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90화 (3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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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주사위는 던져졌다.

김태진은 위성 TV 수신 안테나에 달린 수신기를 회수해 버렸다.

김형정에게서 연락을 받은 직후였다.

“하아.”

경계를 서는 막사 위로 올라간 김태진은 주변을 둘러본 후에 가슴을 막고 있던 답답함을 커다랗게 토해냈다.

사는 게 허망하다는 생각을 지금처럼 뼈저리게 한 적이 있었나?

강찬의 사망 소식을 받은 것도 끔찍한데 그의 사망 소식을 강대경과 유혜숙에게 전해야 한다.

“후우.”

기지 앞 공장은 어느새 뼈대를 모두 갖추고, 외벽을 붙이는 단계였다.

이 모든 걸,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모든 성과를, 강찬 혼자서 이뤄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비무장 팀이 달려왔고, 그와 서상현이 혼신의 힘을 다해 돕기는 하지만, 강찬이 없었다면, 그가 목숨 걸고 나서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조차 없었을 거다.

너무 많은 걸 원했다.

한 사람에게 대한민국과 정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웠던 거다.

첫 실탄훈련에서 보여주었던 강찬의 모습과 대원들이 의기소침해 있을 때 식당에서 호령하던 강찬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김태진은 고개를 숙이고 소리 나지 않는 울음을 터트렸다.

최성곤의 복수를 주장하던 그를 대한민국은 지켜주지 못했다.

세수하는 것처럼 얼굴을 문댄 김태진이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셨고, 그보다 더 크게 내쉬었다.

“두 분 모두 충격이 크시겠지만, 특히 사모님은 산부인과 쪽으로 위험 요소를 지니고 계시니까 가능하면 국내로 들어오신 후에 소식을 듣게 신경 써 줘.”

김형정의 부탁이 아직도 꿈이었으면 싶었다.

몽골의 별은 낮 동안 맑은 물에 담갔다가 깨끗한 천으로 뽀득뽀득 닦아 걸어놓은 것처럼 빛난다.

김태진은 사치스럽게 뿌려놓은 몽골 하늘의 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자넨 별이 되었을 거야.’

저 하늘 어디선가 강찬이 피식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미안해. 미안하다.’

또다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김태진은 이를 악물고 삼켰다.

“후우.”

김태진은 막사를 천천히 내려왔다.

강대경의 시커멓게 탄 얼굴과 힘에 부치는 주방일에 힘겨워하는 유혜숙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대원들과 직원들에게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저벅저벅.

무거운 걸음을 옮길 때였다.

트럭의 아래에서 전등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는데도 강대경은 일에서 손을 놓지 못했다.

느슨한 모습이 강찬에게 누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과 이렇게 정비한 차량이 강찬이 원하는 공장 건설에 도움이 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김태진은 먹먹하게 강대경을 불렀다.

바닥을 누운 채로 나온 강대경이 기름 먹은 목장갑을 벗으며 다가왔다.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강대경에게 김태진은 잔인한 사실을 최대한 덤덤하게 전해주었다.

털썩!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던 강대경이 엉덩방아를 찧는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믿기지 않을 거다.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다.

그래서인지 김태진의 얼굴과 눈빛을 들여다보며 강대경은 악착같이 희망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총에 맞다니……, 우리 아이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방지병원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잔인한 질문과 답이 오간 다음이었다.

강대경이 바보처럼 입을 커다랗게 벌린 채로 가슴을 두드리며 울었다.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서러운 울음이었다.

유혜숙에게, 대원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소리 내지 못한 울음이라 더 처절해 보였다.

방지병원의 입구를 무장한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 요원들이 완벽하게 막아섰다.

헬멧과 두건으로 얼굴을 가렸고, 실탄이 장착된 소총과 권총, 대검, 방탄복을 착용한 요원들이다.

강찬의 사망 소식이 발표된 이후, 30분쯤 지난 시간이었다.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병원의 담과 입구, 그리고 무장 요원들의 앞에 하나둘 놓이기 시작한 국화가 어느 순간에 눈이 온 것처럼 병원 주변을 하얗게 만들었다.

놀라운 일은 또 있었다.

