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75화 (37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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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전쟁의 시작.

사무실로 돌아온 강찬은 가장 먼저 라노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우선 한국 정부에서 UN에 조사를 요청하세요. 내가 셔먼과 통화해서 협조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사님”

강찬이 인사를 전한 다음이었다.

[“적이 예상보다 과감하게 움직이는군요.”]

라노크가 나직하게 놀라움을 전했다.

“저도 이 정도까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UN의 조사가 끝나는 대로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겠다는 것도 적에게 우리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이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아프리카를 한국과 나눠 가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 생각은 못했었습니다. 대사님께 부담되는 일이라면 진심으로 파병을 중단하겠습니다.”

라노크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강찬은 바로 뜻을 밝혔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강찬 씨는 방향을 정할 때 균형을 고려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사람이 강찬 씨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한민국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차지하는 모습이 나온다면 다른 나라의 정보책임자들이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UN과 통화를 마친 후에 연락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찬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워낙 프랑스가 가진 지위와 힘이 커서 말라위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었다.

하긴!

프랑스의 밥그릇에 수저를 디민 꼴이긴 한 거다.

남의 텃밭에 불쑥 특수팀을 들여보내겠다고 했으니 프랑스 입장에서 보면 기분 좋을 일은 분명 아니었다.

강찬은 물끄러미 저 아래의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을 보았다.

이번엔 또 뭐냐?

뭐가 남은 거냐?

여전히 한쪽을 차지하고 앉은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강찬은 문득 석강호를 떠올렸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놈은 절대로 그냥 당할 놈이 아닌 거다.

“성님은 인자 들어가시요.”

노모는 말과 달리 석강호의 손을 팔을 놓지 못했다.

“주소는 확실히 맞게 적었지라?”

“맞다니까요. 적어 드리긴 했는데 쓸데없이 몸 상하면 나 다시는 어머니 안 볼 거요.”

“그라지 마시요. 장성에 내려감사 내 농사짓는 거 보낸다는 거니께.”

말을 마친 노모가 결국 눈물을 뿌렸다.

“왜 그래? 또? 자꾸 붙잡고 있으면 지환이 좋은 곳에 못 가요.”

석강호가 투박한 손바닥으로 노모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고맙소. 우리 지환이 외롭지 않게 보내준 거, 내 평생 성님의 은혜 안 잊을라요.”

“쓸데없는 소리 한다.”

시간이 돼서 석강호는 버스를 향해 노모와 함께 걸었다.

“이거 가는 길에 잡숫고 싶은 거 있으면 잡숫고, 또 장성 가서 필요한 거 있으면 사는데 보태쇼.”

버스 앞에서 석강호가 봉투를 내밀었다.

“아뇨! 이런 법은 없소!”

노모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받으시라니까. 그냥 우리 어머니하기로 했잖소. 이거 안 받으면 나 아들로 생각 안 하는 거요.”

겨우 가라앉던 울음을 터트린 노모가 코를 훌쩍이면서 석강호가 건네주는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치마를 훌렁 걷어 올린 다음, 허벅지 쪽에 달린 주머니에 넣었다.

“우리 성님, 건강하시요.”

“무리하면 안 돼요.”

“알았소.”

“올라가요.”

버스 기사가 석강호의 인상에 눌려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럼 나 갈라요.”

석강호가 노모를 안아 주었다.

“기운 내쇼. 내가 일 끝나면 꼭 가겠소.”

“그랴쇼. 인자 얼른 가시요.”

석강호에게서 몸을 뗀 노모가 버스의 입구를 향해 움직이더니 다시 몸을 돌렸다.

아직 할 말이 남았나?

석강호가 왜 그러냐는 눈빛을 짓는 순간이었다.

몸이 굽은 노모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내 이 은혜 안 잊을라요.”

늙은 어머니의 몸짓과 말이 고스란히 석강호에게 전해졌다.

노모가 버스 앞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힘겹게 한 걸음씩 올라갔다.

