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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377화 (377/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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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고개 숙이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니까.

“최종일. 김 팀장님께 전화해서 여기 해결하고 사무실로 합류해.”

“알겠습니다.”

어지간하면 절대 강찬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최종일이 군소리 없이 답을 했다.

샤흐란이나 아비부를 제거한 것이 적의 도발에 대한 답과 같고,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서였다.

“제라르. 사무실로 먼저 들어가. 4개국 정보 요원들 목을 졸라서라도 알만 빈 지르릴의 정보와 현재 위치를 알아내.”

“Oui!”

제라르가 빠르게 답을 하고 통역대원, 담당 요원들과 함께 현관을 빠져나갔다.

“다예. 너는 나랑 호텔에 들렀다가 가자.”

“알았소.”

강찬은 강철규가 묵고 있는 호텔로 움직였다.

최종일이 앉았던 뒷자리에 석강호가 자리했다.

차가 막 병원을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무슈 강. 루드비히요.”]

늘 인자하고 여유 있던 루드비히가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음성으로 강찬을 찾았다.

[“소식은 들었소. 나는 내 아들이 탔던 차가 폭발하는 바람에 무사할 수 있었소.”]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표현하다니, 서양놈들은 확실히 좀 다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주겠소?”]

“루드비히. 내가 지금 아비부를 제거했습니다.”

거친 숨소리가 바로 넘어왔다.

“미국에 있다는 로망을 우리나라로 넘겨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조쉬도 받고 싶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할 생각이요?”]

“제거할 생각입니다.”

[“전쟁이군요.”]

“어차피 적의 몸통을 끌어내려는 작전이었습니다. 이제는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는 진짜 전쟁인 겁니다.”

[“알겠소, 무슈 강.”]

전화가 뚝 끊겼다.

침착한 척 통화를 했지만, 루드비히 역시 분노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전에 없이 딱딱한 음성과 거칠게 끊는 전화가 그랬다.

통화를 끊기 무섭게 전화가 또 울렸다.

[“김형정입니다. 대통령님께서 20분 뒤에 담화를 발표하십니다.”]

사방에서 숨 가쁘게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원장님께서 면담 중이라 정확한 내용은 저도 모릅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사망한 아비부와 샤흐란은 우리 요원을 위협하다가 사살당한 것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상황이 생기면 또 보고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났을 때였다.

순서를 기다렸던 것처럼 또다시 전화가 들어왔다.

“여보세요?”

[“셔먼이요, 무슈 강.”]

이 새끼가 왜?

강찬은 창밖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루드비히에게서 전화 받았소.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알려드리지요. 로망과 조쉬의 한국 이송, UN의 말라위 대통령 살해 진상 조사, UN 평화군의 말라위 파병, 마지막으로 잠시 뒤에 있을 한국 대통령 발표 내용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사람이 무언가를 분에 넘치게 줄 때는 반드시 바라는 것이 있게 마련인 거다.

“원하는 걸 말해.”

짧은 침묵이 흐른 뒤에 셔먼의 음성이 들렸다.

[“미국에 차세대 발전시설의 건설, 한국과 미국의 우방 동맹 확인,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인정, 이 정도요.”]

“셔먼. 차세대 발전 시설은 몰라도 그 뒤에 요구한 사안들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야.”

석강호가 강찬을 힐끔 보았다가 프랑스 말이 재미없다는 것처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슈 강.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무슈 강이 충분히 해줄 수 있는 것들이요. 그러니 무슈 강의 신용을 걸고 약속만 해주면 됩니다. 전쟁에서 무슈 강이 진다면 그건 투자를 잘못한 우리의 책임입니다.”]

강찬은 잠시 숨을 골랐다.

양다리를 걸치다가 궁지에 몰린 셔먼이 기회를 잡고 달려든 거다. 이놈은 분명 또 다른 다리를 저쪽에 뻗고 있을 테니 지금 이놈을 완전히 믿는 건 바보짓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피식.

그러나 지금은 한 놈이라도 품어 줄 필요가 있었다.

“좋아, 셔먼.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지금 말한 조건들에 협조하지.”

[“훌륭한 선택이오. 우선 우리의 지지 의사를 한국의 외교부와 국가정보원에 통보하겠소.”]

전화가 끊겼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마지막 인사를 할 그 짧은 시간이 아쉬울 만큼 정신없이 바쁘다는 의미였다.

자동차는 불빛이 화려한 도로를 달려서 호텔에 도착했다.

