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82화 (38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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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적에게는 죽음을.

예상보다 쉽게 끝났다.

양동식이 최춘식을 바로 잡아챘으니 나머지 노름꾼들이야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오광택이 주택으로 들어가 하우스 장, 꽁지, 바카스, 재떨이를 거친 주먹질로 교육하는 동안, 강철규와 양동식, 남일규는 최춘식을 끌고 자동차로 움직였다.

최춘식은 이미 의식이 없었다.

남일규와 둘이서 최춘식을 들어 옮긴 양동식이 놈을 트렁크에 넣고 문을 닫았다.

3분쯤 기다리자 오광택이 걸어왔다.

“타십시오.”

그는 세 사람에게 말을 건네고는 운전석으로 올랐다.

문 닫는 소리가 들렸고, 을씨년스럽게 시골 길을 비추는 농가주택을 버려두고 자동차가 움직였다.

덜컹. 덜커덩.

비포장도로 특유의 진동에 네 사람의 몸이 흔들렸다.

“잘 알아듣게 말했으니까 신고는 없을 겁니다.”

주먹이 말을 한다고?

삐딱하게 앉은 자세로 핸들을 붙잡은 오광택에게 강철규가 시선을 주었다.

“여기서 얼마나 걸리나?”

“한 40분쯤 걸립니다.”

덜커덩.

포장도로에 올라선 승용차가 속도를 높였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포장도로에 올라서서 그런지 승차감이 죽여줬다.

조수석에 강철규가 탔고, 뒷자리에 남일규와 양동식이 있었다.

“형님. 저 새끼, 죽은 거 아니죠?”

힐끔 뒤를 돌아본 오광택을 향해 양동식이 번들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씨발 새끼. 내가 공장에 불 올리라고 했습니다. 저 새끼 녹인 물로 조그맣게 문 만들어서 공장 뒤에 세워둘랍니다. 문 이름도 생각했습니다.”

끼이익 하는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승용차의 라이트가 구부러진 도로를 따라 빠르게 왼편으로 돌았다.

강철규가 힐끔 오광택을 보았다.

그래서 문 이름이 어떻게 되는데?

“사람 안 된 새끼 아닙니까? 앞으로 문짝이 되어서 다 삭을 때까지 반성하라는 의미로 반성문! 반성문이라고 부를 겁니다.”

오광택이 어떠냐는 의미로 시선을 돌렸는데 차 안의 분위기는 숙연했다.

아무튼, 오광택이 기대했던 반응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

3층의 병실에서 샤워를 마친 강찬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중환자실로 올라가 소독복을 걸친 다음, 라노크의 침대 앞에 섰다.

라노크가 전에 없이 인간적인 눈매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안느도 위기를 넘겼습니다.”

강찬은 바실리와 양범이 전화를 했었다는 말도 전해주었다.

“대사님께 안부 전해달랍니다. 그리고 새벽에 셔먼이 조쉬와 이튼, 그리고 로망과 함께 오산에 도착한답니다.”

라노크의 눈이 힘겹게 버티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강찬은 손을 뻗어 그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적의 몸통을 본 것 같습니다. 푹 주무시고 일어나면 좋은 소식을 가져오겠습니다.”

더는 대화를 잇기 어려운 상태였다.

강찬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 다시 안느의 침대로 움직였다.

프랑스 여자치고는 작은 체격의 안느다.

그녀가 힘겹게 강찬을 바라보았다.

“대사님은 무사하시다. 그러니까 다른 걱정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자.”

안느 역시 겨우 입가를 움직여 작은 미소를 그려내는 것이 전부였다.

“다 잘되고 있어. 그러니 기운 내.”

중환자실을 나선 강찬은 소독복을 벗고 3층의 병실로 움직였다.

석강호와 제라르, 그리고 미쉘이 기다리고 있었다.

밤 11시쯤 되었다.

솔직히 사무실로 가고 싶었다.