병원 주변은 물론이고, 서울 곳곳, 심지어 지방에서도 많은 이들이 역과 시청 앞에 하얀 국화를 꽂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건물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대형 태극기를 외벽에 걸기 시작한 것은.

밤이다.

어쩌면 거둬야 할 시간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방지병원 주변 건물들이 병원을 바라보는 벽에 대형 태극기를 내걸었다.

방지병원 앞 도로는 차량이 움직이지 못할 만큼 혼잡했는데 그 흔한 클랙슨 소리 한 번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직장인, 주부, 학생, 유치원생, 일가족,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 시간이 지날수록 인원이 점점 많아졌고, 그들 모두 국화를 들고 와서 병원 앞에 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종이컵에 담은 초를 들고 병원 앞을 지키기 시작했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시킨 일도 아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란 팻말을 든 어린 유치원생이 무장한 요원 앞에 섰다.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차동균과 곽철호는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병원에 도착했다.

꽉 막혀버린 길에 주차할 공간마저 없어서 두 사람은 꽤 먼 거리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대테러 팀 무장 요원이 두 사람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현관에 들어선 두 사람을 최종일이 맞았다.

“이쪽으로 앉아.”

“대장 먼저 보겠습니다.”

“석 선생이 올라올 거니까 그때까지 좀 기다려.”

최종일이 선배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일에 누구보다 충격이 클 최종일에게 고집을 피울 수는 없었다.

자판기 커피를 우희승이 가져왔고, 넷이서 맛도 느끼지 못하는 커피를 홀짝인 다음이었다.

“프랑스 놈의 흔적은 찾았습니까?”

배신감이 짙게 밴 차동균의 질문에 최종일이 “지금 찾고 있다.”라고 답을 했다.

차동균이 갑갑해 할 때였다.

석강호가 계단을 통해 민원인 대기실로 들어섰다.

“잘 왔다.”

차동균과 곽철호는 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였다.

“이쪽으로 와.”

석강호는 두 사람을 1층 안쪽에 있는 빈 사무실로 데려갔다. 수리가 필요해 보이는 철제 침대와 강당에서 씀 직한 접이식 의자가 벽에 쭉 세워진 방이었다.

“앉아.”

석강호부터 최종일, 차동균, 곽철호가 의자를 펴서 앉았고, 우희승이 문밖을 지켰다.

“이건 전적으로 내 판단에 따른 거다.”

석강호가 전에 없이 단단한 어조로 입을 열고는 빤한 방을 휘휘 둘러보았다.

뭔데 이러지?

차동균이 얼떨결에 석강호를 따라 방을 둘러본 다음이었다.

“병원을 나가서 바로 사무실로 가라.”

“예?”

석강호는 그때부터 5분에 걸쳐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현재 상황이 어떤지를 설명했다.

믿기지 않을 만큼 반가운 소식이었다.

TV에서 사망이라고 발표한 강찬이 실제로는 살아 있다는 것이.

하룻밤에 충격적인 소식을 두 번 들은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는가에 대한 답을 차동균과 곽철호의 얼굴이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비밀이 최우선이다. 부대에는 장례식 끝난 다음에 간다고 하고, 사무실을 통제해라.”

“예.”

충격은 컸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것이 기뻤고, 적의 중심을 깨부순다는 일이 반가웠다.

차동균이 단단하게 답을 한 후에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었고 답을 들었다.

“대장이 목숨 걸고 진행한 일이다. 너희 둘을 이 일에 끼어들게 한 건 내 판단이니까 절대로 방심하지 마라. 그리고 보고 따위는 없다. 필요한 모든 일을 알아서 조치해.”

“예.”

그동안 겪어왔던 처절한 전투의 경험이 차동균의 눈빛과 대답에 사명감으로 드러나 있었다.

소총을 어깨에 건 통역대원만으로도 살벌했던 강찬의 사무실 분위기가 또 달라졌다.

차동균과 곽철호가 가세한 거다.

철컥!

곽철호가 소총을 겨눈 앞에서, 통역 대원이 함께 들어온 병원 직원 두 명의 몸을 마지막으로 수색했다.

“안에서 편안하게 쉬시면 됩니다. 어떤 요구도 괜찮습니다. 다만 어떤 형태로든 외부와 접촉을 시도하면 바로 사살할 수 있습니다. 이점을 잊지 마십시오.”