승합차만 여섯 대다.

요원들 숫자나 적은가?

거기에 검은 양복, 사나운 인상, 다부진 체형까지 더하면 공연히 말이 나올 수 있었다.

“승합차는 지하로 움직여. 지금은 시선을 조심하는 게 좋아.”

“한 대만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그것까지는 뭐랄 수가 없어서 강찬은 그렇게 하라고 했다.

“담배 하나 피우고 올라가자.”

“그거 좋소.”

현관 입구 한쪽에 있는 흡연구역 앞에서 내렸다.

이두희가 주차장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강찬과 석강호, 우희승, 그렇게 셋이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속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저 차에 있는 요원들은 왜 안 내려?”

강찬은 앞을 딱 막고 서 있는 승합차를 시선으로 가리켰다.

갑갑할 거다.

그러니까 이럴 때 근접 경호를 하는 척하면서 함께 담배 하나 피우며 숨 좀 쉬는 게 좋지 않을까?

“저 차에는 중무장한 대테러 팀 요원들이 타고 있습니다.”

우희승이 승합차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다시는 경호에 실패하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봐주시면 됩니다. 강명구 요원이 요구했고, 김 팀장님이 승인하셨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그냥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호텔에 있는 요원에게 연락해서 강 이사님 있는 방 좀 확인해 줘.”

“예.”

우희승이 소매에 달린 무전기로 지시를 내렸다.

“연락도 안 하고 왔소?”

“그 영감이 어디 갈 데나 있냐? 또 방에 흐트러진 거 없나 살피고 있을 거다. 그리고 지금 같은 때는 목적지를 정하고 돌아다니는 거 별로 좋을 것도 없고.”

강찬이 담배를 껐을 때였다.

“1109호에 계신답니다.”

“알았다. 나 올라갔다 올 테니까 여기 요원들하고 차라도 한잔 마시고 있어.”

“그러지 말고 희승이랑 내가 방 앞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거로 합시다. 대장이 당하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거 없는 때 아니요?”

석강호를 바라본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호텔로 움직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에 올라가자, 복도에 역시 요원들이 서 있었다.

강찬은 요원들과 눈인사를 하고 1109호로 움직였다.

띵동.

“누구세요?”

달칵.

매번 말하지만 확인도 않고 문을 열 거면서 도대체 왜 물어보는 건지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잠깐 의논할 게 있어.”

강철규가 몸을 비켰다.

강철규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 석강호와 우희승이 “아래에 있겠소. 나중에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하고는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방은 역시나 깔끔한 상태였다.

둥그런 탁자 옆에 의자 하나가 TV를 향해 놓인 것 외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방처럼 보였다.

강찬은 강철규와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혹시 뉴스 봤어?”

강철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간에 러시아와 중국에서 우릴 지원하던 두 사람이 피격당해서 러시아 정보국장은 행방불명, 중국의 정보책임자는 몽골로 향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어.”

강철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몽골기지의 외곽을 지켜주던 경계선이 없어졌단 의미야. 이렇게까지 했다면 반드시 그쪽 기지를 노린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러시아와 중국의 정보책임자를 직접 노릴 정도라면 만만치 않은 상대겠구나?”

이번엔 강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쪽에 있는 팀과 함께 놈들의 수뇌부를 제거할 생각이야. 그동안 몽골 기지가 버텨줘야 해. 내일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증평의 대원들을 추가로 보낼게.”

말을 통해서 상황을, 눈을 통해서는 지금이 얼마나 위험한 순간인지를 강철규에게 전달했다.

“두 분을 다른 곳으로 모시는 건 어떠냐?”

“그렇지 않아도 한국으로 들어오시게 할까 해.”

“그렇다면 증평의 대원들을 굳이 보내지 않아도 될 거다.”

강찬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강철규가 말을 이었다.

“우리보다는 이쪽의 요인들 경호와 테러에 좀 더 신경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적이 몽골 기지를 노리는 이유가 한국에 있는 특수팀을 이리저리 분산시키려는 의도일 수도 있으니까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부원장.”

강철규가 강찬의 시선을 당겼다.

“동식이가 일규와 함께 신월동의 딸을 찾아간 이후로 아직 오지 않았다. 양소미라고 하는데 우리는 전화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주소도 몰라서……, 그걸 좀 확인해봐 줄 수 있을까?”

그거야 뭐, 강찬은 바로 김형정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용을 부탁했다.

“사고가 난 건 아니겠지?”

