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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392화 (39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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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너흰 너무 늦게 안 거야.

강찬이 깨어나고 엿새가 흘렀다.

그 사이 장례식이 거창하게 열렸고, 화장된 유골은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철컥.

유헌우가 링거와 다섯 개나 되는 주사기를 들고 병실로 들어섰다.

그는 먼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강찬을 보았다.

심장 근처를 세 곳이나 뚫렸던 강찬이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만에 석강호와 둘이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거다.

목을 돌려 죽인 가브리엘을 관에 넣어서 화장했고, 곱게 간 놈의 뼈다귀가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상처 소독부터 합시다.”

유헌우가 강찬의 가슴에 감았던 붕대를 풀어냈다.

그가 또다시 기가 막힌다는 투로 고개를 저었다.

상처에서 새살이 올라와 총알에 뚫렸던 구멍을 메우고 있었다.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준 유헌우가 링거를 간 다음 그 줄에 주사약을 연신 꽂아넣었다.

“피는요?”

“약을 넣었으니까 적어도 2시간 정도는 지나야 합니다.”

“지금은 좀 어떠신가요?”

“솔직히 위태위태합니다. 무엇보다 환자 본인이 살려는 의지가 없습니다.”

유헌우의 답을 들은 강찬은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일단 계획대로 제 피를 수혈해 주세요. 앞으로 길어야 2주입니다. 그 안에 무조건 끝날 겁니다.”

“해봅시다.”

유헌우가 답답한 얼굴로 답을 하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참, 나! 의사인 내가 죽은 사람을 바꿔치기했으니! 이거 발각되면 난 사체유기가 되는 거지요? 거기에 대국민 사기극의 가장 앞에 선 인물도 되는 거구요.”

강찬을 치료하고 마지막을 지킨 인물이라는 이유로 유헌우는 방송국, 신문사, 잡지사에서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정부 차원에서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라도 인터뷰를 해주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받을 정도였다.

“강찬 씨.”

“예.”

유헌우가 불러서 강찬이 답을 했다.

“아프가니스탄과 국제빌딩에서의 활약을 TV로 보았고, 그동안 강찬 씨를 치료하며 나 나름으로 확신이 들어서 이런 엉뚱한 일에 동참한 겁니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총을 맞아가며 이런 일을 진행하는 것을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유헌우는 평소와 다르게 진지하고 무거운 얼굴로 말을 건넸다.

“그렇더라도 어머님을 저렇게 두는 건 위험합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애쓰는 거 압니다. 누구보다 어머님을 걱정하는 강찬 씨가 이럴 정도라면 내가 상상하지 못한 일을 감당하고 있는 거라고 믿습니다.”

분위기를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석강호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따르러 움직였다.

“너무 늦지 않게 어머님 앞에 섰으면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아버님도 한계가 온 것 같습니다.”

“예.”

강찬의 답을 들은 유헌우가 “2시간 뒤에 오겠습니다.”하고 방을 나섰다.

일단 출혈이 멈추지 않는 유혜숙에게 강찬의 피를 수혈하기로 해서 오늘 피를 받아낼 예정이었다.

샌드위치가 맛있냐고?

주둥이를 확!

강찬이 유혜숙을 어떻게 생각하는데!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지하에 누워 있는 거라, 엘리베이터만 타면 바로 강대경과 유혜숙을 만날 수 있는 거다.

그런 곳에서 두 사람의 상태를 전해 듣는 마음이 오죽하겠나. 그렇지만 지금 어설프게 유혜숙 앞에 나섰다가 잘못되면, 애써 꾸민 일이 모두 꽝 난다.

강한 대한민국? 다윗의 별을 깨부수겠다는 계획?

그런 것들은 저 멀리 사라지고, 국민 영웅에서 대국민 사기극을 펼친 정신병자로 영원히 기록될 거다.

강대경과 유혜숙에게도 차라리 죽은 아들인 게 대국민 사기극의 주연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거기에 정권이나 국가정보원이 감당해야 할 부담도 적지 않았다.

강찬은 악착같이 먹었다.

하루라도 빨리 일어난다.

그래서 적이 방심할 때 모가지를 돌려준다.

“이거 좀 드쇼.”

석강호가 머그잔에 가득 담긴 한약을 건넸다.

강찬은 두말하지 않고 꿀꺽꿀꺽 마신 후에 빈 잔을 석강호에게 내밀었다.

“이 새끼들이 너무 조용한 거 아니요?”

“가브리엘이란 놈에게서 연락이 끊겼으니까 긴장 타고 있는 거겠지. 칩은 어디쯤 가 있냐?”

석강호가 몸을 돌려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손바닥 크기의 패드를 들었다.

“햐! 요 새끼들!”

죽은 가브리엘의 몸에서 나온 거였다.

