권력, 신이 내린 권위에 반항하고 대항하는 놈.

머리 숙이면 평생 부와 권리를 누릴 텐데, 고작 나라를 위한답시고, 국민을 위한답시고, 동료를 지킨답시고 설치는 놈!

결국, 제가 싸고돌던 놈의 총에 심장이 뚫려서 죽을 거면서.

“후우.”

소름이 끼칠 것처럼 짜릿한 쾌감에 지브릴이 다시금 숨을 토해냈다.

저녁을 먹은 후, 일정을 취소하고 휴식을 취할 참이었다. 그래서 그를 만나고자 며칠씩 기다리던 멍청이들에게 그의 권위를 좀 더 떨칠 참이었다.

“문재현?”

지브릴이 흐느끼는 것처럼 웃었다.

언제고 저 아래층에 묵고 있는 멍청이들처럼 자신을 만나기 위해 목을 빼고 기다릴 문재현을 떠올려서였다.

지브릴은 분명하게 그렇게 만들 작정이었다.

강찬이 지옥으로 달려갔으니 그 정도 일을 꾸미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강찬과 제라르는 가흐니슈의 오래된 유럽 건축물 앞의 작은 카페에 있었다.

제라르는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올라온 얼굴로 왼편에 있는 4층짜리 건물을 보고 있었다.

“침착해.”

강찬이 가브리엘의 얼굴 가면을 움직여 말을 건넸다.

“지금쯤, 네 몸에 있던 칩을 확인했을 거다. 지브릴이 제거되면 저놈들은 어떤 형태로든 움직이게 돼 있어. 어쩌면 우리 동선을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Oui.”

강찬은 잔을 들어 진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유헌우의 당부가 생생하긴 했지만, 긴 비행을 견딘 몸뚱이가 자꾸만 진한 커피를 요구하고 있었다.

달각.

강찬이 잔을 내려놓은 직후였다.

점잖게 생긴 서양 중년 남자가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가 신문을 펼치는 동안 직원이 다가왔다.

“커피.”

주문을 받은 직원이 계산대로 움직인 다음이었다.

“말씀하신 건물은 PEP 투자 은행 소유입니다.”

서양 남자가 나직한 프랑스 말을 건넸다.

이곳에서 독일어와 프랑스어는 전혀 낯설지 않다.

“실제로 투자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은 2층까지입니다.”

남자가 신문에 고개를 처박으면서 말을 잇는 동안, 제라르는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살폈다.

“무기는 도로 건너편 회색 승합차에 두었습니다.”

강찬은 커피잔을 들며 대각선 건너편에 있는 승합차를 확인했다.

“두바이의 요원들은 버즈 알 아랍 특실에서 대기 중입니다.”

카페 직원이 커피를 가지고 왔다.

“땡큐.”

옆자리의 남자가 여유롭게 커피잔을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직원이 돌아간 다음이었다.

강찬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승합차로 움직이겠다.”

제라르가 강찬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지그펠트가 날카로운 눈매로 바다를 노려보았다.

“지금 그걸 보고라고 하는 거냐!”

그는 전화기에 대고 전에 없이 높고 날카로운 음성을 건넸다.

“가브리엘의 몸뚱이에 심은 칩이 혼자 외국을 떠돈다니! 그렇다면 놈이 그 비밀을 알았다는 뜻인데, 우리의 지시를 거부하면 죽게 된다는 놈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제라르는?”

보고를 듣고 있던 지그펠트가 기가 막힌다는 것처럼 웃었다.

“강찬의 무덤을 확인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당분간 외부와 접촉을 끊고, 가흐니슈 기지를 폐쇄해라.”

곧바로 냉정을 되찾은 지그펠트가 빠르게 지시를 이었다.

“호크 베이로 이동하겠다. 파르탈에게도 그쪽으로 이동하라고 알려.”

지그펠트가 전화기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이 정도였나?”

그는 봉변을 당한 사람처럼 헛웃음을 터트렸다.

“전갈이 맞았던 건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한국의 뒤에 숨어서 장난질을 치는 건가?”

그는 마지막까지 한국의 능력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바실리……?”

지그펠트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켰다.

바실리가 사용하는 컨테이너는 한쪽 벽을 완전히 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침대의 머리 부분을 세우고 앉은 바실리 앞으로 몽골의 황량한 벌판이 아이맥스처럼 펼쳐져 있었다.

침대, 탁자, 그리고 그 옆에 양범이 앉았다.

담배에 불을 붙인 양범이 연기를 뿜은 다음, 바실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언제까지 이곳에 계실 겁니까?”

“프랑스 구렁이가 연락할 때까지.”

딱 부러지는 바실리의 답이 나왔다.

“역시 강찬 씨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바실리가 애매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프랑스 정보총국의 움직임이 이상하지 않나? 로망이 잠자코 있어. 원래대로라면 가장 설쳐야 하는 인간인데.”

양범이 “그건 또 그렇군요.” 하며 멀리에 시선을 두었을 때였다.

“한국 국가정보원의 능력은 빤하지. 그런 그들이 지브릴을 암살하겠다고 설치는 것은? 더 웃기는 게 뭔지 말해볼까? 무슈 강의 사무실에 파견 보낸 놈들이 너무 일상적인 보고만 하고 있다는 거다.”

