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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좋은 공부가 될 거다.
비번인 606대원들과 대테러 팀 요원들, 그리고 국가정보원 위장 회사의 직원들, 해외 특수팀의 요원들까지.
장례식장이 터질 것처럼 많은 사람이 밀려들었다.
강철규와 비무장 팀의 소문을 듣고 달려온 요원들과 대원들이 따로 인사까지 하느라고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는 지경이었다.
상조회에서 나온 직원들이 어쩔 줄 몰라할 때쯤 최종일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두 칸을 더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음식 같은 거 안 모자라게 챙겨주고.”
“예.”
최종일이 움직여 좌우에 있는 빈자리를 더 사용하기로 한 뒤부터 그나마 앉을 자리에 여유가 좀 있었다.
장성의 외삼촌 내외와 조카들이 왔을 때는 조문객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석강호가 묵묵하게 요원들과 대원들을 맞았는데 외삼촌 내외는 고마워할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강찬이 슬쩍 일어나려는 참이었다.
안쪽에 있는 강철규와 시선이 마주쳤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눈치였다.
굳이 시선을 끌 필요는 없는 거다.
강찬은 고갯짓으로 밖을 가리키고는 몸을 일으켰다.
“담배 하나 피우고 올게.”
적당한 핑계를 대서 요원들이 따라 일어서는 것도 막았다.
그런데 이 새끼는 어디 있는 거야?
강찬이 고개를 시선을 돌린 곳에서 제라르가 통역 대원을 옆에 앉혀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대원들과 요원들이 심오한 표정으로 놈의 말을 듣고 있어서 일단 그대로 두었다.
계단을 올라가서 장례식장 입구로 나오자 어둠과 불빛이 먼저 봐달라는 것처럼 동시에 달려들었다.
강찬은 담배를 피우던 요원들과 대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그들을 피해 움직였다.
강철규는 그때쯤 올라왔다.
“저기 가면 커피를 마실 수 있겠냐?”
그는 건너편에 있는 커피 전문점을 가리켰다.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강찬이 앞섰고, 강철규가 그 옆을 걸었다.
강철규는 지난번에 백화점에서 사준 옷을 입고 있었다.
크게 흉이 될 복장도 아니었다.
“뭐 마실 거야?”
“커피나 한잔 할까?”
“앉아 있어. 내가 사 갈게.”
강찬은 따듯한 커피를 두 잔 받아서 강철규가 앉아 있는 테라스 쪽으로 움직였다.
아직은 밤기운이 서늘했다.
“우리는 언제 출발하는 거냐?”
자리에 앉은 강찬을 향해 강철규가 질문을 던졌다.
뭔가 있는 거다.
강찬이 한 모금 마신 커피를 내려놓으며 강철규를 보았다.
“동식이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괜찮다면 우린 먼저 출발해도 되니까 동식이는 그 정도 시간을 배려해 주었으면 싶다.”
“무슨 일인데?”
강철규가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더 늦기 전에 저놈들도 가정에 용서를 구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집에 다녀오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동식이는…….”
강철규가 간단하게 양소미가 힘들게 살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솔직히 웃겼다.
눈짓 하나로 UIS 간부의 머리를 잘라내던 사람들이 사위를 혼내주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는 게 말이다.
은근히 사위라는 사람이 중국집 간판에 매달려서 서울 구경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다.
“괜히 잘못되는 거 아냐?”
“표시 내지 않을 거다.”
때리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뭐, 그 정도라면야.
“내일 아침에 대사관에 들어갈 약속이 있어. 이번 작전을 다른 정보국에서 어떻게 평가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의논하기로 했거든. 괜찮으면 장례 끝나고 사흘 정도 있다가 갔으면 좋겠는데.”
강철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일도 없이 호텔에 사흘을 있어야 하는 거다.
둘이 있을 때면 왜 이렇게 얌전한 얼굴일까?
“먼저 일어나마.”
대화가 끝나서인지 강철규가 멋쩍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집쟁이 영감!
강찬과 더 있고 싶으면서도 거치적거리는 게 싫어서, 그런 속을 보이는 게 민망해서 일어선다.
이미 얼굴에 그런 속을 다 보여놓고 말이다.
강철규가 카페를 나가 횡단보도를 건넜다.
염병!
어색한 것만 아니면 좀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강찬이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최종일과 우희승이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섰다.
