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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당신 강한 사람이잖아!
“다른 요원들 모르게 들어가셨으면 싶습니다.”
최종일이 라이터를 꺼내서 석강호가 문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이 정도로 말해주는데 못 알아듣는다면 그건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바보나 멍청이인 거다.
석강호가 짐짓 인상을 찌푸리면서 방금 불을 붙인 담배를 떨어트려 발로 밟았다.
“지금 가면 되지?”
최종일의 뒤를 따라 대리석 계단을 올라갔고, 유리로 된 현관문을 지났다.
심장이 어찌나 두근거리는지 그 소리가 주변에 늘어선 요원들에게 들릴 것만 같았다.
원장실을 지나친 최종일이 지하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불편해서가 아니다.
도대체 어딜 가려고 이러는가 싶었다.
지하 1층 복도는 조명이 밝지 않았다.
주사기, 깁스 재료, 목발, 붕대 따위를 쌓아놓은 문들이 먼저 보였고, 안쪽으로 링거, 그 외에 ‘Staff only’라는 표시가 달린 문들이 이어졌다.
최종일은 가장 안쪽에 있는 문에 도착해 좌우를 살핀 후, 문을 열었다.
들어가라는 몸짓이었다.
시간을 끌면 곤란한 거다.
빠르게 안으로 들어간 석강호는 숨이 턱 막혔다.
강찬이 누워 있었다.
딱 봐도 창고로 썼음 직한 눅눅한 방에.
바퀴 달린 기계들이 침대에 누운 강찬의 몸에 복잡하게 연결되었고, 링거와 혈액이 주렁주렁 달렸다.
우희승과 이두희가 한쪽으로 비켜섰고, 복잡한 표정의 유헌우가 석강호를 맞았다.
“아까 내가 바라보았을 때 기억납니까? 그때 심장이 다시 뛰었습니다.”
석강호가 강찬의 앞으로 다가가자 유헌우가 지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머리와 이마가 땀으로 흥건했다.
“석 선생이 나가고, 사망을 발표한 뒤에, 어제 강찬 씨의 부탁대로 저기 저분과 함께 급하게 이리 옮겼습니다.”
유헌우가 시선으로 우희승을 가리켰다.
“아무튼, 살아났다는 거 아뇨?”
뜻밖에도 유헌우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태로는 저 호흡기를 떼는 순간…….”
유헌우가 뒷말을 흐렸다.
뭐 이런 지랄 같은 설명이 있지?
석강호의 부리부리한 눈을 본 유헌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의학적으로 살아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희망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죽은 것으로 해달라는 부탁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한 총상으로 올 줄은…….”
자꾸만 뒷말을 흐리던 유헌우가 의아한 눈으로 석강호를 보았다.
그가 히죽 웃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였다.
“최종일.”
“예.”
“작전대로 한다.”
“예.”
유헌우가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가 오간 다음이었다.
최종일의 지시를 받은 우희승이 급하게 방을 나갔다.
“원장님. 대장하고 똑같이 만든 밀랍 인형을 가져올 겁니다. 이대로 사망으로 처리해 주십시오.”
“석 선생?”
석강호가 번들거리는 시선을 들어 유헌우를 바라보았다.
“이 양반 일어납니다. 죽었다가도 이렇게 돌아온 양반이 맥없이 다시 죽을 것 같습니까? 이 사실을 아는 의료진이 더 있습니까?”
“두 명이 더 있습니다.”
유헌우가 아직 석강호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답을 했다.
그건 위험하잖아?
석강호가 고개를 돌려 최종일을 바라보았다.
“두 명 모두 승합차에 모셔 두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이렇게 깔끔하게 뒤처리를 했다니!
석강호는 최종일의 볼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
제라르는 약속된 곳에서 검은 머리 가발과 허름한 옷을 덧입은 뒤에 곧장 움직였다.
방배동의 한 원룸이었다.
TV를 통해 강찬의 사망 소식은 들었다.
“대장!”
“심장을 쏘라니까.”
제라르의 의심스러운 눈초리 앞에서 강찬은 덤덤한 얼굴이었다.
왜 이러지? 혹시……?
제라르는 뒤통수를 세차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다윗의 별이 의심해서, 그래서 대장이 오기 전에 내가 당할까 봐, 그걸 걱정하는 겁니까?”