창에 겨우 얼굴이 보일 만큼 작은 몸집이어서 노모가 버스의 복도를 걸을 때는 얼굴의 절반만 보였다.

치이익.

버스의 문이 닫혔고, 노모를 태운 버스는 그렇게 움직여 승차장을 빠져나갔다.

***

바실리는 몹시 불편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대통령 궁에 오는 것은 그에게 언제나 언짢은 일이었다. 특히나 지난번 세브첸코의 일이 있고 나서는 더더욱 그랬다.

차에서 내린 바실리는 뒷좌석의 문을 잡은 채로 날카롭게 대통령 궁의 입구를 노려보았다.

나오는 요원이나 수행원이 아무도 없었다.

알렉세이가 직접 와달라고 해서 온 길이다.

그러니 그의 도착을 대통령 궁에서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왜 바실리를 따르는 KGB 출신의 경호원과 수행원들이 마중 나오지 않을까?

‘함정?’

바실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와락!

바실리가 빠르게 차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부슝! 퍼억! 부슝! 퍼억!

총성과 동시에 그의 등에서 커다랗게 피가 튀었다.

끼이익!

뒷좌석 문을 닫지도 못한 승용차가 빠르게 달렸다.

부슝! 퍽! 부슝! 퍼억! 부슝! 퍽! 부슝! 퍽!

방탄유리와 문짝에 계속해서 총알이 박혔다.

끼이익! 끼익! 끼이익!

그리고 대통령 궁의 뒤편에서 검은색 승합차가 승용차를 따라나섰다.

부우웅! 덜컹! 끼이익!

뒷좌석에 쓰러진 바실리가 감색 양복을 온통 피로 물 들인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덜커덩! 덜컹!

승용차가 대통령 궁을 빠져나왔다.

맞은편이 가로로 이어진 도로다.

그런데도 승용차는 똑바로 달렸다.

끼이익! 빠앙! 빵빵!

그리고는 아예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처럼 도로를 가로질렀다.

끼이익! 끼익!

도로를 오가던 차가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가,

콰작! 콰자작!

따라오던 승합차와 건물의 벽에 처박혔다.

***

양범은 언젠가 강찬과 만났었던 폐쇄된 공항의 팔각정에 있었다.

찰칵.

“후우.”

둥그런 탁자에 앉은 양범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의 뒤쪽으로 중국 정보국 요원들 십여 명이 지키고 있었다.

“중화인민 공화국의 발전보다 개인적인 이익에 눈이 뒤집힌 놈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혼잣말을 뱉은 양범이 쭉 찢어진 눈을 돌려 뒤를 받치고 선 요원들을 돌아보았다.

“내 목이 필요한 놈이 있으면 지금 말해라.”

각진 턱, 날카로운 눈매, 다부진 몸을 한 요원들이 침묵을 지킨 채 양범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이트 울프에서도 베테랑으로 꼽히는 요원들이다.

양범이 키우고 끌어주다시피 한 요원들이라서 배신을 생각할 수는 없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무기는?”

“기관총과 권총, 실탄 정도입니다.”

“몽골의 한국 기지로 가겠다.”

“모시겠습니다.”

“후우.”

담배 연기를 뱉어낸 양범이 재떨이에 담배를 짓이겼다.

“다윗의 별은 적이니까 이해한다. 하지만 이번에 그들에게 동조해서 중화인민 공화국을 팔아먹은 놈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모를 말을 뱉은 양범이 팔각정을 내려올 때였다.

멀리서 자동차가 일으키는 먼지가 보였다.

“너희 둘이 저걸 막아!”

양범의 바로 뒤에 있던 요원이 가장 왼편에 있던 요원 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럼 저 둘은 어떻게 빠져나와?”

“가셔야 합니다!”

“그럼 저놈들이 죽잖아!”

“나중에 복수해주시면 됩니다.”

요원 셋이 달려들어서 양범을 납치하다시피 끌고 갔다.

“저놈들이 죽는다니까!”

발악처럼 악을 쓰며 끌려가는 양범을 돌아본 요원 둘이 만족한 얼굴로 기관총을 들었다.