“앉아. 담배 있어?”
우희승이 주문대로 움직이는 동안 최종일이 담배와 라이터를 건네주었다.
찰칵.
“후우.”
연기를 뿜어내자 답답한 속이 좀 풀렸다.
“김 팀장님은 좀 전에 가셨습니다. 두 분이 계신 걸 보고 인사 못 하고 가신다고 전해달라셨습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이면 라노크가 서울에 도착한다.
“커피 마시고 우리는 사무실로 가자.”
“예.”
“이따 출발하기 전에 조용히 제라르만 불러내.”
최종일의 대답을 들으며 강찬은 담뱃재를 떨었다.
***
모처럼 푹 잤다.
정말이지 깊게 잤다.
한남동의 집에 들어갈까 했지만, 썰렁한 게 싫어서 강찬은 사무실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아후!”
몸뚱이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소파에서 상체를 세울 때도, 몸을 일으켜 세울 때도, 온 몸뚱이가 저리고 아팠다.
“끄응.”
이런 건 자꾸 펴줘야 한다.
꿰맨 자리가 당기는 것을 그대로 두면 몸을 쓸 때마다 욱신거려서 견디기가 어렵다.
회의실에서 나올 때는 창밖으로 아침이 열리고 있었다.
간이침대에 누운 제라르가 고개를 들었고,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늘 보던 일상이다.
몸뚱이게 상처와 통증이 남은 것을 제외하면, 기다란 꿈을 꾸고 일어난 아침 같은 느낌이었다.
강찬은 벽 안쪽에 놓인 테이블로 가서 물을 마셨다.
이런 아침은 유독 커피가 그립다.
그것도 달달한 봉지 커피가.
쪼로록.
“제가 하겠습니다.”
“놔둬. 마실래?”
최종일이 함께 커피를 탈 때였다.
꾀죄죄한 얼굴로 통역대원이 다가왔다.
“집에 안 갔어?”
“일이 바쁠 것 같아서 바로 이리 왔습니다.”
다른 차로 왔던 모양이었다.
이 인간은 딸이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모른다.
아침을 먹은 강찬은 간단하게 씻고 사무실을 나섰다.
얼굴에 난 굵은 상처를 밴드로 가리자 인상이 훨씬 좋아 보였다.
라노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창밖을 보면서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좋았다.
그가 로리암에 있지 않다는 것이, 이렇게 달려가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작전에 성공하고 돌아온 덕에 받는 일종의 보상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익숙한 모습의 대사관 건물이 보였고,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라파엘이 기다리고 있다가 강찬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무슈 강.”
그는 확실히 여유를 되찾은 얼굴이었다.
“대사님은?”
“위원장님께서는 2층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는 또한, 전보다 더욱 공손하게 강찬을 대했다.
익숙한 입구, 계단, 그리고 카펫이 깔린 복도를 지나 집무실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무슈, 강!”
라노크다.
그가 커다랗게 팔을 벌리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강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대사님.”
반갑다. 정말 반가웠다.
“무슈 강.”
그의 곁에 있던 피에르와도 인사를 마쳤다.
“앉읍시다.”
라노크의 안내로 테이블로 움직이려는 참이었다.
“무슈 강. 저는 일정이 있어서 나가봐야 합니다. 위원장님과 모처럼 시간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피에르가 양해를 구한 다음 바로 자리를 떴다.
바쁘다는 걸 어떡하겠나.
쪼르륵.
둘이서 자리에 앉았고, 라노크가 홍차를 따라주었다.
“몸은 괜찮습니까?”
“예.”
라노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홍차 잔을 들었다.
“이제부터 전면전입니다.”
라노크는 반가움을 저 아래로 밀어 넣고 바로 일을 꺼내 들었다.
로드차일드 가문의 유력자 제거와 그들 소유의 스위스 계좌, 그리고 투자금의 회수조치까지를 순서대로 들었다.
“현재 로망은 미국, 조쉬는 영국의 모처에 구금 중입니다. 조만간 그들의 처리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많은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 받아들였다. 라노크가 돌아왔으니 어쩌면 그들의 처리는 그의 몫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당장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강찬 씨의 능력과 성격을 알았기 때문에 저들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것 같고, 우리는 일단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대응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당장은 좀 여유가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라노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우리는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하고, 차세대 에너지 시설을 건설하면 되는 일입니다. 그동안은 모처럼 휴가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겁니다.”
