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87화 (387/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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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대장이 죽어줍시다.

라노크가 병실로 들어서는 강찬을 향해 입술 끝을 움직였다. 반가운 기색이었는데, 그를 잘 몰랐다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나 싶었을 표정이기도 했다.

“오늘 좀 어떠십니까?”

“쥬 비 비앙(Je vais bien, 좋습니다).”

라노크의 프랑스 발음이 어딘가 처연하게 들렸다. 힘 빠진 음성과 끝에 달린 콧소리 때문일 거다.

강찬은 라로크의 침대 옆에 앉았다.

“대사님. 바로 가봐야 합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한동안 못 뵐 것 같습니다.”

라노크가 의아한 눈빛으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좀 더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이었는데 강찬은 입을 열지 않았다.

짧은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라로크가 또다시 입술 끝을 움직였다.

대화는 없었다.

잠시 더 라노크를 바라보던 강찬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스윽.

링거 바늘이 꽂힌 라노크의 왼손이 움직여 강찬의 손을 잡았다. 그의 말라버린 손에는 힘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바람과 의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강찬은 천천히 손에서 시선을 들어 라노크를 바라보았다.

파란 눈, 뾰족한 코와 볼, 날카로운 입술.

그가 없었다면, 라노크가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강찬은 없었을 거다.

그 관계는 신뢰로 발전했고, 지금처럼 말 한마디 없이도 서로의 뜻을 알아듣는 사이가 되었다.

강찬은 라노크의 손을 잡은 채로 그와 비슷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끄덕.

라노크의 고갯짓은 인제 그만 가보라는 인사와 같았다.

강찬은 침대에 앞에 서서 깍듯한 자세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런 시간이 길면 구질구질해진다.

자세를 세운 강찬은 바로 병실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접견 시간은 오후 5시까지였다.

석강호와 함께 강찬이 구치소에 도착한 시간은 4시 20분쯤이었다.

공범은 동시 접견이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시간이 없었다.

강찬은 결국 김형정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사항이 강찬은 강철규를, 석강호는 오광택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구치소 직원이 놀라서 금액을 확인할 정도로 넉넉하게 네 명 앞으로 영치금도 넣었다.

접견을 하기 직전이었다.

끼익! 끼이익!

우르르!

요란한 차 소리가 먼저 들렸고, 이어서 정장 차림의 요원들이 삽시간에 민원인 대기실로 뛰어들었다.

선글라스를 끼었지만, 그들의 분위기가 어디 감춰지겠나.

“괜찮으십니까? 지금부터 경호를 시작하겠습니다.”

최종일과 우희승은 아예 위기에 빠진 강찬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미안했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서 이런 요원들에게 걱정을 끼친 것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정보원 부원장의 위력을 이 정도로 과시하기도 어려울 거다.

“보안과장입니다.”

교도소 간부가 직접 안내해서 특별 접견장으로 들어갔을 때 강철규는 이미 그곳에 있었다.

황토색 미결수복에 방 표시와 수번을 단 강철규.

머리가 희끗희끗한 늙은 영웅이 단단한 표정과 지어낸 미소 속에 그의 감정을 감추며 강찬을 맞았다.

“지내기는 어때?”

“오 대표가 이곳에서는 제법 힘을 쓴다.”

눈가에 자글자글하게 달라붙은 주름을 더욱 짙게 만들며 강철규가 전에 없이 밝게 웃었다.

“부원장에게 누가 된다고 들었다. 앞으로는 오지 마라.”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들이켰다.

영감이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

그리고는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켰다.

힐끔 시선을 돌린 곳에서 참관 직원이 한 적도 없는 두 사람의 안부 인사를 소설처럼 빠르게 적어가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들렸던 소식이 또 올 거야. 그래도 기다리고 있어.”

강철규의 눈이 날카롭게 강찬을 파고들었다.

헛갈린 모양이었다.

조금 전에 강찬이 했던 말에 담긴 뜻을 알기 위해 애쓰는 얼굴이었다.

“혹시 멍청하게 밥 안 먹고 있을까 봐 걱정돼서 들렸어. 알았지?”

탁자 너머로 강철규가 꼭 쥔 주먹이 보였다.

침묵이 정해진 면회시간을 꿀꺽꿀꺽 삼켜대고 있어서 참관 직원이 손목시계를 확인할 때였다.

“비무장왕의 피가 어디 가겠어?”

직원은 소설로 가득 채운 대화록을 덮어놓고 시선을 창밖으로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강철규의 눈이 느닷없이, 그리고 사정없이 흔들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전했다.

보고 싶은 얼굴도 봤다.