피식.
강찬은 까불지 말라는 것처럼 웃었다.
“그럼 왜 심장을 쏘라는 겁니까? 내가 이 기회를 이용해 대장을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 안 합니까? 혹시라도 최면이 덜 풀렸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목소리 낮춰.”
“대장!”
강찬이 담배와 라이터를 집었다.
그리고는 하나를 제라르에게 건네주었다.
찰칵.
불을 붙이는 동안, 감정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CCTV에 찍힌 영상을 보았을 때 말이다. 오광택이 지랄했던 그 CCTV.”
“예.”
아무렴 그걸 기억 못 하겠나.
“그 뒤에 널 의심했었다. 딱 한 번.”
제라르의 시선을 본 강찬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차라리 속아서 총을 맞고 말지, 그거 사람이 할 짓 아니다.”
“대장이 잘못된 다음에 남은 사람이나, 해야 할 일은 생각 안 합니까?”
“네가 최면이 덜 풀렸거나, 기회를 봐서 날 죽일 거라면 일이 완성되기 전이겠지. 그럴 바엔 이럴 때가 좋지 않겠냐?”
제라르는 담배를 들고 있다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얼이 빠졌다.
“다예랑 우리 요원들 내가 막을 거다. 죽일 거라면 이번에 죽이고 다윗의 별로 가.”
“미쳤습니까?”
강찬이 또다시 특유의 웃음을 웃으며 제라르를 보았다.
“날 죽일 거라면 너라도 살라는 뜻이다.”
“그게 말이 되냐구요! 또 나만 보내는 겁니까? 이젠 그렇게 못합니다!”
강찬은 재미있다는 얼굴로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내가 너를 죽이려고 노리는 거 같으면 어떻게 할래?”
“그냥 죽고 말겠습…….”
말을 잇지 못한 제라르 앞에서 강찬은 담배를 재떨이에 끄고 있었다.
“제라르.”
“예.”
손가락에 들고 있던 담배가 다 탔던 모양이었다.
강찬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제라르의 손에서 담배를 빼서는 역시 재떨이에 눌러 껐다.
“이 작전에서 우리는 다윗의 별을 깬다.”
제라르의 시선 앞에서 강찬은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니 심장을 노려. 남은 일은 내게 맡기고. 너는 네가 원하는 길을 선택해.”
“이럴 때 보면 정말 다예보다 미련해 보입니다.”
피식.
강찬의 이번 웃음은 어딘가 이전과 달랐다.
“최선을 다해 심장을 노려라. 그 정도를 하지 않으면 다윗의 별을 속이지 못한다. 만약, 최면이 남아 있다면 이번에 다 털어내.”
말을 건네는 강찬의 표정이 완벽하게 전투에 뛰어들었을 때와 같았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너와 나만 안다. 최면이 남았다면 그것 역시 우리 둘만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작전 뒤에 나는 내가 아는 제라르란 놈을 보고 싶다.”
이거였나?
이래서 이렇게 황당할 정도로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건가?
“대장은 아직 내게 최면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거군요?”
강찬의 강렬한 눈빛이 답이었다.
“오토바이 사건 이후다. 내가 전에 보았던 네 어릴 적 사진의 그 슬픈 눈빛을 네가 하기 시작한 건. 그리고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다.”
제라르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내가 죽으면 다예가 널 그냥 두지 않을 거다. 그 새끼가 죽든, 네가 죽든 결판이 나겠지.”
이런 말에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 꼴을 보기 싫어서라도 난 절대 안 죽는다. 그러니 이번에 그 빌어먹을 최면 모두 털어내. 피 흘리는 거 보는 것도 지겨우니까.”
그리고 이어진 말에도 대꾸하지 못했다.
제라르는 탁자에 앉아서 담배를 물었다.
주르륵.
시커먼 코피가 또 흘러나왔다.
“염병!”
한국말 욕이다.
제라르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뚝 끊어서 피를 닦고 코를 막았다.
코를 막고 담배를 피우면 더럽게 쓴맛만 난다.
담배를 끊을 때 쓸 방법으로 딱인데.
찰칵.
그래도 제라르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강찬의 말이 맞았다.
