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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너희는 선을 넘었다.
문재현은 밀려드는 면담과 빡빡한 일정 탓에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유라시아 철도의 발표까지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그러나 차세대 에너지 시설의 건설을 발표한 이후로는 글자 그대로 살인적인 일정이 이어졌다.
거기에 대한민국의 특수팀이 아프가니스탄의 UIS 수뇌부를 완벽한 작전으로 모두 사살하고 나자 마치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일정이 불어났다.
UIS에 굴복하지 않는 대한민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미국과 대등하게 맞서고, 일본이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대한민국이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아프리카의 후진국과 개발이 필요한 나라들이 달려들다시피 문재현과의 면담을 요청하고 있었다.
이미 한국의 위상은 분명하게 달라져 있었다.
호주에 유학 간 우리 대학생과 사업차 필리핀을 방문했던 우리 사업가가 현지에서 살해되었을 때의 일이다.
필리핀의 대통령과 호주의 총리가 대사관과 우리 국무총리에게 전화를 통해 먼저 유감을 표시했고, 이례적으로 사건을 조속히 수사하겠다는 공식 발표까지 했다.
아프리카 토고의 대통령과 면담을 막 끝낸 문재현이 제2 접견실로 움직였다.
수행원만 두 팀이 따로 준비될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대통령님.”
문재현에게 비서실장이 빠르게 다가섰다.
“정보원장이 강찬 부원장과 함께 면담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어떡해서든 시간을 만들어 주세요.”
“이 면담이 끝나고, 다음 면담이 말라위 대통령입니다. 그 면담 후로 정할까 합니다. 대략 20분 정도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시간에 맞춰 원장에게 통보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잠시라도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늘 잡힌 아프리카의 대통령 면담만 모두 5개다.
큰 줄기를 잡은 후에 담당자들에게 실무를 넘기고는 있지만, 문재현이 빠질 수 있는 면담은 없었다.
“우리 대원들이 피를 흘려 얻어낸 영광입니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할 자격이 없습니다.”
비서실장의 권유를 거절한 문재현이 바로 접견실로 들어섰다.
전대극이 경호원들을 이끌고 그의 뒤를 따랐다.
물 들어왔을 때 부지런히 노를 저어야 한다.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원하는 공항, 도로, 그리고 관공서를 지어주고 대금을 그들이 가진 자원으로 받는 회담이다. 건설 대금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원 개발에 들어가는 금액까지 모두 비용에 포함시켜서 자원을 가져올 때마다 제하는 방식이었다.
힘이 있어서, 돈이 있어서 가능한 방식이었다.
전 같으면 자원 개발하는데 얼마를 쥐여줘야 하고, 또 도로와 개발 시설은 전부 우리 부담으로 지어주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항만과 공항, 도로, 기타 건물의 건설에 들어가는 대금을 정부에서 건설사에 먼저 지불한다.
그리고 나중에 자원으로 받는다.
만약 건설이 끝난 다음, 아프리카의 국가에서 자원을 넘겨줄 수 없다고 ‘배 째라’로 나오면 어떻게 하냐고?
아프가니스탄의 UIS 수뇌부를 완벽한 작전으로 모두 사살한 한국이다.
그런 대한민국에 대고 ‘배 째라’라고 나와?
그렇게 된다면 무시무시한 한국의 특수팀이 날아가서 실제로 배를 째 줄 힘과 강단이 있음을 방문하는 대통령들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작전 두 번, 중국, 리비아, 프랑스에서의 작전 등은 이미 정보국들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뿐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를 체포하고 경고했다.
그러니 지금 줄을 서다시피 협력을 요청하는 나라들은 오히려 UIS가 자국의 발전을 방해하지 못할 거란 믿음을 가지고 매달리고 있었다.
자원을 개발하는 일은 차세대 에너지 사업만큼이나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차세대 에너지 시설이 벌어들일 막대한 수익과 별개로 먼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2 접견실에 도착한 문재현은 봉황이 길게 꼬리를 내린 문양에 시선을 주었다. 양쪽의 봉황이 머리로 받치고 있는 태극기가 유독 선명하게 회의실 앞에 새겨져 있었다.
성남 공항에서 의장대가 받아든 우리 특수팀의 희생이 떠올랐다.
비닐 주머니에 실려 온 그들의 희생이 오늘의 영광을 이룬 밑거름인 거다.
문재현은 접견실 앞에서 버릇처럼 태극기와 봉황을 바라보았다.
‘물러서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위해 피 흘린 우리 대원들과 요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회담에 임한다. 그들의 피를 절대로 싸게 팔지 않는다.’
문재현이 숨을 가다듬은 다음 고개를 끄덕이자, 수행원이 접견실의 커다란 문을 밀었다.
