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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363화 (36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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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표정의 라노크, 맞은 편에서 차갑게 시선을 돌리는 바실리의 앞이다.

셔먼은 홍차를 마시는 것으로 표정을 감췄다.

달각.

그가 홍차 잔을 내려놓았을 때였다.

“이제 결정할 시간이다.”

바실리가 정나미 뚝 떨어지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셔먼은 라노크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정보 세계라고 해도 사람 사는 세상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눈앞에 있는 라노크가 로리암에 들어가면서까지 일을 진행한 것이 정말 계획된 일이었을까, 아니면 알아서 일이 이렇게 풀린 걸까?

“라노크.”

셔먼이 두꺼운 안경 너머로 라노크를 바라보았다.

“다윗의 별을 이겨낼 자신이 있나?”

바실리가 이제 와서 뭔 시답잖은 말을 하나 하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아니면 자넨 정말 미스터 강이 우리 세계의 질서를 유지해줄 수 있다고 믿는 건가?”

셔먼은 궁금해하던 두 가지를 꺼내놓고 답을 기다렸다.

“다윗의 별이 금본위 화폐를 준비한 마당에 무슈 강이 극적으로 등장했고, 차세대 에너지를 현실로 이루어낸 것.”

라노크가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세계 전쟁을 계획했지만, 번번이 무슈 강에 의해 좌절된 것, 이 두 가지만 가지고도 무슈 강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지.”

셔먼은 가면을 뒤집어쓴 것 같은 라노크의 표정에 압도당한 눈치였다.

“미국이 먼저 그의 가치를 알아차렸다면 어땠을까? 분명 한국을 쥐어짜서라도 데려갔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내 뜻을 분명하게 밝힌 것 같다.”

“우리는 대통령의 의지를 존중해야 돼.”

“셔먼. 미국만큼 실무 담당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나라가 있나? 그러니 그런 핑계는 그만두고, 자네의 생각을 먼저 말해주는 게 좋아.”

셔먼은 지금의 라노크가 이전에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단호해졌다고 느꼈다.

셔먼이 머뭇거리며 홍차 잔을 내려다볼 때였다.

“새로운 금본위 제도를 미국이 받아들인 이유, 다윗의 별이라는 단체의 실체, 마지막으로 이번에 왜 미국이 다른 생각을 품었는지?”

바실리가 얇은 입술을 움직이며 말을 건넸다.

“그것들을 모른 상태에서 미국이 이런 모습을 꾸며낸 것은 아니겠지? 북태평양에 있는 알리호에서 미사일이 날아가면 이런 시간이 의미가 없어져. 그러니 빨리 판단하는 게 좋아, 셔먼.”

“그건 러시아의 책임이다.”

“아니지.”

셔먼의 항의를 바실리가 곧바로 패대기쳤다.

“너희는 그 미사일로 한국을 노렸어.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무슈 강이 그 일을 막아섰기 때문에 미사일이 미국을 향하게 된 것뿐이다. 우리 앞에서 헛소리로 빠져나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그렇더라도 러시아 핵탄두가 러시아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것에는 변함이 없어, 바실리.”

바실리가 보란 듯이 고개를 저어댔다.

“자네가 그따위로 나와봐야 핵탄두가 떨어지는 곳이 미국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어. 그리고 명심해라. 핵전쟁이 일어난다고 쳐도 러시아, 프랑스, 중국이 가진 핵미사일을 미국은 감당 못 해.”

단호한 바실리의 말이 떨어졌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셔먼이 결심한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이번 일에 대한 응징은 없을 것, 그리고 별도의 보상을 요구하지 말 것.”

바실리가 먼저 “흥!”하고 코웃음을 터트렸고, 이어서 라노크가 한쪽 입술을 살짝 움직였다.

“미국을 응징하기는 우리도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의 보상은 있어야지. 특히나 이번 일로 많은 희생을 치렀던 한국에 대해서는.”

“그 정도라면야…….”

“시간이 얼마 없어, 셔먼.”

라노크의 재촉에 셔먼이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다윗의 별은 이미 미국의 많은 부분을 손에 쥐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세계 경제를 얻기로 하고, 우리는 아시아, 그중에서도 중국을 손에 넣는 것에 합의했었다.”

말을 마친 셔먼은 두 사람의 반응을 보며 이들이 이미 그 부분까지 짐작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다윗의 별은 미국…….”

나올 만큼 나왔다.

그런데도 셔먼은 또다시 두 사람을 살핀 후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연방은행(FRB)에서 만든 경제정보국(EII)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 뒤까지는 우리가 짐작만 할 뿐이다.”

바실리가 픽 하고 웃은 다음이었다.

“오해해서는 곤란해. EII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완전한 독립 단체다.”

셔먼이 변명처럼 말을 꺼내 들었다.