강철규가 나직하게 숨을 내쉬는 것을 보며 강찬은 입술에 힘을 꾹 주었다. 이럴 때 양동식이 덜컥 사위 놈 거시기를 잘라버렸거나 시원하게 서울 구경을 시켰으면 일이 작지 않은 거다.

김형정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주소는 왔는데 어떻게 할까?”

“내가 가봐도 되겠냐?”

“함께 가.”

강찬은 강철규와 함께 방을 나섰다.

만약 칼부림이 난 거라면 어떡해서든 수습을 해야 할 생각이었다.

로비로 내려간 강찬은 최종일과 우희승을 불렀다.

“신월동에 소희반점이라는 곳에 들러야 해.”

“그럼 승합차로 이동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우희승이 소매를 들어 무전을 보냈다.

“차가 앞에 있답니다.”

강찬은 강철규, 석강호, 우희승과 함께 이두희가 몰고 온 승합차에 올랐다.

“신월동은 왜 가는 거요?”

“양동식이란 분 따님이 거길 운영하는데 어제 만나러 가서 아직 연락이 없단다.”

강찬의 설명이 있고 나서 어색한 침묵이 차 안을 감돌았다.

그래도 펜션에서 하루 함께 있었다고 강철규와 있을 때 느껴졌던 어색함이 많이 줄었다.

“그런데 우리 저녁 안 먹었소.”

“신월동 가서 상황 보고 먹자.”

석강호는 정말 배가 고픈 게 맞을 거다.

“대통령님 담화랍니다. 보시겠습니까?”

우희승이 뒤를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TV가 있어?”

“이걸로 보시면 됩니다.”

우희승이 패드를 강찬에게 건네주었다.

“볼륨은?”

“이 버튼으로 조절하시면 됩니다.”

우희승이 손을 뻗어서 버튼을 누르자 스피커 표시 아래로 동그라미가 쭉 달려나갔다.

화면으로 보기에도 발표회장 분위기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말라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사망소식과 연이은 프랑스 대사관 피격으로 인해 엄청난 숫자의 내외신 기자들이 취재에 나섰습니다.”

화면이 몰려든 취재 기자들과 방송 카메라들을 보여주었다.

아나운서의 음성이 들린 직후였다.

촤자자자작. 촤자자자작.

“문재현 대통령께서 회견장에 입장했습니다. 우선 담화를 듣고 다시 보도를 이어드리겠습니다.”

문재현이 단상 앞에 서자 엄청난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문재현은 단상에 원고를 내려놓고 시선을 들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내외신 기자 여러분.”

촤자자작. 촤자작. 촤자자자자작.

“말라위 무리타카 대통령이 회담 도중 담배에 담긴 사이안화칼륨 캡슐로 인해 사망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촤자작. 촤자자자자작. 촤자자작.

“말라위 무라타카 대통령과 수행원 5명, 우리나라의 수행원과 경호 요원 16명이 그 일로 희생되었습니다.”

문재현이 잠시 말을 멈췄다.

무거운 침묵이 플래시 소리와 번쩍이는 빛과 함께 화면을 통해 흘러나왔다.

“말라위 대통령과 수행원, 우리 수행원과 경호 요원의 희생에 애도를 표합니다.”

이를 꽉 깨물었던 문재현이 다시 화면에 시선을 주었다.

“오늘 프랑스 대사관에서 피격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프랑스 경호 요원 수 명이 희생되었고, 우리 606 대원 1명이 현장에서 희생되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에 또한 애도를 표합니다.”

촤자작. 촤자자작. 촤자작.

플래시조차 조심스럽게 터지는 느낌이었다.

“프랑스 대사관을 피격했던 범인 2명은 현장에서 우리 606 대원들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유감스러운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국제빌딩 테러의 주범 아비부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와 논현동 테러의 주범 샤흐란이 우리 시간으로 오늘 오후 5시경, 요원들에게 항거하다가 사살되었습니다.”

촤자자자자작! 촤자자자자자자작!

기자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놀란듯한 탄성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려 나왔다.

“대한민국 정부는 UN에 말라위 대통령의 사망에 대해 공정한 조사를 의뢰했고, 이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입니다.”

원고에 고개를 숙였던 문재현이 다시 시선을 들었다.

“이 조사가 끝나면 대한민국은 UN 평화유지군과 함께 우리 군을 말라위로 파병해 우리나라에서 자국의 대통령을 암살한 범인을 찾아 끝까지 처벌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플래시 소리를 누를 만큼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커다랗게 들렸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은 우리 주권, 우리 영토, 우리 국민을 위협하는 테러세력과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테러 세력이라 하더라도!”