가서 제라르가 말한 뤽상부르의 가흐니슈 지역을 살펴보고도 싶었고,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나마 라노크와 안느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함께 지키고, 양소미의 마지막 길을 초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병원에 남기로 했다.

강찬은 먼저 양소미의 장례식 준비를 최종일에게 부탁했다. 그리고는 탁자에 앉았다.

정말이지 더럽게 길고 일 많은 하루다.

피식.

그런데도 맞은 편에 앉은 제라르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저 새끼를 건져내지 못했다면, 더럽게 길고 일 많았던 하루가 끔찍하게 끝날 뻔했던 거다.

“저녁은 먹었냐?”

미쉘이 힐끔 제라르를 보고는 강찬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야식시킬 테니까 그거 먹고 들어가.”

“오!”

석강호의 탄성을 듣고 어떻게 안 먹겠다고 하겠나?

“이왕 시킬 거면 병원 직원하고, 요원들 것까지 다 시켜.”

“내가 누구요?”

석강호가 모처럼 반가운 얼굴을 하고는 병실을 나섰다.

죽은 사람은 차가운 영안실에, 죽을 뻔한 사람은 중환자실에, 그리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병실에서 야식을 주문한다.

사는 데 그렇게 큰 거 필요 없는데.

능력 있어서 많이 벌면 그냥 그 수준에서 화려하게 살면 되는 거고, 능력이 없어서, 혹은 지금 어려워서 삶이 풍족하지 않을 때면 이렇게 앞에 있는 사람들과 위로하며 견디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그렇게 죽고 죽여가며 뺏으려 하는 건지.

강찬이 담배를 집을 때였다.

제라르가 일어나서 환풍기를 틀고, 창문을 열었다.

“커피 드립니까?”

“살 만한가 보다?”

제라르가 멋쩍은 표정으로 구석으로 움직였다.

다리가 기다란 프랑스 놈이 봉지 커피를 두 봉씩 부어 넣는 꼴이라니.

저 새끼는 다 길다.

팔, 다리, 속 눈썹, 코, 볼의 흉터. 본 건 여기까지다.

“제라르.”

“위.”

제라르가 플라스틱 컵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왔다.

“한 번만 더 이따위로 혼자서 그러면…….”

제라르가 굳은 얼굴로 시선을 떨군 다음이었다.

“확! 개새끼가! 또 풀 죽은 척한다!”

제라르가 볼의 흉터를 움직여 웃었고, 미쉘이 눈치를 살피며 따라 웃었다.

“아프리카에서 여기까지 왔다.”

제라르의 눈빛이 빛나는 만큼, 미쉘이 표정이 다시 복잡해졌다.

“혼자서 싸우지는 말자.”

“위.”

“개새끼!”

둘이서 묘하게 웃을 때 석강호가 들어섰다.

“족발 30개와 보쌈 30개를 시키니까 병원 직원을 확인하고서야 주문을 받아줍디다.”

만족한 얼굴로 테이블을 살피던 석강호가 표정을 바꾸고는 커피를 타러 움직였다.

“사람이 주문하러 나간 걸 빤히 알면서 내걸 쏙 빼고 커피를 타? 하여간 저 새끼는 정이 안 가. 돌대가리 새끼.”

석강호가 커피 봉지를 컵 안에 넣고 휘휘 저으면서 테이블로 다가왔다.

“낚지 볶음이랑 공깃밥도 주문했소.”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 피운 담배를 종이컵에 넣었다.

남은 싸움을 제대로 하려면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잘 수 있을 때 자는 게 좋았다.

***

지이이익.

양동식은 트렁크에서 꺼낸 최춘식의 양쪽 발목을 손수레의 손잡이처럼 잡아들고 오광택의 뒤를 따랐다.

주차장에서 벽돌 건물로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가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오셨습니까?”

드럼통 같은 체형의 남자 셋이 오광택을 맞았다.

“쇳물은?”

“거의 녹았습니다. 저겁니까?”