처음엔 놈의 위치를 알려주는 장치인 줄 알았다.

그런데 몇 번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라르의 움직임을 표시한다는 것을 알았다.

징그러운 새끼들!

사람 몸에 별짓을 다 해 놓았다.

엑스레이를 통해서 제라르의 뒷목과 등이 연결되는 부위에서 면도칼처럼 얇게 휘는 칩을 찾았고, 바로 꺼냈다.

칩만큼이나 패드도 대단했다.

엄지와 검지로 지도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어서 나라부터, 지역, 심지어 현재 어떤 건물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까지도 나올 정도로 성능도 좋았다.

“여기가…….”

석강호가 투박한 손짓으로 패드의 화면을 조절하고는, “프랑스, 클레르몽페랑이요(Clermont Ferrand). 개새끼들, 더럽게 헛갈릴 거요.” 하며 재미있다는 것처럼 웃어댔다.

“이게 독일을 거쳐서 스페인에 간 다음, 다시 인도네시아로 갈 테니까, 푸흐흐! 공항 승객 CCTV 뒤지는 놈이 있다면 눈알 좀 아프겠소.”

그 새끼들 눈알이 아프던가 말던가!

“준비는?”

“저녁 먹기 전까지 다 끝내기로 했소.”

석강호가 웃음을 지우며 답을 했다.

“김 팀장에게 부탁한 여권도 저녁에 나옵답디다. 나를 말리려고 무던히도 애쓰던데, 그 양반에게까진 대장이 살아있는 거 알리는 게 어떻겠소?”

강찬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가 좋아. 어차피 저녁 비행기로 나갈 거니까 오늘만 조심하면 끝나는 일이다.”

석강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브릴인가 하는 새끼는?”

“제라르가 위치 완벽하게 뽑았다고 합디다. 두바이 일정 확인 중이요.”

“귀찮더라도 한 번 더 챙겨 봐. 그리고 국립현충원 경계 늦추지 말라고 하고.”

“증평 애들이 깔렸소. 동균이가 박철수 장군에게 직접 전화했답디다. 대장 묘지를 적이 파손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고 했다던데, 그놈이 그런 머리를 쓸 줄은 몰랐소.”

석강호의 답을 들은 강찬이 피식 웃었다.

윤상기를 비롯한 증평 특수팀이 깔렸다면 이야기 깨끗하게 끝난 거다.

지금은 어떤 특수팀이 와도 그들을 이기기 어렵다.

더구나 장소가 한국이라면 더더욱.

“몇 시냐?”

“2시 되려면 5분 모자라우.”

피를 뽑을 때까지 두 시간, 출발까지 다섯 시간 남았다.

***

김형정은 글자 그대로 얼굴이 딱 반쪽이 되었다.

“준비는?”

“현지 요원 체크까지 모두 끝났습니다. 한 시간쯤 뒤에 최종 점검 예정입니다.”

삼성동 사무실에서 고건우는 아랍인 사진이 주르륵 박힌 여권들을 확인했다.

그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은 얼굴이었다.

여권들을 테이블 한쪽에 놓은 고건우가 지친 표정으로 김형정을 보았다.

“부원장이 없이 이 일이 가능할까?”

“실패해도 UIS 내분으로 끝납니다. 위장한 한국 요원이라고 우겨봐야 우리를 모함하는 거라고 주장하면 할 말도 없을 겁니다.”

고건우의 힘 빠진 얼굴에 근심이 짙게 배어났다.

“부원장이 응징을 주장할 때는 이렇지 않았거든. 그런데 지금은 어딘가 못 미덥고……. 지브릴 제거가 부원장이 원했던 일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성공 여부도 그렇고, 작전의 성패에 상관없이 후폭풍도 걱정되고 그렇군.”

“러시아와 중국의 정보국과는 의사 교환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러시아 정보국장 바실리가 직접 전화까지 걸어서 필요한 것들을 챙길 정도였습니다.”

고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가 이번 작전을 승인한 가장 큰 이유가 적극적인 바실리의 지원에 있었다.

알렉세이 러시아 대통령이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한 지금, 러시아는 바실리가 주무르는 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도 바실리가 아직 몽골의 한국 기지에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러시아가 한국을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은 무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주저하다가는, 강찬이 어렵게 이뤄놓은 기득권을 모조리 러시아에 빼앗길 수도 있었다.

“부원장이 얼마나 의지가 되었었는지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대통령님을 뵐 때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의 수장이란 사실을 느낄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되네.”

김형정의 얼굴을 본 고건우가 아프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싸워보자. 그가 남겨준 것들을 최선을 다해 지키고, 이뤄내 보자.”

“예.”

고건우가 김형정의 어깨를 다독인 다음, 방을 나섰다.

***

“이 부분을 이렇게 붙여요.”