강찬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부원장.”

강철규가 어렵게 강찬을 불렀다.

“기다리고 있으마.”

강찬은 피식 웃는 것으로 답을 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면회실을 빠져나왔다.

교도소 정문을 나와 민원실로 돌아왔을 때는 5시가 다 되어서 일반인들은 거의 없었다.

석강호가 가장 먼저 다가왔다.

“광택이가 안부 좀 꼭 전해달랍디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종일이에게 차 준비해두라고 했소. 우리가 타고 왔던 차는 다른 요원이 가져올 거요.”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종일이 손짓을 하자 이두희가 승합차를 가져왔고, 강찬과 제라르, 석강호, 최종일, 우희승이 함께 차에 올랐다.

부으응.

또다시 행렬처럼 승합차가 움직였다.

셋이서 의논한 끝에 이 작전을 함께 의논할 세 명을 정했다.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솔직히 이 세 사람에게 내용을 전하기로 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공개석상이든, 비공개 자리든, 제라르가 강찬을 사살한다고 치자.

그런데 최종일과 우희승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강찬을 대신해 총알 앞에 나서거나, 최소한 제라르에게 총을 갈겨댈 거다.

그러면?

일이 더럽게 복잡해진다.

가뜩이나 황 원장과 송 청장을 잃은 뒤에 독이 잔뜩 올라 있는 경호 요원들을 속이기도 정신없을 판국에 말이다.

사무실에 도착하는 25분 사이 강찬은 나직하게 작전을 설명했다.

제라르의 셔츠에 말라붙은 피, 단호한 강찬의 표정, 번들거리는 석강호의 눈빛을 보며 최종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연 강찬, 조연 1 제라르, 조연 2 석강호, 그 외 셋.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 닭과 죽과 막걸리와 묵을 처먹은 석강호가 저녁 메뉴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곧 죽어야 할 강찬에게 적합한 메뉴들이었다.

***

“서울구치소에서 강철규 요원과 오광택 대표를 면회하고 조금 전에 사무실에 도착했답니다.”

김형정은 책상 앞 의자에 앉아서 통화 내용을 고건우에게 전했다.

“이것으로 감정을 가라앉혔다고 봐도 되겠나?”

“제가 오늘 밤이나 내일 오전 중으로 따로 만나보겠습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렵겠지만, 김 팀장이 좀 더 애를 써 줘. 그래도 부원장은 대단해. 지금까지 부원장이 세운 공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요구라도 했을 것 같은데…….”

김형정이 공연히 미안한 표정을 지은 다음이었다.

“부원장을 보면 어째 나보다 더 인생에 달관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니까.”

고건우가 커다랗게 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전상우 국장의 조사 결과는?”

“여기 이 자료를 먼저 보십시오.”

김형정은 우선 다섯 장짜리 서류를 고건우에게 건네주었다.

“허창선 전 공항 분실장의 통화내역입니다. 형광색 부분만 보시면 됩니다.”

“이 사람이 현재도 우리 직원으로 있나?”

“전에 중국 공항 작전 때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파면당했습니다. 그런 그가 프랑스에 있는 우리 요원과 개인적으로 통화했습니다. 지금 보신 이동전화 번호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처제 이름으로 만든 전화기입니다.”

고건우가 눈만 들어 김형정을 보았다.

“프랑스에서 허창선과 통화한 우리 요원은 대외 협력국 진승교로 올해 프랑스 근무만 10년째인 베테랑입니다.”

“전에 알게 되었다던가 해서 개인적인 친분으로 통화할 수도 있지 않나?”

“그렇습니다.”

김형정이 또 다른 서류를 꺼내서 고건우 앞에 내밀었다.

“이 서류가 없었다면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을 겁니다.”

“이게 뭔가?”

“양석우가 허창선 분실장 앞으로 보낸 송금내역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전상우 국장이 양석우의 큰사위입니다. 사위에게야 생활비든, 주택 구입비든 보내줄 수 있겠지만, 허창선과는 일면식도 없는 양석우가 둘째 딸의 이름으로 수십 차례 돈을 보내줄 이유는 없습니다.”

고건우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본 김형정이 또다시 서류를 꺼내서 건넸다.

“양석우의 소유 회사 현황입니다. 두 번째 장에 그가 폐업하거나 청산한 법인 이름을 확인해 주십시오.”

부스럭.

“서정모터스라고 보이실 겁니다.”