문재현이 무섭게 가라앉은 표정과 눈빛으로 카메라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끝까지 단호하게 처벌하고 응징할 것입니다.”

촤자작. 촤자자자작. 촤자작.

기자들은 완전히 문재현의 의지에 압도당한 표정이었다.

“이상입니다.”

촤자자작. 촤자자자자자작.

기자들이 앞다퉈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지만, 문재현은 그대로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아나운서의 말소리가 다시 들렸을 때 강찬은 패드를 우희승에게 넘겨주었다.

“우리는 어떨지 몰라도 일반인들은 좀 겁나고 그러지 않겠소?”

침묵이 내려앉는 차 안에서 석강호가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

강찬은 고개만 끄덕였다.

말라위 대통령 암살, 피격,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지면, 그것도 국제빌딩의 테러가 있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면, 일반 사람들은 당연히 불안하고 두려울 수 있는 일이었다.

강찬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실리와 양범은 무사한 건가?

고개를 돌리면 이렇게 화려한 불빛에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쪽으로 돌리면 이 시간에도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라니.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거나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기인가 봅니다.”

우희승의 말이 강찬의 생각을 깨웠다.

이면 도로 중간쯤에 있는 평범한 가게였다.

‘소화반점’이란 오래된 간판이 촌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가게 앞에 차가 멈춰 섰다.

발표를 마친 문재현이 집무실로 돌아왔다.

비서실장, 경호실장, 국가정보원장이 그와 함께 들어섰다.

“우습지만, 이럴 때 담배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문재현이 책상에 앉았을 때였다.

비서실 직원이 빠르게 다가왔다.

“대통령님. 미국 대통령이 통화를 원한답니다.”

“지금?”

질문은 비서실장이 했다.

“전화 대기 중입니다.”

문재현이 고개를 돌렸다.

“받아보십시오. 우리 지지 의사를 밝혔고, 지금은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건우의 조언을 받아들인 문재현이 손을 뻗었다.

달칵.

“여보세요?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현입니다.”

[“Mr. President.”]

동시통역 요원의 음성이 겹쳐서 들어왔다.

[“나는 한국과 한국의 대통령이 겪은 이번 일에 깊은 위로와 유감을 표시합니다.”]

통역이 억양 없는 음성으로 말을 전해주었다.

[“미합중국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며, 혈맹국으로써 최선을 다해 협조할 것입니다.”]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적극적인 반응이어서 문재현은 얼떨떨한 느낌마저 들었다.

[“통화가 끝나는 대로 나는 한국에 대한 미합중국과 나의 입장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미합중국은 한국과 지금과 같은 혈맹 관계가 지속되기를 희망합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의 가호가 대한민국에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통화가 끝났다.

문재현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의아한 눈으로 고건우를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미국 대통령이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지 의아해서 그렇습니다.”

통화를 듣지 못한 고건우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질문이었다.

통화 내용은 다시 기록으로 올라온다.

문재현이 책상에 놓인 컴퓨터에서 기록물 항목을 찾을 때였다.

비서실 직원이 아까보다 더 빠르게 집무실로 들어섰다.

이번엔 또 뭐지?

“대통령님. 프랑스 대통령, 독일 총리가 통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말라위 총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서 이번 일에 대한 유감을 표시했고, 한국 정부의 발표를 한 치의 의심 없이 신뢰할 것이며, 범인 색출을 위해 우리 군의 파병을 요청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미국이 적극적인 지지를 하고, 프랑스 대통령과 독일 총리가 전화를 기다리며, 말라위가 한국의 파병을 요구하다니?

이 정도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진 건가?

문재현은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했다.

“대통령님. 프랑스 대통령과 독일 총리, 두 분이 모두 전화를 연결한 채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프랑스 대통령부터 통화하지요.”

문재현이 말을 하자 비서실 직원이 라인 1의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를 들면 통화가 시작된다.

‘부원장.’

문재현은 강찬을 떠올렸다.

유라시아 철도에서부터 시작한 싸움이다.

강찬이 아니었다면, 그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홀로 프랑스, 러시아, 중국, 영국, 미국을 상대했고,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 리비아의 처절한 전투에서 승리를 안고 돌아왔다.

달칵.

문재현은 수화기를 들었다.

강찬이 만들어 준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새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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