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76화 (37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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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고개 숙이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니까.

복잡한 기계에서 나온 선들이 안느의 몸에 연결되어 있었다.

부글거리며 공기 방울이 뿜어나는 노즐이 안느의 호흡 마스크와 연결되었는데 한눈에도 상태는 좋지 않았다.

“총알을 제거하긴 했는데 상황을 봐서 두 분 모두 재수술을 해야 합니다.”

이미 안느의 몸에 링거와 혈액이 들어가고 있었는데 유헌우가 강찬에게서 받아낸 혈액을 추가로 연결했다.

“한남 병원에 김지훈 박사님이라고 계신데 그분에게 협조를 구할 방법이 있을까요?”

혈액을 달아맨 유헌우가 고개를 돌려 강찬에게 도움을 청했다.

“옆 방에 계신 환자분과 이 여자분의 상태로 봐서 우리 병원 자체 인원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남 병원 김지훈 박사?

강찬의 시선을 본 유헌우가 설명처럼 말을 이었다.

“외과 수술 분야에선 세계 최고의 실력을 지닌 분입니다. 외국에선 그를 아예 그레이트 써전이라는 의미로 그레이트 김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지금은 그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우선 도움을 요청하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좀 더 희망이 있을 겁니다. 워낙 수술 스케쥴이 빡빡해서 시간을 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분이 올 수 있다면 커다란 도움이 될 겁니다.”

강찬이 고개를 끄덕일 때 유헌우가 남은 한 개의 혈액 팩을 들고 움직였다.

말할 필요 없이 라노크에게 가는 길인 거다.

강찬은 일단 유헌우와 함께 옆 병실로 움직였다.

안느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높은 코, 마른 인상의 라노크가 그렇게 안느와 똑같이 창백한 낯빛으로 누워 있었다.

부인을 총격으로 잃고, 딸인 안느는 평생 다리를 저어야 했는데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유헌우가 혈액 팩을 연결하는 것을 본 강찬은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대사님.”

강찬은 라노크의 머리맡에서 프랑스 말로 라로크를 불렀다.

“제 피를 대사님과 안느에게 넣었습니다.”

유헌우와 간호사가 돌아보았는데 알아듣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일어나실 거라고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강찬은 링거줄이 연결된 라노크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차가웠다.

“대사님 말씀대로 적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제 방식대로 전쟁을 시작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라노크의 손을 놓은 강찬은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

쩔걱. 쩔걱.

강명구와 대원들이 움직일 때마다 몸에 달린 무기들과 장비들에서 믿음직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전화를 꺼낸 강찬은 가장 먼저 김형정의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김형정입니다.”]

“강찬입니다. 방지병원에 입원한 두 분을 수술해야 하는데 한남병원 김지훈 박사의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대통령님 외과 수술 담당이십니다. 제가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가뜩이나 업무에 시달리던 김형정이다.

그런데도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음성은 날카롭고 단단했다.

“샤흐란과 아비부가 있는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연락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원장님과 통화하고 싶은데 혹시 번호를 아시면 문자로 넣어주세요.”

[“예.”]

강찬은 전화를 끊고 엘리베이터로 움직였다.

쩔걱. 쩔걱.

강명구가 요원 한 명과 엘리베이터 앞까지 함께 움직였다.

“부탁한다.”

“염려 마십시오.”

때앵.

강찬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이미 해가 진 시간이라 외래 환자들은 없었다.

때앵.

1층으로 내려가자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 그리고 무장을 한 요원들이 병원에 가득 깔려 있어서, 마치 전쟁터 한가운데 있는 병원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경찰 병원으로 간다.”

“예.”

경호가 더 늘었는지 강찬의 승용차를 둘러싼 승합차만 대략 6대가 넘었다.

차가 출발한 뒤에 강찬은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나요.”]

“제라르와 함께 경찰 병원으로 와.”

[“알았소.”]

강찬은 전화를 끊고 창밖을 보았다.

만만한 적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다고 겁이 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다 좋은데…….

정말 차세대 발전 시설이 욕심났다면 차라리 라노크에게 매달려서 그가 양보를 주선하게 했어야지.

한국이 발전하는 게, 힘을 얻는 게, 아니꼽고 배알이 틀려서 못 견딜 것 같으면 너희가 좀 더 노력했어야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노리고, 아프리카의 힘없는 나라 대통령을 암살하고, 이렇게 라노크와 안느에게 총질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

대한민국은 전처럼 얻어맞고 고개 숙이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니까.

증평의 특수팀과 606팀, 그리고 대테러 팀이 몇 번씩이나 확인시켜 줬는데 대한민국이 강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게 그렇게 힘이 드는 거냐?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춰 설 때마다 강찬이 탄 승용차를 승합차들이 완전히 둘러쌌다.