철컥! 철컥!

흙먼지가 좀 더 가까워졌을 때였다.

“놔! 놓으라고! 저놈들을 저렇게 죽게 해서는 안 되는……!”

양범의 고함이 뚝 끊긴 다음,

부으응! 부응! 부으응!

팔각정의 뒤편에서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멋진 상관을 만났었지?”

“죽어도 후회되지 않을 만큼은 되지.”

흙먼지가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자동차가 고스란히 시야에 들어왔다.

“백랑!”

철컥!

요원 한 명이 구호처럼 특수부대의 이름을 부르며 총을 들었고,

“인민을 위해!”

철컥.

옆에 선 요원이 구호를 외치며 역시 기관총을 들었다.

투타타타타타! 투타타타! 투타타타타!

끼이익! 끼익!

방향을 튼 차량을 향해 두 요원은 거칠 것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

때앵.

지하주차장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반트는 요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대기하던 차량으로 움직였다.

요원들이 좌우를 살피는 동안, 반트가 뒷좌석으로 몸을 넣었다.

타악.

뒷문을 잡고 있던 요원이 문을 닫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부으으응! 끼이익!

운전석을 바라보는 형태로 주차되었던 승용차가 그대로 달려들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어?’ 하는 순간에,

콰가각!

돌진한 승용차가 그대로 운전석을 들이받았고,

콰아아앙!

커다란 폭발이 있었다.

콰당! 콰다당! 콰으응!

자동차의 파편들이 주변에 거칠게 떨어졌고, 두 번째 폭발과 함께 다시 파편이 튀었다.

***

정원민과 606팀은 강찬을 잘 안다.

그런 강찬이 특별하게 전화까지 해서 경계를 높이라고 했었는데, 그 직후에 대통령 암살 기도가 있었다.

정원민과 606팀은 그야말로 물샐 틈 없이 대사관 주변을 지켰다.

달칵.

저녁이 되기 전이다.

대사관의 문이 열리고, 프랑스 요원들 10여 명이 우르르 나왔다.

쩔꺽. 쩔꺼덕.

정원민은 대원 한 명과 함께 차량 앞을 지켰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뜻은 이미 안다.

606팀의 훈련에는 대인 경호가 포함되어서 프랑스 요원들의 동선에 방해되지도 않는다.

검은 베레모, 짙은 선글라스, 검은색 606 대테러 복장, 왼팔에 태극기, 어깨에 건 MP5S 기관총, 권총, 대검, 탄창.

정원민에게 요원 한 명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중무장한 대원이 주는 든든함을 알고 있어서 하는 인사였고, 이렇게까지 배려해주는 정원민에게 전하는 감사의 인사였다.

정원민이 앞을 노려보는 동안 라노크가 안느와 함께 문을 나섰다.

이럴 때 시선을 빼앗기는 것이 가장 무섭다.

정복을 입은 프랑스 요원들이 두 사람을 감싸다시피 둘러싸고 있는 이 순간에 누군가는 저격이 가능한 지역을 살펴야 한다.

정원민이 반사적으로 주변 건물을 살피는 순간이었다.

부슝! 퍼억!

총성과 함께 요원 한 명의 목덜미가 터져나갔다.

“무브몽(Mouvement)!”

프랑스 요원들이 악을 쓰며 라노크와 안느를 덮쳤다.

“3명! 저 건물 확보해!”

푸슝! 푸슝! 퓨슝!

지시와 동시에 정원민이 사격을 가하는 동안에도,

부슝! 부슝! 부슝! 부슝!

적의 사격이 이어지며 프랑스 요원들이 픽픽 바닥에 고꾸라졌다.

5층 건물의 옥상에서 총구만 내놓고 갈기는 저격이다.

푸슝! 푸슝! 푸슝! 부슝! 퍼벅! 부슝! 퍼억!

대응사격을 하고 있는데도 적은 목숨을 내놓다시피 사격을 하고 있었다.

부슝! 퍼벅! 부슝! 퍼억! 부슝! 퍼억!