눈빛이! 눈빛이!

곽철호의 경고에 병원 직원 둘이 얼이 빠진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 좀 드릴까요?”

그래도 미쉘은 좀 달랐다.

놀라고 질린 특수분장 팀 직원들을 다독이고 차동균과 곽철호에게 커피를 권했다.

“저희가 알아서 먹겠습니다.”

다분히 경계하는 투였다.

그러나 이건 뭐랄 게 아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마시는 물에서부터 커피 한 모금까지 조심하겠다는 거니까.

미쉘도, 특수분장 팀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다. 그저 작업에 필요한 장비들을 들고 와서, 만들라고 했던 강찬의 인형을 만들었는데, 그 뒤로 그냥 감금당했다.

전원을 끈 전화기들을 회수한 통역대원이 안쪽에 일괄 보관할 정도여서 전화는커녕 TV도 못 봤다.

그래서 커다란 건물마다 왜 태극기들이 달리는지, 길에 왜 초와 하얀 국화를 든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제대로 짐작조차 못 하는 상황이었다.

차동균이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박철수의 번호를 눌렀다.

박철수의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확인했냐?”]

“사실이었습니다.”

고통을 이기려는 듯한 박철수의 신음이 들려왔다.

“장군님. 부탁이 있습니다.”

[“뭐야? 말해!”]

“저희 며칠만 서울에 있겠습니다. 짧으면 일주일, 길면 보름 정도 걸릴지 모릅니다.”

[“그 새끼 때문이냐?”]

“그렇습니다.”

차동균은 박철수의 질문이 고마웠다.

[“알았다. 무기는?”]

“이쪽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짧은 침묵이 건너온 다음이었다.

[“이 건과 관련해서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무조건 내 이름을 팔아! 전부 내가 지시했다. 아니지! 명령이다! 너희 둘이 독자적으로 움직여서 반드시 그 양반 죽인 놈을 체포해라. 반항하면 사살해도 좋다.”]

뒤를 생각한 박철수가 뜬금없는 명령을 내렸다.

“고맙습니다, 장군님.”

차동균이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이었다.

[“동균아.”]

박철수가 나직하게 그를 불렀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특수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네가 있어야 한다. 어쭙잖은 책임감에 일 망치지 말고 내 명령이 있었다고 분명하게 말을 해.”]

그리고는 말을 전한 다음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테이블 이리 가져와.”

곽철호가 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가져왔다.

달칵.

차동균은 전화기를 테이블에 얹고 의자에 앉았다.

“이곳과 안쪽 위성 요원들까지 두 곳이다. 통역대원하고 셋이니까 밀어내기로 쉰다. 네가 먼저 통역대원 교대해주고 가서 6시간 쉬라고 해둬.”

“예.”

쩔꺽. 쩔꺽.

곽철호가 안으로 들어갔다.

통역대원이 소총을 들고 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는데, 지켜보는 미쉘과 특수 분장 직원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편안하게 계시면 됩니다.”

“예.”

그나마 대답은 역시 미쉘이 했다.

미쉘이 힐끔 차동균의 눈치를 살폈다가 어두운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압구정동에서 보았던 제라르의 눈빛이 떠올랐다.

지금쯤 어디선가 그런 눈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내용은 모른다.

그런데도 어쩐지 지금은 제라르의 안부를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강찬은 어디 있을까?

혹시 꼬박 하루 걸려 만든 강찬의 인형이……?

미쉘은 자꾸만 꼬리를 물고 달려드는 불길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석강호는 당연하게 강찬의 곁에 딱 붙어 있었다.

잠시라도 움직일 때면 반드시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 세 사람 중 한 명을 병실에 남겨두었다.

장전된 소총을 어깨에 걸었고, 권총을 허리와 발목에 찼으며, 그 외에도 대검과 무전기도 지녔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혈액과 링거액, 보글거리는 관을 통해 공급되는 공기, 일정한 파동으로 움직이는 선이 강찬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표식이었다.

치잇. “김형정 팀장입니다. 석 선생, 어디 계십니까?”

무전이 들어왔다.