양범의 시선 앞에서 바실리는 입가에 묘한 웃음을 달고 있었다.

“나보다는 라노크를 보고 배우는 게 정보국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거다. 그 구렁이는 늘 속을 알 수 없게 움직이지. 지금 연락을 안 하는 것처럼. 거기에 잔인한 면에서도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고.”

“정보국의 생리에 잔인함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닙니까?”

“흥! 전에 프랑스 갱단을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하고, 그 갱단의 부두목급인 놈을 대사관에서 바로 제거했었던 적이 있지.”

“그 정도야…….”

바실리가 양범을 힐끔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다윗의 별이 그 안에 있을 거라는 추측으로 내린 지시인데 명분은 전혀 달랐어. 심지어 다윗의 별도 라노크가 자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양범은 반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껐다.

정보국을 책임지기 시작하면서 라노크와 바실리의 노련함을 배우고 싶었지만, 지금 같은 설명이 왜 대단한 판단이고, 결단인지는 아직 알기 어려웠다.

“이란이다.”

이건 또 무슨?

양범이 설명을 부탁하는 표정으로 바실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UN 파병 때 쿠드스가 달려들고, 아비부, 지브릴이 쿠드스를 부린 데다, 아프가니스탄에 무슈 강이 달려갔을 때 이란 전투기가 나온 이유.”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사우디아라비아에 짓고 있다는 차세대 발전 시설, 그건 미끼고, 진짜 차세대 발전시설은 이란에서 건설하고 있지. 지브릴은 그걸 이용해서 시아파인 이란과 미국의 국교를 정상화하려 하고.”

“그렇다면 거기에서 미국은 뭘 얻습니까?”

“지브릴이 이란의 핵무기 포기라는 명분과 차세대 에너지 시설의 지분을 제시한다면 미국도 솔깃하지 않을까?”

양범이 바람 빠지는 것처럼 웃었다.

정말이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는 세상이다.

“정보 세계에서 무슈 강 같은 남자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스페츠나츠와 KGB에서 활동할 때부터 내가 꿈꾸던 그런 모습이었는데…….”

바실리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내 편과 적이 확실한 남자, 불리할 때도, 위험할 때도, 내 편을 끝까지 지켜주는 남자. 내가 정보국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이었다.”

저 멀리에 있는 무언가를 찾는 듯한 눈빛이었던 바실리가, 눈을 깜박이는 그 짧은 순간에 냉정한 표정을 되찾았다.

“여기까지다. 만약 무슈 강이 살아 있다면 도움을 준 것이 되고, 정말 죽은 거라면 그가 보여준 모습에 대한 내 마지막 성의쯤 되겠지.”

바실리가 양범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내가 러시아로 돌아가게 된다면, 러시아와 프랑스, 그리고 미국과 영국, 독일, 중국이 차세대 에너지 개발을 놓고 다시 처절한 싸움을 시작하게 될 거다.”

시선을 피하지 않는 양범을 보며 바실리가 한쪽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그려냈다.

“무슈 강이 유지하던 균형을 다시 이룰 새로운 강자가 나올 때까지. 최종 승자는 결국 다윗의 별이 되겠지만…….”

지친다는 표정으로 바실리가 펼쳐진 평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

드르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승합차에 사람은 없었다.

2열에 앉은 제라르가 승합차의 문을 닫은 다음, 3열로 상체를 넘겼다.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는 커다란 자루를 앞으로 가져왔다.

권총, MP5SD 소총, 탄창, 대검, 수류탄.

강찬은 허리와 왼편 발목에 권총을 걸었고, 오른쪽 발목에 대검을 찼다. 권총의 탄창 7개를 꽂은 가죽띠를 허리띠 뒤편에 겹쳐 걸어서 여분의 탄창도 확보했다.

혹시 몰라서 소총에 탄창을 넣고 노리쇠도 당겨놓았다. 하지만 일반인이 드나드는 투자은행에 소총을 들고 들어갔다가는 멍청한 은행강도가 되기 딱 좋은 거다.

유럽의 도로는 돌을 깬 것처럼 울퉁불퉁한 곳이 많다. 마차와 말이 달리기 편하게 만든 건데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곳은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을씨년스러움.

오래된 유럽 건물들이 강찬에게 주는 느낌은 그랬다.

고풍스러운 저 건물 안쪽 어딘가에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죄 없는 여자를 마녀로 몰아 고문하는 귀족이 있을 것 같은 느낌 정도일 거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냥 느낌이 그런 거라서.

욱신거리는 통증에 강찬은 상체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끝내고 싶었다.

진심으로 이곳에서 모든 걸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번에 함께 출발한 다예, 제라르,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와 함께.

강찬이 상체를 비틀어 아까 커피를 마신 카페를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대장.”

날이 날카롭게 선 제라르의 음성이 그를 찾았다.

홱!

빠르게 시선을 돌리느라 가슴이 찌릿했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싸이로! 저 새끼가 싸이로입니다.”

제라르의 시선을 따라간 끝에서 눈알이 노랗다는 놈이 걸어오고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