라노크와 통화를 마친 강찬은 찬물로 샤워를 했다.
꿰맨 자리의 실밥이 녹아 있어서 남은 것들을 뽑고 나자 팔과 몸을 움직이기가 훨씬 수월했다.
개운하게 샤워를 마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참이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기가 강찬을 불렀다.
“여보세요?”
[“김형정입니다. 원장님께서 청와대에 들어갈 예정인데 가능하면 함께 가셨으면 하십니다.”]
“시간은요?”
[“30분 뒤에 내곡동에서 뵙기로 했습니다.”]
지브릴의 일을 결정하기 위해서라도 거절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강찬은 바로 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최종일. 내곡동으로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이두희가 먼저 지하로 내려갔고, 최종일과 우희승이 사무실 앞에서 기다렸다.
“다녀오쇼. 난 저녁에 나갔다 올 거요.”
“내가 한 말 잊지 말고, 요원들하고 함께 다녀. 권총 꼭 챙기고.”
“알았소.”
석강호가 강찬의 눈을 바라보며 단단하게 답을 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을 석강호다.
강찬은 최종일과 우희승과 함께 지하주차장으로 움직였다.
오후 3시쯤이었다.
그런데도 밤이 깊어가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찜찜함이 더욱 진해지는 느낌이었다.
확인하고 확인했다.
프랑스 대사관을 맡은 606, 몽골을 지키는 비무장 특수팀과 김태진, 그 외에 김관식과 가족의 경호를 맡은 요원들까지 한 번씩 모두 챙겼다.
강찬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폐의 절반을 진흙이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숨이 가득 쉬어지질 않았다.
강찬의 눈빛이 번들거리고 있어서, 차 안의 분위기가 날카롭고 무거웠다.
내곡동 본원 현관에 도착하는 순간에 고건우와 김형정이 정문을 나왔다.
“부원장.”
고개 숙여 인사하는 강찬을 고건우가 맞았다.
강찬의 눈빛이 번들거리는 것을 본 고건우가 김형정을 힐끔 보았는데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함께 움직입시다.”
고건우가 손으로 차를 가리켰다.
검은색 승합차였다.
강찬은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원에서 고건우, 김형정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청와대로 움직였다.
앞뒤로 움직이는 승합차만 6대가 넘었다.
“부원장. 대통령님을 만나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김형정이 조수석에, 고건우가 그 뒷자리, 그리고 강찬은 운전석 뒤에 앉았다.
“김 팀장에게 보고는 들었습니다. 우선 단순한 투자로 볼 소지가 있는 사실만 가지고, 지브릴을 제거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문에 대해 부원장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고건우가 강찬을 바라본 채로 말을 이었다.
“다음으로 실패했을 때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이번 일이 잘못되면 그 뒷수습이 우리에게 독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힘을 얻더니 타국의 왕자를 별다른 증거도 없이 제거하려 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고건우가 김형정을 힐끔 본 다음에 시선을 가져왔다.
“지브릴이 황 원장의 테러에 관련되었다는 부분은 수사를 좀 더 확실하게 해서 다음 수를 구상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고건우는 확실히 지브릴의 제거가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도 문재현을 만나러 함께 가자고 하는 것은 그만큼 강찬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보였다.
“UIS와 아비부가 연결되었다는 것은 분명하게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거야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저는 지금 우리나라가 전쟁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흠.”
고건우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국제빌딩, 황 원장님과 송 청장님의 테러, 아프가니스탄에 모인 UIS의 협박까지가 그렇습니다.”
말을 마친 순간이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느닷없이 강찬의 심장이 경고하고 나섰다.
날이 얼마나 날카롭게 서는지 강찬은 근처의 빌딩에서 적이 미사일을 갈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고건우가 의아한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원장님. 제가 유독 감각이 날카로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장 먼저 눈빛이 독해집니다.”
“전에 유라시아 철도 발표 회장에서처럼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에 고건우도 있었다.
강찬은 자신의 뜻을 받아주지 않아서 이런 눈빛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건우에게 분명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오전부터 이상하게 그날처럼 날이 섭니다. 지금도 꼭 어디선가 미사일로 우리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조수석에 앉은 김형정이 좌우를 살폈고, 고건우도 반사적으로 앞과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은 청와대를 안 갈 수도, 그렇다고 다른 방법을 취하기도 어렵다.
“아까 하려던 말씀을 계속 드리겠습니다.”
강찬은 일단 하던 말을 계속하기로 했다.