“종일아. 희승이랑 두희 데리고 가서 적당히 둘러 대. 나는 충격이 너무 커서 내일쯤 보는 게 좋겠다고 하고.”

최종일이 답을 하고 두 사람과 함께 방을 나갔다.

석강호는 거즈를 들어서 강찬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시커멓고, 거칠고, 상처투성이인 손으로 강찬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더럽게 차가웠다.

“대장.”

석강호가 툴툴거리는 것처럼 강찬을 불렀다.

“얼른 일어나쇼. 이렇게 있으니까 숨이 턱턱 막히우.”

핏기를 빨아낸 것처럼 하얗게 변한 강찬의 얼굴과 손을 살핀 석강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라르, 그 개새끼, 내가 손 안 댔소. 그러니까 좀 일어나쇼. 애들 앞에선 대장이 무조건 일어날 거라고 했는데……, 그렇게 믿는데……, 망갈라에서 죽기 직전에도 무섭진 않았던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겁이 나우.”

석강호가 강찬을 살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씨발! 거 좀 일어나쇼!”

말을 뱉은 석강호가 강찬이 알아듣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힐끔 눈치를 살폈다.

날이 밝았다.

전날 벽에, 정문에, 도로 곳곳에 꽂아놓은 국화가 눈이 시도록 하얀빛을 뿜어내는 아침이었다.

방지병원은 전날보다 좀 더 혼잡해졌다.

몰려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병원 앞 도로 20미터 가량을 차량이 다닐 수 없도록 통제할 정도였다.

아직 정식으로 장례절차를 밟지 못했기 때문에 대통령이나 삼부요인이 올 명분은 없었다.

대신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출석부에 도장을 찍는 것처럼 몰려들었다.

고건우의 지시로 김형정이 병원 통제를 맡았다.

방문은 허용하되 병원 마당에 설치된 임시 분향소까지만 접근을 허락했다.

“석 선생은?”

“도저히 말을 걸 상황이 아닙니다.”

최종일의 보고를 들은 김형정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새벽 2시쯤 도착해서 다음 날 오후 2시가 되었으니 벌써 12시간이 넘었는데도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김형정도 더는 석강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 사이로 정치인들이 끼어든 상황이었다.

자칫 이런 곳에서 폭탄 테러라도 발생한다면……?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 요원들이 미친 사람처럼 눈을 돌려가며 사람들 틈을 파고들고, 김형정이 혼이 빠진 사람처럼 무전기에 지시를 내리는 이유였다.

유헌우가 눈치껏 들어와 링거와 혈액을 갈아주는 것 말고는 거의 석강호 혼자 병실에 있었다.

컵라면, 김밥, 삼각김밥, 도시락, 캔커피, 그 외에 초코바가 한쪽에 수북이 쌓였는데 석강호는 손도 대지 않았다.

김관식이 김미영과 다녀갔다는 무전에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과 삐죽삐죽 튀어나온 수염들이 석강호를 더욱 초췌하게 만들었다.

“배고파요.”

석강호가 투덜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얼른 일어납시다. 그래서 매운 낚지 볶음에 밥 쓱쓱 비벼 먹읍시다.”

석강호는 틈만 나면 강찬이 듣고 있다는 것처럼 툴툴거렸다.

“거, 아랍 놈이랑 눈깔 노란 놈 모가지 돌려주러 가야 할 거 아뇨? 시간이 늦었다니까요!”

석강호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밤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더니 몸이 뒤틀렸다.

우드득. 우드득.

상체를 좌우로 틀자 척추에서 시원한 소리가 들렸다.

목까지 좌우로 꺾은 석강호가 의아한 눈으로 링거를 보았다.

어쩐지 떨어지는 속도가 줄어든 것 같았다.

설마?

“강찬! 너 이대로 죽으면 정말 가만 안 둔다!”

핏발 선 눈으로 강찬을 본 석강호가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뭐? 제라르를 놔두라고!”

나쁜 생각이 드는 바람에 독기가 뻗쳐서 그런 거다.

“내가 제일 먼저 제라르 모가지 비틀고……!”

거친 말을 뱉던 석강호가 뒷말을 침과 함께 꿀꺽 삼켰다.

하얀 얼굴을 한 강찬이!

그가 힘겹게 뜬 눈으로 석강호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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