덩치가 커다란 승합차다.

유리까지 시커멓게 칠해놓아서 굉장히 강해 보였고, 위압감이 대단했는데, 그래서인지 길을 가던 사람들과 옆을 지나가는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힐끔거렸다.

병원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제라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다.”

[“러시아의 바실리가 피격당했습니다. 알렉세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대통령 궁에 도착하는 순간에 저격이 있었답니다. 아직 바실리의 행방이나 생사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말해.”

[“중국의 양범이 현재 몽골 기지로 도피 중이랍니다. 연락이 끊겨서 그 역시 생사나 행방을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더 있어?”

[“스위스 정보국장 반트가 지하주차장에서 차량 폭발로 사망했답니다.”]

이상하게 소식을 들을수록 속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지금 어디야?”

[“병원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위성 요원 놈들이 급하게 연락한 걸 먼저 알려드리는 겁니다.”]

“알았다. 병원 입구에서 보자.”

[“예.”]

강찬은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윗눈썹을 긁었다.

몽골기지를 지켜주던 러시아와 중국의 정보국장이 모두 당했다.

그렇다면 다음 목표는 당연하게 몽골기지가 된다.

김형정에게 부탁했던 문자가 도착했는지 전화기가 ‘웅웅웅’하고 짧게 울렸다.

승합차 두 대가 먼저 병원 입구로 들어가고, 다른 두 대가 주변을 막았으며, 남은 두 대가 승용차의 뒤를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와락! 와라락!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 요원들이 삽시간에 병원 입구에 퍼져서 강찬의 동선을 확보했다.

뒷좌석에 함께 탔던 최종일과 조수석에서 내린 우희승과 함께 강찬에게 바싹 붙었다.

거추장스럽고 번거롭다고 해도 지금은 이런 걸 뭐랄 게 아니었다.

현관을 완벽하게 무장한 35여단 대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대통령 암살 기도 이후에 경계가 강화된 느낌이었다.

밤이라 외래 방문 환자가 없는 게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강찬이 텅 빈 환자 대기실로 걸어갈 때 현관으로 석강호와 제라르, 그리고 통역대원이 들어섰다.

“잠시 앉았다 올라가자.”

“예.”

조명이 거의 꺼진 대기실로 움직인 강찬은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김형정이 보내준 문자를 찾아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원장님. 강찬입니다. 통화 괜찮으십니까?”

[“15분 정도 여유 있습니다.”]

강찬은 우선 제라르가 해주었던 보고 내용을 고건우에게 그대로 전했다.

“위성 요원 쪽에서 국가정보원에 따로 보고할 테니 지금쯤은 김형정 팀장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고건우가 나름 침착하게 답을 한 다음이었다.

“원장님. 제 방식대로 전쟁을 치를 생각입니다. 가장 먼저 샤흐란과 아비부를 제거할 권한이 필요합니다.”

고건우의 대꾸를 대신해서 놀라움을 끌어안은 침묵이 건너왔다.

“라노크 대사님이 적을 도발했고, 이번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적의 실체를 제대로 모릅니다. 발표는 다르게 하겠지만, 적은 분명 제가 샤흐란과 아비부를 제거한 것을 알게 됩니다.”

[“부원장이 직접 타겟이 되겠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부원장은 이미 타겟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전쟁이라고 해도 포로와 같은 이들을 제거하는 것은…….”]

고건우가 하던 말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장님. 적의 수괴로 추정되는 알만 빈 지브릴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고 여겨주십시오.”

[“연속되는 테러로 화가 난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대통령님 암살 기도로 열여섯 명의 요원과 수행원이 희생되었고, 대사관 피격으로 606 지휘관 정원민이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강찬은 고건우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우리도 이제부터 적에게는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부도덕한 방법인 것 같지만, 적에게 이만큼 확실한 경고는 없습니다. 대테러 팀이 아니라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정보총국이라고 여겨주십시오.”

제라르, 석강호, 최종일, 우희승, 통역대원이 바로 옆에서 강찬의 통화를 고스란히 듣고 있는 앞이다.

통역대원에게서 말을 전해들은 제라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 척하라는 뜻입니까?”]

“그랬다면 이렇게 보고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커다란 한숨 소리가 또다시 수화기를 타고 들렸다.

“그렇다고 책임을 지시라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지금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에 나선 거라면 그에 걸맞게 싸워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내가 끝까지 승인하지 않아도 실행할 것이 아닙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강찬은 숨도 쉬지 않고 답을 했다.

“제가 국가정보총국이라고 한 것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국가정보원의 승인을 받겠다는 의미였습니다.”

[“흐음.”]

깊은 신음이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려운 요구였다.

아프리카의 참혹한 전투, 그동안 뛰어다닌 작전을 경험하지 못한 고건우가 승인하기는.