“증거를 확보하고, 그에 따라 법을 행사하는 건 우리 국민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적국의 수뇌부, 그것도 우리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인물의 죄를 증명하겠다고 시간을 끄는 건 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고건우가 나직하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부원장. 지금 부원장이 너무 자주, 너무 크게 기득권 세력에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국제빌딩의 테러 진압과 이번 UIS 간부 사살의 공 때문에 그들이 침묵하고 있지만, 꼬투리가 잡히면 분명 부원장을 물고 늘어질 게 분명합니다.”
강찬은 고건우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장 군만 해도 그렇습니다. 공이 크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지만, 지브릴의 제거에 실패해서 문제가 불거질 경우, 그들이 먼저 부원장을 성토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강찬의 표정을 본 고건우가 씁쓸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내막을 정확하게 모르는 그들은 우리 부원장에게 너무 많은 권력과 힘이 몰린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부원장이 세운 공이 우리 국민들에게는 우리 군과 국정원 대테러 팀의 공으로 인식되어서 여론이 잘못 조성되면 우리는 공식적으로 부원장을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고건우의 말이 끝날쯤에 승합차가 청와대의 진입로에 들어섰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강찬은 날카롭게 창밖을 살폈다.
다른 곳 아닌 청와대다.
두근대던 심장이 가라앉아야 할 곳에 들어섰는데 본능은 좀 더 강력하게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혹시……?’
강찬은 순간 떠올랐던 생각을 털어냈다.
전대극은 분명 믿을만한 인물인 거다.
그렇다면 전대극을 속이고 문재현을 노리는 누군가가 있는 건가?
강찬은 진입로의 경계를 다시 한 번 살폈다.
회담을 끝내고 나온 문재현은 곧바로 제1 접견장으로 움직였다.
“원장과 부원장은 도착했습니까?”
“이번 말라위 대통령과의 면담이 끝나시기 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제2 접견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뒤뜰에 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에게 지시를 마친 문재현이 제1 접견장 입구에서 봉황과 태극기를 바라보았다.
대한민국은 점점 더 강대국이 되어가고 있었다.
고맙다.
강찬과 같은 인재가 이 땅에 태어나 준 것이.
감사하고 미안했다.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위해 피를 뿌리며 희생한 대원들과 요원들에게.
“후우.”
숨을 내쉰 문재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수행원이 접견실 문을 열었다.
강찬은 청와대 현관에서 권총을 반납했다.
경호실 직원이 아니면 누구도 총기를 소지하지 못하는 곳이라서 그걸 우길 수는 없었다.
쿵. 쿵. 쿵. 쿵.
본능이 더는 시간이 없다고 악을 써댔다.
강찬은 가능한 한 서둘러 문재현과 전대극을 만나야한다는 생각만 했다.
“부원장님. 규정상 무전기도 반납하셔야 합니다.”
경호실 직원이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건넨 요구였다.
“전 실장님과 무전 할 수 있지?”
“그렇습니다.”
“지금 연락해. 내가 급하게 찾는다고.”
“대통령님과 면담에 들어가셔서 경호와 관련된 일이 아니고는 연락할 수 없습니다.”
쿵. 쿵. 쿵. 쿵.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강찬이 무전기를 잡아채다시피 몸에서 뜯어내는 순간이었다.
“오셨습니까? 대통령님께서 뒤뜰에 자리를 마련하라셔서 그쪽에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비서실 직원이 정중한 태도로 다가왔다.
그는 강찬의 눈빛과 입구에서 퍼져있는 살벌한 분위기에 당황한 얼굴로 눈치를 살폈다.
“대통령님은?”
“제1 접견실에 계십니다.”
“지금 그쪽으로 안내해.”
“예?”
“지금 대통령님이 계신 제1 접견장으로 안내하라고.”
“부원장님. 경호에 협조해 주시…….”
홱!
고개를 돌린 강찬의 눈이 얼마나 살벌하게 번들거렸는지 경호 요원이 말을 잇지 못했다.
쿵. 쿵. 쿵. 쿵.
이런 곳에서 다툴 시간이 없었다.
강찬은 다시 고개를 돌려 고건우를 보았다.
“원장님. 믿어주셔야 합니다. 대통령님이 위험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대통령님이 계신 곳에 가야 합니다.”
고건우는 강찬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김 팀장.”
“예, 원장님.”
“국가정보원 원장 자격으로 청와대에 대테러 비상령을 발령한다. 사유는 대통령님에 대한 테러 위험이다. 지휘는 강찬 부원장에게 일임하겠다.”
“알겠습니다.”
철컥!
김형정이 대번에 권총을 꺼내 강찬 앞의 경호 요원을 겨눴다.
“국가 정보원에서 원장님 명으로 대테러 비상을 내렸다. 경호 요원들은 협조해!”
철컥. 철컥. 철컥.
주변에 있던 경호 요원들이 삽시간에 김형정과 고건우에게 권총을 겨눴다.