“우리도 그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는 있었는데, 문제는 미국의 경제와 정치를 그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완벽하게 쥐고 있는 데다, CIA나 심지어 DIA의 활동 내역까지 확인할 능력을 가진 상태라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셔먼은 아예 홀가분해진 얼굴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수용품과 건설에서 나오는 수익이 다시 그들에게 돌아간다. 거기에 월가의 파생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미국의 의지는?”

라노크의 질문에 셔먼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다윗의 별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 유럽정보국에 협조하겠다.”

바실리가 묘하게 웃으며 라노크를 바라본 다음이었다.

“바실리. 알리호를 셧다운(Shut down) 시켜라.”

셔먼의 고개가 불쑥 들렸다.

“우리 러시아는 미국과 다르다. 모든 핵잠수함에 셧다운 시킬 수 있는 장치가 있지. 이로써 우리는 알리호를 버린다. 이에 대한 보상은 해줘야겠지?”

“물론이다, 바실리!”

셔먼은 감격한 얼굴이었다.

“다음은 로드차일드에 관한 문제인데.”

라노크가 화제를 돌렸다.

“정보총국에서 내일 그들 가문의 주요 인사 13명을 제거하겠다.”

충격적일 만큼 뜻밖의 내용이어서 셔먼은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미국 정보국에서 제3국 핵 잠수함을 격침한 것으로 발표해. 그리고 미국에 핵전쟁을 일으킬 계획을 세운 혐의로 로드차일드의 남은 인물들을 모조리 체포해라.”

“라노크, 그들을 제거하고 체포한다고 해서 그들이 없어지지는 않아.”

“스위스에 예치되어 있는 그들의 자금을 압류할 거다. 그리고 세계 전쟁을 일으키는데 사용하려 했다는 명분으로 프랑스, 러시아, 독일, 그 외에 유럽에 투자되어 있는 그들의 자금 전체를 압류하겠다.”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었나?

셔먼이 멍한 얼굴로 라노크를 보았다.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이 항의하지 않는 조건, 그리고 미국법원과 국제법원이 반환 청구를 기각한다는 조건이다. 압류된 모든 금액의 30%는 해당 국가가 소유한다. 30%는 미국 정부에 반환, 나머지 40%는…….”

규모가 얼마나 될지 상상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셔먼이 마른침을 삼키며 라노크의 입에 시선을 주었다.

“한국에 지불한다.”

“그런…….”

“그 정도는 보상해야지. 이번 핵전쟁을 막은 무슈 강과 한국 국가정보원이다.”

“다윗의 별에 속한 인물들은?”

셔먼의 질문에 바실리가 고개를 저었다.

“이번 재산 압류와 동시에 해당 국가에서 관련자 전체를 체포할 생각이다. 모두 종신형을 받을 거고, 가족들은 특별 관리 대상이 된다. 인권이니 뭐니 헛소리를 지껄일 거라면 여기에서 그만두는 게 좋다.”

셔먼은 생각이 멈춘 사람처럼 보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바실리는 보드카와 잔을 가져왔고, 라노크는 시가에 불을 붙였다.

“다윗의 별이 협박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가 자금 아닌가? 그 부분은 미국 몫으로 가져갈 30%로 충분히 감당할 수준이다. 이 정도면 훌륭한데?”

“EII는?”

“그거야 정말 미국이 알아서 할 일이지. 리비아에서 무슈 강의 눈을 피해 빠져나간 요원 놈을 핑계로 써. 리바아 내전, 한국의 테러를 주관했던 점에 대해 대통령 사과를 공식 발표하고 해당하는 놈들을 모조리 제거해 버리는 게 가장 좋겠지.”

도대체 이 두 사람이 모르는 것이 뭐가 있을까?

그렇더라도 셔먼은 확인이 필요했다.

“그 정도가 다윗의 별에게 충격이긴 하겠지만 그들의 숨통을 끊을 수는 없다.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이렇게 숨통이 막혀 죽느니 그들도 전면전을 선택하지 않을까? 그때부터가 진짜 싸움이 되겠지. 한국에 가는 40%의 자금은 무슈 강이 그들과 싸우는데 들어가는 자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셔먼이 완벽하게 졌다는 투로 고개를 저은 다음이었다.

“알만 빈 지브릴과 약속한 내용이 뭐지?”

라노크의 질문이 시가 연기처럼 셔먼에게 날아들었다.

“감춘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이 시간 이후에 또다시 미국이 다른 얼굴을 보인다면 다윗의 별과 미국이 생존을 위한 싸움을 벌이게 만들겠다. 우리는 이긴 쪽과 손을 잡으면 되니까. 다윗의 별이 돌이키기 어려운 탐욕을 부렸다는 것을 잊어선 안 돼.”