고건우가 훑는 것처럼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공트 자동차 수입권을 놓고 부원장의 부친과 다투다가 수입권을 잃게 되자 폐업한 회사입니다. 당시에 그 결정을 위해 한국에 왔던 인물이 얼마 전 테러를 일으켰다가 이번에 죽은 샤흐란과 스미든이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혹시나 또 건네줄 서류가 있나 하고 고건우가 시선을 들었는데 김형정은 날카로운 눈빛만 건네고 있었다.

“프랑스 대외협력국 진승교가 원장님 직보 통로를 통해 강찬 부원장의 일을 보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황 전 원장의 일을 처리하려다 이상하게 일이 커지는군.”

“전에 국제빌딩 테러도 진승교의 제보일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고건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기껏 테러를 준비해놓고 굳이 그 내용을 가르쳐줄 이유가 있을까?

김형정이 고건우의 의문을 알아챈 것처럼 입을 열었다.

“원장님. 국제빌딩 테러는 아비부가 UIS 병력을 이용해 일으킨 테러라는 사실을 생각해 주십시오.”

아차!

고건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면 그런 중요한 정보를 왜 그렇게 원장 직보를 통해 보고했다고 생각하나?”

“그 점을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만, 가능성 있는 몇 가지 사안을 놓고 증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흠.”

이런 한숨은 가능성 있는 사안들을 듣고 싶다는 모종의 표시와 같았다.

말하지 못할 거라면 알아서 입을 다물고, 아니라면 들려다오.

고건우의 시선을 받은 김형정이 입을 열었다.

“진승교 쪽에서 역으로 아비부에게 정보를 넘겼을 것이라는 추측이 첫 번째 가능성입니다. 황 전 원장님이 테러 계획을 알고 있다. 그러니 알아서 막아라. 그 증거가 전화번호에 있다.”

“그렇게 아비부의 손을 통해 황 전 원장을 테러하고, 이후에 증거를 없애려고 이 방에 무리하게 들어왔었다?”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테러에서 극적인 효과를 얻으려고 했던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테러 당일에 전상우 국장은 계속해서 대테러 팀의 철수와 소극적 작전을 주장했었습니다. 직원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라고 압박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고건우가 김형정의 말을 새기는 것처럼 듣고 있었다.

“그날 첫 번째 폭발이 1층과 45층에서 있었습니다. 만약 코트라 직원들을 포함해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서정 그룹은 크게 득을 얻게 됩니다.”

“그건 어째서지?”

김형정이 바로 앞에 두었던 서류 봉투에서 마지막 서류를 꺼내 고건우 앞에 놓아주었다.

“국제 호텔에서 유라시아 발표회 때 테러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서정 건설은 정부로부터 엄청난 배상을 받았고, 천재지변이나 전시에 준할 때도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특약 보험에 가입했었습니다.”

“국제 빌딩도 같은가?”

“그렇습니다. 마지막 줄의 특약사항을 보십시오. 이전의 국제 호텔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계약이라는 설명인데, 사망자 한 명당 25억을 별도로 얻게 됩니다.”

고건우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렴 그렇게 거대한 그룹에 속한 건설사가 고작 보험금을 노리고 이런 일을 계획했을까.

“양진우 사망 후, 서경 그룹은 재정상태가 좋지 못했습니다. 우선 말씀드린 두 가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좀 더 세밀하게 조사하겠습니다.”

혼자 이렇게까지 조사하려면 얼마나 힘겨웠겠나.

붉게 충혈된 눈, 핼쑥한 볼, 십 년은 늙어보일 정도로 눈 아래가 푹 꺼진 김형정이다.

특수팀 출신으로 우격다짐이 더 속 편했을 그가 증거를 찾기 위해 애썼을 모습을 떠올린 고건우는 입을 열지 못했다.

국가정보원장은 감정을 내비쳐서는 안 되는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

전에 한 번 들렀던 고깃집의 안쪽을 아예 전세 내다시피 들어앉았다.

무장한 요원들을 제외한 요원 전체다.

기다랗게 붙인 테이블에 둘러앉은 요원 숫자만 대략 30명 정도 되었다.

테이블마다 고기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누구도 편하게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강철규의 일은 오후에 구치소에 들렀기 때문에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 일 때문에 강찬이 오후 내내 보이지 않았고, 지금도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것도 요원들 모두 짐작했다.

이 자리도 마찬가지다.

기운 빠진 요원들을 격려해 주는 자리라는 것쯤 바보라도 알았을 거다.

적당히 떠들고 먹을 법도 하련만, 분위기는 지나칠 정도로 숙연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테이블 별로 네 명씩 앉은 요원들은 두 명이 식사하는 동안, 다른 두 명은 젓가락조차 들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황 원장과 송 청장을 잃었었다.