“부원장님이 들어간다. 비무장인 걸 모두 알 거다.”
“이러지 마십시오!”
“대테러 비상령이다! 막지만 말고, 빨리 전 실장님께 연락해! 부원장님! 들어가십시오!”
강찬은 고건우와 김형정을 돌아본 뒤에 곧바로 청와대 안쪽을 향해 달려갔다.
와락! 와라락!
경호 요원 둘이 달려들었다.
적이 아니다.
모두 한뜻으로 함께 움직이는 요원들인 거다.
퍽! 퍽!
강찬은 경호원들이 내민 손을 옆으로 쳐내고 그들의 목과 옆구리를 찍었다.
와다다닥!
그리고 그 반동을 이용해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철컥.
김형정이 권총의 총구를 땅을 향해 내렸다.
“전 실장님께 빨리 연락해!”
경호 요원들이 그제야 무전기를 들었다.
접견실로 들어 간 문재현은 말라위의 대통령 무리타카와 악수를 나눴다.
“앉으시지요.”
문재현이 앉으며 가리킨 자리에 무리타카 말라위 대통령이 자리했다.
통역 두 사람이 문재현과 무리타카에게 바싹 다가앉아 메모지를 들고 집중하고 있었다.
차가 나왔다.
“한국의 날씨가 춥지는 않습니까?”
“열정을 가지고 와서 그런지 추운 줄은 모르겠습니다.”
무리타카가 능숙하게 문재현의 말에 대꾸했다.
접견실 문 안쪽에 서 있던 전대극이 의아한 눈으로 귀를 만졌다.
치잇. “반복합니다. 국가정보원장이 청와대에 대테러 비상령을 내렸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전대극은 우선 경호원들에게 경계를 높이라고 눈짓했다.
고건우를 믿는 마음과 경호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 거다.
치잇. “강찬 부원장이 비무장 상태로 제1 접견장으로 향했습니다.”
강찬이?
유라시아 철도 발표회장에서 강찬이 보여준 위기 감지 능력은 인정한다. 그간 세운 공도 있었다.
정말 이 안에 경호실이 파악하지 못한 위험이 있는 건가?
전대극은 접견실 안을 날카롭게 둘러보았다.
“담배를 피워도 됩니까?”
“괜찮습니다. 편안하게 즐기세요.”
무리타카의 질문에 문재현은 넉넉한 미소와 함께 손을 뻗었다.
“우리나라 말라위의 담배입니다. 하나 하시겠습니까?”
“저는 담배를 끊었습니다.”
“인생의 재미 하나를 잃으셨습니다.”
통역이 전해주는 말을 들은 문재현이 웃음으로 답을 했다.
찰칵.
무리타카가 라이터의 불을 켰을 때였다.
콰앙.
문이 거칠게 열리고 강찬이 뛰어들었다.
문재현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달려들었다.
무리타카 역시 놀란 눈으로 강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왜 이래?”
전대극이 나직하게 으르렁거리는 동안 강찬은 접견실을 살폈다.
후욱. 후욱.
“강찬!”
전대극이 또다시 강찬을 부른 순간이었다.
후욱. 후욱.
강찬은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심지어 경고를 전해주는 심장 소리까지 말이다.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벽을 타고 선 경호원?
건물에 폭탄이 설치되었을 리는 없고.
전대극은 아니고.
그때였다.
타다닥. 타닥.
무리타카의 입에 걸린 담배에서 불꽃이 튀었다.
사탕수수를 섞어 만든 담배는 저렇게 불꽃이 튄다.
강찬의 시선에 무리타카의 눈과 입, 그리고 그의 놀라는 듯한 눈동자가 들어왔다.
염병!
와락!
강찬은 문재현에게 달려들었다.
와라락!
경호원 두 명이 반사적으로 강찬을 향해 달려들었고,
철컥! 철컥!
다른 경호원 둘은 권총을 뽑아들었다.
콰다당!
강찬과 강찬을 막아선 경호 요원 둘, 그리고 문재현이 한데 뒤엉켜 바닥을 굴렀다.
“커억! 컥!”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리타카가 목을 부여잡고 끔찍한 얼굴로 경련을 일으켰다.
꽈악!
강찬은 문재현의 코와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숨 쉬지 마! 대통령님을 얼른 밖으로 모셔!”
그래도 전대극이다.
지이익.
그가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문재현의 옆구리에 양팔을 끼우고 잡아당겼다.
강찬은 계속해서 문재현의 코와 입을 틀어막고 전대극을 따랐다.
“끄으윽!”
“끄악!”
통역 두 명이 무리타카와 비슷하게 몸부림을 치며 바닥에 쓰러졌고,
“크윽!”
근처에 있던 경호 요원 둘도 비슷한 모습으로 바닥을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