제라르는 확실히 마지막 순간을 의식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세 발이나 방아쇠를 당긴 뒤에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
총을 맞아 일그러지면서도 끝까지 돌리지 않았던 강찬의 시선이 아니었다면…….
‘가라고! 이 개새끼야!’
콱!
제라르는 불이 붙은 담배를 단숨에 손으로 움켜쥐었다.
죽었을지 모른다.
심장에 정확하게 방아쇠를 당긴 거니까.
입양, 차가운 양부모, 지옥 같은 아프리카를 거치며 만난,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대장!
나 혼자라도 다윗의 별을 부술 겁니다!
날 이렇게 만든 놈들이니까 악착같이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지옥으로 갈 겁니다!
제라르의 손안에서 아직도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
“강찬의 사망을 한국의 TV 뉴스에서 보도했습니다.”
“사망을 가장했을 확률은?”
“없습니다.”
지그펠트가 고개를 들어 싸이로를 바라볼 정도로 단호한 답이었다.
“이중 교육이었습니다. 만약 가브리엘이 마지막 순간에 세뇌된 지시를 거역했다면 그 순간 현장에서 사망했을 겁니다.”
“흠. 그렇다면 지금 가브리엘의 상태는?”
“과거를 떠올렸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군.”
지그펠트가 손을 뻗어 얼음이 가득 담긴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모처럼 아이스티가 제맛을 내는군.”
그는 만족한 얼굴이었다.
“그렇더라도 모든 일은 확실한 게 좋다. 놈의 무덤을 파서라도 시체든, 피든, 하다못해 화장하고 남은 뼈다귀라도 구해서 DNA를 확인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가브리엘을 회수하겠습니다.”
지그펠트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놈은 그대로 버려두는 게 좋지 않겠나?”
“기억이 돌아왔다면 아무래도 정보가 새나갈 확률이 높습니다. 거기에 프랑스 외인부대와 정보총국의 향후 움직임에 써먹을 곳도 많습니다.”
뜨거운 바람 바닷바람이 지그펠트의 머리칼을 흐트러트리고 달렸다.
“이런!”
그는 손을 들어 머리칼을 원래대로 다듬었다.
“전에 영국 정보국을 통해 제거하려던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뜻이냐?”
싸이로가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 하고 바로 답을 했다.
“알았다. 가브리엘은 원하는 대로 해라. 전에 보냈던 자비에가 엉뚱한 일로 죽었다고 들었는데 현재 한국에 누가 나가 있지?”
“가브리엘의 사촌이 나가 있습니다.”
지그펠트의 눈빛과 표정이 삽시간에 날카롭게 바뀌었다.
“자비에가 죽고 나서 강찬의 주변을 살피기 위해 보내놓았습니다. 강찬의 여자와 접촉 중입니다. 그 외에 지난번 한국의 국가정보원장과 자원연료청장의 테러를 배후에서 지원했었습니다.”
지그펠트의 눈빛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독자적으로 처리했습니다.”
“대답은 그럴듯하구나. 그렇다면 뒤에 보고가 없었던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앞으로는 네가 결정한 사안에 대해 결과나 받아보라는 뜻이냐?”
“작은 일에 신경 쓰시는 것을 염려했었습니다만,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싸이로가 각진 머리를 숙여 가며 지그펠트에게 잘못을 빌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늘 속의 지그펠트가 노려보는 앞에서 싸이로는 빈탄섬에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을 머리와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싸이로.”
“예.”
“원한다면 언제고 은퇴해도 좋다.”
“잘못했습니다.”
또 다른 침묵이 흘렀다.
그 사이에도 바닷바람은 쉬지 않았다.
지그펠트가 의지하는 파라솔을 흔들었고, 싸이로의 어깨와 머리에 바다에서 안고 온 습기를 뿌리고 달려갔다.
“가브리엘의 위치는?
“몸에 심어놓은 칩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나직한 지그펠트의 숨소리가 들린 다음이었다.
“체스판의 말이 제멋대로 움직이면 수를 읽기가 어렵다. 내가 단순한 보고까지 원하는 것이 고작 할 일이 없어서라고 판단하는 건 아니겠지? 파르탈의 주변을 살피던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커다란 숨소리가 들렸다.
“판단하고 결정해라. 하지만 한 번 더 보고를 빼놓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은퇴할 기회조차 없을 거다.”