“대사님은 어디에 계실 건가요?”
“나야 강찬 씨의 곁에 있어야지요.”
웃음이 픽 하고 나왔다.
어쩐지 어제 헤어졌다가 오늘 다시 만난 것 같았다.
“그들의 몸통 일부를 우리가 잘라냈으니 다윗의 별은 반드시 큰 반전을 노릴 겁니다. 핵미사일보다 더 큰 무언가, 금본위 화폐보다 무서운 방법. 우리는 그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고 기다리기로 하지요.”
이런 쪽은 라노크가 전문가다.
그래서 강찬은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고, 답을 들었다. 12시까지 이어진 대화는 점심을 먹으면서도 이어졌다. 그리고 식사가 끝날 무렵, 식당으로 반가운 인물이 들어섰다.
“안느!”
“무슈 강!”
그래! 이게 사람 사는 거지.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
“방해한 건 아닌가요?”
“난 괜찮아.”
강찬이 시선을 돌린 곳에서 라노크가 모처럼 여유로운 표정을 하며 손짓을 했다.
“점심은?”
“난 밖에서 먹었어요.”
대강 인사를 하고 난 다음이었다.
“정보총국에서 총국장을 추천해 달라는 연락이 있었어요.”
안느가 느닷없는 화제를 꺼내 들었다.
“흠. 어려운 문제다. 철저하게 믿을 수 있는 우리 편이 필요한 시기라…….”
이런 건 뭐라고 하기 어렵다.
강찬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났을 때였다.
“강찬 씨.”
“예, 대사님.”
‘대사님’이란 호칭을 들은 라노크가 입가에 웃음을 달고서 입을 열었다.
“제라르를 정보총국에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예?”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강찬은 당장 뭐라고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프랑스 외인 부대원, 특히나 특수팀 사이에서 그의 신임은 두텁습니다. 그리고 강찬 씨에 대한 충성심,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인물입니다. 다만, 그의 1년간의 행적이 문제가 되는데…….”
생각해 두었던 거구나.
강찬은 라노크가 전하는 말을 들으며 그가 이미 제라르를 정보총국에 보낼 계획이 있었음을 알았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라노크는 이런 인물이다.
제라르가 정보총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강찬은 절대로 프랑스를 적으로 돌리지 못할 거라는 것까지 계산했을 인물이 바로 라노크였다.
“그 점은 강찬 씨가 그를 믿는 것으로 충분히 감당할 만합니다.”
“제라르가 어떤 일을 하게 되나요?”
“감찰국장을 맡길 생각입니다. 직급은 역시 부총국장이 됩니다.”
강찬이 고개를 갸웃한 순간이었다.
라노크의 눈빛이 갑자기 서늘하게 바뀌었다.
“지금의 정보총국은 철저한 정리가 필요합니다. 제라르에게 부총국장 이하의 간부를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겠습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라면 제라르도 목숨을 걸어야 가능한 임무였다.
“제라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까요?”
“강찬 씨가 어떻게 권유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정보국에 제라르를 따를 인물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걸립니다.”
“그는 짧은 기간에 외인부대 특수팀 대원들을 사로잡은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그 정도라면 정보총국 내의 의심스러운 간부들을 제거하고 자신을 지지할 새로운 간부들을 만들 능력은 충분합니다.”
“대사님께선 이미 제라르를 염두에 두셨군요.”
“강찬 씨의 허락이 남았습니다.”
뭐가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는 거지?
강찬은 라노크가 무서운 구렁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제게 그럴 권한이 있나요?”
“그가 강찬 씨의 사람이라는 것을 정보국에 몸담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기회에 강찬 씨에게 정보총국을 넘겨 드리려는 겁니다. 앞으로의 프랑스를 지켜달라는 부탁과 함께 말입니다.”
라노크가 강찬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웃음기도 없었고, 표정도, 감정도 전혀 담기지 않은 얼굴이었다.
“나는 강찬 씨가 제라르를 이용해 정보총국을 손에 쥘 것을 당부합니다. 그가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면 나는 앞으로 그를 정보총국장으로 임명할 것입니다. 나는 강찬 씨가 그를 살펴주길 바라고, 누군가 새로운 인재가 나온다면 두 사람이 그 새로운 인재를 키워주길 희망합니다.”