미쉘이 특수 분장팀 직원의 얼굴에 가면을 덧씌우며 확인하듯 설명을 이었다.

“본드를 바를 때 바깥으로 나오는 것만 주의하면 돼요. 만약 누군가 잡아당겨도 살이 함께 뜯겨 나오면 나왔지, 이게 떨어지지는 않아요.”

완벽하게 가면을 붙인 미쉘이 직원의 볼을 잡아당겼다.

“아!”

미쉘이 얼른 손을 놓고 “미안해요.”라고 했다.

“화상 치료에도 사용하는 인조 피부라 땀도 배출하는 수준이에요. 여기에 분장용 BB 크림을 발라주면 외관상으로나 감촉으로는 전혀 구분하지 못해요.”

제라르가 미쉘이 건네준 다른 가면의 볼과 턱 부분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문제는 접착제를 푸는 건데요, 원래 뜨거운 물에 담그거나, 아니면 수증기에 대고 있으면 풀리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더운 곳에 있으면 곤란해요.”

“수증기나 물기가 없는 더운 곳은?”

미쉘이 옆에 서 있던 특수 분장팀 팀장에게 제라르의 질문을 우리말로 바꿔서 전했다.

“얼굴에 열기가 올라오는 건 아무래도 위험합니다. 심한 운동으로 땀이 날 경우, 대략 10분에서 15분 정도 견딥니다.”

미쉘이 팀장의 답을 제라르에게 전해준 다음이었다.

“불가피할 경우, 얼음물이나 그게 없다면 적어도 차가운 물에 얼굴을 식히는 게 그나마 효과가 있습니다.”

분장팀 팀장이 추가로 전해준 설명을 미쉘이 다시금 제라르에게 전해주었다.

설명이 끝났다는 건, 준비가 끝났다는 말도 된다.

제라르는 여러 장의 가면과 손에 붙일 손 모양의 인조가죽, 그리고 접착제와 분장용 화장품을 가방에 넣었다.

“우리는 얼마나 더 여기 있어야 하죠?”

“글쎄! 한 2주 안에 끝날 거야.”

바보라도 차동균과 곽철호가 들고 있는 소총, 그리고 제라르의 살벌한 눈빛과 표정을 보면 대강 어떤 일이 있을지 짐작할 상황이었다.

게다가 제라르가 가져가는 것이 프랑스 남자와 아랍사람들의 얼굴 가죽이어서 더욱 분위기를 짐작하고 남았다.

“조심해요.”

걱정 담긴 인삿말에 제라르가 미쉘을 힐끔 보았다.

그런 다음,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미소 지었다.

처음이다.

저렇게 진심을 드러내며 웃는 것은.

“제리.”

돌아서던 제라르를 미쉘이 불렀다.

제라르가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미쉘이 그의 목을 커다랗게 안았다.

“꼭 돌아와요.”

가면이 담긴 가방을 손에 들어서인지 제라르는 목을 내민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미쉘.”

미쉘이 팔을 풀고 제라르의 눈을 바라보았다.

“다녀오면 둘이 스쿠터 타고 가서 맛있는 저녁 먹자.”

‘이게 무슨 뜻이지?’ 하는 표정으로 제라르를 보던 미쉘이 최면을 풀었나 싶어서 반가운 얼굴을 할 때였다.

제라르가 몸을 돌려 차동균 앞으로 움직였다.

눈빛과 눈빛이 부딪친 다음이었다.

차동균이 웃으며 팔씨름하는 사람처럼 오른손을 허공에 들었다. 당연하게 제라르가 그 손을 맞잡았고, 둘이서 오른쪽 상반신을 부딪쳤다.

프랑스,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를 함께 뛴 전우.

강찬의 일로 미운 순간도 있었지만, 제라르의 본심을 알고 난 뒤로 그런 감정은 훌훌 날려버렸다.

“꽉!”

제라르는 곽철호와도 마찬가지 자세로 손을 맞잡은 다음, 어깨와 가슴을 부딪쳤다.

마지막 인사를 마친 제라르가 사무실 문을 향해 걸었다.

기다리고 있던 우희승이 차동균과 곽철호를 눈에 담듯이 보고는 그와 함께 문을 나섰다.

***

유헌우는 강찬의 피를 받아내면서 쉬지 않고 잔소리를 쏟아냈다.

“강찬 씨! 잘 보세요. 이 약입니다. 이걸 하루에 한 번은 꼭 발라야 하는데 시간이 된다면 좀 더 자주 바르세요. 그리고 당분간은 무조건 붕대를 감고요. 여기 넉넉하게 넣었으니까…….”

“알았다니까요.”

“약 거르지 말구요. 당분간 커피는 절대 안 됩니다.”

말을 한 유헌우가 다짐받는 것처럼 석강호를 보았다.