“알겠습니다.”
지그펠트가 잔을 들었다.
그가 아이스티를 마시는 것은 그의 감정이 가라앉았다는 신호와 같았다.
“가브리엘을 회수해. 그리고 강찬 때문에 멈추었던 계획들을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예.”
지그펠트가 손등을 밖으로 휘젓자 싸이로가 탁자에서 몸을 돌렸다.
그가 건물 안으로 사라진 다음이었다.
“코카서스를 능가하는 황색인종이라니…….”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바다로 시선을 주었다.
“교육을 통해 코카서스를 능가하는 원숭이를 얻을 수 있다는 건가? 놈이 떠오를 때마다 우리의 원대한 계획에 회의가 드는군.”
그는 기가 막힌다는 웃음을 지으며 아이스티를 들었다.
“대왕 개미를 죽인 신의 뜻에 건배! 더럽혀진 지구를 청소하라는 신의 사명에 건배! 먹는 것과 종족 번식밖에 모르는 황인종과 니그로들이 없는 세상을 위해 건배!”
그의 얼굴에 경멸과 기대의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
쪼르륵.
바실리가 또다시 잔을 채우다가 고개를 들었다.
침대 옆으로 탁자를 놓았고, 맞은 편에 양범이 앉아 있었다.
바실리와 양범 앞에 각각 잔과 포크, 그리고 가운데 접시에는 잘 익은 삼겹살과 돼지 불고기가 담겼다.
“한 병 더 가져와.”
“다(Да, 예).”
소총을 멘 사내놈이 냉장고에서 새로운 소주를 가져와 탁자에 놓았다.
부상이 예사롭지 않아서 말릴 만도 한데 양범은 잠자코 지켜보고만 있었다.
“정보국들이 요동치고 있겠구만. 중국은 어떤가?”
“흑랑대가 배신자들을 처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공을 들였던 쉬커도 어쩌지 못했던 흑랑대가 왜 자네에게는 목을 거는 거지?”
“쉬커는 그들을 팔려고 했고, 저는 그들을 사려고 했던 것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흥!”
바실리가 잔을 들어 단숨에 소주를 털어 넣었다.
“이게 뒷맛이 묘하게 달아.”
쪼르륵.
그리고는 변명처럼 말을 토해내며 잔을 채웠다.
“우리의 주연께서 저렇게 맥없이 죽어버렸으니 이거 난감하군.”
바실리가 손을 들어 코 아래와 입을 쓸었다.
프랑스어로 주고받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을 지키는 남자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자네는 어쩔 셈인가?”
“아직 라노크 위원장이 건재합니다. 그래서 지금 내게는 중국 정보국을 다시 손에 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포기하지 않겠다?”
“어차피 다윗의 별과 협상할 여지가 없으니까요.”
양범의 답이 마음에 안 든 것처럼 바실리가 느닷없이 눈빛을 번들거렸다.
“러시아는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지. 필요하다면 난 정보국장과 대통령을 겸한 최초의 러시아 통치자가 될 거다. 그래서 우선 사우디아라비아에 짓고 있다는 차세대 에너지 시설을 부숴버릴 생각이다.”
“정리가 끝나는 대로 힘을 보태겠습니다.”
비릿하게 웃은 바실리가 잔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그런데 말이지.”
건배를 하려고 잔을 들던 양범이 무슨 소린가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주연께서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 같거든.”
“너무 충격적인 소식이라 그런 것 아닐까요?”
바실리가 고개를 저었다.
“정보국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눈에 보이는 증거나 자료보다는 감이 더 정확하게 맞아 떨어질 때가 있지. 내가 몇 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것도 바로 그 감 덕분이었고. 물론 우리 주연의 그 동물적인 감각에는 못 미치지만.”
양범이 짓는 묘한 미소를 보며 바실리가 변명처럼 말을 뱉었다.
“이번 한 번쯤은 제발 보도가 정확했으면 싶군. 라노크의 코가 더 길게 빠진 것을 보고 싶어서라도!”
틱!
바실리가 양범과 잔을 부딪치고는 단숨에 소주를 털어 넣었다.
이런 게 바실리가 말한 감이라는 건가?
양범은 바실리가 어쩐지 정말 러시아의 대통령이 될 것 같았다.
누구도 대항하지 못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대통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