그렇더라도 혼자 책임지고 끝나는 일이 아니어서 독단적으로 처리하기는 어려웠다.

[“부원장.”]

침묵을 깨며 고건우의 음성이 넘어왔다.

[“부원장의 일은 국가정보원의 일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대테러 팀을 우리의 국가정보총국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고건우는 전에 없이 다부진 말투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국가정보원장으로 이번 작전을 승인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주세요.”]

“감사합니다.”

무언가 뭉클한 게 올라와서 강찬은 전화를 끊고 어두운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개새끼들.

이런 사람들이, 책임과 희생을 마다치 않는 사람들이 가득한 대한민국을 건드려?

너희는 정말 대한민국만큼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올라가자.”

강찬은 엘리베이터로 움직였다.

강찬, 석강호, 제라르, 통역대원, 최종일, 우희승이 탄 엘리베이터 안에 무겁고 날카로운 침묵이 가득했다.

때앵.

‘6’이라는 숫자가 찍히고 문이 열렸다.

역시나 무장을 한 35여단 대원과 정복 차림의 요원들이 엘리베이터 앞을 지키고 있었다.

“샤흐란은?”

“이쪽입니다.”

쩔걱. 쩔걱.

대원과 요원이 강찬 일행을 복도 오른편의 병실로 안내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해골만 남은 샤흐란이 링거, 기계, 호흡기에 연결된 채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샤흐란.”

강찬은 샤흐란의 가슴께에 서서 나직하게 이름을 불렀다.

“나는 원하는 게 한 가지밖에 없었다.”

강찬의 말을 통역대원이 빠르게 우리말로 전했다.

강찬의 뒤로 최종일과 우희승이, 맞은 편에는 석강호와 통역대원, 제라르가 있었다.

“욕심을 부리는 건 관계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하나뿐인 소중한 바람이나……, 유일한 소망을 뺏어서는 안 되는 거다.”

강찬은 샤흐란이 듣고 있는 것처럼 놈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지옥에 가거든 그곳에 있는 놈들에게 앞으로 좀 좁아질 거라고 전해라. ”

말을 전해 들은 석강호가 힐끔 강찬에게 시선을 준 순간이었다.

“갓 오브 블랙필드가 전쟁을 시작해서 그렇다고.”

으드드드득!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석강호쪽으로 돌아간 샤흐란의 대가리가 완벽하게 돌다시피 해서 강찬을 향해 있었다.

삐이-.

기계음이 날카롭게 울렸다.

콱!

석강호가 시끄럽게 우는 기계의 코드를 잡아채자 병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통역대원은 아예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길었다.

길고 길었던 싸움 하나를 제대로 마무리한 거다.

“제라르.”

“Oui.”

“이긴 놈만 살아남는 전쟁이다.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긴다.”

“알겠습니다.”

통역대원이 어버버거리는 말투로 석강호에게 말을 전한 다음이었다.

강찬은 시선을 돌려 석강호를 보았다.

“푸흐흐.”

통역대원은 석강호의 번들거리는 눈빛과 섬뜩한 웃음에 완전히 질린 얼굴이었다.

강찬은 몸을 틀어 최종일과 우희승을 보았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막상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얼굴이었다.

눈을 통해 이미 뜻을 알아들었는데 말이다.

“빠지고 싶으면 지금 말해.”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강찬은 일행들과 함께 병실을 나섰다.

의사 두 명과 간호사가 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김 팀장에게 전화해서 이거 수습해.”

“알겠습니다.”

최종일이 병실 앞을 막아섰다.

“우리가 알아서 처리합니다.”

말도 꺼내지 못할 분위기에 놀란 의사와 간호사가 눈치를 살피다가 조용하게 돌아섰다.

“아비부는?”

“저 안쪽에 있습니다.”

쩔걱. 쩔걱.

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강찬이 도착하는 순간에 입구에 있던 요원이 문을 열었다.

아비부와 수행원 놈은 침대 앞 의자에 앉아있었다.

화들짝!

수행원은 벌떡 일어났는데, 아비부는 고개를 든 자세로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강찬이 움직여서 그의 앞에 설 때까지 말이다.

“아비부.”

아비부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면서도 놈은 무언가 감추지 못한 여유를 보였다.

강찬은 천천히 수행원을 살폈다가 놈이 들고 있던 리모컨을 보았다.

고개를 돌렸을 때 아비부가 앉은 정면에 TV가 걸려 있었다.

말라위 대통령의 사망과 문재현의 암살 기도, 라노크의 부상을 눈치채서 그런 모양이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라노크 대사님이 딸과 함께 피격을 당했다.”

강찬은 흔들리는 아비부의 눈알을 보며 말을 이었다.

“바실리 역시 피격을 당했고, 양범은 도피 중인 데다, 반트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힐끔.