셔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차세대 에너지 발전 시설을 건설 중이다. 먼저 영국의 정보국에게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에 지진을 일으킬 계획이었고, 다음으로 차세대 에너지 시설로 다윗의 별에 합류할 생각이었다.”

“미국이 얻는 것은?”

“아시아 지배권, 차세대 에너지 시설의 지분.”

라노크가 이해한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수긍이 가지. 마지막이다.”

“이제 더 감춘 것도 없다.”

“아프가니스탄에 UIS가 모여 있는 이유.”

셔먼이 고개를 들어 라노크를 바라보았다.

“UIS가 나라를 세우겠다는 명분 뒤에 감춘 것, 한국의 특수팀이 그곳을 향하게 만든 이유, 그것이 뭔지를 알려줬으면 싶다.”

“알고 있을 것 같은데 굳이 내 입을 통해 확인해야겠나?”

“정보국의 신뢰는 사실을 털어놓는데 있다는 것을 잘 알지 않나?”

셔먼이 참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첫 번째는 미스터 강의 제거.”

바실리가 대놓고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두 번째는 한국과의 전면전을 일으킬 명분을 얻는 것이었다.”

라노크는 여전히 가면을 뒤집어쓴 차가운 얼굴이었다

“UIS가 나라를 세우고 가장 먼저 성전의 대상으로 지정할 곳이 한국이었다. 아비부의 일에, 그동안 미스터 강이 했던 작전들을 공개하면 충분한 명분이 된다고 판단했었다.”

“역시나 다윗의 별과 알만 빈 지브릴이 자금을 댔겠지?”

“그렇다.”

“그래서 미국 특수팀이 직접 우두머리를 제거하지 못한다는 거였나? 무슈 강이 작전에 성공했을 경우, 대통령 선거에 필요하긴 하고, 밀약이 있으니 직접 나서서 제거하기는 어렵고?”

바실리가 비릿한 웃음으로 지켜보는 앞에서 셔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셔먼.”

라노크의 부름에 셔먼이 고개를 들었다.

“미국이 강대국인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유럽의 연륜과 러시아의 저력을 무시하지 마라. 거기에 새롭게 깨어난 중국이란 사자도 있지. 우리 모두는 무슈 강이 만들어낼 정보국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기대한다.”

셔먼이 바실리의 눈치를 빠르게 살핀 다음이었다.

“현장을 저렇게 장악한 인물은 없다. 우리 정보 세계에 저런 믿음을 준 인물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라노크가 시가를 재떨이에 꽂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와 다르게 최소한의 정의를 안다. 이제부터 미국도 우리의 뜻에 따라주었으면 싶다.”

라노크가 말을 마친 다음이었다.

쪼르륵.

바실리가 보드카를 들어 잔에 채웠다.

쪼르륵. 쪼르륵.

석 잔의 보드카를 채운 바실리가 가슴에서 권총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달칵.

따르던가, 전쟁과 죽음을 택하던가.

거무튀튀한 권총의 총구가 분명하게 셔먼을 노려보고 있었다.

“셔먼?”

“잔인한 선택이군. 좀 부드러운 방법은 없었나?”

셔먼은 보드카의 잔을 들었다.

“유럽 정보국, 그리고 미스터 강에게…….”

“무슈 강!”

바실리가 빠르게 호칭을 정정해주었다.

“무슈 강의 지시에 따르겠다.”

훌쩍.

셔먼이 두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보드카를 털어 넣었다.

***

아직 해가 보이지 않았지만, 사방이 밝아지고 있었다.

숲이 제법 우거진 산이다.

루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대원들이 주변을 완벽하게 돌아보았고, 다음으로 필요한 곳을 지켰다.

멀리 보이는 적의 근거지는 아예 모형도시 수준이었다.

저 안에 적어도 천 명의 적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모조리 죽여야 할지 모른다.

“강명구. 식사하고 8시까지 대원들 돌아가면서 재워.”

“알겠습니다.”

강명구가 빠르게 움직였다.

강찬이 적당한 곳에 앉은 다음이었다.

“밥 먹읍시다.”

석강호가 씨 레이션을 들고 다가왔다.

최종일과 제라르, 우희승과 이두희가 곁에 있었다.

한국식 씨 레이션은 몇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주먹밥이었다.

우걱우걱.

다들 주먹밥을 입에 넣었다.

이두희가 미숫가루에 물을 부어 흔들어서 옆에 놓아주었다.

“이 가루는 정말 기가 막힙니다. 마법의 가루입니다.”

신기하게 제라르가 그 미숫가루를 제일 반겼다.

하기야, 비타민과 설탕을 잔뜩 넣어두었으니 단 거 좋아하는 놈이 오죽 좋겠나.

미숫가루를 쪽쪽 빨아 먹는 제라르를 보며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서양놈이 입술 옆에 밥풀을 붙인 꼴이라니!