나직하지만 단단한 힘이 담긴 음성으로 라노크가 뜻을 밝혔다.
또다시 한숨이 먼저 나왔다.
이건 거절하지 못할 청이고, 바람이고, 의지였다.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대로 제라르와 의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 하겠습니다.”
뭔가 야바위에 당한 거 같지 않나?
제라르와 정보총국을 사발에 넣고 뱅뱅 돌린 다음에 하나를 찍으라고 하는 것 같은?
“무슈 강. 한국에 들어가는 자금의 규모를 짐작합니까?”
“예?”
구렁이가 강찬의 심정을 짐작한 것처럼 다른 화제로 시선을 돌렸다.
“스위스에서 압류된 로드차일드 가문의 자금 말입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압류한 자금의 일정 부분도 한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런 쪽은 저야 잘 모릅니다.”
라노크가 그럴 것 같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연방준비은행(FRB)은 국가기관이 아니라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과 4,800개의 일반은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느닷없이 경제 이야기가 나와서 강찬은 신경을 바싹 곤두세우며 라노크의 말을 들었다.
“그 은행 대부분이 모두 로드차일드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이번 기회에 미국연방준비은행을 되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강찬의 표정을 본 라노크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스위스 은행과 각국 정보국이 한국에 건네줄 자금 규모가 대략 1조 달러 정도 됩니다.”
강찬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당최 뭐 실감이 나야 감동이 있는 것 아닐까?
그 정도면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돈가스 하나씩 다 돌릴 수 있는 돈 정도 되는 건가?
“한국 정부와 담판을 지으세요.”
계속해서 강찬이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가 나왔다.
“그 돈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일어납니다. 지자체와 행정부서, 국회, 사법부, 심지어 시민 단체까지 그 돈의 혜택을 받기 위해 날뛰게 될 겁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관리하나요? 프랑스는요?”
“정보총국이 손에 쥡니다. 일종의 국가 비자금으로 관리하게 됩니다.”
설마?
그 돈을 감추라는 건가?
강찬의 시선을 알아챈 것처럼 라노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다윗의 별은 그런 상황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킬 수도 있습니다. 달러를 휴지보다 쓸모없이 만들 능력이 그들에게 있으니까요.”
뭔가 모를 섬뜩함?
그게 전부였다.
솔직히 특수팀 몇백 명이 폭탄을 안고 온다는 말은 바로 실감이 나지만, 돈이 얼마니, 인플레시션이 어쩌니 하는 말은 먼 나라 이야기인 거다.
그나마 전에 니아플루에서 경제에 대한 교육을 받아서 대강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라노크는 이런 상황을 예상해서 그 교육을 받게 했던 걸까?
강찬은 또 한 번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는 역시 대사님의 적수가 아닙니다.”
라노크가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럽의 정보국 국장들이 들었다면 나를 다시 평가할 말이군요.”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찬은 라노크, 안느와 차례대로 인사를 마쳤다.
“가보겠습니다, 대사님. 제라르와 의논을 마치는 대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라노크는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강찬이 식당을 나선 다음이었다.
“아까 1조 달러를 들었을 때 강찬 씨의 눈을 기억해라.”
라노크가 자리에 앉으며 안느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그 순간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은 그래서 무섭다. 반면에 제라르를 정보총국에 보내자고 할 때 그는 망설였다.”
그는 강찬이 나간 문을 보았다가 다시 안느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라르가 위험하지는 않을지, 최악의 순간에 자신이 도울 수 있을지를 먼저 계산했지. 우리가 강찬 씨를 먼저 만난 것은 프랑스에 커다란 행운이고, 우리가 끝없이 미래를 대비했기 때문이다.”
“예.”
안느의 답을 들은 라노크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구나.”
“그런데 정보총국의 간부를 그렇게 제거해도 괜찮을까요?”
“정보 세계에서 다른 색으로 물들었었다는 말의 의미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해가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번 물든 인물은 절대 돌아오지 못한다.”
라노크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명심해라.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프랑스의 영광 외에 다른 목적을 지녔던 정보총국의 인물은 그가 누구라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그는 언제고 해가 되기 때문이다.”
“예.”
“제라르를 지켜보면 좋은 공부가 될 거다. 그의 판단, 행동, 그리고 그의 결단력까지 모두. 그가 지닌 강찬 씨에 대한 충성이 프랑스를 향하게 된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예.”
안느는 그저 대답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