아비부가 빠르게 수행원을 보았다.

강찬의 말을 전해 듣느라 그런 건지, 아니면 상황이 기대했던 대로 유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해서 그런 건지, 그도 아니면 둘 다 때문인지 확실하게 알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말인데.”

시선을 가져온 아비부가 다시 마른 침을 삼켰다.

“지금부터 전쟁을 시작한다. 그 시작으로 옆 방에 나를 죽이려 했던 놈의 모가지를 돌려주고 오는 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그랬을까?

아비부의 떨리는 눈알에 혹시나 하는 의심이 묻어 있었다.

“알만 빈 지브릴이란 놈을 알지?”

아비부가 강찬의 표정을 살피며 조금은 여유 있게 말을 지껄였다.

“알고 있다는 뜻이요.”

석강호가 바로 우리말로 설명해주었다.

아비부나 수행원 놈이 조금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부탁이 있다.”

수행원이 석강호의 눈치를 살핀 직후에 다시 아랍어로 강찬이 했던 말을 전했다.

그럼 그렇지!

결국, 내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거겠지.

아비부의 입가에 미소가 매달리는 순간이었다.

터억.

강찬은 아비부의 양쪽 귀를 향해 손을 뻗어 놈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내가 알만 빈 지브릴을 죽일 거거든. 그런데 그 전에 적당한 경고가 필요해. 이번 테러를 지시한 놈이 자존심이 상할 정도의 경고.”

아비부는 강찬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해서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아비부가 시선을 들어서 강찬을 보았다.

놀란 놈의 눈과 번들거리는 강찬의 눈이 마주친 바로 뒤였다.

부들부들.

아비부가 갑자기 몸을 떨어댔다.

사람은 이렇다.

아무리 잘난 척해도,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정작 상상하지 못한 공포를 느끼면 반항 한번 못하고 처분만 기다린다.

이런 놈들이 또 다른 사람을 짓밟을 때는 더럽게 잔인해진다.

그래서 이런 놈들은 제 놈 마음에 안 들면 언제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죄의식도 없다.

강찬은 마음을 굳혔다.

“지옥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그랬다가 지브릴이 도착하거든 절대로 갓 오브 블랙필드는 건드리면 안 되는 거였다고 전해. 그리고 너 때문에 희생된 우리 요원들과 대원들에게 용서도 구하고.”

“꿀꺽.”

개새끼가 뭔 침을 이렇게 시끄럽게 삼켜?

딸꾹.

급하게 침을 삼키다가 목에 걸렸는지 아비부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와 턱수염에 연결된 굽슬굽슬한 구레나룻을 한 아비부다.

놈이 딸꾹질을 하면서 다급하게 말을 지껄였다.

“지브릴을 잡을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거요. 살려주면 재산을 다 내놓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짓고 있는 차세대 발전 시설의 위치를 알려주고…….”

석강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아비부를 노려보았다.

강찬에게 대가리를 잡힌 데다, 워낙 겁에 질려 있어서 아랍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강찬이 들어도 발음이 지랄 같았다.

“대장에게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말이오.”

“만본 달라끼(من فضلك)!”

아비부가 강찬을 향해 간절한 음성으로 말을 전했다.

“제발 받아달랍니다.”

죽음 앞에서 꿋꿋한 놈이 있고, 자존심을 던지는 놈도 있다.

외인부대 대원이면서도 적에게 겁을 먹은 병아리들은 종종 백병전이 벌어지기 직전에 제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곤 했다.

겁에 질리면 정말 그렇다.

지금의 아비부처럼 말이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게 가진 거 있을 때, 힘을 가졌을 때, 높은 곳에 있을 때, 좀 잘하지.

전쟁 전이라면 동정심이라도 있었지.

병실에 들어섰을 때 반성하는 표정이라도 보였으면 혹시 몰랐었는데, 그렇지?

“다음번엔 좀 베풀고 살아라.”

수행원이 말을 전하며 강찬의 눈치를 빠르게 살폈다.

“어차피 다 쓰지도 못할 건데 왜 꼭 다른 사람들 걸 그렇게 욕심내?”

홰액!

으드드드득!

아비부의 목이 기괴한 모습으로 돌았다.

철퍼덕!

강찬이 손을 놓자 아비부의 몸뚱이가 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졌다.

그와 동시에 수행원이 울부짖었다.

개새끼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죽여놓고.

많이 가졌던, 적게 가졌던, 죽음은 다 같은 거다.

네놈은 못다 쓴 게 아쉽고 안타깝겠지만, 제대로 한번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한이 맺히는 거다.

“우아악!”

수행원이 강찬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퍼억!

제라르가 놈의 명치를 제대로 걷어찼다.

“끄윽! 끅!”

버둥버둥.

강찬은 몸은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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