이거야, 애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강찬은 손을 뻗어 밥풀을 떼 주었다.

5분 만에 식사가 끝났다.

“먼저 자라. 한 시간 뒤에 교대하자.”

“알았소.”

석강호와 제라르, 최종일과 우희승이 바로 밥 먹은 근처에 몸을 눕혔다.

강찬은 소총을 어깨에 걸치고 한쪽 다리를 든 자세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선을 돌리자, 맨바닥에 몸을 눕힌 대원들이 보였다.

왼팔에 달린 태극기 하나를 위해, 사명감을 위해 적진 한가운데서 맨바닥에 누운 대원들이다.

영주권을 위해서, 저축을 위해서, 그리고 암울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서 싸웠던 용병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멀리 보이는 산 위로 해가 머리를 내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원들이 감당해야 할 처절한 전투를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것처럼 찬란하게 빛나면서 말이다.

부스럭. 쩔걱.

그때 강명구가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강찬의 곁으로 다가왔다.

“안 잤어?”

“대원들 먼저 재웠습니다.”

“앉아.”

강명구가 강찬의 곁에 비슷한 자세로 자리 잡았다.

“커피나 한잔 먹었으면 좋겠다.”

강찬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릴 때였다.

강명구가 부스럭거리더니 허벅지의 보조주머니에서 검은색 비닐 팩을 꺼내 건네주었다.

“뭐야?”

“커피입니다. 좋아하신단 말씀을 듣고 하나 챙겨뒀었습니다.”

강찬은 멍하니 강명구가 건네주는 커피를 보았다.

“나 잘했죠?”

강명구의 표정이 꼭 그랬다.

성의다. 그냥 성의인 거다.

이런 걸 여기까지 들고 왔다느니, 이럴 필요 없었다느니,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보다는 이럴 땐 그냥 받아서 맛있게 마셔주는 게 제일 좋은 거다.

강찬이 받아서 비닐 팩의 한쪽 끝을 찢은 다음 기분 좋게 한 모금을 마셨다.

“좋은데?”

그런 다음 강명구에게 다시 디밀었다.

“커피는 나눠마셔야 더 맛있다.”

강명구가 얼른 받아서 입을 대지 않은 채로 한 모금을 마시고는 다시 건네주었다.

“꿈꾸는 것 같습니다.”

강찬이 힐끔 돌아본 시선 앞에서 강명구는 적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민국 사건 때, 원장님을 잃었을 때, 국제빌딩 테러 후에, 이렇게 적의 본진을 공격할 수 있었으면 하고 정말 간절히 바랐었습니다.”

강명구가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가 테러에 당당한 나라가 될 수 있다면, 제가 이름 없는 별이 되어도 억울하지 않을 거라고 골백번도 더 생각했었습니다.”

“남은 식구들이 어떨지는 생각해 봤어?”

“했었습니다.”

강명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강해지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어째서 강철규 때부터 강명구에게 이르기까지 이런 인물들은 끝이 없이 나오는 걸까?

대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게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둘이서 적진을 보며 커피를 두어 번 나눠 마신 다음이었다.

쩔걱. 쩔걱.

대원 한 명이 빠르게 다가왔다.

“무전이 왔습니다. 비무장 팀과 606이 뒤로 올라오고 있답니다.”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산의 뒤편으로 움직였다.

쩔걱. 쩔걱. 부스럭. 부스럭.

아래쪽에서 어깨에 대검을 건 비무장 팀과 완벽하게 무장한 606대원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누워있던 대원들이 들려오는 소리와 바뀐 분위기에 퍼뜩 일어난 다음이었다.

비무장 팀과 606대원들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강찬은 강철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질구레한 상처들이 딱지로 가라앉은 강찬과 새로운 상처들이 올라온 강철규.

‘얼굴이 그게 뭐야?’

두 사람이 비슷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대원들 전체가 다 올라왔다.

다들 반가운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어쩐지 적진이 작아 보이는 느낌도 들었다.

“고생했어.”

강찬의 말이 떨어진 직후다.

“일규와 동식이를 적진에 먼저 보냈다. 대강 살펴보고 오라고 했는데 저놈들이 일어나기 전에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다.”

강철규가 먼저 변명처럼 말을 건넸다.

“그리고 좀 챙겨온 게 있는데.”

그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였다.

비무장 팀 대원들이 RPG 10기 정도를 강찬의 앞에 내려놓았다.

피식.

강찬은 그냥 웃음이 나왔다.

“두 분 돌아오면 거기에 맞춰서 작전 짜기로 하고, 우선 식사하고 좀 쉬어.”

강철규가 고개를 끄덕였고, 대원들이 각자 편안한 곳에 자리 잡았다.

해가 완전히 산 위로 모습을 드러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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