라노크와 안느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는 거다.

요원의 몸을 관통한 탄두에 부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이대로 두면 결국 죽는다.

“요인을 지켜!”

와락!

정원민은 라노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의 상체를 잡아 방탄조끼 앞으로 당겼다.

어깨와 가슴에 피가 흥건한 라노크는 의식이 없었다.

부슝! 퍼억! 부슝! 퍽! 부슝! 퍼억!

‘끄윽!’

방탄복 등판과 다리를 제대로 맞았다.

미칠 것처럼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정원민은 라노크의 머리와 상체를 방탄조끼 앞에 안고 문으로 끌었다.

대원 한 명이 안느를 비슷한 자세로 안고 문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부슝! 퍼억! 부슝! 퍼억!

쇠꼬챙이로 찍는 듯한 끔찍한 통증이 재차 정원민의 등판에 꽂혔다.

“끄으!”

정원민이 악을 쓰며 밀어주는 라노크를 안쪽의 수행원들이 끌고 들어갔다. 이어서 함께 움직이던 대원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역시나 의식이 없는 안느를 대사관 건물 안으로 넘겨주었다.

저격은 멈췄다.

목표가 사라져서 일 수도 있고, 달려간 대원들이 저격수를 제압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털썩.

정원민은 대사관의 문 옆에 기대앉아 마당을 바라보았다.

10여 명이나 되던 프랑스 경호 요원들이 전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시선을 내렸을 때 피에 흠뻑 젖은 허벅지에서 두 개의 구멍도 보였다.

“커륵.”

정원민은 숨이 가빴다.

이상하게 숨이 가슴으로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구대장님!”

“쿨럭! 쿨럭!”

대원 한 명이 달려들어 정원민의 목을 꽉 눌렀다.

“지금 구급차가 옵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야……! 쿨럭!”

“말하지 말고 좀 견디란 말입니다! 야! 구급차 어떻게 됐어!”

무언가 말을 하려던 정원민의 입에서 피가 울컥 넘어왔다.

“우리는……, 커윽! 컥!”

“말하지 말라고!”

“606이……끄윽.”

“알아! 아니까 그냥 좀 있으라구요! 우리 훈련시켜야지! 우리 갈궈줘야지!”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대한민……국, 보루……다.”

주변이 온통 흐릿해서 정원민에게는 맞은 편에서 목을 누르고 있는 대원의 팔에 달린 태극기만 제대로 보였다.

별로 친하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정원민은 이상하게 강찬이 보고 싶었다.

이럴 땐 마누라나 애들이 보고 싶어야 맞을 텐데 말이다.

‘대한민국은 강해지겠지요?’

정원민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꼭 듣고 싶었다.

***

강찬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 강명구가 요원들과 함께 복도를 지키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쩔꺽. 쩔꺽.

강명구의 어깨에 걸린 소총 소리를 들으며 병실로 향할 때였다.

드르륵.

유헌우가 무거운 얼굴로 병실에서 나왔다.

“강찬 씨.”

“상태가 어떻습니까?”

강찬의 눈빛을 본 유헌우가 병실을 바라본 뒤에 입을 열었다.

“두 분 모두 혼수상태인데 여자분의 상태가 좀 더 심각합니다.”

“원장님.”

강찬은 부르기만 하고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눈을 보면 충분히 알아들을 내용인 거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유헌우가  5층 처치실로 강찬을 안내했다.

“여기에 누웁시다.”

강찬은 두말하지 않고 팔을 걷은 다음, 간이침상에 걸터앉았다.

유헌우는 굳이 누우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강찬의 팔에 바늘을 꽂은 다음, 피가 담기는 팩을 좌우로 흔들었다.

3분쯤 지난 다음이었다.

솜으로 눌러가며 유헌우가 바늘을 뽑았다.

그리고는 바쁜 걸음으로 처치실을 나섰다.

저렇게 서둘러야 할 정도로 상태가 위급하다는 뜻이었다.

강찬은 소매를 내리고 유헌우가 들어간 병실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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