오광택에게 답을 한 남자 놈이 고개를 빼고 바닥에 널브러진 최춘식을 보았다.

오가는 말과 행동, 눈빛을 봐서 하루 이틀 장사한 게 아니란 것쯤, 강철규와 남일규, 양동식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너희는 좀 나가 있어.”

“예. 그럼 밖에 있겠습니다.”

답을 한 드럼통이 고갯짓을 하자 나머지 드럼통 둘이 고개를 깊숙이 숙여 보이고 벽돌 건물을 나섰다.

“형님. 속 시원하게 풀고 저기 던져 넣으면 됩니다.”

열기를 뿜어내는 불길 위로 반신욕 하기 적당한 크기의 둥그런 통이 있었다.

“5분이면 아무것도 안 남습니다. 그다음에 저걸 여기 이 틀에 부으면 반성문이 완성되는 겁니다.”

오광택이 재차 자신이 지은 이름을 강조했지만, 반응은 여전했다.

“굳이 문을 만들 필요 있나?”

“나중에 엉뚱한 새끼들이 와서 조사하고 그러면 귀찮아집니다. 급하게 주문받은 거 만드느라고 공장 돌린 거고, 증거품이 이거다, 하고 내미는 게 좋지요.”

강철규가 고개를 끄덕이고 양동식을 보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양동식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최춘식은 죽은 것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움직임이 없었다.

“씨발 새끼가! 자러 왔나?”

오광택이 주섬주섬 탁자에 놓인 두꺼운 장갑을 끼었다. 그리고는 국자같이 생긴 연장을 들어 쇳물을 떴다.

“어디? 이래도 계속 자나 보자.”

열기를 피해 쇳물에서 고개를 최대한 뒤로 뺀 오광택이 팔을 뻗어 국자의 끝을 최천식의 얼굴로 가져갔다.

뚝. 뚜둑. 뚝.

국자에 묻었던 쇳물이 최춘식의 얼굴에 떨어졌다.

누런 연기와 함께 살타는 노린내가 훅하고 끼쳤다.

“끄아악!”

최춘식이 비명과 함께 깨어나 곧바로 바닥을 굴렀다. 얼굴 앞에 손을 가져갔지만, 더는 어쩌지 못하고 그저 발버둥만 칠 뿐이었다.

“하! 그 새끼! 뜨거운 건 알겠냐? 이 개새끼야!”

오광택이 국자를 치우는 동안, 남일규가 의자를 가져다가 강철규 뒤에 놓아주었다.

“오 대표. 담배 있나?”

오광택이 주머니를 뒤져서 담배를 꺼내 강철규와 남일규, 양동식에게 건네주고 라이터를 켰다.

찰칵.

불빛에 비친 네 사람의 눈이 하나같이 하얗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후우.”

연기를 뿜은 오광택이 자리로 돌아가다가 최춘식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씨발 새끼가! 빨리 안 일어나?”

최춘식이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킨 다음, 무릎을 꿇었다.

“야, 이 개새끼야!”

“예.”

“이 씨발 놈이!”

최춘식이 화들짝 놀라서 오광택을 보았다.

확실히 전공 분야가 있는 거다.

남일규나 양동식은 오광택이 왜 욕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불러서 답을 한 거다.

그런데 느닷없이 욕을 뱉어낸 오광택이 최춘식의 앞으로 고개를 불쑥 디밀었다.

“이 개새끼야, 너 보험금 다 날렸지?”

최춘식이 힐끔 양동식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콰작!

담배를 잡은 손을 말아쥔 오광택이 최춘식의 눈을 제대로 갈겼다.

털썩!

“안 일어나?”

화다닥.

최춘식은 겨우 붙잡았던 넋이 저 멀리 날아간 표정이었다.

“이번에 대답 엿같이 하면…….”

오광택이 바로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화로를 보았다.

“바로 저기에 처넣어버릴 테니까 대답 똑바로 해.”

“예.”