병원 앞에서 승합차를 두드려 주는 강찬의 모습을 이 자리에 있는 요원들과 밖에서 대기하는 무장 요원들 모두 기억한다.

요원들에게 그 정도의 애정을, 그런 식으로 그들이 하는 업무에 대한 존경을 표시한 상사는 없었다.

그런 강찬의 경호다.

밥을 굶으면 굶었지, 절대 경호를 허술하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새벽 저수지의 물안개처럼 요원들 전체에게서 흘러나왔다.

미칠 노릇이었다.

요원들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심지어 식당 직원들이 가져온 음식도 방 밖에서 받아오는 형국이었다.

이런 요원들을 속여야 한다.

황 원장을 잃고 비상대기실에서 한없이 먹고 자던 이 요원들에게 또 커다란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어야 한다.

염병!

다윗의 별?

각오하고……, 아니지, 방심하고 있어라.

저 요원들 때문에라도 모가지를 반드시 갈라주마.

강찬은 적당하게 밥을 먹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석강호는 이 상황에서도 밥 한 공기를 다 처먹었다.

“담배 하나 피우고 올게.”

10명쯤 되는 요원들이 번쩍 자리에서 일어섰다.

“최종일? 담배 있어?”

“예.”

“그럼 같이 가자. 여기 요원들은 식사하라고 하고, 우리는 밖에 무장 요원들 옆에서 담배 피우면 되잖아?”

“그럼 희승이랑 두희도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그렇게 해.”

강찬과 함께 석강호, 제라르,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까지 밖으로 움직였다.

“무장 요원들 쪽에 있을 테니까 차라리 서둘러서 저녁을 먹어.”

최종일의 지시가 떨어지자 일어섰던 요원들이 겨우 자리에 앉았다.

“모처럼 사시는 거니까 들어올 때까지 눈치껏 좀 먹어둬라.”

저 인간이 저런 연기력을?

찔리지도 않는지 최종일이 다부진 눈빛으로 말을 전하고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온 강찬은 무장 대원들이 타고 있는 승합차의 모서리 부분에 섰다.

주차장의 입구쯤이었다.

찰칵.

담배에 불을 붙인 강찬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녁 시간이다.

길에 사람도 적당하고, 식당 안에도 식사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후우.”

석강호가 힐끔 식당 옆 주차장에 설치된 CCTV의 위치를 확인했다.

강찬은 제라르와 시선을 마주쳤다.

저 새끼를 믿는다.

그리고 저 새끼와 함께 다윗의 별을 무너트린다.

이 지루한 싸움을 여기서 끝낼 거다.

“적당히 됐으면 이제 시작하자.”

강찬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석강호를 보았다.

“이두희, 준비됐어?”

“예.”

시선은 엉뚱한 곳에 둔 채로 대화가 오갔다.

강찬은 이번엔 최종일을 보았다.

“제라르, 시작해.”

“Oui.”

팽팽한 긴장이 여섯 명의 사이로 흘렀다.

사람이 좀 덜 지나갈 때, 주변에 다치는 사람이 없게, 마지막으로 제라르가 도망갈 수 있도록.

강찬은 일부러 피우던 담배를 던지고 최종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입에 담배를 문 최종일이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석강호까지 다가와 담배를 입에 물었고, 최종일이 켜준 라이터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순간이었다.

철컥!

제라르가 허리에 찼던 권총을 아래로 내리며 뽑아들었다.

와락!

석강호와 최종일이 몸을 돌리는 순간,

타앙! 타앙! 타앙!

귀청을 찢는 소리와 함께 권총의 총구에서 불꽃이 튀었다.

후다닥! 드르륵!

제라르가 달리는 순간에, 무장한 요원들이 차에서 튀어나왔고,

우르르!

셔츠 차림의 요원들이 연달아 맨발로 안에서 뛰어나왔다.

“시민들이 위험해! 쏘지 말고 쫓아! 차 가져와! 빨리!”

최종일 악을 썼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두희가 승합차를 가져왔을 때 강찬의 상체는 온통 피로 범벅이었다.

“방지병원으로! 길 열어!”

최종일과 우희승이 강찬을 들어서 차에 넣기 무섭게 승합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길을 뚫었다.

부으응! 끼이익!

승합차가 급하게 큰 도로로 뛰어드는 바람에 석강호와 최종일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대장!”

강찬은 이를 악문 채로 석강호를 바라보았다.

“이거? 잘못 맞은 거 아니요?”

석강호가 놀란 얼굴로 최종일을 보았다.

“야! 이두희! 대장이 위험해!”

그리고는 이두희를 향해서 있는 대로 악을 써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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