“아 거! 어린애도 아니고. 커피 절대 금지! 됐지요?”

“석 선생만 믿습니다.”

유헌우가 강찬의 팔에 꽂힌 바늘을 뽑은 다음 엄지손톱 크기의 밴드를 바늘 자리에 붙여 주었다.

일이 모두 끝났다.

그런데도 유헌우는 병실을 나서지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었다.

“왜요?”

“휴우. 이상하게 마음이 안 놓입니다. 아예 따라나설까?”

강찬과 석강호가 바람 빠지는 것처럼 웃자, 유헌우가 조금 늦게 멋쩍은 것처럼 따라 웃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럴게요.”

“오자마자 꼭 병원 먼저 와야 합니다.”

“예.”

어디로 가는지,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러 가는지 모르는 유헌우다. 그런데도 유헌우는 강찬이 하려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짐작한 사람처럼 다짐을 받아냈다.

“정말 갑니다.”

“어머니, 잘 부탁드려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오세요.”

유헌우가 아쉬운 얼굴을 하고 병실을 나섰다.

“저 양반이 보기보다 잔정이 깊네.”

석강호가 툴툴거리면서 머그잔에 한약을 가득 담아왔다.

“얼른 드쇼.”

“이건 어디서 난 거냐?”

“그걸 뭘 신경 써요?”

이 새끼가 왜 답을 피하지?

강찬은 머그잔에 입을 댄 채로 석강호를 노려보았다.

“애 낳고 난 여자들이 피 보충할 때 최고라는 약이오. 종일이가 급하게 구한 거니까 가기 전에 한 컵이라도 더 마십시다.”

염병!

그래도 피가 보충된다니까!

강찬이 약을 다 마신 순간이었다.

“자궁에도 좋다던데 우린 그런 게 없으니까 상관없는 거 아뇨?”

석강호가 혼잣말처럼 설명을 늘어놓았다.

저 새끼!

차라리 말을 하지 말던가!

강찬이 침대에 누워 석강호를 노려볼 때였다.

잠긴 문을 열고 제라르와 우희승이 병실로 들어섰다.

제라르가 가면들을 쭉 꺼내서 늘어놓았다.

크기가 다 달랐는데 그중에 석강호 것만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가면을 착용한 다음의 주의사항을 듣고 나서였다.

최종일이 병실로 들어섰다.

“여권 가져왔습니다. 무기는 두바이 현지 요원에게서 받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제라르가 가장 먼저 강찬의 얼굴에 죽은 가브리엘의 얼굴 모양을 붙였다.

따듯한 수건으로 얼굴을 먼저 닦고, 다음으로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깨끗하게 닦아냈다.

질척이는 접착제를 골고루 바른 가면이다.

코부터 밀착시키자 기포가 밀려나면서 징그러울 정도로 얼굴에 딱 달라붙었다.

가면 하면 떠오르는 두께나 이질감이 없어서 신기할 정도였다.

“오!”

눈을 깜박이는 강찬을 보며 석강호가 탄성을 질렀다.

“렌즈만 끼면 끝나는 겁니다.”

“줘 봐.”

강찬은 제라르가 건네주는 렌즈를 눈에 끼웠다.

“우아!”

석강호가 또다시 탄성을 터트렸을 때 제라르가 거울을 강찬 앞에 내밀었다.

이거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웃음부터 연습합시다. 거 프랑스 얼굴로 그렇게 웃으니까 느낌이 묘하우.”

“그렇긴 하다.”

강찬이 볼을 만져보는 동안, 최종일이 아랍 남자의 가면을 썼다.

지켜보는 건 또 좀 다른 느낌이었는데 역시나 마지막 순간엔 감탄과 헛웃음이 나왔다.

이어서 석강호와 우희승, 이두희가 아랍 남자로 변장한 것으로 위장이 모두 끝났다.

쉬울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여권 받으십시오.”

어쩜 손 가죽까지 저렇게 만들 수 있지?

손등과 손가락 위로 노란 털이 수북한 아랍놈이 익숙한 한국말을 지껄이며 여권을 나눠주었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침대에서 일어난 강찬이 옷을 갈아입는 사이, 석강호와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는 아랍인들이 즐겨 입는 원피스를 걸쳤다.

염병할!

개새끼들 때문에 별짓을 다 한다.

강찬은 천천히 방안에 선 이들을 둘러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이 지랄을 떨었던 만큼, 분명하고 확실하게 끝내서 다시는 덤비는 놈이 없게 만든다.

지브릴?

눈알 노란 놈?

다윗의 별?

그냥 제자리에서 잘 처먹고 살지, 왜 대한민국과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건드려!

몰라서 그랬겠지만, 너흰 너무 늦게 안 거야.

적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검은 대륙의 신이 한국에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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