고약하게 부릅뜬 눈, 묘하게 비튼 입.

강철규나 남일규에게는 안 먹히겠지만, 오광택이 깡패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더러운 인상이었다.

“보험금 다 날렸지?”

“예에.”

답을 한 최춘식이 시선을 아래로 뚝 떨어트렸다.

양동식이 이를 얼마나 세게 깨무는지 그의 볼이 커다랗게 씰룩이고 있었다.

“야!”

“예.”

“하나만 더 묻자. 암 걸린 마누라는 왜 때렸냐?”

최춘식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돈 안 준다고 하디? 노름해야 하는데 보험금 쥐고 버텨서? 그래서 죽어가는 마누라를 그렇게 때렸냐?”

불쌍한 양소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양동식은 울컥 솟아난 울음을 삼키며 오광택과 최춘식을 노려보았다.

저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다.

오광택이 그냥 ‘잡두리’를 하는 줄만 알았지, 최춘식에게서 이유를 파내려고 할 줄은 짐작조차 못했었다.

콱!

최춘식의 머리를 움켜쥔 오광택이 대뜸 주먹을 내질렀다.

콰작! 콰작! 콰작!

“씨발 놈아! 그 눈깔에 죽어가는 여자가 어떻게 보였길래 그렇게 때린 거냐고!”

오광택은 집요하게 최춘식의 눈만 때렸다.

“죽어가는 마누라가 불쌍하지도 않던! 이 개새끼야!”

콰작! 콰작! 콰자작!

오광택이 눈앞으로 놈의 대가리를 잡아당겼을 때, 최춘식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왜 때렸는지 말 못하겠다, 이거지?”

지이익!

오광택이 화로를 향해 최춘식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그년이! 그년이, 그 돈으로 치료를 받는 게 아니라! 제 아버지 준다고 해서 그랬습니다!”

털썩.

오광택이 손을 놓자 최춘식이 엎어지는 자세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계속해.”

“자기 아버지는 아무것도 없이 산다고, 이왕 죽을 거면 아버지 월세 거리라도 주고 싶다고……. 한 번 들여다보지도 않는 제 아버지에게 그 돈을 넘겨주겠다고 할 때 갑자기 눈이 뒤집혀서…….”

넋이 나가지 않았으면 이런 자리에서 이따위로 지껄이지는 않았을 거다. 그만큼 분위기가 살벌한 탓도 있었고, 오광택의 ‘잡두리’ 실력이 뛰어난 것도 있었다.

오광택이 시선을 들었을 때 양동식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형님. 이제 형님 마음대로 하십쇼.”

오광택이 임무를 마쳤다는 것처럼 의자로 가서 앉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일규야.”

“예.”

강철규가 불렀고, 남일규가 답을 했다.

“네가 대신해줘라.”

“예.”

남일규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쇳물을 붓는 곳이다.

기다란 쇠꼬챙이가 군데군데 널려 있었다.

저벅저벅. 스르릉.

남일규가 그 중 1미터쯤 돼 보이는 쇠꼬챙이를 집어 들었다. 5밀리정도 두께였는데 철근을 잘라놓은 모양으로 끝이 뭉툭했다.

엎어져 있는 최춘식이다.

남일규가 쇠꼬챙이를 들고 다가가서 놈의 머리를 잡아들었다.

“힉!”

남일규는 등 뒤에서 왼쪽 다리를 들어 최춘식의 왼쪽 어깨에 올리고 놈을 꽉 붙들었다.

쇠꼬챙이를 귀로 가져간 남일규가 악귀 같은 표정으로 비틀며 귀에 꽂아 넣었다.

“끄아아아아! 끄아아!”

리비아에서 적을 죽일 때도 고개를 돌렸던 오광택이다. 그런데 지금은 눈을 부릅뜨고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었다.

쇠파이프는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끝이 뭉툭한 탓도 있었고, 최춘식이 발악처럼 고개를 틀어대는 탓도 있었다.

꽈악!

“끄아악!”

꽈아악! 꽈악!

“끅! 끄으으!”

“개새끼야! 그러게 사람답게 살지! 왜! 왜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희망을 노름 따위에 팔아!”

꽈아악!

“끄아아악!”

남일규가 이를 악물고 마지막 힘을 쓰는 순간이었다.

쑤우욱!

마침내 반대쪽 귀로 쇠파이프가 나왔다.

“동식아? 어떻게 할래?”

남일규가 양동식에게 고개를 돌려 던진 질문이었다.

저벅저벅.

양동식이 곧바로 남일규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맞은편 귀를 뚫고 나온 쇠꼬챙이를 잡았다.

남일규가 어깨를 눌렀던 다리를 내린 다음, 양동식의 맞은편 쇠꼬챙이를 잡았다.

번쩍.

두 사람이 축 늘어진 최춘식을 들어서 화로로 움직였다.

반성문의 마지막 재료가 그렇게 쇳물로 끌려갔다.

***

야식을 먹은 다음이었다.

미쉘이 돌아가고 난 후에 셋이 침대에 누웠다.

고민할 게 뭐 있나?

제라르가 살았고, 다시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누우면 되는 건데.

시쳇더미, 벌레가 바글거리는 늪이나 산기슭에서도 잠을 자던 세 사람이다.

당연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곧바로 잠이 들었다.

힘들었던 하루만큼 잠은 깊고 달았다.

시간이 유리창을 타고 들어와 다시 유리창을 향해 흘러갔다.

눈을 뜬 강찬은 고개를 털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주변 건물에서 넘어온 불빛이 병실 안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강찬은 식수대로 움직여 생수병을 들고 물을 마셨다.

“어흑!”

저놈은 꼭 저렇게 일어난다.

부스럭.

그리고 제라르가 깨어났다.

강찬은 물병 두 개를 들어서 석강호와 제라르에게 건네주었다.

제라르가 강찬의 손에 감긴 붕대에 시선을 주었다.

“물이나 마셔.”

셋이서 물을 마셨다.

좋은 거다. 이렇게 함께 살아있다는 건.

대강 씻고 준비를 마쳤을 때 최종일이 들어왔다.

4시 20분이었다.

“강 선배님과 두 분이 장례식장에 계신답니다.”

“안 잤어?”

“잤습니다.”

최종일이 웃으며 답을 했다.

“다예와 제라르에게 줄 권총과 대검이 있어?”

“차에 있습니다. 가져올까요?”

“우리가 타고 가는 차?”

“예.”

그런 걸 뭐 굳이 가져오라고 하겠나.

“그럼 가면서 받으면 되지.”

강찬을 따라 석강호와 제라르, 그리고 최종일이 움직였다.

병원 현관 앞에서 승합차 여섯 대가 라이트를 켜고 대기하고 있었다. 저 승합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요원들의 노력과 고생이 헛되지 않았으면 싶었다.

강찬은 이두희가 대기하고 있는 승합차 곁을 지나 가장 선두에 선 승합차로 움직였다.

전투에 나섰을 때 심정과 다르지 않을 거다.

사명감을 가지고, 나선 길이다.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누구를 잃게 될지, 또 언제 죽음을 맞을지 모를 심정으로 대기하는 요원들이다.

빛을 받지도 못한다.

국제빌딩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테러가 발생했을 때 조명을 받지만, 그 작전에서 실패했었다면 쏟아지는 비난은 온전히 이들의 몫이 된다.

툭툭.

강찬은 승합차의 앞유리를 두 번 두드리고 천천히 그 옆을 걸었다.

고맙다.

적어도 나는, 저기에 있는 최종일과 제라르, 석강호, 아니 우리끼리는 이 희생과 노력을 모르지 않는다.

툭툭.

강찬은 두 번째 승합차로 옮겨서도 같은 동작을 보인 다음,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옆 유리창을 보며 걸었다.

아프리카에서와 다를 것 없다.

이들이 소중한 동료라는 것이 말이다.

다른 점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가슴에 담긴다는 것이.

다섯 대의 승합차 앞유리를 모두 두드려준 강찬이 승합차에 올랐다.

부으응.

순서대로 병원을 나선 다음이었다.

최종일이 무전기와 권총, 대검을 건네주었다.

석강호와 제라르가 발목에 권총과 대검을 묶었고, 허리에 무전기를 걸었다.

병원을 나온 승합차는 무서운 속도로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화물차, 무언가로 바쁜 승용차들.

그 틈을 달린 승합차는 얼마 걸리지 않아서 오산 공항의 입구에 도착했다.

최종일의 신분을 확인한 경비가 곧바로 바리케이드를 올려주었다.

부으응.

승합차는 활주로로 곧바로 진입했다.

유도등이 켜져 있는 활주로에 여섯 대의 승합차가 라이트를 밝힌 채로 늘어섰다.

차에서 내린 강찬의 뒤로 석강호와 제라르, 최종일과 우희승이 섰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강찬이 고개를 돌리고 피식 웃자 최종일이 승합차로 움직였다. 보온병에 미리 타왔던 봉지 커피를 종이컵에 따르자 달달한 커피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이런 건 또 우리가 담배 하나 피워주면서 마셔야 하는 거 아니겠소?”

석강호가 담배를 건네주고 불을 붙여주었다.

찰칵.

“후우.”

서늘한 새벽 공기가 담배 냄새를 피해 멀찍이 물러났다.

“우리 처음 몽골 갈 때 생각 나우.”

석강호가 활주로를 둘러보며 묘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저 멀리에서 날개 끝을 반짝이는 비행기가 시선에 들어왔다.

“다예.”

“예.”

“긴장 늦추지 말고 있어.”

“알았소.”

석강호는 강찬을 힐끔 보며 답을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다예’라고 부른 것, 강찬의 눈빛이 전투에 나선 것처럼 빛나고 있는 것을 보며 무언가 있다는 것만은 확신했다.

다 피운 담배를 커피를 다 마신 종이컵에 담았을 때는, 활주로에 내려앉은 비행기가 강찬을 향해 머리를 틀고 있었다.

기이이잉.

마침내 비행기가 멈췄다.

강찬은 곧바로 비행기를 향해 걸었다.

자가용 비행기다.

문이 열리며 세 칸짜리 계단이 자동으로 연결되는.

강찬이 다가섰을 때 셔먼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미스터 강!”

“어서 와.”

강찬은 손을 내밀어 셔먼과 악수를 나눴다.

“굳이 내릴 것 없이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어떻겠소?”

셔먼의 눈을 들여다본 강찬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몸을 비킨 틈으로 강찬이 안으로 들어섰다.

정장 차림의 요원들이 보였고, 마주 보는 자리에 이튼, 로망, 조쉬가 불편한 얼굴로 있었다.

로망은 말없이 강찬의 손을 맞잡기만 했다.

그러면서 그는 강찬의 손에 감긴 붕대에 시선을 한 번 더 주었다.

이번엔 이튼이었다.

“오랜만이야.”

“그렇군요.”

멍청이와 악수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조쉬였다.

놈이 노골적이고, 불편한 시선으로 강찬을 보았다.

싫다는 놈에게 굳이 악수를 청해 뭐하겠나.

피식.

강찬은 한번 웃어주고 두 손을 뻗었다.

터억.

몰랐겠지?

만나자마자 대가리를 잡을 줄은 생각도 못 했겠지?

“미스터 강!”

셔먼이 빠르게 강찬을 불렀고, 로망과 이튼이 당황한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강찬과 조쉬의 눈이 마주쳤다.

“몰랐나 본데 내 코드명 갓 오브 블랙필드는 적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신이란 뜻이다.”

설마?

조쉬의 눈이 말을 뱉어낸 것처럼 또렷하게 놈의 생각을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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